◈ [11화] 몬스터 토벌 (1)
“그래, 토벌대 말이더냐?”
빈센트가 피식 웃으며 묻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좋다. 가주가 되어서 한 입으로 두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 토벌대를 꾸릴 권한을 주마. 물론 그렇게 많은 인원을 차출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많은 인원을 통솔할 생각도 없었다.
이번 대련으로 이미지 쇄신이 있었다고 한들 에단은 여전히 가문에서 버린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가문 내에서 입지가 좁은 것은 물론이요, 기가 세기로 유명한 가문의 기사와 병사들이 순순히 에단의 말을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에단의 밑에 들어간 순간, 좌천이나 진배없었기 때문이다.
‘다룰 자신도 없고.’
싸움에 재능이 있는 것과 통솔력이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소수의 인원을 컨트롤하는 것과 소대급 인원을 완전히 복종시키는 것 또한 아예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머리 아픈 일을 떠맡을 생각도 없고.’
귀찮고 신경 쓰이는 일에 자처해서 나설 정도로 이번 토벌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에단이 토벌에 참가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죽은 나무.’
중반부에 주인공이 얻게 되는 기연.
혹은 이스터 에그.
주인공의 수많은 스펙 중 하나가 되는 가호.
에단은 그것을 가로챌 생각이었다.
‘주인공이 먹게 둘 수는 없지.’
현 시점에서도 이미 주인공이 먹은 기연이 몇 가지는 될 터였다.
하니 에단은 조금이라도 주인공보다 더 강해져야 했다. 그런 만큼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기연 몇 개는 가로채 가야 수지 타산이 맞는다.
그때, 에단의 주위에서 머뭇거리던 모룬이 소리쳤다.
“아버지!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끄럽다. 지금 대화 중인 게 안 보이더냐?”
빈센트가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모룬이 멈칫했지만, 이번에는 그도 양보하기 힘들었는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미 토벌대는 구성이 완성되었습니다. 갑자기 인원을 차출한다고 하시면…….”
“십인대 수준이면 충분합니다.”
모룬이 반대 의사를 계속해서 표출할 때 에단이 말했다.
에단은 경멸의 눈초리로 모룬을 슬며시 훑어본 후 다시 빈센트를 바라봤다.
“십인대라…… 생각보다 적구나. 그 정도로 충분하겠느냐?”
“충분합니다. 다만, 인원은 제가 구성할 겁니다.”
“……뭐라고?”
“그 정도 권한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가주님께서 인원을 강제로 배정시킨다고 한들 그들이 제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리란 것쯤은 가주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에단의 말에 빈센트는 침묵하며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다. 하지만 나도 하나 조건을 걸지. 네가 뽑는 병사나 기사도 차출에 동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강제로 차출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빈센트는 입을 다물고 있는 모룬을 바라봤다.
방금까지만 해도 불안감에 젖어 있던 모룬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속이 훤히 보이는군.’
빈센트는 한심한 모룬의 모습에 마음속으로 혀를 찬 뒤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작게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조금의 시간을 주시죠. 일주일 안에 제 부대를 완성해 오겠습니다.”
‘재밌구나.’
빈센트는 에단의 기개 어린 태도에 묘한 감흥을 느꼈다.
철없던 망나니인 줄만 알았는데, 계속해서 자신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변덕인지 아닌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하지만 이번에는 변덕 같아 보이지 않았다.
빈센트는 에단의 눈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일말의 망설임과 부담도 없이, 자신감과 총기만이 가득했다.
‘오만한 녀석이구나.’
하지만 빈센트는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오만함은 귀족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였다.
이유 없는 자만과 오만은 독이 되겠지만, 에단은 이미 한 번 결과로 증명을 해냈다.
‘하지만 한 번으로는 부족하지.’
한 번의 증명으로는 지금껏 에단이 저지른 일들을 무마할 정도의 성과를 냈다고 보기 힘들었다.
따지고 보면 동생을 제압한 것뿐이었으니까.
원래 가지고 있어야 할 자리를 찾은 것뿐이었다.
당연히 이것을 성과라고 볼 수는 없었다.
‘마나 유저를 제압한 것은 놀랍긴 하다만.’
빈센트는 묘한 눈으로 에단을 훑어봤다.
두툼하던 지방 덩어리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오밀조밀한 잔 근육이 에단의 몸을 갑옷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정할 테냐?”
빈센트의 물음에 에단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죠. 여기서 권유해 봤자 제 밑으로 올 사람은 없을 테고요. 기껏 얻은 이점을 버릴 만큼 멍청하지는 않습니다.”
에단은 주변 인파를 둘러봤다.
수많은 기사들과 병사들, 그리고 관중까지. 하나같이 표정들이 가관이었다.
그들은 모두 충격과 놀라움에 물든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언가 말을 내뱉고 싶어 하는 표정들이었지만, 다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가주 앞에서 추태를 보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허락은 구한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에단은 빈센트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예를 표한 다음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면서 마주친 모룬을 보며 에단은 작게 중얼거렸다.
‘쫄지 마.’
잠시 벙 쪄 있던 모룬이 에단의 입 모양을 읽었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일그러졌다.
에단은 태연하게 모룬을 지나치며 네이드를 향해 손짓했다.
“왜 그렇게 굳어 있어? 가자.”
“……네.”
네이드와 함께 연무장을 빠져나온 에단이 발걸음을 옮기자 수많은 인파가 홍해처럼 갈라졌다.
‘마음에 드는군.’
저 눈초리들.
당혹으로 물든 눈빛.
류태신으로 살던 선수 시절, 시합이 끝날 때마다 질리도록 받아 본 눈초리였지만, 저 시선을 받을 때마다 감회가 새로웠다.
늘 짜릿했다.
응당 질 것이라고 예상한 언더독이 일으킨 반전.
그는 그 상황을 즐기곤 했다.
‘……설마 더 완벽하게 성공시킬 줄이야.’
에단을 뒤따르던 네이드가 복잡한 눈초리로 에단을 바라봤다.
네이드는 에단과 몇 차례 합을 맞췄다.
당연히 에단이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대결에서 에단이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연습과 실전은 달랐다.
에단은 실전에서 더욱더 뛰어난 움직임을 보여 줬다.
지금껏 해 온 것들은 몸 풀기에 불과하다는 듯이.
‘이번 토벌에서도 또 일을 낼지도 모르겠군.’
매해 이뤄지는 정기적인 토벌이었다.
하지만 숨겨진 의도는 따로 있었다.
‘자격의 판별.’
토벌대를 꾸리고, 얼만큼의 성과를 내는지를 판별하는 용도였다.
가주와 그 직속 기사단은 토벌 과정에 발을 깊게 담그지 않았다.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토벌이었지만, 세력 구도는 이미 완성이 되었다고 봐도 좋았다.
장남인 모룬이 가장 큰 성과를 냈고, 맡은 토벌의 규모도 가장 컸다.
‘과연 다시 이변을 일으킬 수 있을까.’
네이드도 에단과 가주와의 대화를 들었다.
고작 십인대 수준의 부대다. 첨병이라고 칭하기도 민망한 규모였다.
‘중요한 건 규모가 아니었지만.’
토벌의 성과는 규모가 전부가 아니었다.
어쩐지 이번에 에단이 한 번 더 사건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 * *
‘토벌대라…….’
에단은 자신의 별채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원래라면 슬슬 근신이 끝날 시기였다.
하지만 에단은 이 별채가 마음에 들었다.
‘외압도 없고.’
에단은 머릿속으로 모룬과 카론을 떠올렸다.
본채에서 지낸다면 하루가 멀다 하고 마주칠 녀석들이었다.
경쟁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두 팔 벌려 반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매일 귀찮은 일을 겪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에단은 자잘한 반격보다 한 번에 터트리는 것을 원했다.
‘남은 형제들은, 어디 보자…….’
에단은 머릿속으로 블란테 가문의 자제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먼저 장남인 모룬, 둘째인 에단, 셋째 여동생인 리사, 그리고 막내 카론.
‘이 중에 영향력 있는 녀석은…….’
가문 내의 입지는 모룬이 가장 높았다. 장자인 점도 한몫했고, 가진 무력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다.
블란테 가문은 검술 가문인 만큼 약육강식을 추종한다.
‘문제는 멍청하다는 거지.’
앞서 겪은 대로 모룬은 단순 무식했다.
감정을 숨기지도 못하고, 앞을 내다보지도 못한다.
편협한 아집도 있으면서 자존심은 또 강했다.
그런 점들 때문에 모룬을 지지하지 않는 세력도 존재했다.
‘나는 뭐, 보다시피.’
가문의 문제아이자 망나니. 어찌 보면 최악의 상황이었다.
성격은 형제 중 가장 지랄 맞은 데다, 검에 재능은커녕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녀석.
‘그게 지금 내 입장이란 말이지.’
남은 핏줄은.
‘리사 블란테.’
검술의 재능도 출중하고 성격 또한 불같았지만, 가문 승계에 관심이 없어 아카데미로 떠났다.
‘히로인 중 한 명이고.’
에단은 리사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주인공이 가문 내에서 얻어 가는 기연 대부분이 리사로 인한 것들이었다.
‘이제 다 내 거지만.’
주인공 녀석이 이곳에서 가지고 갈 것은 한 톨도 없게 만들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걸 위해 자원한 토벌대였다.
‘예정보다는 빠르지만, 상관없겠지.’
오히려 지금이 적기라고 볼 수 있었다. 아무 피해 없이 기연을 얻어 갈 수 있는 상황이니.
에단은 별채를 돌아다니며 고민했다.
‘어찌할까.’
대련에서 승리하여 전보다는 나아진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한데.’
그것만 가지고는 인력을 끌어오기가 애매했다.
실력이 있는 기사는 이미 한자리 차지하고 있을 테고, 싹수가 보이는 녀석은 에단을 따라오지 않을 테다.
‘썩은 동아줄이라 그거지.’
괜히 에단을 따라갔다가 피를 볼 바에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토벌대에 불참할 게 빤했다.
‘그렇다고 아무나 데려갈 수는 없고.’
이번에 얻을 계획인 ‘죽은 나무’는 그리 만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적어도 아직 마나를 깨우치지 못한 에단에게는 그랬다.
길을 열어 줄 녀석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에단의 말을 충실히 따를 녀석들로 토벌대를 구성해야 했다.
‘기존의 토벌대에서 이탈해도 별말이 안 나올 녀석들.’
고집 세기로 유명한 기사는 당연히 제외하고.
‘병사들도 쉽지 않겠네.’
블란테 가문의 기사들은 대체적으로 용맹한 편이었다.
하지만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녀석들은 아니었다.
당연히 사리 분별은 할 줄 알았고, 에단의 계획을 들으면 제대로 따르지 않을 것이 빤했다.
‘그럼 이제 남은 녀석은…….’
아직 정식으로 기사 작위를 수여받지 못한 수습 기사, 갓 군에 들어온 말단 병사, 그리고 하인들.
‘우선은 하인부터인가.’
있을 것이다.
재능을 개화시키지 못한 하인 몇 명이.
‘이름이…….’
원작 내에서도 입지가 적어 잘 떠오르지 않는 녀석.
결국 이름을 떠올리지 못한 에단은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네이드에게 물었다.
“네이드.”
“네, 도련님.”
“웬만한 하인이랑 하녀들은 대충 알고 있지?”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얼굴에 긴 흉터 있는 하인 혹시 알아?”
에단의 물음에 곰곰이 고민하던 네이드가 입을 열었다.
“얼굴에 자상이라……. 휴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이드의 말을 듣자 에단의 입가에는 긴 미소가 지어졌다.
“어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