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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9화 (9/398)

◈ [9화] 격투천재 (1)

기상과 동시에 에단은 연무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곧바로 하드한 운동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먼저 땀을 뺀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유산소를 뛰었다.

몸이 몰라보게 가벼워졌는데, 단기간에 빠르게 변하다 보니 체감이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체중이 빠지는 속도가 가팔랐다.

원래 이 정도 속도라면 신체가 적지 않은 부담을 느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신체의 잠재력 덕분인지 오히려 몸이 예리하게 세공되는 것 같았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숨이 차오르고 신체 곳곳이 아려왔지만, 에단은 그 통증을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성장의 쾌감이었다.

꽤나 오랜 시간 잊고 있던 감정이지만, 에단의 몸에 들어온 뒤로는 매일같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더 이상 훈련이 지루하지 않았다.

고통 따위는 찰나일 뿐이었다.

네이드는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훈련을 즐기다니. 보면서도 놀라웠다.

기사들도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 구보다.

체력의 기본이자 근간이지만, 뭐든지 기본기가 어려운 법.

하지만 에단은 훈련을 시작한 뒤로 오전 구보를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에단은 왼쪽 손목에 손가락을 얹었다.

‘심박수는…… 안정적이네.’

이전처럼 주체 못 할 정도로 격렬히 뛰지는 않았다.

심장이 서서히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후욱, 후욱―

호흡도 안정적이었다.

신체는 확실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구보를 마친 에단은 가볍게 몸을 씻고 식사를 챙겼다.

본 훈련을 하기 전에 영양 섭취는 필수로 가져가야 했다.

이제 탄수화물도 적당히 섭취해 주고 있었다.

근력의 향상과 순간적인 폭발력을 위해서는 탄수화물은 필수적이었다.

‘식단은 훌륭해서 맘에 들어.’

귀족은 귀족이다.

그것도 검술로 위세를 떨치는 가문인 만큼, 음식의 질에 있어서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육류와 야채 곡물류 모두 최상급이었다.

비록 조리법은 조금 구시대적이었지만, 투박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에단은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자연 친화적인 음식이 입에 맞았다.

음식을 섭취한 후에는 스트레칭으로 몸의 기능을 끌어 올렸다.

근육과 관절의 가동 범위와 유연성은 신체가 받는 대미지를 감소시키며, 신체를 더욱 치밀하게 컨트롤할 수 있게 만들어 줬다.

‘끄응, 적응이 안 되는군.’

원래 스트레칭은 최대한 고통을 감수해야 진전이 있는 법이었다. 에단은 인상을 와락 구기며 스트레칭을 진행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재밌나?”

에단은 그림자처럼 자신을 따라다니는 네이드를 바라봤다.

“성실하시군요.”

“……비꼬는 거냐?”

“그럴 리가요. 감격스러워서 그렇습니다.”

“그런 표정이 아닌데?”

“그럴 리가요.”

네이드가 작게 미소 짓자, 에단은 한숨을 내쉬고 하던 스트레칭을 마저 끝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흐르자 에단은 다시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에 도착한 에단은 목검을 쥐었다.

“뭐 해? 어서 안 오고.”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던 네이드가 에단에게 다가왔다.

“왜 그러시죠?”

“왜긴 왜야. 검 알려 줘야지.”

“……검 말씀이신가요?”

“그럼 이건 장식이야?”

에단이 손에 쥐고 있는 목검을 휘두르며 물었다. 바람을 가르는 목검의 소리가 꽤나 흉악했다.

네이드는 그런 에단을 보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에는 어쩔 수 없이 상대가 되어드렸습니다만…… 저는 결국 한낱 집사에 불과합니다.”

‘속 검은 노인네가.’

네이드에 말에 에단이 피식 웃었다.

“어. 그건 알고 있는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네. 나도 그 컨셉을 지켜 주고 싶기는 하거든? 그런데 지금 내 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어. 지나가는 하인보고 상대가 돼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허허.”

에단의 말에 네이드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언제부터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거지?’

망나니 시절에 해 온 막무가내식 패악질이 아니었다.

거침없는 언행은 그대로였지만, 이전에는 없던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알려 드릴 수 있는 건 많지 않습니다.”

“나도 많이 배울 생각은 없어.”

검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은 에단도 알고 있었다.

에단이 원하는 것은 기본기였다.

‘검을 알아 가는 게 먼저겠지.’

거리감, 공격 양식, 변수.

모두 승부에 치명적인 것들이었다.

대련이라는 허울로 포장하고 있었지만, 에단과 카론 모두 무기를 쥐고 싸운다.

찰나의 순간, 결판이 지어질 것이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대응책을 마련해 두는 것이 옳았다.

예상 못 한 변수로 낭패를 볼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럼 기본적인 것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네이드는 목검을 쥐었다.

손에 쥔 목검을 바라보는 네이드의 시선이 복잡했다.

네이드는 잡념을 떨쳐 내고 에단에게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가르치는 것에 재능이 없습니다.”

“괜찮아. 내가 알아서 잘 배우니까.”

“…….”

에단의 오만한 대답에 네이드는 잠시 침묵하다가 검을 휘둘렀다.

휘익.

세로로 휘둘러진 검.

언뜻 보면 단순하고 별거 없어 보이는 움직임이었지만, 네이드의 동작에는 작은 군더더기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예비 동작 없이 수직으로 그어지는 네이드의 목검.

“이것이 세로 베기입니다.”

에단은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네이드의 동작을 천천히 떠올리며 곱씹었다.

그러길 잠시, 이내 에단이 눈을 뜨고 곧장 자세를 잡았다.

‘보폭은 이 정도였나?’

평소 격투기 시합 때와는 조금 다른 비교적 좁은 보폭.

검을 들되, 너무 높이 들지 않고 그대로 수직으로 긋는다.

에단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모든 상황이 그려졌다.

마치 눈앞 환영이 미래를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에단은 천천히, 그렇다고 느리지 않은 속도로 검을 내리그었다.

쉬익―

방금까지 에단이 펼치던 흉악한 파공음과는 전혀 다른,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움직임을 본 네이드의 눈이 커졌다.

‘……방금 뭘 한 거지?’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검에 대해 모르는 자가 보면 평범한 세로 베기에 불과해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네이드는 알 수 있었다.

이건 단순한 세로 베기가 아니었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는 완성된 베기였다.

호흡, 자세, 움직임, 모든 것이 완벽했다.

“흠, 대충 이런 식인가.”

에단은 검을 바라봤다.

묘한 감흥이 들었다.

맨몸으로 싸울 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이었다.

“……검을 배우지 못한 것이 맞습니까?”

“넌 나랑 계속 붙어 있었으면서 이상한 소리를 하네? 내가 알아서 배운다고 했잖아. 계속해.”

에단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네이드는 에단이 영유아 시절 때부터 곁에서 보필했다.

하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에단이 네이드의 시선을 피해서 무언가를 하기는 힘들었다.

물론 네이드가 에단의 곁을 지키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집사라는 신분이 있는 만큼 처리해야 할 업무도 있었고, 그렇게 잠시 자리를 비울 때면 에단은 곧장 사고를 치곤 했다.

그렇기에 네이드가 느끼는 충격은 더욱 컸다.

“빨리 진행이나 하자.”

“……알겠습니다.”

네이드는 결국 의구심을 뒤로한 채 다시 목검을 휘둘렀다.

이어지는 일격은 크게 다를 것 없었다.

내려 베기, 가로 베기, 찌르기.

모두 처음 검을 잡으면 배우는 기본기였다.

가문 고유의 비전 검술 같은 것도 아니었으며, 화려한 연계 동작도 없었다.

흔한 허초도 섞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검격이었다.

하지만 에단은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그 동작들을 반복했다.

몸의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 그 동작을 시도할 때 나오는 예비 동작, 검끝이 향하는 방향, 거리감 등을 익히기 위해 반복했다.

네이드는 아무런 말 없이 에단이 하는 행동을 바라만 봤다.

“네이드.”

“네, 도련님.”

“나한테 검을 휘둘러 봐.”

“……진심입니까?”

“어.”

에단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이드는 별수 없다는 듯이 에단에게 다가섰다.

쉭―

네이드의 검이 바람처럼 휘둘러졌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세로 베기.

아무리 에단의 몸이 튼튼하다고 한들 이 일격을 제대로 맞으면 몸이 성치 않을 터였다.

에단은 검이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에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을 내렸다.

평소라면 가벼운 스텝으로 공격을 피해 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됐다.

기본적으로 거리가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컸다.

아무리 공격 한 번을 회피해 냈다고 한들, 기회는 아직 상대방에게 있다는 소리였다.

에단은 그 기회를 포착할 수는 있어도, 손에 쥘 만한 무기가 없었다.

에단의 신체 능력은 아직 볼품없었다.

체력이 많이 올라왔다고 한들 거기까지였다.

마나 유저와는 상대가 안 됐다.

승리를 위해서는 달리 접근해야 한다.

에단은 오히려 네이드가 휘두르는 목검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네이드가 의아한 눈빛을 내비쳤지만, 검을 멈추지는 않았다.

탁!

목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단은 목검을 들어 네이드의 목검을 막아 냈다.

그리고 두 발짝 더 다가갔다.

부딪힌 목검을 타고 두 사람이 가까워졌고, 네이드가 뒤로 몸을 빼자 거리가 다시 멀어졌다.

“흠, 이런 식인가.”

에단이 허공에 검을 휘두르며 감을 잡으려고 했다.

반면 네이드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게…… 재능인가…….’

저런 대응책은 아직 시범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리고 저건 갓 검을 쥔 초심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 이제 제대로 해 볼까?”

대충 느낌이 잡혔으니 본격적으로 행동에 옮겨야 할 시간이었다.

에단은 검을 들고 네이드에게 다가섰다.

“집중하자고.”

에단은 씨익 웃었고, 네이드는 한숨을 푹 쉬며 목검을 들었다.

“노인을 고생하게 만드는군요.”

* * *

시간이 흘러 대련 날짜가 다가왔다.

대련이 행해지는 장소는 가문 본채에 있는 대연무장.

블란테 가문에서 가장 넓은 크기를 자랑하는 연무장이었다.

평소라면 기사단 단위의 훈련을 위해서 사용하는 연무장이었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단 두 명 때문에 사용하게 되었다.

연무장을 사용하는 것은 둘이었지만, 모인 인원은 적지 않았다.

블란테 가문의 기사와 그 수행원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것이다.

이 대련은 가문 내에서 꽤나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화제도 화제였지만, 카론과 모룬이 주도적으로 판을 키운 탓도 있었다.

카론은 일전의 굴욕을 설욕하기 위해.

모룬은 에단을 완전히 매장하기 위해.

그렇게 두 사람의 의도가 모여 더욱 사건이 커졌다.

게다가 참관인 제한이 없는 탓에 대련을 직접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덕분에 웬만한 곳에서는 도저히 진행할 수가 없었다.

“겁을 집어먹고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잘도 나왔다?”

카론이 속 보이는 도발을 하자 에단은 귀를 후비며 가볍게 대꾸했다.

“그때 맞은 머리가 아직도 아픈 모양인가 봐.”

에단의 심드렁한 대꾸에 카론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애새끼긴 하군.’

감정의 변화가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결과는 걱정도 안 되고.’

애초에 승리를 의심하진 않았다.

다만, 에단이 노리는 것은.

‘어떻게 이겨서 입지를 키울 것인가.’

그것이 이번 대련의 주된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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