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본색 (2)
기습적인 태클.
격투기에서는 흔하게 나오는 태클이기도 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펀치 대신에 목검을 집어던졌다는 것.
애초에 에단은 검을 나눌 생각이 없었다.
검에 대한 조예 없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검에 이점이 없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한 것이었다.
애초부터 노린 것은 태클이었다.
‘내가 태클을 걸게 될 줄이야.’
에단은, 아니, 류태신은 레슬러가 아니었다.
류태신은 언제나 상대 선수를 타격으로 잠재웠다.
상대는 언제나 타격을 피해 왔고, 류태신에게 레슬링 게임을 유도했다.
그러다 보니 류태신은 언제나 레슬링을 방어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였다.
하수와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니, 지금은 에단이 레슬링 게임을 시도해야 했다.
네이드는 마스터 중 한 명.
검에 통달한 강자였다.
그런 강자에게 정면에서 맨주먹으로 싸움을 건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에단은 ‘자신’과 ‘자만’을 혼동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에단은 레슬링에 자신이 있었다.
네이드를 넘길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아도, 변수는 만들어 낼 자신이 있었다.
에단이 다리를 향해 순간적으로 파고들자, 네이드의 눈이 조금 커졌다.
‘어찌할까.’
당혹스러운 반전이었다.
여기서 마력을 이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면 대련의 본질이 흐려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감정은 궁금증이었다.
여기서 어떤 공격을 할까.
예상을 벗어난 에단의 공세에 순순한 궁금증이 들었다.
네이드는 순순히 한쪽 다리를 내줬다.
에단은 네이드의 왼쪽 다리를 붙들자마자 곧바로 몸을 붙였다.
싱글 렉 태클.
체중도 제대로 실은 데다가 타이밍도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네이드는 쉽게 넘어지지 않았다.
네이드가 절묘하게 무게 중심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 잡아선 안 된다.’
에단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네이드는 쉽게 넘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맨손인 것도 아니었다.
네이드의 손에 목검이 들려 있는 지금 상황에서 이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위험했다.
에단은 곧바로 네이드의 뒤를 잡았다.
‘빠르군.’
네이드는 작게 감탄했다. 무슨 짓을 벌일까 궁금해 맞춰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에단의 움직임이 체계적이고 치밀했다.
무게 중심의 이동조차 매우 수준급이었다.
그리고 위기를 감지하고 뒤를 잡은 것도 놀라웠다.
에단이 손에 날붙이라도 들고 있다면 상황은 또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을 터였다.
에단이 허리에 힘을 줬다. 네이드의 몸이 지면에서 뽑히려는 찰나.
네이드가 에단의 손을 가볍게 뜯어냈다.
인간이라고는 믿기 힘든 힘이 개입한 것이다.
마나를 끌어 올린 걸 확인한 에단은, 여기서 힘을 더 쓰는 걸 포기했다.
판단은 빨랐다.
손을 떨쳐 낸 에단은 곧바로 주먹을 날렸다.
뒤를 잡은 상황이라면 메치기나 초크 류가 정석적이었지만, 방금 전의 괴력을 보고는 다른 방향으로 튼 것이다.
상대가 마나를 사용한 이상, 레슬링 따위의 힘 싸움은 의미가 없었다.
네이드는 마치 뒤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에단의 주먹을 피했다.
하나 에단은 리듬을 잃지 않았다. 순식간에 네이드를 따라붙어 발차기를 날렸다.
네이드가 에단의 발차기를 도중에 붙잡았다.
‘이 움직임은 대체 뭐지?’
네이드는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내심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다.
에단의 움직임과 기술.
모두 어설프게 행할 수 없는 고등한 기술이라 주의가 약해지면 일격을 허용할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둘의 역량 차이는 확실했다.
충분히 빠른 일격이었지만, 마나를 사용하는 이상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마나를 쓰니까 다른 사람 같군.’
설마 이 정도의 반사 신경을 얻게 될 줄이야.
그러나 이조차 에단의 예상범위에 들어 있었다.
에단은 빠르게 판단하여 자신의 다리를 잡은 네이드의 팔을 뱀처럼 휘어 감았다.
선수들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플라잉 암바.
“대처 능력이 좋군요.”
네이드는 꽤나 놀랐다.
빈말이 아니었다.
사실상 네이드가 마나를 사용한 이상, 그의 패배라고 봐도 좋았다.
에단의 공격은 매 순간 허를 찔렀고, 좁힐 수 없는 마나의 유무만 제외한다면 에단의 승리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이드가 마나를 사용한 이상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에단이 이를 악물며 네이드의 팔을 꺾으려 들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네이드가 작게 미소 지으며 잡힌 팔에 힘을 실었다.
“훌륭합니다.”
뚜득.
마력을 사용하자 암바가 순식간에 풀려났다.
암바가 순식간에 풀리자 에단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네이드가 목검을 휘둘렀다. 에단의 눈이 네이드의 목검을 좇았다.
퍼억!
에단이 팔을 들어 목검을 막자, 저릿한 통증이 뇌리를 타고 올라왔다.
타닷.
에단이 지면에 발을 디뎠다.
“여기까지.”
“고생하셨습니다, 도련님.”
“쳇, 더럽게 아프네.”
에단이 미간을 좁히며 팔을 털어 냈다. 목검에 가격당한 부위가 얼얼했다.
소매를 걷어 확인해 보자 피부가 검게 죽어 있었다.
“아직 마나도 못 쓰는 상대한테 너무한 거 아닌가?”
“그만큼 도련님의 공세가 위협적이었습니다.”
“아부 떨기는.”
에단이 툴툴거렸다.
하지만 네이드는 빈말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네이드가 가라앉은 눈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놀라운 움직임이군.’
정확히 말하면 네이드가 놀란 것은 에단의 격투술이었다.
기사들도 맨몸 격투를 수련하기는 한다.
다만, 그 비중이 매우 낮았다.
기사들은 검을 자신의 형제, 혹은 애인처럼 아꼈다.
전투에 있어서도 검을 지키는 것을 덕목으로 여겼다.
그러한 점이 격투술을 등한시하는 이유이기도 하였지만, 가장 큰 것은 효용성의 차이었다.
맨몸인 상대와 검을 든 상대의 차이는 컸다.
맨몸으로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작은 날붙이라도 들고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어린아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상력을 얻게 되는 거다.
그런 근본적인 효용의 차이 때문에 기사들은 격투술을 등한시했다.
그 시간에 검술을 더 단련하고, 비상시를 대비해서 단검을 착검했다.
블란테는 검술 명가였다.
대륙 전역에 존재하는 수많은 검술을 모두 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서 파생되는 격투술도 예외는 아니다.
고대부터 존재하는 격투술, 혹은 박투술.
효용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검술과 비교할 것은 되지 못했다.
네이드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전에 에단이 보여 준 움직임을 토대로 가문 내에 존재하는 격투술이나 박투술에 대한 서적을 찾아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에단의 움직임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극한의 효율을 좇는 움직임. 변수를 창출해 내는 창의성.
흡사 암살자의 무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던 네이드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에단이 암살자의 무술을 배울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도련님, 그 박투술은 어디서 배워 오신 겁니까?”
“어? 음…… 내가 만들었는데?”
“……그 모든 것을 직접 창작하셨다는 겁니까?”
“뭐, 전부 오리지널은 아니고, 책들 몇 개 엮어서 만들었어. 아무래도 칼보다는 몸 쓰는 게 적성에 맞아서.”
네이드의 입이 벌어졌다.
그 모든 것들을 직접 만들었다고?
이건 천재의 영역을 넘어선 일이었다. 에단의 나이는 아직 10대에 불과했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네이드가 계속해서 물어보자, 부담을 느낀 에단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 난 이제 씻으러 간다.”
에단은 그 말을 끝으로 연무장을 나섰다.
‘꼬치꼬치 캐묻기는.’
에단이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현대 종합격투기의 근간은 결국 모든 무술의 집합체였으니까.
다양한 무술의 장점을 응집해 만든 것이 MMA였다.
물론 그 와중에 부상 위험도가 높거나 하는 것들은 반칙성 기술로 금지가 되었다.
‘이제는 가릴 처지가 아니야.’
칼과 창을 쓰는 시대였다.
그뿐만 아니라 마력까지도 사용하는 판타지 세계관이다.
‘쓸 수 있는 건 다 써야지.’
필요에 따라서는 검도 사용할 생각이었다. 다만, 지금의 숙련도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여긴 것뿐이지.
시간만 주어진다면 모든 것을 흡수할 생각이었다.
‘종합격투기의 기술이 어디까지 통용될지도 궁금하고.’
에단은 카론을 떠올렸다.
‘지지는 않을 것 같지만.’
하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
방금 직접 느끼지 않았는가.
마나를 쓰는 상대와 그렇지 않은 상대와의 간극은 넓었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거길 가기에는 명분이 부족한데…….’
주인공이 얻어갈 기연 중 하나.
마음 같아서는 그걸 찾으러 가고 싶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지금 대외적으로 에단은 별채에서 근신 중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이전에 본채로 가게 된 것은 가주의 호출로 인해서였지, 에단의 개인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지금은 몸을 사려야 할 때.
괜히 트집 잡힐 만한 무언가를 만들어서는 안 됐다.
‘그 녀석만 이기면 명분이 생기니까.’
에단은 조급함을 느끼지 않았다.
천천히 하면 되는 일이었다.
“볼 때마다 놀랍네.”
욕탕에 들어가기 전 에단은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매우 짧은 시간 이뤄진 몸의 변화가 놀라웠는데, 볼 때마다 몸의 테가 달라지니 매번 신기했다.
‘정말 어마어마하군.’
앞으로 변하게 될 몸을 떠올리며 탕에 몸을 담갔다.
* * *
“그 녀석은 지금 뭘 하고 있지?”
“별채에서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겁을 집어먹은 것 같습니다.”
카론의 호위 기사인 아드먼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아드먼은 카론의 호위 기사인 동시에 스승이기도 했다.
“흥, 요행으로 이긴 주제에 건방을 떨 때부터 예상했어. 망나니 새끼가 감히…….”
그때를 떠올리자 다시금 분노가 치밀어 이가 갈렸다.
“자중하시죠.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렇지. 운도 좋은 녀석. 아버님 덕분에 목숨을 건졌어.”
“수련은 하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흥, 그딴 망나니 새끼 따위 수련 없이도 상대하는 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준비는 해야겠지.”
카론이 목검을 쥐었다. 이윽고 자세를 취하자 아드먼도 가볍게 목검을 들어 올렸다.
타닷.
카론이 경쾌한 발검으로 아드먼을 향해 달려들었다.
후웅!
카론의 목검이 아드먼의 목덜미를 노렸는데, 상당히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감정이 실려 있군.’
재능은 있는 편이었지만,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했다.
일전의 사태를 떠올리며 아직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고, 그 탓에 검술에도 분노가 묻어났다.
좋지 않은 습관이었지만, 아드먼은 따로 지적하지 않았다.
때로는 분노 또한 좋은 양분이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가 그 망나니 녀석이라면.’
나이 차이는 있었지만, 패배는 염두에 두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아드먼은 에단을 잘 알고 있었다.
과거 에단이 어릴 때, 그의 곁에서 수습 기사를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녀석은 블란테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놈이다.’
오만하고, 거만했으며, 포악했다.
그렇다고 겁이 없느냐고 물으면 그렇지도 않았다.
에단은 겁쟁이였다.
검술 명가의 자제이면서도 검에 대한 공포를 떨쳐 내지 못했다.
아드먼은 그런 에단을 마음속으로 경멸했다.
그 이후로 카론이 태어나자 아드먼은 일말의 고민 없이 카론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러고는 성심성의껏 카론을 지도했다.
아드먼은 뛰어난 기사는 되지 못하지만, 좋은 지도자는 되었다.
빈센트도 아드먼이 카론을 지도하는 것을 기꺼워했다.
‘이제 증명할 때가 다가왔군.’
카론이 에단을 보기 좋게 박살 낸다면 아드먼의 위상도 덩달아 상승할 터였다.
대련이 끝난 후를 떠올린 아드먼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