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본색 (1)
‘비겁한 자식.’
카론은 여유를 부리고 있는 에단을 보며 이를 갈았다.
‘이번에는 안 당해 준다.’
설마 장갑을 던지려고 하는 찰나에 기습을 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사 가문의 피를 이은 자가 천한 용병도 하지 않는 짓을 벌일 줄이야.
남아 있던 일말의 연민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아버님 덕에 목숨은 건진 줄 알아라.’
만일 빈센트가 대련이라고 못을 박지 않았다면, 카론은 곱게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죽이진 않을 테지만, 적어도 불구로 만들 생각이었다.
후환이 두렵지는 않았다.
어차피 망나니로 악명 높은 가문의 수치였다.
오히려 쓰레기를 치워 주는 행위가 아닌가.
하지만 대련이라는 말로 인해 그것도 불가능해졌다.
‘팔다리 하나는 분질러 주마.’
대련이 아니니 불구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팔다리 중 하나는 부러트릴 심산이었다.
그렇지 않고는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대련은 지금 바로…….”
“보름 뒤.”
에단이 말을 끊고 못을 박았다.
처음엔 이해를 못 해 멍하니 있던 카론의 얼굴이 이내 와락 일그러졌다.
“누구 마음대로?”
“누구기는 내 마음이지. 대련해 달라고 징징거리길래 그 요구까지 들어줬잖아. 아직도 불만이 남아 있어?”
“지, 징징?”
“어. 지금도 애새끼처럼 땡깡을 부리고 있잖아.”
“에단, 설마 겁을 집어먹은 거냐?”
모룬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마음대로 생각하든가. 그건 그렇고, 장자라는 사람이 너무 사사건건 참견하는 거 아니야?”
에단이 고개를 돌려 빈센트를 바라봤다. 빈센트는 말없이 에단의 눈을 마주쳤다.
‘눈이 달라졌군.’
이전까지 에단의 눈은 혼탁했다.
온갖 더러운 욕망과 정돈되지 않은 생각이 눈빛으로 드러나곤 했다.
하지만 지금 에단의 눈은 진중했고, 차분했다.
“좋다. 대련은 보름 뒤로 하지.”
빈센트의 말이 떨어지자 모룬과 카론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에단은 그 모습에 피식 웃더니 빈센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보름 뒤, 보상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호오, 꼭 이길 사람처럼 말하는구나.”
“이길 거니까요.”
“아무리 네가 나이가 더 많다고는 하지만, 너무 건방진 생각 아니더냐? 너는 아직 마나도 깨우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빈센트의 말에 에단이 피식 웃으며 카론을 바라봤다.
“이미 한번 혼내 준 녀석입니다. 두 번째는 성심성의껏 예의범절을 주입시킬 생각입니다.”
“이 자식이!”
에단의 도발에 카론이 순간 발끈했지만, 빈센트의 시선을 느끼고는 입을 다물었다.
“역시 말은 청산유수구나. 하지만 이번에는 결과를 보여야 할 것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에단이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 뒤 저택을 빠져나갔다.
‘정말 바뀌었군.’
언행부터 행동거지까지,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달라졌다.
‘이번 대련으로 증명되겠지.’
빈센트는 카론을 바라봤다.
카론은 아직 성정이 유약하고 감정을 감출 줄 모르는 아이였으나, 검에 대한 재능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블란테라는 이름에 어울릴 만큼도 아니었다.
저 정도 재능은 대륙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으니.
‘증명해 보거라.’
약육강식.
승자만이 모두 독식한다.
블란테의 신조였다.
* * *
“허억, 허억.”
별채로 돌아온 에단은 다시 반복적인 일상으로 복귀했다.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구보.
감량이 최우선이다.
에단은 달리면서도 카론을 떠올렸다.
‘엑스트라 녀석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에단은, 카론과 정면으로 승부하면 승산이 없었다.
애송이처럼 보인다고 한들 카론은 마나 유저.
일반인인 에단과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실제로 마나 유저와의 차이가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닌, 책에서 나온 묘사만으로 어림잡아 짐작한 것이다.
정확한 파악은 아무래도 직접 경험해 봐야 알 것 같았다.
‘뭐, 그것도 내 밑에 기사가 있을 때 하는 소리지.’
에단은 그간 저지른 언행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사람이 없어.’
에단을 따르는 사람은 네이드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별채에 있는 하인과 하녀들조차 별채 관리를 위한 최소 인원에 불과했다.
‘어쩔 수 있나. 있는 거에 만족해야지.’
승부에 대한 초조함은 느끼지 않았다.
에단은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대련 상대는 필요한데.’
에단은 고개를 돌려 네이드를 바라봤다.
네이드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땀을 폭포처럼 쏟아 내는 에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노인네한테 부탁하기는 그렇고.’
네이드는 대륙에 몇 없는 마스터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빈센트의 측근이기도 했다.
에단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뛰는 것에 집중했다.
시작한 운동은 제대로 끝내야 했다.
* * *
달리기를 마친 에단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달아오른 몸을 한차례 식혀 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은 에단이 맨몸 운동을 시작했다.
‘더럽게 무겁군.’
단순한 팔굽혀펴기였지만, 나약한 근력과 묵직한 체중이 더해지자 가벼운 맨몸 운동도 상당한 난이도로 느껴졌다.
하지만 고통을 참는 건 익숙하다.
에단은 불평하지 않고, 침착하게 팔굽혀펴기를 지속했다.
‘하나라도 확실히.’
지금 몸 상태로 폭발적인 운동을 하기는 힘들었다.
조금 느리더라도 천천히, 확실하게 하는 게 중요했다.
얼마나 했느냐보다, 어떻게 했느냐가 더 중요했다.
에단은 구슬땀을 흘리며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중간에 팔이랑 가슴이 후들거리면 잠깐씩 쉬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팔굽혀펴기를 지속했다.
‘다시 생각해도 몸은 쓸 만한 녀석이야.’
운동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거늘, 에단의 몸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었다.
에단은 알고 있었다. 지금 겪고 있는 변화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약을 써도 이 정도는 힘들 텐데.’
약물을 사용하는 약물러 선수와 일체 그러한 것에 손대지 않는 내추럴 선수와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는 에단이다.
‘이것이 이 세계의 재능이라는 건가.’
검술 명가 블란테의 혈통이라는 것은 이런 것을 뜻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재능을 썩히고 있었다니.’
아직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않았는데도 체감이 됐다.
체지방을 걷어 내기 시작하자, 근육이 엄청난 속도로 붙기 시작했다.
에단은 그러한 자신의 성장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격투기 선수로서의 류태신은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
이미 완성된 상태에서 조금씩 스스로를 깎아 내며 가다듬었지만, 성장의 재미를 느끼기란 힘들었다.
하지만 에단의 몸은 세공되지 않은 원석이었다.
비대한 지방을 봤을 때 가망이 없다고 느꼈으나,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 육체가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 어렴풋이 예측이 되었다.
“네이드.”
팔굽혀펴기를 모두 마친 에단이 네이드를 불렀다.
“부르셨나요, 도련님.”
“목검 하나만 준비해 줘.”
“목검 말씀이신가요?”
“그래. 슬슬 준비해야지.”
“대련 말씀이시죠?”
“어.”
슬슬 대련을 준비할 시기이다.
남은 날짜는 일주일.
촉박하다면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에단은 자신이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대련에서 승리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 * *
에단의 말에 네이드가 목검을 가져왔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목검이었다.
에단은 목검을 쥐더니 허공에 붕붕 휘둘렀다.
에단이 평범하게 목검을 휘두르자 네이드의 눈이 조금 커졌다.
‘검을 두려워하시지 않아.’
에단은 첫 대련에서 크게 다친 뒤로 검을 무서워했다.
대련에서 부상이야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블란테라는 이름을 어깨에 짊어진 이상, 검과 친해지는 것은 숙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평생을 함께할 친우를 두려워하다니.
블란테 가문의 사람들은 에단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에단은 엇나가기 시작했고, 검을 쥐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에단은 아무렇지 않게 검을 쥐었다.
자세는 엉망이었지만, 검을 두려워하는 기색은 조금도 풍기지 않았다.
“네이드.”
“말씀하시죠.”
“검을 잡아.”
“……저는 일개 집사일 뿐입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잡으라고.”
에단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네이드는 그런 에단에 태도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검을 쥐었다.
“후우, 미리 말씀드리지만 애매하게 봐드리지는 못 합니다.”
“바라던 바야.”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에단은 강자와의 싸움을 즐겼다.
비록 몸 상태부터 시작해 모든 여건이 성에 차지 않았지만, 에단은 불평하지 않았다.
실전보다 더 좋은 단련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놀랍군.’
네이드는 에단의 눈빛을 바라보며 가벼운 마음을 다잡았다.
저 눈빛은 하룻강아지가 낼 수가 없는 눈빛이었다.
마치 백전노장의 눈빛.
자신의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지금 느끼는 감각이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네이드는 작게 미소 지었다.
망나니라고만 생각하던 자신의 안목이 틀린 모양이다.
“한 수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네이드가 말하자 에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존심은 상하는데, 거절하진 않겠어.”
에단은 냉정하게 상황을 인식했다.
지금의 에단은 무슨 수를 써도 네이드를 이기지 못한다.
포기나 체념이 아니었다.
에단의 투지는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 세계는 마나와 마력이 있고, 냉병기가 판치는 세상이다.
때로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뿐이었다.
‘결국 올라설 거니까.’
자신이 있었다.
타인은 모르는 미래를 알고 있다.
그리고 시대를 바꿔 나갈 인물들도 알고 있었다.
‘엑스트라로 죽을 생각은 없으니.’
비록 에단이 엑스트라 악역에 불과했을지라도.
그 몸에 류태신이 빙의한 이상,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갈 생각이었다.
‘그걸 위한 첫 실전이다.’
에단이 목검을 꽉 쥐었다.
힘이 실린 목검에는 어색함이 감돌았다.
살짝 떨리는 기분도 들었다.
‘육체의 기억인가?’
검으로 인한 트라우마.
막연한 공포.
에단은 웃으며 그런 사사로운 감정을 떨쳐 냈다.
공포라는 감정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에단은 몸을 숙였다.
단거리 육상 선수의 자세와도 흡사했다.
마치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것 같았다.
에단의 허벅지가 팽창했다.
아직 미숙한 몸이었다. 생각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생각의 반만 따라가도 성과는 있을 거다.
에단이 몸을 젖혔다.
그러는 동안에도 네이드는 말없이 에단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 주실 겁니까.’
흥미가 일었다. 지금 에단이 보여 주는 모습은 평범한 기사와는 크게 달랐으니.
쑤욱!
순간, 에단의 몸이 뛰쳐나갔다.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얼마 전 비대한 몸을 가지고 있던 것을 떠올리면 믿을 수 없는 성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실망입니다.’
바로 그때, 에단의 목검이 날아들었다.
네이드의 눈이 커졌다.
날아드는 목검을 쳐 냈고, 당연하게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네이드는 순간 기가 찼다. 설마 이것을 노린 것인가?
그렇다면 더한 악수, 검사가 검을 놓게 되면 그 말로는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네이드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에단이 몸을 숙여 달려들었다.
에단은 애초부터 검을 섞을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