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6화 (6/398)

◈ [6화] 소설 속 망나니 (5)

“어이, 머저리.”

영주실을 나서자 난데없이 신경을 긁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겪은 일 아닌가?’

에단은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뒤를 돌아봤다.

꽤나 건장한 덩치의 남성이 서 있었다.

에단이 미간을 좁히며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애를 썼지만, 쉽사리 떠오르지가 않았다.

툭툭.

에단이 네이드에게 눈치를 줬다.

작게 한숨을 내쉰 네이드가 에단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첫째 도련님인 모룬 님입니다.”

“아, 그렇군.”

네이드가 언질을 하고 나서야, 에단은 남자의 정체를 깨달은 듯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룬 블란테.

이 녀석 역시 비중 없는 엑스트라 악역이었다.

장자인 만큼 권력 승계 구도에서는 우위에 서 있는 녀석이었지만, 장자라는 이유 하나로 너무 안일하게 굴다 결국에는 적들에게 모든 실권을 빼앗긴다.

검술 명가라고 불리는 블란테 가문의 몰락은 모룬이 주도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룬은 욕심이 많았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능력이 없었다.

늘 시기와 질투를 달고 다니며, 타인을 폄하하는 성격을 지닌 그였다.

주변에는 믿을 만한 이가 없고, 위기에 처한 순간에도 어떠한 도움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결국 블란테라는 거대한 성을 무너뜨리게 된다.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는 일이군.’

대륙에서 손꼽히는 검술 명가라는 블란테라는 가문이 저 머저리 하나 때문에 흔들리고 무너지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하나는 아니었지만.’

모룬을 제외하고도 멍청한 새끼가 두 명이나 산재한 게 문제였다.

‘이 새끼랑 동생.’

에단은 이곳으로 오며 만난 동생, 카론 블란테를 떠올렸다.

에휴.

고개가 저절로 저어졌다.

아무리 자식 농사를 못 지었다고 한들 어떻게 이렇게 흉년이란 말인가.

‘애초에 그렇게 치밀한 설정의 소설도 아니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원작 자체가 크게 개연성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딱 주인공 위주로 사건이 흘러가는 킬링 타임 소설.

거기에다 대고 억지니 뭐니 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엑스트라 처지인 게 문제지.’

에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아직도 길을 막고 있는 모룬을 바라봤다.

모룬은 입꼬리를 씩, 들어 올린 채 에단을 내려 봤다.

“어떤 수작질을 부린 거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아직도 발뺌할 속셈이냐?”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짜증이 치밀었지만 여기서 대놓고 하극상을 벌일 수는 없었다.

영주실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본채의 안이었다.

에단은 일단 조용히 화를 삭였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다. 수작질이라니. 무슨 뜻입니까?”

“허,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뻔뻔한 놈이로군. 너 같은 머저리가 카론을 이길 리가 없잖아.”

‘아, 그런 거였나.’

이제야 대충 눈앞에 있는 저 머저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할 일도 더럽게 없는 모양이군.’

가문의 장자라는 놈이, 동생들이 벌인 사소한 사건을 간섭하고 있었다.

“제가 뭐 비겁한 수라도 썼다는 소립니까?”

“그래. 이제야 본심을 드러내는구나.”

모룬이 히죽 웃으며 에단을 응시했다.

“하아…….”

에단이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여기서 어떻게 할까.

괜히 여기서 심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모룬은 어차피 자멸하게 될 운명이었다.

가만히 둬도 알아서 무너질 녀석이라는 소리였다.

자멸하는 도중에 가문도 조금 말아먹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조금 바꾸긴 해야겠어.’

에단이 된 이상, 이용할 수 있는 요소는 모두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지를 키울 필요성이 있겠군.’

에단이 모룬을 바라봤다.

살이 있어서 그렇지 에단도 작은 키는 아니었다.

하지만 모룬은 에단이 올려다봐야 할 만큼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증거 있어?”

하지만 에단은 기가 조금도 죽지 않았다.

에단이 눈을 부라리며 모룬을 노려봤다.

“뭐, 뭐라고……?”

모룬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럴 만했다.

에단은 망나니이기는 했지만, 자기보다 높은 위치에 있거나 강한 사람에게는 그 누구보다 비굴해지는 녀석이었다.

모룬은 가문의 장자.

권력으로 보나, 입지로 보나 에단보다 위에 있었다.

그런 사실 때문에 에단은 모룬에게 단 한 번도 반항을 한 적이 없었다.

모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너…… 미친 거냐?”

“아니, 멀쩡한데? 그보다 내가 묻고 있잖아. 증거 있냐고.”

에단이 모룬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가자 모룬이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쫄기는.’

한심했다.

그래도 장자라는 녀석이, 상대가 조금 드센 모습을 보였다고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니.

군기를 잡고, 위계질서를 유지하려 든다면 최소한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모룬에게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증거 따위 필요 없어!”

저편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론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모룬이 득의양양한 기세로 웃었다.

“카론이 이를 가는 모양인데?”

‘진짜 한심하군.’

고작 동생 하나 왔다고 태도가 뒤바뀌는 꼴이 역겨웠지만, 에단은 내색하지 않았다.

카론이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이 자식!”

당장에라도 멱살을 잡을 기세로 뻗어 오는 카론의 손을 에단은 살짝 상체를 빼는 것으로 피해 냈다.

“……피해?”

“그럼 병신같이 잡혀 주리?”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에단의 말에 카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너는 나를 모욕했어.”

“모욕이 아니라 예의를 가르친 거지.”

“뭐?! 비겁한 수로 나를 쓰러트린 주제에…….”

“비겁이고 뭐고가 어딨어? 시비는 지가 먼저 걸어 놓고.”

카론은 할 말을 잃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너…… 나랑 결투하자.”

잠시 침묵하던 카론이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왜…… 라고?”

“내 귀중한 시간을 왜 너한테 써야 하지?”

“아니, 너는 카론이랑 결투를 해야 한다.”

그때 잠자코 지켜보던 모룬이 앞으로 나섰다.

“너 같은 가문의 수치가 건방을 떠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어.”

카론이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네가 무슨 권한으로?”

“나는 차기 가주나 다름없다. 그런 내 명을 거스르겠다는 소리인가?”

“도련님……!”

그때 모룬의 곁에 있던 기사가 모룬을 말리려고 들었지만, 모룬이 손을 들어 기사를 제지했다.

“내 말은 곧 블란테 가문의 뜻이나 다름없다.”

“허, 생각보다 더 머저리 같은 새끼구나.”

“……뭐라고?”

“네이드.”

에덴이 고개를 돌려 네이드를 바라봤다.

네이드가 앞으로 한 발짝 다가왔다.

“지금 저 발언, 아무 문제 없는 건가?”

“그럴 리가요.”

네이드가 서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감히 집사 따위가……!”

모욕을 당했다고 여긴 모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진짜 심각한 수준이네.’

소설로 볼 때는 별생각 없이 넘어가고는 했지만, 실제로 보니 가관이 따로 없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돼?”

“……무슨 소리지?”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는지 모룬이 되물었다.

“너는 지금 가주님을 모욕한 거야.”

“헛소리! 내가 언제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소리지?”

“방금 네 말이 곧 가주의 말이라고 했잖아.”

“그 말이 뭐가 어때…… 가, 가주님?!”

“재밌는 짓을 벌이고 있구나.”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만큼은 소란이 적막으로 바뀌었다.

아까 느낀 압박감은 장난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압도적인 위압감이 느껴졌다.

중력이 배가 된 것 같았다.

당장에라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 할 것 같은 감정이 휘몰아쳤다.

‘생각보다 대단하군.’

하지만 에단은 조금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빳빳하게 든 채 빈센트를 바라봤다.

빈센트는 눈을 똑바로 마주치는 에단을 바라보며 작은 감탄을 했다.

이 정도의 기운은 마나 유저도 쉽게 견디지 못했다.

그런데 아직 마나도 깨우치지 못한 에단이 견디고 있었다.

‘확실히 달라졌어.’

방금의 대화에서도 느꼈지만, 지금 그 사실이 더 확실해졌다.

에단은 바뀌었다.

이전까지 보여 주던 철없는 망나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숙련된 기사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에 반해 모룬과 카론은 당황한 기색을 조금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모룬과 카론이 갑작스러운 빈센트의 등장에 당황해하자, 빈센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들은 말이 사실인가?”

“무, 무슨…….”

“너의 말이 곧 나의 말이나 다름없다는 소리 말이다.”

“그, 그것이…….”

모룬이 뒤늦게 변명을 시작하려 들었지만, 이미 상황은 엎질러진 뒤였다.

“변명은 필요 없다. 너는 블란테 가문의 장자로서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단호한 어조에 모룬이 입을 다물었다.

빈센트의 시선이 이번에는 카론과 에단을 향했다.

“경쟁심을 가지는 것은 좋다. 우리는 검술 가문인 만큼 강함을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너희는 도를 넘었어.”

“……죄송합니다.”

카론이 고개를 숙였다.

“됐다. 고작 이런 일에 내가 끼어들다니, 체면이 말이 아니군. 에단.”

“네.”

에단이 고개를 들었다.

“동생이 가진 불만이 작지 않은 것 같구나. 하지만 형제 사이에 결투는 허락할 수 없으니…… 그래, 대련은 어떠냐?”

빈센트의 말에 에단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좋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빈센트의 눈이 휘었다.

“조건?”

“제가 득 될 것이 없는 상황이니 그 정도는 들어주시죠. 그리 어려운 요구는 아닙니다.”

“먼저 조건을 들어 보고 생각하마.”

“정기 토벌에 참가하겠습니다.”

“의외구나. 갑자기 토벌을 나가겠다고?”

“물론 단순히 토벌에 참가하려는 생각은 아닙니다. 제 개인적인 토벌대를 꾸릴 권한을 주시죠.”

“이유는?”

“아직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에단의 말에 빈센트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토벌대라.

어렵다면 어려운 부탁이고, 쉽다면 쉬운 부탁이었다.

어차피 다른 형제들도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자기만의 세력을 꾸리고 있었다.

하지만 에단에게는 네이드밖에 없었다.

게다가 네이드는 공식적으론 일개 집사에 불과했다.

기사들은 에단은 기피했고, 혐오했으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권한을 얻는다면 다시 가문 내에서 입지를 키울 수 있는 발판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좋다. 허락하마.”

모룬과 카론은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얼굴에 불만이라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단, 대련에서 승리할 경우만이다.”

빈센트의 첨언에 모룬과 카론의 얼굴이 환해졌다.

반면 에단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예측한 범위 내였기 때문이다.

‘이기면 되지.’

자신은 있었다.

에단은, 아니, 류태신은 아직 패배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내가 불리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아직 몸은 완성되지 않았고, 마나는 깨우치지 못했다.

지금 급하게 마나 수련을 시작한다고 한들, 이미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카론보다 능숙할 수는 없었다.

‘어찌 됐든 이기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차고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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