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1화 (1/398)

< 검술명가 격투천재 - 마늘생강 >

◈ [1화] 챔피언

경기 시작.

시합을 알리는 레퍼리의 선언이 시작되자, 상대 선수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목이 뻐근해.’

류태신은 고개를 꺾으며 가볍게 굳은 몸을 풀었다.

그런 여유 탓일까, 상대 선수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겨도 이상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분노한 상대방의 얼굴에도 류태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 민머리 선수는 결국 도전자였고, 류태신은 챔피언이었다.

왕좌에 앉은 사자는 언제나 여유와 기품을 보유해야 했다.

류태신의 눈이 상대 선수를 좇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와 눈을 마주친 민머리 선수는 온몸에 오한이 들었다.

‘무슨 눈빛이…….’

마치 피식자가 된 것 같은 감각에 오금이 저려왔다.

심장박동이 느려지는 기분이었다.

심장의 펌프질이 줄어들자 손끝 발끝부터 신호가 왔다.

몸이 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격투기 선수에게 있어 기민한 움직임은 기본 덕목이다.

손발이 묶인 격투가는 아마추어만 못하다.

류태신이 천천히 접근했다.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미 느껴졌으니까.

‘내가 이겼어.’

옥타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류태신은 확신했다.

이미 상대는 겁을 집어먹었다.

아무리 옥타곤이 변수가 가득한 장소라고 한들, 토끼가 사자를 물어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툭.

류태신의 앞발이 상대의 발을 막았다.

‘제길!’

상대 선수가 뒤늦게 당황하며 몸을 빼려고 했지만 류태신의 몸이 더 빨랐다.

앞발을 축으로 류태신의 허리가 꺾였다.

뻐억!

류태신의 주먹이 상대 선수의 턱에 꽂혔다.

의심할 여지 없이 제대로 꽂힌 스트레이트였다.

상대 선수의 몸이 허물어지며 경기는 싱겁게 막을 내렸다.

와아아아아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챔피언의 모습에 관중석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류태신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옥타곤을 내려왔다.

대미지 따위는 없었다. 아무런 셋업도 없이 내지른 오른손이 상대의 턱에 꽂힌 것이다.

상대 선수가 실력이 부족해서 패배한 것이 아니었다.

류태신이 규격 외로 강한 것이다.

40전 무패.

SFC 3체급 챔피언이자 불패의 파이터.

그것이 바로 류태신이었다.

하여 환호성은 류태신에게 어떠한 감흥도 주지 않았다.

‘재미없어.’

투쟁이 좋아서 격투기를 시작했지만, 그 어떤 상대도 류태신의 투쟁심을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그들은 너무나 약했다.

상대의 움직임은 훤했으며, 어떤 전략을 들고 와도 류태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지루했다.

류태신의 체급은 현재 미들급.

라이트급부터 순차대로 밟고 이 자리에 올라왔다.

심지어 미들급부터는 감량도 하지 않은 채 평소 몸 상태로 경기에 임했다.

체중 몇 킬로 따위는 류태신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 이상 체급을 월장하고 싶은 생각도 안 들었다.

‘어차피 똑같을 테고.’

자신보다 체급이 높은 선수들도 류태신에게 승부욕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무기력함이 몰려왔다.

“은퇴할까.”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류태신의 말에 수많은 스태프와 세컨드들이 화들짝 놀랐다.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약 먹었어?! 뜬금없이 은퇴라니!”

대기실이 순식간에 번잡해지자 류태신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해 본 소리입니다.”

그렇게 소란이 잦아들고 코치들과 다른 선수들이 류태신에게 한마디씩 조언을 내뱉었다.

대부분 자신들의 이익에 대해서만 늘어놓는, 같잖은 내용들이다.

‘기생충 같은 것들.’

류태신은 알고 있었다.

저들은 자신을 동료로 보고 있지 않았다.

단순한 돈벌이.

류태신이라는 전례 없는 스타성에 기대는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었다.

애초에 돈 욕심이 크지 않은 류태신이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최근 들어 저들은 휴대폰이나 방을 뒤지는 등 개인적인 것까지 간섭하려 들었다.

거슬렸지만 구태여 자르기는 귀찮았다.

권태감.

미칠 것 같은 권태감이 류태신을 잡아먹고 있었다.

의욕이 생기지가 않았다.

명예와 돈은 이미 벌 만큼 벌었다. 이 이상 벌어 봤자, 삶의 질은 올라가지 않는다.

류태신은 코치진들의 말을 무시한 채 휴대폰을 들었다.

최근 들어 유일하게 꼬박꼬박 챙겨 보고 있는 소설이 있었다.

내용은 보잘것없는 흔한 양판소였지만, 그렇기에 별생각 없이 시간을 때우기에는 제격이었다.

[현실에서는 왕따인 내가 이세계에서는 용사라고?]

정말 뭣 같은 제목이어서 처음에는 선뜻 손이 안 갔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그럭저럭 볼만은 했다.

‘주인공은 답답하지만.’

유약하고 찌질한 주인공의 성격을 류태신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은 꾸준히 역경을 넘어 성장해 나갔다.

그러는 도중에 수많은 절세 미녀들이 주인공 주위로 모여들게 된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현실성 없는 스토리는 물론이고, 작품성도 없었지만 따분한 시간을 때우기에는 썩 나쁘지 않았다.

* * *

“으음…….”

류태신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나 보군.’

그렇게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뭐지?”

몸이 무거웠다.

피로로 인해 몸이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피곤함 때문에 느껴지는 피로와는 전혀 달랐다.

무거운 중량감이 모래주머니처럼 느껴진다.

그 감각이 소름 돋게 생생해 무심코 팔을 바라봤다.

잘 벼린 칼처럼 단련된 자신의 팔이 아니다.

두툼하고, 토실하며, 포동포동했다.

류태신은 눈을 껌뻑거렸다.

‘꿈을 꾸고 있나?’

주위를 둘러보자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져 있는 물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난장판이군. 그건 그렇고…… 술을 마신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이렇게 머리가 깨질 것 같지?’

어이가 없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는 상황은 말로만 들어봤지, 직접 겪은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지방 덩어리는 뭐고.’

허…….

기가 찼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되는 일이 없었다.

류태신은 일단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지방이 덕지덕지 붙은 몸으로는, 몸을 일으키는 단순한 행위조차 쉽지가 않았다.

쿠당탕!

테이블과 의자가 널브러졌다.

“……하하.”

너무 현실성 없는 상황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꿈인가?

그게 가장 타당했다.

하지만 류태신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꿈은 아니야.’

꿈이랑은 본질적으로 다른 현실감이 느껴졌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뭐지?

혼란은 해소가 되지 않고 꼬리를 물었다.

류태신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릴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슬슬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서늘했다.

낮은 중저음의 음성이었지만, 목소리에는 가시가 있었다.

류태신의 고개가 돌아갔다.

“도련님?”

눈앞에 있는 남자.

말끔한 턱시도를 입은 노신사.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비주얼을 지닌 노신사였다.

한데 이상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어딘가가 낯이 익었다.

그 순간 갑자기 두통이 찾아왔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과 함께 수많은 기억의 편린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에단 블란테? 뭐야, 이것들은?”

기억이 중구난방이다.

어질러 둔 퍼즐 같은 기억이 정리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밀려들어 왔다.

혼란스러웠다.

깨질 것 같은 두통에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류태신은 이를 악물고 정신을 부여잡았다.

“에단? 블란테?”

혼잡한 와중에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

현실에서는 왕따 뭐시기?

“하하.”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그렇다면 아귀가 맞기 시작한다.

상황을 이해하고 나니, 혼잡하던 기억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갔다.

그렇다고 두통이 사그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두통은 더욱 격렬해졌다.

‘내가 소설 속에 들어왔다고?’

그것도 양산형 개막장 소설 속으로.

류태신, 아니, 지금은 에단 블란테.

그는 갑자기 닥친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꿈이라고 우기며 현실을 도피할 바보 같은 짓을 할 여력도 없었다.

일단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그런 에단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또 이성을 잃으신 모양이군요.”

경멸의 눈초리.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눈동자에 담긴 미약한 감정의 흔적.

에단의 눈에는 그것이 보였다.

‘네이드.’

에단의 전속 집사.

뼛속까지 오만하고 방약무인한 성격인 에단은 네이드에게 수없이 모욕적인 언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에단, 아니, 소설을 읽은 류태신은 알고 있었다.

네이드는 고작 집사라는 신분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그런 그가 차분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깨진 잔들과 접시들을 지르밟으며 다가오는 네이드의 분위기는 가볍지 않았다.

“이번에는 조금 손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가주님의 명령이니 원망하지는 마시죠.”

그리 말하는 네이드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고, 그걸 바라보는 에단의 눈살은 가늘어졌다.

‘어떻게 해야 되지?’

이 자리에서 모든 상황 판단을 끝내는 것은 무리였다.

최소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에단은 잠시 고민하다가 네이드의 말에 순순히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 순간, 네이드의 손이 에단의 목덜미를 향해 뻗었다.

에단은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뻗어진 네이드의 손을 붙잡고, 에단의 육중한 몸이 네이드의 등에 걸쳐졌다.

무거운 질량은 네이드의 무게 중심을 흐트러뜨렸다.

그 상태로 에단이 몸을 숙이자, 순간 네이드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완벽에 가까운 업어치기였다.

‘이런.’

에단은 업어치기를 시도함과 동시에 후회했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에단의 손끝에 느껴지는 단단한 네이드의 몸은 이런 기술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휘익―

역시나 네이드는 업어치기에 넘어가지 않았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자 에단은 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네이드가 싱긋 미소 지으며 서 있었다.

“꽤나 놀랐습니다. 이러한 박투술은 처음 겪는군요.”

네이드는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놀란 것은 에단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피한 거지?’

방심한 탓에 제대로 걸린 기술이었다. 이미 80프로 이상 걸린 기술은 방어가 무의미했다.

하지만 네이드는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다. 에단의 상식과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슬슬 돌아가시죠.”

네이드의 주름진 눈길에서 경멸이란 감정은 사라졌다.

“알겠어.”

에단이 두 손을 들었다. 여기서 반항을 해 봤자 득 될 것이 없었다.

‘어이가 없군.’

처음 겪어 봤다.

보기만 해도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은.

* * *

에단이 순순히 말에 따르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네이드였다.

평소 에단의 포악한 성정과 대비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네이드는 중간에 에단이 도망가는 것을 우려해 계속해서 신경 썼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고 있었다.

‘소설 속에 들어오다니.’

삼류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유행 지난 설정이었다.

그런 상황을 지금 자신이 겪고 있었다.

‘그것도 왜 하필 이 녀석이야.’

에단 블란테.

대륙에서 명망 높은 검술 명가의 둘째.

신분은 좋았다. 하지만 따라오는 호칭은 결코 좋지 못했다.

블란테의 개망나니.

가문의 수치.

검술 명가의 자제이면서도 검을 두려워하는 머저리.

두려워하는 이유조차 별다른 게 아니었다.

에단은 천성이 겁이 많고, 자신의 안위를 가장 중요시하게 여겼다.

그런 성향 탓에 에단은 검을 두려워한다.

도저히 검술 명가의 피를 이었다고 보기 힘들 정도의 비루한 재능과 성향.

그에 따라 가문 내의 평가도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보다 가장 큰 문제는.

‘엑스트라 악역.’

원작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들 장치.

딱 그 정도의 입지를 가진, 그런 목적으로 조형된 캐릭터였다.

입체적인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었다.

전형적으로 만들어진, 작위적인 악역.

‘그럴 수는 없지.’

류태신은 에단의 캐릭터를 그대로 이어 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포식자이며, 우두머리고, 챔피언이었으니까.

지구로 돌아가는 것 따위는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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