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 경위서-96화 (96/98)

제96화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싸움이었다.

차고 대신 저택 입구에 대기시켜 둔 차에 오른 세정은 빠르게 속초의 별장으로 향했다. 속도를 올린 차는 바닥을 태우듯이 달리다가도 막막한 교통 체증에 시달렸다.

세정은 신경질적으로 시계와 사이드 미러를 번갈아 보았다. 뒤편으로 청재의 스포츠카가 바짝 따라붙었다. 세정은 꽉 막힌 도로만큼이나 답답한 속을 눌렀다. 핸들을 톡톡, 두드리는 움직임이 고조된 흥분을 서서히 가라앉혔다.

속은 터질 것 같지만, 그래도 차는 나아갔다.

서울양양고속도로에 진입해서는 속력을 냈다. 세정은 따라붙은 청재의 차를 주시했다. 이곳에 오기까지 몇 대의 차를, 기물을 들이받은 청재는 반쯤 돌아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열쇠를 갖겠다는 목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세정을 쳐 죽여야겠다는 의지가 담긴 난폭 운전을 일삼았다.

차선을 마구 난잡하게 누비는 위태로운 청재의 운전에 주변 차들은 모두 조금씩 간격을 벌렸다. 세정은 또 한 번 따라붙는 청재의 차를 피했다. 가까스로 사고의 위험이 비껴갔다.

청재의 차는 스피드에 최적화된 차이므로 직선 도로에서는 그 차이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세정은 능숙하게 속력을 늦추었다가 차선을 변경했다. 당황한 청재를 두고 다시 속도를 냈다.

고속도로의 끝까지는 이렇게 아슬아슬한 순간을 유지하면서 간다고 해도 국도에 들어서면 결단을 내려야 했다.

반쯤 죽여 놓고 왔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한 진득한 후회가 남았다.

속초의 별장이 코앞이었다.

청재가 소라에게 마약을 주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도 지나고, 소라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즉사한 후 빠졌던 강이 있는 급격한 커브 길도 지났다.

눈으로 별장의 주소지를 훑는 것이 전부였던 청재가 세정의 주행을 예측하지 못하고 조금씩 뒤로 처졌다.

동시에 가드레일에 바짝 붙어 끼이익, 고막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취하여 거리감이 잘 가늠되지 않는 듯했다.

“미친 새끼.”

이미 과부하가 걸린 청재의 차는 곧 터질 것처럼, 불이 날 것처럼 연기가 일었다.

그런데도 청재는 그 위험 신호를 무시하고 또 한 번 세정의 뒤를 바싹 추격했다. 세정은 모퉁이를 돌며 끊임없이 이어진 긴 직선 도로를 주시했다. 그 중간에 사거리가 있었다.

승부수를 걸어볼 작정이었다.

다만 그곳까지 무사히 가는 게 어려운 일이라.

뒤쪽에서 다시 한번 무언가를 박아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잔뜩 찌그러진 차체가 기괴할 정도였다.

세정은 액셀을 최대한 깊이 눌렀다. 차가 폭발적인 스피드로 나아갔다. 중앙선을 침범해 가며 그 뒤를 빠르게 추격하는 청재는 연기로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세정은 사리물며 가까워진 간격과 사거리에서 돌아설 방향을 가늠했다.

선택은 우회전.

채 감속하지 못한 차가 크게 끼이익, 아스팔트 위로 스키드 마크를 남기고 돌았다.

누가 강하게 밀어낸 것처럼 몸이 어딘가로 휙, 쓸려갔다. 강도 높은 충격이 몸을 뒤흔들었다. 자꾸만 내려가는 고개를 어렵게 들어 올린 세정이 뒤편을 응시했다.

동시에 도박을 걸었고,

배팅 결과가 나왔다.

똑같은 우회전.

세정은 징그럽게 따라붙은 청재의 차를 바라보았다. 그 좀비 같은 걸레짝이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왔다.

콰앙―

삐이이―

두 귀가 머는 듯한 굉음이 있었다.

* * *

세정 씨인가?

작업실을 치우던 호연은 벨 소리가 들리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받아도 되나……. 잠시간 고민하던 호연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미친 새끼야! 지금 뭐 하는데? 미친아, 야, 야이, 씹, 야!

동시에 빼액―! 소리를 지르는 남성의 음성이 있었다.

“누구세요?”

―뭐야, 씨발…….

거칠게 뚝, 끊긴 음성을 곰곰이 떠올려보니, 휘영인 것 같았다.

동시에 화마에 휩싸인 듯 불안한 예감으로 호연의 목덜미가 뜨끈해졌다.

호연은 급하게 뉴스를 찾아보았다.

몇 시간 뒤에야 첫 기사가 떴다.

[금일, 서울과 속초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차량을 촬영한 CCTV 영상입니다. 파란색 스포츠카는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과격한 난폭 운전으로 시민들의 공포를 조성합니다. 사람을 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정도입니다. 영상을 촬영한 제보도 빗발쳤는데요. 목격자는 총 세 대의…….]

기사의 헤드라인은,

<얽히고설킨 도심 속 위험천만한 레이싱>

이었다.

* * *

콰앙―

삐이이―

다가올 충격을 기다리던 세정은 기이할 정도로 사늘한 정적에 눈을 들어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번갈아 보았다.

분명 저를 따라 크게 코너링하던 청재의 차가 가로수에 처박혀 있었다. 시커먼 연기가 한 움큼씩 차체를 훑고 올라갔다. 그를 들이받은 듯한 또 다른 스포츠카가 도로 중간에 멈추어 있었다.

무슨 상황…….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세정이 살짝 인상을 쓸 때였다.

쾅쾅―

조수석 창을 두드리는 강한 주먹질에 세정은 홱,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씨이발, 문…… 열어.”

어딘가 아픈 듯 하악에 잔뜩 힘을 준, 기휘영이었다.

차츰 퍼즐처럼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청재의 스포츠카를 들이받은 또 다른 스포츠카는 휘영의 것이다.

언제 따라와서? 갑자기 왜?

세정은 무시하고 다시 액셀로 발을 올렸다. 그러자 휘영이 옆구리를 붙잡고 크게 신음하면서도 다시 한번 창을 강하게 두들겼다.

“문 열라고, 씨발! 기소라 방에서 뭐 찾아낸 거잖아!”

극심한 고통이 선연하게 느껴지는 고성이었다. 휘영은 폐부를 쥐어짜 겨우 내뱉은 것인지 허억, 허억, 허리를 둥글게 말고 앓았다. 그러곤 다시 창을 툭툭, 힘없이 내리쳤다.

“뒤에 경찰 온다고……. 너 별장 가는 거잖아. 거긴 내가 잘 안다고. 너는 좆도 모르잖아…….”

소라의 방, 속초, 지청재를 조합하여 대강이나마 전후 사정을 살핀 휘영이 도와줄게……. 열어봐. 빌 듯이 속삭였다.

이에 세정은 차의 잠금을 열어주었다.

* * *

소라 탓에 속초의 별장을 자주 왔던 휘영은 지름길을 알고 있었다.

휘영은 그리 좋은 집안의 딸인 아민을 시댁에 홀로 두면 어쩌느냐는 은선의 성화에 본가로 가던 길이었다.

그러는 당신은 세정이 거절한 여자라는 이유로 아민을 탐탁지 않아 했으면서. 그러는 당신은 이제 쫓겨난 주제에.

모든 상황이 착잡했다. 휘영은 본가로 향하는 오르막길에 차를 세워두고 담배나 한참 피웠다.

몇 시간쯤 헛되이 보냈을까. 그때였다. 눈앞으로 세정의 고급 세단, 청재의 스포츠카가 폭발적인 속도로 나아갔다.

……이 좆될 것 같은 예감.

이상하게, 확실히 좆될 것 같은 예감.

휘영은 곧장 그들을 뒤따르면서 청재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본가에 전화해 상황을 전달받았다.

그렇다면 기세정을 멈춰 세워야 할까, 지청재를 멈춰 세워야 할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결혼식 이후 지청재의 뒷조사를 시작했으니까.

에트 주식회사 대금 횡령 건을 조사하는 특별 감사팀이 범인을 지청재로 좁혀두고 상부 지시를 기다린다는 것까지 전해 들었다.

그래서 크게 코너링하는 청재의 차 조수석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이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휘영은 갈비뼈와 다리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세정의 차에 타 코너를 돌아 몸이 시트에 처박힐 때마다 욕을 짓씹으며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별장에 도착할 때까지 악착같이 버텼다. 간간이 아랫입술을 깨물어 피가 철철 흐르는 것도 모르고 그저 선득한 고통을 참았다.

“어디.”

이제는 열이 올라 끙끙대기 시작한 휘영을 부축한 세정이 별장으로 들어섰다.

휘영은 조금만 움직여도 바람 빠진 신음을 흘리면서도 제힘으로 걷고 싶어 했다.

오래가지 못할 객기였다.

“앉아서 손가락질만 해.”

세정이 별장 2층 거실에 휘영을 내려놓으려 하자, 그는 그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고 악착같이 세정에게 매달렸다.

“네, 가 증, 거 빼돌, 릴 줄, 어, 어, 어……떻게 알, 고. 나 아, 직 너도, 지, 청재 씹, 새, 끼도…… 못, 믿어.”

휘영은 쉼표마다 말을 멈추고 턱을 덜덜 떨며 숨을 헐떡였다.

세정은 하는 수 없이 다시 휘영을 안아 들 듯 허리를 감싸고 별장을 살펴보았다. 양쪽 다 소름이 끼치는 행위였으나 별수 없었다.

휘영의 비척거리는 걸음이 갈수록 엉망진창이 되어 질질, 끌려가는 꼴이 되었으나 그는 눈을 부릅뜨고 세정과 같은 시야를 공유했다.

휘영은 소라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방을 시작으로, 그녀의 드레스룸, 파우더룸, 서재, 피아노 연습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하실을 안내했다.

번번이 어느 곳과도 열쇠가 맞지 않던 열쇠는 지하실과 맞았다.

모든 증거는 지하실에 있었다.

세정은 존재조차 몰랐고, 만에 하나 청재가 열쇠를 갖고 왔대도 절대 찾을 수 없는.

설계를 지시했던 명균과 애정 어린 손길로 별장의 모든 곳을 돌보았던 소라, 그리고 그 일상을 공유했던 휘영만이 아는 공간이었다.

지하실에는 청재의 계양 실업 관련 서류를 빼돌린 것으로 시작하여 제 일기장과 강제 마약 투약 일지, 심지어는 청재와의 대화를 녹취한 것들까지 있었다.

“씨이……. 발……. 둘러, 본, 곳, 중, 에…… 제, 일 마, 마, 지막…… 거야.”

그를 두 눈으로 다 확인한 후에야, 휘영은 가늘게 웃다가 정신을 놓았다. 그 눈에 흐르는 눈물이 몸의 고통 탓에 나온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 * *

아무와도 연락이 되질 않아, 작업실에서 뛰쳐나온 호연은 한참 걷던 끝에 문득, 까맣게 죽은 눈을 들어 사위를 둘러보았다.

한 번도 와보지 못했던 을언면의 저수지, 봄성지였다.

그토록 아름답다는 봄성지를 이토록 절망스러운 찰나에 보는구나.

호연은 물속에서 자라났다는 특이한 버드나무를 응시하면서 허물어지듯 벤치에 기대어 앉았다.

암흑 사이로 여린 조명이 물을 비추었다. 가을바람이 버드나무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호연은 그 한 줌 바람에도 마음이 휘청였다.

다가올 현실이 무섭고 두려웠어도 영상을 끝까지 확인해 볼걸.

대상이 세정이라서 드는 생각이었다. 뒤늦은 용기도 세정이 주었다.

핸드폰을 가져올걸.

그래봤자 보지 못하고 또 망설였을 테지만.

지금도 몸이 미적거렸다.

가야 하는데, 무서운데. 가야 하는데, 무서운데.

호연은 손톱을 갉작였다. 빠드득, 소리가 나는 손톱을 뽑을 듯이 힘주어 밀었다.

“저희 드디어 또 보네요?”

주변을 둘러싼 기류와는 사뭇 다른, 환한 음성이 들렸다.

호연은 목덜미가 땅길 정도로 수그렸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진짜 오래 기다렸는데.”

봄성지 카페, 커민의 주인 이차민이었다.

호연은 새카맣게 잊고 있던 그 등장이 너무 얼떨떨해 멍하니 바라보았다.

차민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아메리카노가 쥐어져 있었다.

“이거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예요. 날이 꽤 추운데 얇게 입으신 거 같아서.”

절대 몰래 따라온 건 아니라고. 호연이 앉은 벤치 뒤쪽 단풍나무에 가려진 게 제 카페, 커민이라고. 마감하다가 보여서 혹시나 해서 왔을 뿐이라고.

평소 같았으면 매번 과하게 해명하는 차민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겠지만, 마음이 초조해서 그렇게 안 됐다.

그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호연의 표정에 차민은 입꼬리를 내렸다.

“무슨 일 있어요?”

차민이 상냥하게 물으며 옆자리에 앉으려는데,

“호연아.”

나지막한 부름이 있었다.

이에 처량하게 앉아 있던 호연이 성마르게 일어났다. 차민이 들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치면서 일어난 터라, 엎어진 컵이 땅으로 처박혔다. 검은 물이 왈칵, 쏟아져 구두를 더럽히는데도 호연은 완벽히 넋을 놓은 얼굴이었다.

누군데.

차민은 호연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장신의 남자였다. 아름다운 얼굴에 나른한 짜증이 묻어 있었다. 고개를 삐뚜름히 내려 눈매를 찌푸린 것으로 제가 낄 자리가 아님을 알아차리게 하는 기류가 있었다. 차민은 슬금슬금, 반쯤 앉았던 몸을 들어 공간을 빠져나왔다.

싸늘한 바람이 부는 봄성지에 두 사람만이 남았다.

“백호연 씨는 남자들이 가만두질 않네.”

전화도 안 받고.

세정은 작업실에 들렀다 온 모양인지, 핸드폰을 들고 살짝 흔들었다.

아, 그 비스듬한 웃음. 못마땅한 것처럼 휘어지는 그 입매.

너무 보고 싶었던 얼굴.

“선물 준댔는데, 이러면 줄 기분이 안 나지.”

호연은 모든 장면이 망연하게 느껴졌다. 현실감이 아주 까마득하고 두 발이 지면을 디디고 서 있는 것 같지 않은 비현실적인 기분에 사로잡혔다.

“밖이 추운데 옷을 그렇게만…….”

입고 나왔느냐고.

세정의 말이 미처 다 이어지지 못했다. 갑작스레 달려와 안긴 호연 때문이었다. 재킷을 벗어주려는 손길이 우뚝, 굳었다.

세정은 이유를 묻지 않고 일단 호연을 안아주었다. 작고 마른 여체는 언제나 부서질 것처럼 소중하고 언제나 사라질까 봐 애가 탔다.

여자에게서는 늘 물감 냄새가 난다.

세정은 그 살 내음을 크게 들이마셨다. 온기를 가진 호연이 제 이완제였다. 안고 있는 것만으로 온몸의 근육과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세정은 호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내가 너 없이 어떻게 살까.

지청재의 차가 밀고 올 때 가장 겁이 났던 건 죽음에 대한 게 아니었다.

이 험한 세상, 너 혼자 두고 갈까 봐.

그게 제일 두려웠다.

“어떻게…… 어떻게 된 거예요…….”

벌벌 떠는 가녀린 음성이 여러 번 풀어졌다. 세정은 호연이 다 알고 있구나, 했다.

이럴 거면 핸드폰을 주지 말고 갈 걸 그랬다. 어차피 호연을 찾는 데 아무런 쓸모도 없었는데.

“그냥.”

세정은 호연의 입버릇을 훔쳤다.

“아무 일도 없었어.”

호연은 세정의 재킷 끝을 쥐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맺히고 발개진 볼이 귀여워 세정은 여러 번 입을 맞췄다.

아니이……. 무언가를 계속 물으려는 호연의 입술도 핥듯이 문질렀다.

“백호연 앞에 있잖아.”

소라가 속초 별장에 머무르는 동안 그곳을 매일같이 찾았던 휘영이 지름길을 이용해 나타났다고.

사거리의 중앙을 훑듯 크게 도는 청재의 차 조수석을 휘영이 들이받아 멈춰 주었다고.

그리하여 내가 살아, 네 앞에 왔다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네 앞에, 네가 내 앞에 있다는 것 아닐까.

“응…….”

흐리게 대답한 호연이 다시 세정의 품으로 깊이 안겼다.

“선물 안 갖고 싶어?”

“……갖고 싶어요.”

호연이 비비적거리던 머리를 들어 올렸다. 세정은 그 머리칼을 넘겨주며 다정한 어투로 말을 흘렸다.

“백호연 생일 오늘이야.”

“……응? 네?”

“오늘이라고.”

“……왜요?”

호연의 눈에 의문이 가득 차올랐다.

“백호연 씨 옆집 살던 할머니가 아직 거기 살아. 애 받은 날을 일기에 써놨더라고.”

호연의 눈에 잔뜩 눈물이 차올랐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뒤섞인 울음을 뱉었다. 그러곤 끅, 소리를 내며 다시 세정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생일 축하해.”

“……그걸 어떻게 알았어어…….”

“백호연 남편은 모르는 게 없지.”

“내가 사랑한다고 했어요?”

“오늘은 아직.”

“사랑해요.”

뭉개진 음성으로 하는 호연의 고백을 세정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응, 나도 백호연 많이 사랑해.”

당신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선율.

당신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색감.

세정의 사계 중 가장 근심 없는 가을밤, 두 사람이 나눈 것은 분명 거짓 없는 사랑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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