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소예는 울음 끝에 호연의 손이 구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젖은 눈을 들었다.
“호연아, 우리 도망갈래?”
“도망갈까요?”
어떤 날,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던졌던 말이 다시 재생되었다.
늘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안고 살았던 나를 모르면서.
남자가 나를 싫다고 하면, 그때 나는 어디로 갈까.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 위에서 나는 도망쳤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눈을 돌리면 사방에 남자가 박살이 난 손으로 짓고 무너트린 흔적들로 가득할 텐데.
아, 해외로 가야 하나.
얼마 전 북미까지 진출했다던 북두 홈푸드의 기사를 스크랩했던 게 떠올랐다.
해외 또 어디를…….
“야. 내 말 듣고 있어?”
“……듣고 있어.”
“근데 이 리본은 뭐야.”
손끝으로 파란 리본의 끝을 당겨본 소예는 제 기준으로 얼마쯤 먼 곳을 선택지로 꺼내었다.
모 예능 프로에 나왔다던 경상남도 남해군 설리 마을 앞 해수욕장. SNS로 봤다는 전라남도 신안군 자은도 무한의 다리. 평소에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는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 양떼목장……. 북한을 제외하고는 도마다 하나씩은 선택지가 있었다.
그게 마치 종강 이후에 놀러 갈 곳을 정하는 것만 같았다. 그 잠시가 아무 시름없이, 그저 평화로웠다.
평화의 그림자는 전쟁인 것도 모르고,
그렇게 한동안.
* * *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병실을 나오자, 핸드폰이 전쟁이 난 것처럼 울렸다. 대부분은 석훈의 것이었고 종종 연실과 여진의 것도 있었다. 총알처럼 날아온 메시지에 또 다른 메시지가 겹쳤고 메시지를 읽으려 하면 다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야, 이게…….”
그렇다고 전화를 받을 생각은 없었으므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민형에게서 전화가 올 때까지만 그랬다.
“응. 오빠.”
―오빠는 씨발, 얼어 죽을. 야!
석훈의 음성이었다.
그 주인도 뜻밖인데 난데없는 욕설과 고성이라, 호연이 걸음을 멈추었다. 서늘한 적요가 귓바퀴부터 점점이 번졌다.
기어코 심장을 쥐어짰다.
쿵쿵, 자맥질을 시작한 박동 탓에 소리가 잘 안 들렸다.
“뭐라고…….”
뭐라고.
뭐, 라고…….
―엔마트 다 넘어갔다, 개씨발년아. 너 뭐 하는 새낀데! 네 남편 안 말리고 뭐 하냐고! 네가 시켰냐고!
“…….”
―남자에 미쳐서 지 다 키워준 원장님 장례식에도 안 온 년아! 네가 퍽이나 씨발……. 네 오빠를 찾았지. 너 하는 꼬라지 보면 진작 뒤진 느그 오빠가 널 땅에서 저주할 거다!
뚝, 일방적이었던 통화가 끝이 났다.
호연은 제가 끊어놓고도 믿기지 않는 양 천천히 고개를 갸우뚱, 했다. 벽에 적힌 ‘은림대학병원’ 글자를 눈으로 훑어 내렸다. 그렇게 얼마쯤 멍하니 같은 글자를 읽었다.
읽었는데, 무슨 글자인지 모르겠다.
뭐라고 적혀 있는 거지…….
무슨 말을 들었던 거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주 멀고 길게 느껴지는 찰나 속에서 이해는 더디게 왔다.
그래서 걸었다.
병원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와 빗속을 걸었다. 여름의 더위를 물러나게 한 맹렬하리만치 차가운 빗줄기가 이마를, 콧대를, 가슴을 두드렸다. 어디로 가는지는 상관없었다.
그 길에서 아마 알았던 것 같다.
이렇게 걷다 보면 기세정이 달려오리라는 것.
우연은 때때로 누군가의 계획일 수도 있다는 것.
생각의 어느 시점에서 호연은 걸음을 멈췄다.
또 어느 순간의 직감처럼 남자는 길목에 우산도 없이 서 있었다.
공평하게 떨어지고 있을 빗방울은 제게 조금 더 아프게 내렸다.
“기세정 씨.”
높은 빗소리에 비해 낮은 음성은 아주 형편없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다 알고 있었죠.”
호연은 뒷말을 다 죽였다.
서서히 얼굴이 일그러졌다.
“알고 있었잖아!”
제가 숨겼던 것, 석훈이 숨겼던 것, 그리고……. 이런 일이 없었으면 끝내 알지 못했을 모든 것, 끝내 외면했을 것.
교은의 죽음 같은 것.
민형의 죽음 같은 것.
늘 죽고 싶은 내 마음까지도.
가로등의 불이 켜졌다. 샤워기에서 내리는 빛줄기를 맞고 있는 것 같은 남자의 얼굴이 무표정했다.
진실을 고백하면 남자의 표정은 어떨까, 짐작했던 그 얼굴이었다.
“기세정 씨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됐던 거예요.”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아니, 남자는 소리 질러 대답할 만큼의 값어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듣고 싶은 대답이 있는 사람만 악을 썼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뻔히 알면서. 내 인생을 송두리째 들여다봤을 거면서!”
목구멍이 졸아붙었다. 속이 들끓고 팔이나 다리 따위가 뭉텅, 연기가 되어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사지가 말을 듣지 않고 벌벌 떨렸다.
“내가 바보 아니라고 부정하던 사람 어디 갔어요? 나를 그냥……. 이렇게 바보 취급을 하고. 이래도 내가 바보가 아니야?”
눈물이 흘렀다. 이 비를 닮은.
“이제는 내가 부정해요. 나 그래도요. 아저씨 잘못된 거 알았고. 오빠 이상한 거 알았어요.”
“…….”
“근데!”
“…….”
“믿고 싶었다고……. 나는 거짓말이어도…… 믿고 싶었다고, 그냥…….”
속이 끝도 없이 공허해졌다.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이 까마득한 어딘가까지 추락했다가 되돌아 나왔다.
“당신이 뭔데! 내가 아무것도 몰랐다고 생각하지 마요. 그러니까 나를 구했다고도 생각하지도 말아요. 나는…… 나는…….”
호연은 더듬거리는 사이마다 밭은 숨을 억눌렀다. 이쯤 되면 남자가 제 할 말을 꺼낼 거라고 생각했다. 지는 건 참지 않으니까. 아귀가 맞지 않는 일은 교정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지 않으니까.
그러나 세정은 침묵했고, 정적을 견딜 수 없는 호연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도대체 언제까지 모르는 척 숨길 생각이었어요?”
“…….”
“내일? 모레? 아니면……. 한 달, 일 년, 그보다 더 나중에?”
추상적이고 모호한 시간의 개념으로 흘러갈수록 주변은 구렁텅이로 보였다.
“평생도 숨겼겠네.”
자조했다.
놀라운 건, 제가 남자에게 화낼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는 것이다.
막연히 지금쯤 남자에게 끝도 없는 막막한 사과를 건네고, 언제나처럼 간절한 눈으로 빌고 있겠지, 생각했다.
을을 자처하는 비이상적 관계를 유지하는 게 사랑이라고 믿으면서…….
그 짧은 시간, 내가 당신을 얼마나 믿었는지. 의지했는지. 사랑했는지…….
아마 당신은 모를 것이다.
나기를 태양으로 태어나 그림자 없는 남자의 뒤에 숨어 빛을 피하려다 타 죽어갔는데.
결국, 내가 내 주제도 모르고 낸 커다란 욕심이 실패한 전쟁의 역사가 된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가족도, 사랑도, 자신도 모두 다 잃은 쓸쓸한 패잔병은 그 끝에…….
무너졌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구역감이 들었다. 몸이 벌벌, 떨렸다. 가로등이 켜진 눈앞은 분명 환한데 자꾸 흐려졌다.
꼭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딴 게 사랑이에요?”
두 눈을 닦아내 보지만,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좋았다. 호연은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서 흐려지는 눈을 그저 감았다. 넓은 보폭으로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거지 같아…….”
중얼거리는 말이 온몸을 휘젓고 나왔다. 모래알 같은 게 입안에서 까끌까끌했다.
정말 거지 같았다. 이 시끄러운 빗소리 속에서 남자의 발걸음에 반응하는 속도 없는 가슴이.
뜯어내고 싶었다, 이까짓 거.
손을 올려 가슴을 짚었을 때였다. 젖은 몸이 덥석 맞붙었다.
“응.”
남자는 사랑이라고 했다.
그게 징그럽고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부정했다.
사랑하는 만큼 증오하고 싶었다. 증오하는 만큼 매달리고 싶었다. 놓은 만큼 꽉 잡고 싶었다. 꽉 잡은 만큼 흘러가길 바랐다.
이 사랑은 자해와 다름없으므로.
* * *
세정이 가둔 것이었으나 호연은 방문을 잠그는 것으로 스스로 고립되었다.
핸드폰이 꺼지기 전까지 엔마트의 기사를 읽었다. 죽어버릴 거라는 협박으로 받아냈던 민형의 칼럼도, 교은의 기사도 수도 없이 읽었다.
민형은 제가 떠난 날 맞아 죽었고,
교은은 남편, 종영에게 칼 찔려 죽었다.
석훈은 애초에 진짜 민형을 찾아보지도 않았던 걸까. 알았는데, 언젠가 사용할 팻감이라 묵인했던 걸까.
교은의 몸에 남아 있던 상처들은 영주가 그런 게 아니라, 종영이었겠구나.
속고 속았고 속여 보려다가 또 속았다.
눈이 튕겨내는 글자를 곱씹다가 문득문득, 기억이 스칠 때면 멍하니 앉아 울었다. 그러다가 다시 머릿속이 텅 비었다.
글자들을 또 읽었다. 무엇 하나 정확히 읽히지 않고 뚜렷하게 각인되지 않았다. 모든 게 스푸마토(sfumato) 같았다.
흐릿하고 아득했다. 시간의 경과를 가늠하기가 어려웠으나 눈을 깜빡일 때마다 창밖의 색감이 바뀌는 것으로 어렴풋이 짐작했다.
하루가 왔고, 갔고. 또 하루가 왔고, 또 갔다. 오지 않아도 됐을 하루가 왔고, 갔다.
이따금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났다.
그럴 때마다 죽지 않았다고 무엇이든 방문에 던졌다.
그러면 소리는 사라졌다.
살아 있으면 됐다는 것처럼. 그러면 그만인 것처럼.
나는 살아 있을 이유가 없는데.
하루에 한 번은 강제로 문이 개방되었다. 남자가 있는 일은 없었고, 대개 먹을 것과 의사가 왔다.
영양제 같은 건 진작 뜯어냈고 온 팔뚝이 주사 자국으로 엉망이 되었을 때부터 의사는 살아 있는 것만 보고 갔다.
배도 고프지 않고 목이 마르지도 않았다. 생리 현상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울면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입을 벌려 기괴한 소리로 울었다.
그러다가 그 울음마저 멎을 즘엔 죽으려는 의지도 말랐다. 죽으려는 의지는 살고자 하는 의지를 닮아 있으므로 무기력해진 심신은 서서히 죽어갔다.
어느 순간에는 피곤하지도 않았다. 억지로 하루를 가늠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모든 장기가 일제히 기능을 멈추고 심장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온몸이 꺼멓게 부패하여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살과 뼈가 분리되어 썩어가는 것 같았다.
똑똑―
잠시 정신이 들었다. 아니, 흐려졌던 것도 정신이 들고 난 이후에나 알았다.
똑똑―
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문고리를 돌렸는데……. 아, 아닌가. 남자도 노크했었나……. 먹을 건가. 벌써 밤인가. 낮인가. 남자가 언제 왔더라…….
무의미한 생각에도 쉽게 빠져 허우적댔다.
똑똑―
방문 앞으로는 이미 잡다한 것들이 너저분하게 떨어져 있었다.
대다수는 죽어 보겠다고 난리를 쳤던 흔적이고 나머지는 살아 있음을 알리는 흔적이었다. 언젠가 둘 중 하나가 이길 전투.
똑똑―
끈질긴 노크 소리가 이어졌다. 호연은 던질 것을 찾아 간신히 손을 더듬거렸다. 이젠 던질 만한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있었어도 이따위의 몸으로는 던질 수 없었을 것이다.
눈을 감고 포기했다.
똑똑―
귀찮은 노크 소리가 집요하게 들려왔다.
죽어가는 기쁨은 마음이 무감해진다는 거였다. 울렁이고 들썩였던 한날의 치기가 더는 느껴지지 않는 것.
남자가 이런 나를 보아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기분. 수치스럽지도, 통쾌하지도 않은 빼곡한 허무.
끊임없이 누군가 자꾸만 아래로 잡아끄는 감각에 시달렸다. 속절없이 정신이 한 움큼씩 빨려들 때였다.
“백호연 씨.”
문득, 손목에 묶인 파란 리본이 보였다.
죽고 싶었던 내내 감히 긋지 못하도록 손목을 감싸고 있던 것.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