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아읏……!”
호연은 갑작스러운 쾌감에 흐느끼듯 크게 앓았다. 자기 편할 대로 적당히 기분 좋게 허리를 돌리던 호연이 관통상을 입은 것처럼 허물어졌다. 세정은 마구잡이로 짓찧으며 호연의 안쪽을 쳐올렸다.
그러면서도 미친 사람처럼 겹친 뼈마디가 아프도록 껴안았다. 호연은 전과 비슷하게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면서 강렬하게 몸을 두드리는 쾌감에 집중했다.
세정은 호연의 뒤통수를 쥐어 끌어당겼다. 살갗과 살갗 사이로 물방울 하나, 공기 하나 고이지 못하도록 힘을 주었다.
어떻게 하면 불행에, 불운에 너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너를 지킬 수 있을까.
자비 없이 집요하게 내벽에 들이받으면서 세정은 골똘했다.
완벽히 내 안에 가두어 통제하면. 불행도, 불운도 침입하지 못하게 가두면. 세상에 너를 외따로 두면.
그러면 되지 않을까.
세정이 아랫입술을 감쳐물었다. 손을 내려 아무렇게나 버려진 호연의 다리 아래로 넣었다. 그러곤 골반을 잡아 자신 쪽으로 바짝 당겼다.
“하으윽……. 으, 으, 앙! 아, 아!”
호연의 안쪽으로 세정의 성기가 더욱 깊게 삽입되었다. 세정의 판판한 살결로 음핵이 비벼졌다. 호연은 세정의 귓가로 달뜬 신음을 형편없이 흘려보냈다.
철썩이는 물소리가 끊임없이 뇌리를 강타했다. 조금씩 허리를 옥죄는 힘도 더 강해졌다. 세정이 아래를 들쑤시는 속도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빨라졌다.
“아! 아! 아! 아아……!”
욕실에 메아리가 울릴 정도로 커다란 신음이 반복해 터졌다. 이내 참지 못한 호연이 먼저 늘어졌다. 세정은 예민한 내벽을 휘저으면서 허리 짓을 이어나갔다.
탁탁, 걸리는 지점이 있었다. 그를 꾹꾹, 누르면서 강하게 치받았다. 시체처럼 기대 있던 호연은 몸이 쥐어짜진 듯 벌벌, 떨었다. 세정은 그곳을 계속 박아 넣었다.
맞닿은 성기 사이로 새로운 물길이 나는 감각이 들었다. 세정은 전율하는 호연의 몸에 흡수되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들끓었다.
좋아해요, 좋아해.
호연이 몇 번쯤 했던 거짓말이 어지럽게 들려왔다.
지금 이 또한 그 거짓말의 연장선이라고 해도. 기어코 제가 여자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대도,
상관없었다.
그러니까,
“계속, 박고만 있으면, 좋겠어.”
끊어지기만 할 뿐, 태연하게 흘러나온 세정의 말에 호연이 잠꼬대하듯 아아, 부정했다.
“왜?”
세정은 겹친 가슴을 떼어내 제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표정을 보았다. 아랫배로 고이는 열감을 피하지 않았다.
“정……. 흐윽……. 시인, 힉, 차리고……. 아아! 아, 아……. 살, 사알……. 응, 고 싶……. 흐으…….”
정신은 차리고 살고 싶다고.
계속 박힌 채로 살면 지금처럼 살아야 하니까.
세정은 그게 지극히 호연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살아도, 좋겠는데.”
짓궂게 안쪽을 박아 넣자, 호연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아래를 조였다. 세정이 쿵쿵, 집요하게 짓치며 다가온 절정감을 가늠했다.
슬슬 한계였다. 제대로 정렬되지 않은 숨이 세정에게서 터져 나왔다.
“아, 아, 아, 아아아! 흑…….”
몇 번째 환희인지도 모를 절정을 맞은 여자가 또 한 번 제 몸에서 풀어졌다. 세정은 그 몸을 익숙하게 추스르며 막힘이 느껴지는 내벽 그 끝으로 성기를 꽂아 넣었다.
“아…….”
절정 상태에서 다시금 맞는 절정에 호연이 진저리 쳤다. 잔혹한 쾌감이었다.
“집 가면 백호연 씨가 큰일 날 거 같은데.”
전제는 반쯤 맞기도 했다.
* * *
두 귀가 물을 먹은 듯 먹먹했다. 무게만큼 가라앉아 있던 매트리스가 평평해지는 탄성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꿈결 속에서 허우적대며 간신히 뜬 눈조차 어른어른했다.
호연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시간의 간극이 느껴졌다.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나신으로 멀어지는 모습. 가운을 걸친 채 돌아오는 모습. 은은한 클렌저 향을 풍기며 머리맡에 앉아 그쪽으로 기우는 몸.
그런 몸을 가볍게 옮겨 침대의 중앙으로 옮겨주고 이마에 장난치듯 무언가를 써넣는 간지러운 감각.
“더 자요.”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다정한 손길에 호연은 다시 졸음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얼마간 또 시간이 지나고서 들리는 대화들이 어렴풋했다.
-……죽었다고? 왜.
누가 죽었다고?
-그건 계획대로 진행하고…….
무엇을 계획대로 진행한다고?
-가짜란 말이네.
어떤 게 가짜라고?
불쑥 섬뜩한 직감이 등줄기를 타고 번졌다.
여전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무수한 물음들이 목구멍에 맺혔다.
열어젖힌 눈꺼풀이 맥없이 도로 감겼다. 덮인 이불이 무겁게 아래로, 아래로 몸을 끄집어 내리는 것 같았다.
해본 적은 없지만, 침몰하는 것처럼.
이내 귓가로 고였던 말들이, 등줄기를 찌릿하게 만들던 직감이 희미하게 흩어졌다.
이미 한계치에 도달한 불안 탓이었다.
* * *
아주 오래전부터 정신을 좀먹던 불안이 이제는 곧잘 호연의 정신을 무너트렸다.
증거로 충동을 참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바다에 발을 담가 보겠다고 향할 때나 꽃다발을 사고 남자에게 고백해 버리고 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제 어쩌지.
호연은 무릎 위에 둔 손가락을 매만지며 막막한 마음을 다스렸다.
남자가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지 못하길 바랐고, 저는 그 마음을 외면하고 싶었다.
결국은 이렇게 되어 버렸지만…….
고민이 되었다.
날 위한 게 아니라, 남자를 위한 선택은 무엇일까.
이대로 계속 아무 일도 없을 것처럼 사랑하다 백 일이 되는 날 뼛속까지 나쁜 년인 것처럼 남자의 뒤통수를 치면 될 일일까.
사실을 털어놓으면 될 일일까.
사랑한다고.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애걸하면……. 남자는 믿을까.
이혼이고 뭐고 다 몰랐던 척을 할까. 나도 석훈에게 속은 거라고.
가장 무서운 결과는 용기를 내 고백한대도 너무 많은 거짓말이 진실 사이에 존재해 진심이 통하지 않을까, 무서웠다.
눈앞에서 세정이 커피 잔을 내밀었다.
“커피.”
“……잘 마실게요.”
호연은 잡념에서 빠져나오며 커피 잔을 받아 들었다.
잠을 하루에 두 시간씩 잤다면서, 그 밤에 저를 아주 못살게 굴고도 어떻게 이렇게 일찍 일어나 멀쩡할 수가 있지. 자신은 아직도 힘이 드는데.
조금은 야속한 눈빛으로 본 것도 같았다.
그 앞에 마주 앉은 세정은 테이블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웬 선인장.”
호연의 시선이 같은 곳으로 떨어졌다. 거실 테이블 가운데 둔 선인장을 말하는 거였다.
흰 가시가 뒤덮여 있는 앙증맞은 크기의 선인장이었다. 그를 보는 호연의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아, 제가 샀어요.”
“샀다고?”
“꽃집에서요.”
이내 눈동자를 도륵, 굴린 호연이 사뭇 심각한 듯 입술을 열었다.
“맘……. 뭐라고 하셨는데……. 백사자 선인장이래요. 인터넷 찾아봐도 정보가 별로 없어서 물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꽃집 사장님도 두루뭉술하게 말씀하시고…….”
호연이 손을 뻗어 물기 있는 흙을 꾹꾹, 눌러보았다.
“아, 그리고 여긴 햇빛이 낮에만 잠깐 드니까 베란다로 빼야겠죠? 선인장이니까, 해를 많이 보는 게 좋겠어요. 그건 내가 생각을 못 했네.”
이런 걸 좋아했나.
끝에는 혼잣말로 마무리되는 말을 듣고 있던 세정이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내렸다.
호텔에서 눈을 뜨자마자 한 번 더 섹스하고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걸 들어다가 차에 눕혀 집으로 돌아와 음식을 먹였는데도 호연의 울적함은 감춰지지 않았다.
웃는데도 웃는 게 아닌 것 같은 찜찜함이 내내 감돌았지.
그런데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 난생처음 되짚어 보게 만들던 그 표정이 지워진 이유가 고작 저 선인장이라는 게.
그게 좀 어이가 없을 뿐.
세정은 상체를 내려 그 반대편의 흙을 누르다가 넌지시 물었다.
“내가 한 요리 맛없었어요?”
호연이 당혹스러운 듯 눈을 치떴다.
“네?”
세정은 호연의 손가락 위를 꾹, 눌렀다가 떼어내며 답지 않게 아랫입술을 한 번 삐죽였다.
“아니, 밥 먹고 난 뒤로 계속 표정이 안 좋다가 선인장 얘기에 급발진.”
근데 급발진이라고 말할 것까지는.
호연의 눈썹 사이가 좁아졌다.
“그게 아니라, 고민이 있어서요.”
“고민?”
진짜 고민은 이 관계에 관한 것이지만, 지금 이야기할 건 아니었다.
호연은 빠르게 고민거리를 물색했다. 그러곤 내놓은 말이,
“……친구가 연락이 안 돼요.”
소예와 관련한 거였다.
세정은 응,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호연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들어줄 만했다.
“정확히는 됐다가 안 됐다가 하는 건데…….”
남자에게는 너무 시답잖은 이야기일까, 호연이 눈을 들어 세정의 얼굴을 확인했다. 세정은 호연과 눈이 마주치자 듣고 있다는 듯 고개를 까딱이며 대답했다.
“찾아줘요?”
“……사람도 찾을 수 있어요?”
“쉽지.”
인적 사항.
남자가 툭, 던진 말에 호연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결국 천천히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말을 굴려냈다.
“……현, 소, 예고요. 같은 학교 동기고요. 여자애고 동갑이에요. 키는 160cm 조금 안 돼요. 그리고…….”
남자였으면 찾아주지 않을 생각이었던 세정은 호연의 말을 귀담았다.
그쯤 말을 멈춘 호연은 소예의 남자 친구가 소라의 약혼자였던 지청재라는 사실을 말해야 할까, 다시 한번 고민에 빠졌다.
소예의 이상한 연락 패턴이 지청재와 크게 다퉜다던 날 이후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간헐적으로나마 연락이 오니 친구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지만,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세정 씨도 아는 사람인데……. 지청재 씨가 소예 남자 친구예요.”
별 특이 사항이 없어 찾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청재?”
말하지 말 걸 그랬나.
호연이 나직하게 긍정했다.
“네에…….”
무료한 듯하던 세정의 눈빛이 일순 날카로워진 탓이었다.
* * *
“호연아……. 내가 정말 힘들어서 그래. 응? 제발.”
호연은 비굴하게 무릎 꿇은 석훈의 아내, 연실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카페 내부에 앉아 있던 이들의 이목이 쏠린 게 느껴졌다.
세정의 생일 선물을 사러 가기 전, 여진이 잠깐 만나자고 하여 나온 자리였다. 그 자리에 연실이 있을 줄은 몰랐다.
밥 한 끼 사 달라던 약속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아이를 지우고 싶었다는 여진의 말이 내내 마음 쓰여 나온 것부터가 문제일까.
호연은 카페 통창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다. 눈이 시려 자꾸 눈물이 맺혔다.
“엄마, 일어나아…….”
놀란 여진이 연실의 팔을 붙들고 일으키려다 힘에 부쳐 주저앉았다. 연실은 살이 빠져 더 억척스러워 보였다.
“제발……. 키운 정을 생각해서라도…….”
“엄마!”
찢어지는 고성과 울먹거리는 호흡이 섞였다. 쏟아지는 말이 높고 낮아 머리가 아팠다.
“내가 너를 제일 먼저 찾아왔겠니? 나도 여기저기 손을 벌려봤는데, 다들 어려우니까……. 응? 여진 아빠가 너를 팔듯이 맞선 보라고 밀어 넣을 때 내가 얼마나 염치가 없었는지……. 그런 것도 모르고 이러는 게 아니라, 정말……. 정말 어려워, 호연아. 지금 내 사정이 정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