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아니…….”
너무 적나라한 단어에 귀가 뜨거웠다. 호연은 귀를 붙잡으며 몸을 젖혔다.
“그래도 말하고 싶었지.”
“…….”
“내가 기소라 안 죽였다고.”
“그러면…… 기휘영…….”
그러면 왜 휘영에게는 해명하지 않느냐고.
기다란 선을 그린 눈이 나른했다. 무언가 대답하려던 호연은 들어 올렸던 눈썹을 내리다가 왈칵, 찌푸렸다.
“입만 아프지. 본인이 거기까지만 듣고 간 걸 어쩌겠어.”
“아!”
몸을 묶어두었던 팔을 풀고 허벅지 깊은 곳에 자리한 예민한 살점을 문지르는 감각 때문이었다. 목덜미를 깨무는 단단한 이 때문일지도 몰랐다. 음핵을 둥글리는 손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니, 그 모든 것 때문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욕실에서 이럴 줄은…….
번번이 망한 예상 앞에 호연이 무너졌다. 욕조를 잡은 세정의 팔뚝에 기대어 헐떡였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남자의 손이 좀 더 쉽게 아래를 문질렀다.
“젖었는지 알 수가 없네.”
거짓말이 분명했다.
“읏……. 아, 아…….”
꿈질거리는 엉덩이 위쪽 허리선까지 남자의 성기가 감각되었다. 그러니까……. 늘 이 정도까지 받았던 거잖아. 정신이 돌아오다가도 희게 질렸다. 턱을 치들고 앓았다. 벽을 치고 돌아온 신음이 다시 귀를 파고들었다.
호연은 그게 미치게 부끄러워서 세정의 팔뚝에 입술을 묻었다.
그리고 늘 그런 걸 봐주지 않는 세정이 팔을 내려 호연의 가슴을 쥐었다.
“흐으…….”
납작한 배를 더듬었다. 다시 손을 올려 유륜을 따라 무의미한 곡선을 그리다가 뭉친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넣고 굴렸다. 호연은 세정의 손이 여린 파동을 만들어내는 꼴을 보기가 힘겨웠다.
아래로 처박힌 다른 쪽 손도 야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능란하게 내벽을 벌리는 손가락은 지나치게 길었다. 호연은 느껴지는 이물감에 입술을 떨었다.
“하…….”
느린 한숨이 입속을 돌아 나갔다. 색이 있다면 분명 하얗게 번진 숨이었다.
세정이 기다란 손가락을 호연의 안으로 처박을 때마다 욕조에 찬 물이 들썩였다. 그렇게 가득 찼던 물이 많이 흘러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호연은 어깨로 퍼부어지는 입맞춤에 자잘하게 어깨를 좁혔다가 다시 펴기를 반복했다. 온몸이 이상했다. 엉망으로 무너지는 표정을 지은 채 호연은 고개를 돌려 세정의 입술을 애걸했다.
“아, 흐……. 하아……. 안, 번마안…….”
“한 번만, 뭐.”
“키…….”
채 다 내뱉기도 전에 입술이 삼켜졌다. 그러나 그렇게 찾아 문 입술도 딱히 도움은 안 됐다. 성급하게 맞물린 입술에 이가 스치고 혀가 빨리고 입천장이 훑어졌다. 침이 질질 흐르는 것 같은데, 얼굴로 연신 물이 튀어 티가 나지 않았다.
“흐으! 아! 아……. 앙, 아, 으응!”
손가락 한 개가 두 개가 되고, 안쪽으로 물이 같이 빨려 들어가 배가 부푸는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들었다. 호연은 그 물살이 조금 거세지는 걸 막연하게 지켜보며 흔들렸다. 물살의 방향 따위는 거칠 게 되지 않는 양 처박는 손이 점차 빨라졌다.
“아, 아, 아아……. 응, 으…….”
순간, 속살이 흐무러지는 듯한 쾌감이 들었다. 으깨어지는 것도 같았다. 물과 함께 녹아내리는 것도 같았다.
남자의 손에 쓸려 붉어진 부분들이, 붉어질 부분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호연은 죽기 전의 짐승들이 으레 제 목덜미를 내주듯 고개를 꺾었다. 욕실 조명이 아주 가깝게 느껴져 눈이 부신, 뜨거운 환희였다.
호연은 빠져나가는 손가락에 다시 한번 몸을 움찔거렸다. 세정이 웃는 소리가 다 들렸다.
항변하고 싶었다. 달리 할 말은 없어도. 그러나 바람은 언제나 바람에서 그치는 법이었다. 세정이 호연의 몸을 돌려 자신과 마주 보게 만들었다.
호연은 순식간에 달라진 위치에 긴장으로 욕조 선을 움켜쥐는데, 세정은 나른한 표정으로 몸을 젖히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반대되는 그의 아래가……. 다시 한번 눈앞을 아뜩하게 만들었다.
“피곤, 하다고, 했잖아요.”
겨우 꺼낸 말이 이따위였다.
“이러고 있으니까 잠이 다 깨네.”
결국은 제 사정도 해결을 보겠다는 이야기였다.
“백호연 씨는 여전히 이기적이야.”
놀리듯 하는 말을 들으며 호연은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내가 뭘?
세정이 호연의 콧잔등을 물 묻은 손으로 가볍게 쳤다. 그러곤 다소 멀어진 호연의 허벅지를 붙잡았다.
“혼자만 가면 그만이에요?”
호연은 세정이 당기는 대로 끌려가서 아래와 아래를 맞춘 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애초에 변명은 의미 없다는 듯 이어 말한 세정이 물을 틀었다. 식어버린 욕조 속으로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졌다. 서늘해졌던 공기가 다시금 훈김을 머금었다.
가슴도 델 듯이 뜨거워졌다.
세정의 성기가 제 아래를 열고 들어오기 전이었다. 음핵을 찌르듯이 툭, 걸려 올라가는 귀두와 그 아래가 낯설게 흉포했다.
아아, 호연은 간헐적으로 숨을 터트리며 그 외설적인 장면에서 눈을 올려 세정을 보았다.
이런 생각을 하면 조금 불측하지만, 피곤으로 얼룩진 눈이 외려 색정적이었다. 입이 살짝 벌어질 때마다 야윈 볼이 패이면서 은밀한 시각적 감각을 일깨웠다.
질구를 둥글게 휘젓는 성기를 느끼며 호연이 조금 더 뒤쪽으로 누웠다. 반쯤 감긴 눈으로 보이는 세정의 턱에 힘이 좀 더 들어갔다.
점차 호연이 아래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그걸 연한 살을 문지르던 성기로 제일 먼저, 가장 선명하게 파악한 세정이 느리게 허리를 밀어 넣었다.
“하으으…….”
호연이 다시 온몸에 힘을 주었다. 도드라진 쇄골을 눈에 담던 세정은 빠듯한 아래 사정에 헛웃음을 지었다.
“힘 좀 빼요.”
세정이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으며 나 죽겠어요, 했다. 그러나 호연도 힘을 빼라고 한다고 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도리질 쳤다. 나머지는 다 세정의 몫이었다.
세정은 호연이 애써 뒤로 기울인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슬금슬금, 저를 토막 낼 것 같은 안쪽으로 뭉개고 들어갔다. 또 얼마쯤 지나지 않아,
“안, 될 것, 같아요…….”
호연의 엄살이 있었다.
“백호연 씨가 나랑 몇 번을 했는데.”
세정은 횟수를 헤아리다가 그냥 웃었다. 이럴 때나 어리고 미숙하게 구는 호연이 귀여워서. 그리고 그런 어린 여자랑 붙어먹는 제가 조금 몹쓸 놈 같다는 자괴감이 들어서.
그러나 모순적으로 계속 성기를 밀어 넣는 중이라, 그 자괴감도 끝이 느껴졌다. 세정은 얕게 허리를 치대보았다.
“아!”
여체는 한 줌이었다.
세정은 이맛살을 구겼다. 안겨드는 호연의 허리를 단단히 고정하며 허벅지 위로 앉혔다. 어깨를 문 입술이 여러 번 맥없이 공기만을 머금고 다물렸다.
세정은 동그란 엉덩이 아래로 손을 넣어 가볍게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그만큼 빠져나갔던 게 다시 어딘가를 쿡, 찌르면서 들어갔다.
선득한 쾌감으로 아랫배가 아무렇게나 조여들었다가 곤죽처럼 풀어졌다. 호연은 세정의 몸 위에 웅크리듯 제 몸을 내맡기면서, 저를 그리 만든 사람이 세정이라는 사실을 잊어나갔다.
애초에 넘친 욕조 물이나 첨벙거리는 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였다. 세정이 허리를 짓칠 때마다 물이 같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면 이토록 생경하게 버거운 느낌을 받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남자의 말처럼 많이 했으니까……. 그랬으니까…….
호연은 세정의 목덜미로 팔을 감으며 매달렸다. 허리를 붙잡던 손이 어느 순간, 척추뼈를 긁어내리고 엉덩이를 지분거리고 끝내는 어깨를 밀어 맞닿은 가슴을 조금 떨어트려 놓았다.
“아, 하아……! 아! 읏! 아아…….”
잔뜩 꼿꼿해진 유두가 흔들리는 가슴을 따라 위아래로 움직였다. 세정은 고개를 꺾어 쉽게 그를 삼키고는 빨았다.
물과 함께 휘감기는 유두의 감각이 이상했다. 호연은 허억,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갈비뼈를 고스란히 내보였다. 그 갈비뼈가 이어지는 부분에 얼굴을 묻은 세정이 살 내음을 맡았다.
“아직도 꽃 냄새가 나…….”
낮은 중얼거림에 호연의 정신이 어느 쪽으로 한 움큼 넘쳤다가 절반도 되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남자와의 관계는 늘 이런 식으로 비뚝거렸다. 자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용기 없고, 체력 없고, 극치도 상당히 낮으므로.
세정의 얼굴이 닿아 있던 가슴으로 서늘한 한기가 돌았다. 몸 아무 데나 짓씹으며 맛보았을 입속의 붉은 혀가 아랫입술을 쓱, 핥는 게 보였다.
호연은 이제 허리를 붙든 세정의 손목을 감쌌다.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조금 더 높이 들었다가 내렸다. 아무렇게나 내뻗어져 있던 다리 끝에 발가락이 곱아들었다.
“아흑……. 아!”
따뜻한 물이 아무리 차올라도 욕조 높이가 전부였다. 몸이 들썩일 때마다 욕조 밖으로 드러난 살갗에 소름이 돋았다.
세정은 손을 늘어트리며 호연의 행위를 방관했다.
“안 되겠다더니.”
역시 엄살이지.
안 들린다는 듯 이지를 잃은 시선이 배회 끝에 천장을 향했다. 세정은 붙들린 손목을 살짝 비틀어 빼냈다. 그러곤 연하게 붉은 물이 든 호연의 가는 목덜미를 살짝 쥐어보았다.
무심하게 꺾어버렸던 델피니움을 생각했다.
그 얇고 기다랗고 약한 줄기를, 활짝 피어난 꽃잎이 짓는 표정을, 이미 꺾인 줄도 모르고 감히 맹렬하던 푸른 색감을.
“아, 하아……. 아, 아…….”
세정은 손에 힘을 실었다. 호연이 불편한 숨을 쉬었다. 조금 더,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그러자 호연이 가물거리는 눈을 떠 세정을 내려다보았다. 영문을 알지 못하는 눈이었다.
그리고 목이 졸려 기어코 기침할 때까지.
목덜미에 번져 있던 붉음이 호연의 눈 아래까지 발긋하게 번졌다. 호연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양 캑캑거리며 안겼다.
그리하여 제가 목을 조를 수 없게. 그냥 안을 수밖에 없게.
세정은 호연의 등줄기를 토닥이면서 실처럼 끊어질 듯 가느다란 생각을 이어나갔다.
누구든 백호연을 꺾을 것 같았다.
휘어지느니 차라리 부러짐을 택한 자의 익숙한 불안증이었다.
제 눈에도 예쁜데, 다른 사람 눈에는 오죽할까.
지은 죄가 있으니, 지을 죄가 있으니 양 끝단에서 끌고 온 죄의식이었다.
어떻게 하면 백호연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하는 모든 것을 통째로 잃은 자의 처절함이었다.
가진 직후부터 잃을 게 무서웠다.
내가 가진 건 모두 내 손을 떠나고 마니까. 손이 멀쩡했던 그때도 지키지 못했는데, 이제는 손도 멀쩡하지 않아서 쥐는 것마다 다 흘러내릴 테니까…….
그렇게 소희가, 소라가, 피아노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쾅, 피아노를 내리치듯 호연의 깊은 쪽을 불시에 콱, 들이받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