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돌연한 죽음이 억울해 이승을 떠돈다는 소라의 영혼을 달래는 씻김굿을 한다고 했다.
호연은 한규의 머리 위 십자고상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둘러봐도 교인의 집인데, 그에 비해 신앙심이 얄팍했다.
명균까지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으나 한규부터는 흐릿해지고, 제게 이르러서는 무종교라던 세정의 말만 들어도 그랬다.
하긴, 남자가 본인 외에 다른 무엇을 믿는다는 게 잘 어울리지 않았다. 또 그러니까 굿도 할 수 있는 거겠지.
호연은 세정의 곁에 최대한 붙어서며 낯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규는 어울리지 않게 긴장으로 뒤범벅된 불안한 눈을 하고서 땀이 배어난 두 손을 연신 맞비볐다.
“소라가 좋아했던 건 이쪽에.”
“네.”
“이쪽, 이쪽.”
상을 차리는 사용인들을 붙잡고 몇 번이고 귀찮게 하는 등 어수선한 행동들도 이어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윤진이 세정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귀신 씐 거 아니니?”
가만가만 나지막하게 물었다.
“씌었나 보죠.”
무성의하게 대거리하며 세정은 고개를 돌렸다.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굿판에는 원래 사람을 많이 불러 모으는 거라고.
원래가 어딨고, 그걸 언제부터 알았는데.
한규는 이 말도 안 되는 굿에 북두 일가를 죄 불러 놨다. 할 짓도 없는 양반들 참 많이도 왔고.
수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은 소라의 죽음과 연관 없고 결백하다는 걸 증명하려는 연극인가.
매일같이 꿈에 나와 잠을 설치게 한다는 소라가 제게 해코지하는 거라는 생각은 없는 건가.
못 견뎌 굿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소라의 명복을 비나.
세정의 생각으로는 한규가 밤마다 제게 해코지하는 소라를 못 견뎌 굿을 하는 거였다.
이미 한규가 사건 은폐범이라는 쪽으로 판단이 기운 상태니까.
그런데도 얼마간 고민하게 되는 까닭은,
“아니, 그건…… 이쪽이지.”
사용인이 든 제기를 손수 집고 배치하는 한규의 분주함이 퍽 생경하기 때문이었다.
혹 요절한 딸이 굶고 갈까,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좋은 걸 먹이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보여서.
이딴 걸 믿나.
“질부.”
“…….”
“질부!”
어깨로 닿아오는 손길에 호연이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던 순간이었다. 작은 동작을 느낀 세정이 호연의 허리를 감싸 제 등 뒤로 감추었다.
호연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허리를 틀어쥔 손은 힘이 실려 있는데, 세정의 옆얼굴은 태연했다.
호연에게는 일상적인 얼굴이었다. 그런데 한규의 형인 한석의 아내, 지안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이……. 며느리들끼리 같이 있는데 질부도 오면 좋을 것 같아서.”
지안이 힐끗, 돌아보는 뒤편으로 정말 여자들이 모여 있었다. 얼굴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직계와 방계를 망라한 며느리들인 것 같았다.
가야 하나.
호연이 동공을 도르륵, 굴리다 세정의 등 뒤에서 빠져나갈 때였다.
“떨어지면 불안해서.”
손이 붙잡혔다.
“제 아내는 열외.”
허리를 놓은 손이 호연의 팔뚝을 쓸어내렸다. 이내 호연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세정의 손가락이 들어찼다. 깍지가 된 손이 가볍게 당겨졌다.
호연이 다시 세정의 등 뒤로 숨게 되었다.
“……아직도 신혼이야?”
“여전히 신혼인 거죠.”
세정은 관성처럼 대꾸했다.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이런 식으로 호연의 면을 세워주곤 했던 남자였다.
감히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하도록.
다만, 제게만 그런 게 아니라 전처들에게도 다 그랬겠지.
제가 없던 시간 속 세정의 자취를 더듬어 본 호연은 입안이 썼다.
“그래도. 두 사람 결혼한 지 2년이나 됐는데 질부가 우리 얼굴도 잘 몰라. 우리가 뭐 잡아먹어?”
과보호라면 과보호였다지만.
세정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지안을 보았다. 지안은 홉떴던 눈을 내리깔았다.
딱히 좋은 말들을 나누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러나 물러설 수가 없다는 태도다. 묘한 대치가 이어졌다. 이미 기가 다 꺾이고도 오기로 자리를 지키는 지안의 안색이 파리하게 보였을 때였다.
“제가 갈게요, 시숙모님.”
세정이 붙잡은 손을 비틀어 풀어낸 호연이 연하게 웃었다.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세정을 윤진이 만류했다.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긴.
세정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손을 뻗었다. 그를 피하는 호연의 움직임이 느리게 눈에 박혔다.
“괜찮아요.”
피하는 것처럼 보이면 착각인가.
지안을 따라가는 호연을 기다렸다는 듯 환대하는 이들의 표정이 밝았다.
“세정이 와 봐라.”
그 웃음 뒤에 숨은 음지를 안다. 소희와 소라의 이야기를 한가롭게 떠들던 얼굴의 이면이다.
“기세정?”
한규의 부름을 무시하고 세정은 빠져나간 만큼 공허해진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박살이 난 손을 다시 쥐어보고 싶었다.
* * *
“저분은 누구세요?”
정확히는 한규의 진갑잔치에서 봤던 얼굴이 한규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고 있었다.
“아……? 누구, 아, 지청재 씨? 모르는구나?”
이름을 듣고 확신했다.
소예의 남자 친구였다.
호연은 티 나지 않게 청재를 가리켰던 손을 내렸다.
“북두 리테일 재무팀 차장인데…….”
직급이 차장인데, 진갑잔치에서 한규와 가깝게 서 있었다고?
지안이 말끝을 흐리며 아랫입술을 혀로 쓸었다. 그러곤 입술을 여러 번 달싹이다, 못 참겠다는 듯 입을 가렸다. 호연의 귓가로 속닥였다.
“소라 약혼자.”
죽은 기소라의 약혼자라고.
호연은 눈썹을 모으며 갸우뚱했다.
“……그러면 남 아니에요?”
“남이지, 그럼. 근데 소라 죽고…… 소라가 살아 있었다는 증표 같은 거야.”
그게 기이했다.
죽은 사람의 생을 증명하기 위해 산 사람을 증표로 삼다니.
“어머, 쟤도 왔네.”
한규에게로 꽂히던 지안의 안타까운 눈빛이 일변했다. 나긋나긋이 속삭이던 어투의 음이 뚝, 떨어졌다.
무심코 ‘쟤’를 향했던 호연의 몸이 굳었다.
기휘영이었다.
호연은 맞잡은 손끝이 아프도록 주먹을 쥐었다.
“안녕하세요.”
“응.”
여상한 인사에 쌀쌀맞게 대꾸한 지안이 못 본 척 쓱,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휘영은 그딴 건 상관없다는 듯 호연에게 긴 시선을 보내왔다. 호연은 애써 먼 곳을 바라보았다.
“……?”
순간, 2층과 연결된 계단 위로 빠르게 사라지는 게 있었다.
사람 같았는데…….
“귀신인가 보지.”
“귀신이 어디 있어요.”
“있는데. 이 집안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좀 많을까.”
오래된 대화가 귓가로 넘어왔다.
불쾌한 휘영의 시선은 찰나에 잊히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회장님, 길음 도사님 오셨습니다.”
“어, 어. 열어드려요.”
그리고 씻김굿이 시작되었다.
* * *
굿이 시작됨과 동시에 시작된 북소리는 저택을 채우고 귀를 흔들고 이내는 머리까지 어지럽게 만들었다.
얼마쯤 버텼을까. 호연은 끊어질 듯 가느다란 악기 소리에 두통이 일었다. 상의 지척에서 한두 걸음씩 물러나던 호연이 송 여사라고 불리는 사용인을 붙잡고 약을 요청했다. 그런 호연의 얼굴이 심상찮아, 송 여사는 2층으로 안내를 도와주었다.
“두통약이면 되죠?”
송 여사는 구급상자 안에서 두통약을 꺼내주었다.
“네, 감사합니다.”
“앉아서 조금 쉬세요.”
“그럴게요.”
호연이 물과 함께 두통약을 삼키고 소파에 앉았다. 송 여사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다가 희미한 북소리에 묻혔다.
찬물을 마셔 좀 살 것 같은데 머리가 아픈 건 여전했다. 호연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힘없이 떴다.
2층은 아무도 쓰지 않는 공간이라고 했다.
소희가 생전 썼던 화실이 있는 곳이랬고, 소라가 생전 머물렀던 방이 있는 곳이랬다. 이후로는 아무도 쓰지 않는다고.
마음 놓고 쉬라는 뜻에서 했을 말이 분명할진대, 호연은 어쩐지 잊었던 스산한 기운이 다시 닥치는 듯했다.
괜히 고개를 빼고 주변을 살폈다.
벽마다 걸린 음산한 그림들도 이상하게 눈길을 잡아채는 면이 있었다.
“모작이라 그런가…….”
호연은 중얼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우선 본관 1층 벽에 걸린 작품들은 죄 모작이었다.
북두 그룹이 모작을 연구하나, 싶을 정도로 그 기법이 꽤 정교했다.
어떤 날, 세정이 제 모친이 모작을 그렸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더라면 바보처럼 감탄했을지도.
호연은 보통 사람들의 시야보다 더 위쪽에 걸린 작품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프랑수아 파스칼, <센 강의 일몰>이었다.
일몰이라기에는 완전히 해가 지고 난 이후의 세상을 훔쳐 캔버스로 옮긴 작품이었다.
“……이것도 모작이네.”
오른쪽 아래를 손톱으로 긁어낸 흔적이 보였다. 부러 훼손한 자국이었다. 본관에 있는 모든 작품에 남아 있는, 어쩌면 이 또한 강박적인 인장이었다.
“제대로 그렸으면 잘 그렸을 것 같은데.”
아무리 모작이라고 하나 한때 평단을 발밑에 두고 호령했던 화가들을 고스란히 따라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붓 칠 한 번에 찰나의 감정을 쏟아붓는 그들과 주파수를 맞추는 게 어려운 것이 가장 큰 이유겠고.
“정말?”
뒤에서 몸을 껴안듯이 호연의 어깨에 팔을 두른 세정은 그녀의 머리 위로 비스듬히 뺨을 대었다.
움칠, 튀어 오르는 호연의 몸을 단단하게 고정한 세정이 느긋한 어투로 다시 물었다.
“우리 엄마 그림 잘 그리는 거 같아요?”
세정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라는 단어는 늘 새삼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대답해 봐. 잘 그려요?”
무게가 실린 남자의 팔뚝에 가슴이 눌렸다. 그만큼 가슴이 답답해졌다. 호연은 가까스로 입술을 열었다.
“……모작 말고도 봐야 알겠는데, 제대로 그렸으면 잘 그리셨을 거예요.”
픽, 세정이 웃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허리를 수그린 만큼 저와 같은 눈높이로 그림을 올려다보고 있을 세정의 눈빛이 궁금했다.
“엄마 들었으면 좋아했겠네.”
“…….”
“평생 칭찬 같은 건 못 들어본 여사님이라.”
“…….”
“우리 엄마는 백호연 씨 좋아했을 거야.”
물론 백호연 씨가 가짜 화가라도 대화해 준다면…….
하는 중얼거림이 있었으나 잘 들리지 않았다.
왜인지 제게는, 엄마를 에둘러 서툴게 제 속을 털어내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멋대로 해석하곤 손끝이 간지러웠다. 마음을 다잡았던 게 무의미하게 말 한마디에 차곡차곡 다 스러지고 있었다.
아, 나는 이미 당신을 너무 많이 좋아하나 봐.
얼마간 쌓은 벽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마음을 감추려고 세웠던 벽인데, 무너지면서 여기저기 흩어졌던 자잘한 먼지 같은 사랑을 날려 보낸다.
기침이 나올 것 같았다. 기침처럼 참을 수 없는 고백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미친 듯이 고백하고 싶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고.
그러나 하고 싶지 않았다.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흔들고 싶지도 않았다. 앞으로 살아야 할 긴 세월을 잘 살고 싶었다. 한날의 감정으로 훗날의 죄악감을 희석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나쁜 사람으로 남아요.
양립하는 마음 중 하나를 편들었다.
호연은 세정의 팔뚝을 쥐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비스듬히 고개를 내려 바라보는 세정의 얼굴이 몹시 가까웠다.
그 뺨으로 입술을 눌렀다.
세정은 잠시간 넋이 나간 얼굴이 됐다. 그러나 그런 약해 빠진 얼굴을 오래 보여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웬일일까, 백호연 씨가 먼저 입을 다 맞추고.”
세정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허리를 더 숙였다. 완전히 눈을 맞추고 샐샐거렸다. 그러곤 예의 여유로운 표정으로 호연의 입술을 가볍게 머금었다가 놔주었다.
호연이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겨우 뺨에나 입술을 눌렀던 것도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