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아, 아아…….”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순간 초점이 나가, 순식간에 시력을 잃는 것 같았다.
“바닥에 엄청 흘렸는데.”
안 들린다고.
고양감이 남은 아래를 참을 수가 없었다. 호연은 수치도 모르고 세정의 발등 위에서 까치발을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그럴 때마다 자궁을 두드리는 뭉툭한 성기에 몸이 반으로 쪼개어지는 것 같았다.
저를 딜도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고서야.
몽롱한 호연의 두 눈이 세정을 채 담지 못하고 자꾸 천장으로 미끄러져 올라갔다. 찐득하게 닿은 몸이 맞붙을 때마다 호연이 사정없이 흐느낄 때마다…….
세정은 그게 배알이 꼴렸다.
“하, 읏……!”
순식간에 허공에 들린 호연이 세정의 목뒤로 팔을 감았다.
호연의 허벅지를 들어 올린 세정은 그녀의 무게를 죄다 받으며 툭툭, 허리를 쳐올렸다.
“깊어, 요……. 히이……. 아! 응, 아……. 너어, 무……. 깊, 힉, 으! 아! 다고…….”
너무 깊었다. 잔물결로 꿈틀거리던 내벽이 성기의 침입을 막았다. 그러나 단숨에 꿰뚫렸다. 무의미한 저항 아래 끄윽, 끄윽, 호연의 숨이 넘어갔다.
“내려, 줘요……!”
발아래로 세정의 발등이 느껴지면서 하복부가 꿰뚫리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던 것과는 선명하게 다른 공포였다.
발아래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벽이라도 닿아 있던 등줄기에는 이제 아무리 몸을 둥글게 말아도 싸한 기운만 퍼졌다.
그래서 남자에게 더 매달리게 됐다.
“내려, 하아, 하……. 내려……!”
탁탁,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공포로 물드는 생각을 짧게 잘랐다.
동시에 열에 물든 음성이 귓가로 물씬 번졌다.
“싫은데.”
어디서 심사가 뒤틀렸는지 모를 삐딱한 어투였다.
“하…….”
호연은 그쯤에서 저항을 포기했다. 감싸 안은 세정의 어깨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흐으, 아, 아, 응…….”
남자가 아무리 얕게 허리를 쳐올려도, 수축한 아래가 찢어지듯 갈라지는 터라 살이 베이는 것 같은 쾌감이 안겨들었다.
몸이 델 듯이 뜨거워졌다. 남자의 성기에 자비 없이 푹푹, 찔릴 때마다 하복부가 미묘하게 튀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분명 남자와 틈 없이 몸이 맞붙었는데 두툼한 성기가 그만큼의 공간을 벌리는 느낌이었다. 그 정도로 정신을 압도하는 크기였다.
그런 징그러운 게 아래를 들락거리고 있다는 야한 상상에 호연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위로 크게 들렸다가 찧어지는 행위에 눈앞이 교묘하게 일그러졌다.
어지러웠다. 눈꼬리에 맺혀 있던 눈물이 남자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엉덩이를 쥔 남자의 손이 이리저리 살을 뭉갰다.
남자도 딱 못 견뎌 죽겠다는 눈빛으로 허리를 질컥거렸다. 호연을 끌어안은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나……. 이제 그만……. 흐……. 앙, 아읏…….”
결국 끝까지 빈틈없이 맞닿은 아래로 쾌감이 모여들었다. 호연이 크게 헐떡이며 세정의 귓불을 찾아 물었다.
“하…….”
세정에게서 탄식에 가까운 신음이 터졌다. 호연은 세정의 귓불을 혀로 굴리며 납작한 숨을 귓가로 몰아넣었다.
“미, 쳤 흐윽……! 아, 아!”
미쳤다. 정말 이런 쾌감은 미친 게 아니고서야 가능할 리 없다.
극도로 달아오른 피부며, 그 안쪽이며 모든 감각이 예민했다. 흐르는 눈물이 모두 말라 사라질 것처럼 눈이 뜨끈했다.
세정은 할 수 있는 한 가장 깊이 성기를 밀어 넣었다. 그럴 때마다 호연은 참을 수 없는 요의에 몸부림쳤다.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버둥거렸다.
“나, 나, 정말, 안 돼, 나 안 돼요. 안 돼. 제발……! 나, 흑, 아!”
불현듯, 맞닿은 성기 사이가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무언가 흠뻑 젖어가는 불쾌한 감각과 후련한 쾌감이 불시에 온몸을 쥐어짰다.
“아…….”
몸이 조각조각 흩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갖고 있던 완성본을 잃은 느낌이었다.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갈 수 없어. 변곡점에 닿은 쾌감으로 한 번 더 허리를 틀었다.
“비가, 또, 와, 여긴.”
뇌까리는 음성에 내려다보지 않아도 소리로 알았다. 자각 후에는 수치심이 들었다. 그런데도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윽고 호연의 엉덩이 아래로 선반의 서늘함이 끼쳤다. 무너질까, 아슬아슬하고 두려웠다. 호연의 다리를 어깨 위로 올린 세정은 경련하는 몸 위로 상체를 내렸다.
호연은 세정의 목을 무릎으로 조였다가 다시 활짝 펼쳤다. 미친 열망이 느껴졌다. 척척, 내달리는 허리 짓에 온몸을 뒤틀며 신음했다. 전신의 신경 조직을 찢어다가 아래에 갖다 붙인 것 같았다.
타다다닥, 몸 위로 불꽃을 피운 것처럼 열기가 고인 자리들이 있었다. 끌로 긁어내는 것 같은 날카로움이 뒤따랐다. 뜨겁고 따끔했다.
세정은 호연의 음핵을 꼬집듯 쥐었다. 허억, 얼얼함에 놀라 허리를 세운 호연의 귓가로 조금도 흩어지지 않게 말을 흘려 넣었다.
“갖고도…….”
“…….”
“이렇, 게 갖고도…….”
눈 끝으로 시뻘게진 세정의 캄캄한 동공을 마주한 호연은 고개를 돌렸다. 뺨으로 퍼부어지는 입맞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명료한 소유욕이었다.
“더 갖고 싶어.”
서늘한 고백이었다. 호연은 온몸을 늘어트렸다. 힘을 잃어 조금의 저항도 없는 내벽이 마음대로 쑤셔졌다. 서서히 감도가 높아졌다.
깊이, 더 깊이. 세정의 허리 짓이 어느 순간, 서툴러졌다. 마르지 않은 아래를 치대는 소리가 이상하게 일정한 간격을 잃었다.
무게를 실은 묵직한 허리 짓이 몸을 갈라놓을 듯 섬뜩하게 반복되었다. 젖은 소리마저도 적나라했다. 땀에 젖은 몸이 겹친 채로 하나의 모양을 만들었다.
호연은 남자의 어깨 위에서 하늘거리는 발끝을 마지막 잎새처럼 바라보았다.
“아! 아, 아……. 응…….”
난폭한 허리 짓이 몇 번이나 더 반복되었을까.
한순간, 어깨에 걸쳐진 두 다리가 떨어졌다.
“아.”
낮은 탄식과 함께 남자가 몸을 구겼다. 호연은 허우적거리며 환희에 흐트러졌다. 아래로 무언가 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공기가 모자랄 정도로 크게 숨을 들이쉬는 세정의 목에 핏대가 곤두섰다. 그만큼 움찔거리는 세정의 성기에 호연은 뜨거운 몸을 떨었다.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일시에 후드득, 떨어졌다. 순간 두 눈이 멀었다.
호연은 눈을 뜨고 있어도 보이는 게 없었다.
그래서 세정이 발찌가 걸린 발목에 입을 맞추는 것도 보지 못했다.
쫙, 벌어진 손가락 사이사이로 침범한 손이 얽히는 것도 보지 못했다.
감히 짐작하고 홀로 절망할 뿐.
* * *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이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호연은 귓가에서 핸드폰을 떼어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현소예]
세 글자가 사라진 화면에는 일방적인 메시지만이 남아 있었다.
[소예야, 나 퇴원했어. 뭐 해? 맛있는 거 사줄게.]
[소예야, 나 곧 전시회 하는데.]
[소예야, 전시회 내일이야. 안 올 거야?]
[소예야, 이제 슬슬 걱정되려고 해.]
호연은 키패드 위로 손을 올렸다가 몇 번 주저했다.
소예는 전시회에 오지 않을 친구가 아니었다. 꽃다발을 한 아름 안아 들고 해맑게 웃으며 질투 같지도 않은 질투로 주변 사람을 덩달아 웃게 할 애였다.
[내가 뭐 잘못했어?]
거기까지 입력하고 지나간 시간을 되짚었다.
마지막 통화는 퇴원 전날, 새벽이었다. 술에 취한 듯 풀어지던 말끝과 말 되풀이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횡설수설하던 혼란한 문장들.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냐고. 일찍 자라고 잔소리를 했던 게 끝이었다.
제가 무언가를 잘못했대도 이렇게 단번에 관계를 끊어낼 애는 아닌데.
답장이 오지 않은 다음 날은 그럴 수도 있지 생각했고, 이틀이 되었을 때는 조금씩 초조해졌다.
사흘이 지나 같은 강의에도 나타나지 않은 소예를 생각하면 불안함이 머릿속을 자욱하게 뒤덮었다. 퇴원 후 전시회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틈틈이 걱정했다.
신고해야 하나. 친구가 사라졌다고.
진오가 있었더라면 명쾌한 답을 내주었을 텐데.
“아…….”
아냐. 진오의 동공에 어려 있던 텁텁한 기운이 떠올랐다. 음습했던 손길까지도…….
모든 끝이 쭈뼛 서는 느낌에 호연은 팔뚝을 쓸어내렸다.
고진오는 생각하지 말자.
바쁜 손놀림으로 메시지 함을 빠져나와 112, 세 숫자를 눌렀을 때였다.
시선.
홱, 몸을 젖힌 호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관람객들이 속속 입장하기 시작한 아트센터는 활기를 띠고 있었다. 도슨트가 안내를 준비하고 관람객을 모으는, 지극히 평범한 전시회의 풍경이었다.
그런데 왜 자꾸 꺼림칙한 감상이 들지.
사실 병원에서부터 뒤따르던 감각이었다. 그때부터 내내 카메라의 렌즈 속에 들어 파인더로 감시당하는 것 같은 기분에 시달렸다.
그러나 시선을 느낀 즉시 사위를 살펴보아도 특이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예민해져서 그런가.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나면 오감이 기민해진다는 말을 들어본 바 있었다.
지잉―
갑작스러운 진동음에 호연이 어깨를 들먹였다. 급히 눈을 내려 핸드폰의 알림을 확인했다.
[무슨 메시지를 이렇게 많이 보냈어. 나 괜찮아! 아, 근데 네 전시회를 못 가서 어쩌지. 나 지금 본가야. 엄마가 아파서…….]
소예였다.
“아……. 다행이다.”
아주머니가 아픈 건 다행인 일이 아니지만, 소예가 무사한 것만큼은 다행이다.
[내가 뭐 잘못했어?]
호연은 글자를 하나씩 지웠다. 그러다가 문득, 콧잔등을 찡긋했다.
어디선가 세정의 독특한 향수 내음이 났다. 습관적으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잠깐 정신이 팔려 있는데 팔꿈치를 잡아끄는 손길이 있었다. 이에 호연은 어깨를 좁히며, 핸드폰을 놓쳤다.
“어머.”
당황한 인영이 호연의 팔꿈치를 강하게 움켜쥐는 새 핸드폰이 바닥을 뒹굴었다. 강한 파열음에 관람객 대부분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호연이 급히 허리를 숙여 짤막한 사과를 건넸다. 붙잡히지 않은 손을 바닥으로 뻗었다.
“이 친구가 저랑 같이 전시 준비한 친구예요.”
이내 다시 뒤로 당겨지는 악력이 있고, 핸드폰을 향한 손과 손이 닿을 뻔한 찰나가 있다.
“이름은 백, 호, 연. 이라고 해요. 제가 정말 아끼는 친구인데…….”
시야 끝으로 잘 관리된 스트레이트 팁 구두가 보였다. 다음으로는 핸드폰을 쥐는 손가락. 그 익숙한 손가락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침이 고였다. 삼키는 걸 잊었다. 자맥질하는 가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인사드려, 호연아. 북두 리테일 기세정 전무님이셔.”
그 이름 한 번에 무엇도 해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