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그러나 뒤로는 너른 창문, 앞으로는 기세정이 커다란 몸을 드리우고 있다. 아무리 사이렌을 울려도 도망갈 곳이 없다.
호연은 담담히 체념했다. 잔열에 문장을 부서뜨리며 내뱉었다.
“더럽, 잖, 아요…….”
정신이 몇 번쯤 어렴풋해졌어도 남자가 제 아래 고개를 처박았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애액을 삼키느라 오르내렸을 남자의 목울대 사정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눈앞에서 입술에 묻은 애액을 핥아먹는 저 난잡스러운 행위가…… 눈 풀린 묘한 순간들이……. 보는 순간마다 우아하고 고고했던 남자가 맞나. 길거리의 천박한 깡패인가. 이질감이 들었다.
“더러워요?”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던 남자가 씩, 웃었다. 고개를 기울여 눈을 맞췄다. 그러곤 또 대답할 틈도 없이 대뜸 입술을 맞추고 빨았다.
“달죠.”
뭐가 달아…….
진득한 알코올 냄새만 가득했다.
그러나 호연은 척추뼈를 쓸어오는 손길에 탁한 신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탁탁, 고압의 전류가 터지듯 뼈마디마다 틀어지는 감각이 있었다.
세정은 잘게 입술을 맞추면서 호연의 팔꿈치 관절을 가볍게 눌렀다. 동시에 허물어지는 여체를 타고 올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오직 명도만을 가진 하얀색 캔버스 위로 각기 다른 명도와 채도를 가진 붉음이 소란스러웠다. 어느 곳을 신경 써 빨고 핥았는지,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세정은 호연의 몸을 조금은 멍하니, 또 조금은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에 호연이 젖어 반짝이는 가슴과 아래를 손을 뻗어 가렸다.
“손이 문제네.”
쯧, 가볍게 혀를 찬 세정이 넥타이를 끌렀다. 이어질 행위를 감히 짐작도 못 한 호연의 눈이 불안함으로 깜빡였다.
넥타이를 풀었을 뿐인데, 남자의 모습은 순식간에 불량해졌다. 흐트러진 머리칼과 드러난 눈썹이 짜증을 담았다.
세정의 찰나를 오래 살피는 호연은 제 손목이 잡혀 넥타이에 묶이는 순간을 늦게 자각했다.
“아.”
“아파요?”
“아, 아니……. 괜찮아요.”
제가 지금 뭐가 괜찮다고 그랬는지 알까.
세정은 호연의 손목을 들어 올려 그녀의 머리 위로 고정했다. 그제야 호연이 입을 크게 뜨고 경악했다.
“풀어요!”
“늦었지, 그건.”
다리를 바둥거리려 해도 이미 세정이 자리를 잡은 통에 쉽지 않았다. 호연은 갈비뼈 옆으로 전해지는 입술의 감촉에 어, 어, 숨을 삼켰다.
고작 손목이 묶였을 뿐인데. 남자에게 손목을 붙잡히는 순간은 숱했는데, 넥타이는…… 수갑 같았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억센 천이 답답했다.
“불편, 해요…….”
흐느끼듯 신음하며 발끝에 힘을 주었다.
“불편하라고 한 거예요.”
무력했지만.
점점이 물감처럼 퍼지는 쾌감 아래 호연은 몸에 힘을 주었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두 손을 맞잡고 울먹거렸다.
세정은 호연의 뼈 사이를 짓씹었다. 만족스러울 정도로 바르르, 떠는 발작적인 여체의 아래로 손을 내렸다.
“흐읍…….”
마침 울컥거리며 흐른 애액을 문질렀다. 아래에서 위로, 돋아난 살점을 톡, 튕겼다. 호연의 아랫배가 조여드는 게 선연하게 느껴졌다.
세정은 몸을 감싼 옷가지를 벗어 내렸다. 강렬한 정사의 예감이 들었다.
호연은 남자의 잘 짜인 흉곽을 눈으로 더듬다가 흉흉하게 선 선단을 보았다. 제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젖어 있었다.
“……만져봐도 돼요?”
부정이 없으니 긍정이다.
호연은 어렵게, 아주 어렵게 몸을 일으켜 두 손으로 세정의 성기를 쥐었다. 벌어진 손목에 강한 압박감이 들었다. 세정의 성기 위쪽으로 조각된 근육이 일시에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세정은 호연이 하는 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늘게 뻗은 손끝으로 성기를 잡았지만, 어찌할 줄 모르고 멈춘 모습이 어색했다.
“위아래로.”
가벼이 강제했다.
아주 가깝게 맞붙은 몸의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 움찔 떨렸던 호연의 어깨로 힘이 들어갔다.
이내,
“빨면…….”
안 되나요.
하는 눈길로 올려다보았다.
세정은 톡, 호연의 뺨을 건드렸다.
“입 찢어져.”
아……. 호연이 다시 한번 길게 동의하며 고개를 내렸다.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남자의 성기는 생각보다 무지막지하게 커다래서 선단이나 겨우 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를 자각한 몸이 삽시간에 뜨거워졌다. 부끄럽고……. 경악스러웠다. 이런 걸 제 안에 넣었다고. 입으로 빨겠다고.
아연한 호연이 손을 멈춘 채로 가만히 있자, 세정은 그 위로 제 손을 겹쳤다. 이내 위아래로 흔들리는 손에 정신을 차린 호연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신기하고 이상했다. 더 부푸는 것 같은 성기가 무서웠다. 이대로 터지는 건 아닐까. 더 길어지고 커질 수가 있는 건가.
“아.”
남자에게서 흐린 신음이 터져 나와 호연은 슬쩍, 눈을 들었다.
콧잔등에 희미한 주름이 잡혀 있었다. 호연은 성기를 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그쯤 세정이 손을 놓았다. 호연은 제힘으로 높게 솟은 성기를 거칠게 쓸어내렸다.
씩, 눈을 마주친 남자가 한쪽 눈을 윙크하듯 내리며 웃었다.
세정은 다시금 호연의 손목을 쥐어 귀두에 넘쳐흐른 윤활액을 그녀의 손에 펴 발랐다. 미끈거렸다.
야한 냄새가 남자와 저 사이에 요동쳤다.
호연은 상식의 선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다시 해봐요.”
호연은 홀린 듯이 세정의 성기를 흔들었다. 세정은 목을 뒤로 꺾으며 두둑두둑, 뼈마디가 틀어지는 소리를 냈다.
세정을 사정하게 만들고 싶었다. 호연은 세정의 복부에 입을 맞췄다. 붙잡은 성기의 핏줄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남자가 제게 하는 것처럼 저도 그의 살결에 잇자국을 남기고 싶었다고.
약한 소유욕을 드러낸 호연이 세정의 복부에 옅은 울혈을 남겼다.
그러곤 다시 세정의 성기를 요령 없이 흔들었다.
세정에게는 그 서툰 움직임이 더 자극이었다.
세정은 행위에 열중한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발긋한 뺨이 실룩거렸다. 저린 고통에 아랫입술을 감쳐물면서도 열심이었다. 무언가 결심은 했는데,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자극적이긴 해도, 이런 어설픈 짓에 쌀 것 같진 않은데.
세정은 제법 곤란했다. 용을 쓰는 여자의 꼴이 꽤 귀엽기도 했다.
그래서 호연의 어깨를 툭, 밀었다. 간단히 밀려난 호연이 침대에 등을 붙인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일어나려고 버둥거렸다. 세정은 그 몸을 쉽게 타고 올랐다.
가슴 위에 고정된 손목 아래로 성기를 끼워 넣었다. 새하얀 가슴이 성기에 눌리고 손목이 성기를 눌렀다. 거기서 세정이 허리 짓을 시작했다.
“허…….”
호연은 제 입 바로 아래까지 미치는 귀두에 눈조차 깜빡이지 못했다. 갈비뼈를 누르는 무지근한 무게가 호흡을 버겁게 만들었다. 숨조차 통제된 기분. 언제라도 세정이 목구멍에 성기를 처박을 수 있다는 두려움.
내려다보는 남자는 자비가 없는 신 같았다.
호연은 입술을 짓뭉개는 귀두를 느꼈다. 입술이 몇 번 열렸다.
매끈한 곡선이 호연의 뜨거운 입술을 열 때마다, 눌릴 때마다 세정의 이마 위로 푸른 핏줄이 섰다.
제게는 아무런 자극이 없는 행위인데도, 호연은 이상하게 허벅지 깊은 곳이 찌릿했다. 다리를 벌리고 다시 좁혔다.
“조여봐요.”
힘이 빠져 자꾸 들리는 손목을 다시 누른 세정이 척척, 허리를 처박았다. 미약한 사정감이 몰렸다. 역시 아래에 처박는 것만 못한데……. 불만족스러운 쾌감이 하복부에 고이는데,
“네.”
착실한 대답 끝으로 무너지는 호연의 표정이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구겨진 가슴을 지나 기도하듯 꽉 쥔 손을 볼 때면…….
세정의 눈이 가느스름하게 접혔다. 하복부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성기가 입술을 파고들 때마다 심장이 눌린 호연은 헐떡이는 숨을 내뱉었다.
세정은 호연에게 성기를 물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호연의 좁은 구멍들은 제 성기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걸 알았다.
그런데 처박고 싶은 걸 어떡해.
세정은 상체를 세우며 허리를 잘게 털었다. 이미 초점을 잃은 호연의 시선이 이리저리로 튀었다. 그게 세정의 눈매로, 가슴팍으로, 하복부로, 이내는 다시 성기로 닿을 때쯤에 세정은 허리를 쑥, 빼내었다.
그러곤 하얀 침대 위로 정액을 토했다. 쓸어 올린 머리칼이 아래로 스르륵, 흘러내렸다. 뇌를 주무르는 듯한 희열이 몰아쳤다.
호연은 남자가 홀로 사정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늘 제가 먼저 절정에 올라, 보지 못했던 남자의 절정은 저런 모습이었다.
지나치게 야했다.
오르내리는 어깨 근육 따위가, 꾹꾹 눌러 거침없이 쥐어 짜내는 손길 따위가, 뼈대가 도드라진 턱 따위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들어 올리는 순간까지.
호연은 외국 예술 영화의 정사 장면이라도 훔쳐본 듯 망연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의 출처를 찾고 있을 때였다.
세정은 다시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 장면이 아주 느리게 각인되었다.
창을 꿰뚫고 들어온 어둠이 남자의 동공에 문질러졌다. 더 어둡고, 더 깊은 심연 속에 푹, 담가졌다.
호연의 아래가 치밀하게 젖어나갔다. 혀로 볼을 밀어가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세정이 호연의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넣어 일으켜 제 허벅지 위로 돌려 앉혔다. 각자의 성기가 상대방의 살결에 문질러졌다.
“아읏…….”
단단한 허벅지 근육에 짓눌린 음핵이 극명한 쾌감을 몰고 왔다. 세정은 호연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살짝 웃었다. 진동하는 살결에 호연의 심장이 울렁거렸다. 등 뒤로 닿는 세정의 몸이 델 듯이 뜨거웠다.
세정은 호연을 안은 그대로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창밖으로 병원 뒷길이 훤히 보였다. 거리마다 맺힌 가로등의 불빛이 너무나도 선명해 터질 것처럼 뛰는 심장의 모양도 들킬 것 같았다.
“발목 안 아프죠.”
“네? ……네.”
세정은 호연의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렸다. 호연은 제 습한 아래로 닿는 질척한 선단에 급히 고개를 내렸다.
살을 가르며 들어오는 두꺼운 성기가 보였다. 세정에게 붙잡힌 엉덩이와 골반이 뻐근해졌다.
매번 받아들일 때마다 낯설게 뜨겁고 생경했다. 정말 그런 것도 아닌데, 성기가 장기를 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에 폐가 쪼그라든 것처럼 숨이 몰아쳤다. 호연은 짧게 숨을 터트렸다.
호연은 손을 내려 꿰뚫려 가는 아래를 더듬었다. 깊숙이 들어올 수 없도록 세정의 성기 밑 부분을 두 손으로 그러쥐었다. 허망한 한숨이 터졌다.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여느 때보다 더 깊게 느껴져 도리질 쳤다.
“이만큼만……. 이만큼만요…….”
사정하는 음성이 애처로워 세정은 창에 비친 호연과 눈을 맞췄다.
언젠가 다 삼키기도 했던 몸이다. 이 정도로는 만족이 안 되는데,
호연은 입꼬리가 제어되지 않아 파르르, 떨었다. 버겁게 받아들인 아래가 움찔움찔, 성기를 문 채로 놓질 않았다. 조금씩 진입할 때마다 벌어진 틈으로 막혀 있던 애액이 흘러내렸다.
그러자 성기를 붙잡은 호연의 묶인 손이 미끄러졌다. 반듯하게 앉아 보려던 자세가 연신 무너졌다.
이대로 쳐올리면 울겠지.
“더 안 넣을게.”
호연이 급히 고개를 돌려 세정을 바라보았다.
“움직여 봐요.”
금세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