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화
“……아으응.”
나올 적부터 찌그러진 음성이 끝도 없이 뭉개진다. 희롱하듯 가슴을 뿌듯하게 쥔 손에는 누군가를 위한 배려도, 깊은 고뇌도 없었다. 그저 손길이 가는 대로, 가득 쥐고 싶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순간 브래지어가 홱, 들렸다. 몸을 꽉 죄고 있던 게 사라지자 숨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마찬가지로 세정도 눈이 뜨이는 느낌이었다.
손에 딱 감기게 큰 가슴 위로 동그란 유륜. 세정은 고개를 숙여 가슴의 우듬지를 혀로 저었다. 근육 없는 호연의 배에 이리저리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도 발가락이 곱아드는 간지러움을 참지 못해 턱을 당겨 넣었다.
늘 제 앞에서 오만하게 굴던 남자가 정신없이 가슴을 빠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가장 흥분이 고이는 지점이었다.
호연은 손을 들어 남자의 어깨를 쥐었다. 탄탄한 근육이 손으로 감겼다. 금세 자국이 남고 쉽게 없어지지 않는 제 살성과 정반대였다.
금세 회복되는 피부와 성난 듯 꿈틀거리는 어깨 근육. 남자는 솟은 날개뼈마저 곧다.
모든 것이 모순 같다.
셔츠 하나 벗지 않은 남자는 당장 몸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섹스의 기류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은 양말 하나 겨우 걸쳤는데.
호연에게서 흐린 웃음이 샜다. 그를 괘씸하게 여기기라도 하듯 세정의 혀가 둥글게 가슴을 휘어 감았다. 호연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깊게 숨을 뱉었다.
“아! 아…….”
높고 낮은 신음의 반복.
깨물린 유두가 욱신거린다. 호연은 이미 다 헐어 그대로 껍질이 벗겨지는 볼 안쪽 여린 살을 몇 번이고 고쳐 씹었다.
“하……. 으…….”
폭발적인 희열과 뜨문뜨문한 고통 속에 또 한 번 어느 순간이 토막 났다.
다시 정신을 차리자, 제 손에 남자의 성기가 쥐어져 있었다.
이렇게 생겼던가. 이리 흉포하고, 어쩌면 징그럽게.
남자의 성기를 쥐어본 것도 처음, 이리 눈앞 가까이서 본 일도 처음이었다.
세정은 호연의 손이 적당한 악력으로 제 성기를 쥘 수 있도록 손등을 감쌌다. 그러곤 한 번, 앞뒤로 움직였다.
“아…….”
호연이 겨우 검은자위를 올려 세정을 눈에 담았다.
세정의 매끈한 이마 위로 푸른 핏줄이 돋아났다. 구겨지는 눈매를 살폈다.
참는 걸까.
손으로 성기의 굴곡이 모두 닿았다. 남자의 손가락이 제 내벽을 모조리 긁어내렸던 것처럼 호연은 손으로 남자의 성기를 크게 훑어 내렸다.
세정은 입술을 말아 물며 호연이 하는 꼴을 가만 보았다. 호연은 드문드문 세정을 올려다보았다.
제가 싫으면 바로 표현했을 남자였다. 가만히 있는 게 싫은 것 같지는 않았다.
호연은 다시 한번 남자의 성기를 부드러이 밀어 올렸다. 남자가 이를 악무는 것이 보였다. 떨어지는 남자의 손을 느낌과 동시에, 호연은 귀두를 엄지로 문질렀다.
“씹…….”
세정이 고개를 돌렸다. 그마저도 고역이었다. 사방의 거울이 하나의 모습을 비추었다.
좆대가리를 흥미롭게 만지작거리는 호연과 하복부에 핏줄을 곤두세운 채로 근육을 재정립하는 자신.
씨발…….
욕을 참을 수가 없다.
세정은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시선을 내렸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위아래로 흔드는 게 사정감을 불러일으킬 때마다 우스운 사람이 된 기분을 느꼈다.
“장난쳐요?”
이내 울컥, 하얀 쿠퍼액이 흐르는 것에 어쩔 줄 모르겠단 얼굴을 하는 호연에게로 물었다.
“아, 아니…….”
호연은 다소 긴장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닦았다.
그 얼굴이 브래지어를 목까지 올리고 발목에는 속옷을 걸고 있는 모습과는 상반되게 깨끗하고 천연해서 세정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호연은 제 손에서 점점 더 부피를 키우는 남자의 성기를 보았다. 그를 틀어쥐고 있던 손가락의 동그란 모양이 부풀었다. 원래도 완전한 동그라미가 되지 못하던 게, 이제는 동그라미에 가깝지도 않았다.
이런 게…….
호연은 바싹 마르는 숨을 어렵게 삼켰다.
한순간의 흥미가 긴장으로 돌아왔다.
남자의 성기가 허무하게 호연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호연은 아래로 맞붙는 뭉툭한 모양에 저도 몰래 힘을 주었다.
남자의 성기를 만진 직후라 그럴까. 제 아래가 감싸 품는 남자의 모든 굴곡이 어느 부분인지 알 것 같았다.
얇게 펴 발린 쿠퍼액이 윤활제 역할을 대신할 매끈한 귀두.
“아아…….”
아래가 벌어지는 게 느껴졌다. 다소 쉬이 열린 듯하면서도 그 안은 선천적으로 좁아 진입이 쉽지 않았다. 곤두서 있던 성기의 핏줄이 두툼하지만 예민한 살결을 눌렀다. 호연이 아흑, 앓았다.
꾹꾹, 연신 누르고 벌리는 행위가 이어졌다.
숨조차 편히 쉴 수 없는 극한의 상황까지, 정말이지 납작한 배가 부풀 정도로 깊이 들이치고서야 남자가 후, 고개를 젖혔다.
“힘들어요?”
“아…….”
“참아요.”
느리게 허리를 뺐다가 다시 처박는 덜컹거림에 회오리에 휩싸인 듯 저쪽으로 홱, 쓸려가는 찌릿함이 있었다.
“아흑! 으, 아, 앙! 아! 흐으…….”
세정은 여자의 성기와 제 성기가 만들어내는 포말을 보았다. 부딪치고, 부딪치고, 부딪쳐서 만들어지는 뽀얀 기포. 여자의 배가 찢길 것처럼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언젠가부터 살짝살짝 돌아가는 허리나 원하는 부분을 알려주듯 서툴게 움찔거리는 몸을 여자는 알고 있을까.
알면, 씨발……. 뭐, 더 하라고?
세정은 성기를 쥐어짜는 듯한 압박감에 몰리는 사정감을 참았다.
지금도 엉기는 찐득한 내벽을 참지 못하면서, 무슨…….
“아, 응! 읏……. 흐……. 아!”
기립근과 아래로 올려 붙은 근육으로 힘이 들어갔다. 퍽퍽, 치받을 때마다 힘없이 달랑거리는 몸이 깨질 것 같은데, 허리 짓은 이어졌다.
“밖에 들리겠어요.”
“흐으…….”
누구 때문인데.
이내 흐느끼듯 앙앙대던 호연이 두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힘이 들어간 쇄골과 겨드랑이의 가느다란 선이, 흔들리는 가슴의 곡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순간, 세정은 겨우 바로잡은 정신을 끊어내었다.
“아! 아아! 아!”
흘레붙는 허리 짓이 거세지며 살이 부딪치는 점성 있는 소리도 거칠어졌다.
세정이 호연의 갈라진 입술을 물었다. 그를 뗄 때마다 호연에게서 신음이 터졌다. 세정은 그마저도 아깝다는 양 혀를 호연의 목구멍 깊이 박아 넣으며 제한했다.
그는 호연에게 극한의 고감각이 되었다. 목이 조이는 듯한 두려움이었다. 숨이 모자란 머리가 어지러웠다.
“잠, 읏, 잠시, 흐윽, 만! 아! 아!”
“잠시가, 어디 있어.”
머릿속이 하얗게 번져간다.
젖은 소리의 출처가 타액이 고인 입술인지, 애액이 뒤섞인 아래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인가.
호연의 심장이 크게 자맥질했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떨어져 몸 위에서 산산이 깨지는 듯한 간약한 파괴 욕구가 들었다.
“아, 하……. 응, 읏, 으……. 아!”
온몸의 미세한 세포들이 모두 하나의 감각을 터트렸다.
한 계단, 한 계단을 밟아 오르는 삽입이 박자를 잃고 무자비해졌다.
탁, 탁.
어딘가를 기필코 뚫어 내겠다는 듯한 급한 요동이었다.
이미 이성을 잃은 호연이 남자의 날개뼈를 끌어안아 당겼다. 자각하지도, 자각할 수도 없는 골반 아래가 빼곡하게 돌아갔다. 그를 내려다본 세정이 아플 정도로 세게 허리를 쳐올렸다.
블랙홀이 눈앞에 존재한다면 그곳에 빨려가는 듯한 느낌.
“아!”
짧은 호흡이었다.
호연은 몸이 반으로 끊어지는 것 같았다. 모든 근육이 수축했다. 팽배한 감각이 사정없이 몸을 후려쳤다.
또한 세정의 것을 물고 있는 아래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꽉, 쥐어짜지는 감각이 있었다. 동시에 세정이 깊이 허리를 처박은 채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잔 움직임이 남은 성기가 호연의 내벽 안에서 꿈틀거렸다.
이내 세정의 허리가 굽었다.
절정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바르작거리는 호연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세정은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단순한 충동이었다.
* * *
세정의 시선이 호연의 가방으로 머물렀다. 연속된 진동음이 문제였다.
호연은 수저를 내려놓고 가방을 뒤적여 핸드폰을 꺼내었다.
하…….
[왜 답장이 없어요? 이 번호 맞는데? SNS 계정이 나오는데?]
한숨이 나올 뻔한 걸 참으며 호연은 번호를 차단했다.
“누구예요?”
세정은 콧잔등에 잔주름이 잡힌 호연에게서 무심하게 시선을 내리며 물었다.
호연은 무심결에 테이블 위로 핸드폰을 엎어두었다.
의외였다. 묻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니, 제가 아는 남자는 묻지 않아야 맞는데.
남자는 하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이었다.
이에 호연도 뻐근한 등줄기를 꼿꼿하게 세웠다. 과격한 섹스로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휴식이 간절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표정을 꾸미며 대답했다.
“동기예요.”
“대학원?”
호연의 얼굴로 또 한 번 의외로움이 흩어졌다.
“네.”
단조로운 대화가 끝이 났다. 집으로, 호텔로 가는 시간도 참지 못하고 VVIP 룸에서 배를 맞추었던 것과는 상반된 침묵이었다.
“남자?”
“아뇨, 여자인데…….”
거기까지 대답한 호연이 문득 말을 끊었다. 가만, 고개를 끄덕인 세정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수저질.
호연은 왜인지 묘한 감상을 받았다.
사실 거짓말이었다.
얼마 전에 동기들과 밥을 먹을 때 건너편 테이블에서 번호를 물은 일이 있었다.
그때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소예가 부추겨 마지못해 준 번호가 이렇게 귀찮은 일이 될 줄 몰랐다. 번호를 차단하면 될 일인 줄 알았는데, 다른 번호로 계속해 메시지를 보내는 통에 호연은 질려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세정에게까지 할 필요는 없으니까.
호연은 다시 수저를 들었다.
뚝배기에 나온 뜨거운 복국의 맑은 국물을 삼켰다.
담백하게 우러난 시원한 국물이 입안을 돌면서 노곤한 기운을 한층 짙어지게 만들었다.
잔뜩 놀라 수축했던 근육들마저도 마침내 이완되어 풀어지는 기분인데…….
통통한 복어의 감칠맛에 절로 입맛이 도는 것도 잠시였다. 씹는 행위마저도 아주 귀찮아졌다.
아니, 귀찮기보다는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 같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아.
호연은 애써 눈을 부릅떴다.
바삭한 복튀김으로 젓가락을 뻗었다.
레몬즙을 살짝 뿌린 복튀김은 쫄깃하겠지.
아, 아냐.
기름이 입안 가득 퍼질 생각을 하자 입맛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젓가락이 주저하며 돌아왔다.
오이와 상큼하게 버무린 복 껍질을 먹을까.
호연은 다시 젓가락을 뻗었다.
아, 아냐.
입안 가득 퍼질 새콤함이 머리를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다. 젓가락이 되돌아왔다.
몇 번을 더 망설이던 젓가락이 느리게 멎었다.
이내 호연의 손이 아래로 늘어졌다.
탁,
젓가락이 테이블을 굴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