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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경위서-42화 (42/98)

제42화

세정의 시선이 호연의 곡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둥근 눈썹과 이어지는 자그마한 콧날. 한층 혈색이 내린 뺨과 그 아래로 떨어지는 도톰한 입술. 그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세정의 동공이 이채를 띠었다.

호연은 몸이 굳는 것 같았다.

은근히 웃는 눈. 은밀한 공간을 닮았으나 비밀스럽지 않은 그 눈이, 오히려 노골적인 눈이라는 생각을 한다.

세정은 호연이 앉은 단 위로 손을 짚었다.

이렇게나 가까울 수 있는 걸까.

쉽게 입을 맞출 듯 끼치는 숨마저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간격에서 호연은 그만큼 몸을 젖혔다.

작살에 찔린 것과 같은 기분.

그물에 걸린 것과 같은 기분.

도통 눈을 피할 수도 없고, 감히 벗어날 수도 없는 위력.

“싫어요?”

호연은 이런 대책 없는 상황을 너무 잘 알았다.

어차피 남자는,

“……싫으면요?”

딜레마.

“백호연 씨가 싫으면.”

원하는 대로 상황을 주무르는 자.

“어쩔 거야.”

간결하고 비열한 대답에 호연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왜 몰랐을까. 이 관계는 내가 싫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깨달음이 밀려들었다.

애초에 이 가짜 사랑의 시효는 백 일이 아니었다.

남자가 허락하는 날까지만. 그날까지만 유효한 것.

더 일찍일 수도, 나중일 수도 있는 것.

세정은 호연의 드러난 어깨를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호연은 그 부분이 문신처럼 영원히 새겨지는 것 같은, 타오르는 열감을 느꼈다.

“그러니까, 알려줘요. 난 잘 모르니까.”

무너지는 호연의 눈에서 시선을 떼질 않던 세정은 치밀하게 악력을 가늠했다.

그러곤 피식, 웃는 것이다.

“살살.”

곱씹듯이 혀 위로 단어를 굴렸다.

이내 불쑥 다가가 호연의 아랫입술을 머금었다.

흠칫, 놀란 호연이 고개를 내릴 때 느긋하게 입맞춤의 각도를 바꾸었다. 아래에서 위로 호연의 숨을 달게 삼켰다.

그러곤 가볍게 흡인했다. 몇 번의 입맞춤에도 처음은 늘 빳빳하게 굳어버리는 호연의 입술을 묵묵히 훑었다.

거기서 확고한 고집 같은 게 느껴졌다.

평소 같았으면 숨어 있는 혀를 끄집어 얽었을 것이고 당혹스러운 손길로 입술이 더 벌어지게끔 했을 것이다.

일방적인 삽입에 가까운 입맞춤이었겠지.

그런데 지금은…….

“…….”

“…….”

고요히 기다린다.

삽입하지 않고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아간다.

먼저 혀를 내어 그 끝을 핥아주기를, 입술을 조금 더 열어 그 안쪽으로 불러주기를.

이에 호연은 어쩔 줄 모르고 담요 끝을 팽팽하게 끌어당겼다. 딱 그 정도로 신경도 예민해졌다. 고른 아랫니를 스치는 혀끝 탓에 힘이 들어갔던 호연의 턱이 느슨해졌다.

그러나 혀와 혀가 비벼지는 일은 없었다.

다시 각도를 바꾼 입맞춤이 떼어질 듯 떼어지지 않고 끈적한 입소리를 자아냈다.

이토록 집요하면서 가벼운 입맞춤이라니.

가슴이 간지러웠다. 이런 느린 입맞춤은 사람의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많은 생각이 그치지 않도록 한다. 차라리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맹목적인 행위가 나았다.

호연은 이상하게 가빠지는 숨을 삼키며 간신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울렁거리는 시야에 세정의 새카만 동공이 보였다.

처음부터 보고 있었나, 나를. 흐트러지는 눈매를, 무너지는 몸을 고스란히 다 보고 있었나.

눈이 마주치자, 웃는다. 긴 눈을 접어가며 입술을 빠는 질척한 소리를 낸다. 그러곤 손을 뻗어 머리칼 안쪽으로 넣어 부드러이 쓸어 만졌다.

부글부글, 호연은 몸 깊은 곳이 끓는 기분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은 충동을 느낀다.

호연의 혀가 먼저 세정의 혀를 감았다. 기다렸다는 듯 입술을 벌린 세정의 혀를 차지게 당겼다.

그때까지도 세정은 모든 움직임을 절제했다. 이 행위의 주도권을 다 빼앗긴 사람처럼 순응했다. 그러곤 그제야 눈꺼풀을 내려 감고 호연의 뒤통수를 조금 더 끌어 입술을 빈틈없이 붙였다.

호연은 알 수 없는 쾌감이 머리를 후려치는 것 같았다.

한 번도 탐색해본 적 없던 남자의 입 안쪽 여린 살을 혀로 쿡, 찔렀다. 말캉한 감각. 목을 울리는 남자의 웃음이 넘어왔다. 그를 모조리 받아먹는 기분이 또 한 번 쾌감이 되어 고였다.

호연은 세정의 양 뺨을 그러쥐었다. 뒤로 고정되었던 무게중심을 앞으로 끌고 왔다. 서툰 혀 질에 이와 이가 부딪히자, 입술이 떼어졌다.

살짝 풀린 남자의 눈은 웃음기가 말라 있었다. 그저 많은 날에 느꼈던 선연한 욕구를 담고 있었다.

그를 고스란히 느낀 허벅지 안쪽이 찌르르, 떨렸다.

호연은 불편한 자세를 고치며 마른침을 삼켰다. 작은 움직임으로 떨어진 세정의 시선이 한곳에 고였다.

담요 밖으로 드러난 다리와 무방비한 담요 틈새.

“아…….”

호연이 탄식했다.

선득할 정도로 확실한 섹스의 전조가 느껴졌다.

세정의 손이 머리에서 어깨, 그리고 몸을 지탱하는 호연의 손목 근처로 내려왔다.

여전히 가까운 입술은 젖은 숨으로 마를 줄 몰랐다.

호연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하얀 살결 위로 도드라지는 얇은 혈관과 뾰족한 뼈가 있었다.

세정은 그 모든 것을 핥아내고 싶었다.

“다음은 뭐예요.”

세정이 물었다.

“…….”

호연은 침묵을 택했다.

“나는 이딴 거밖에 모르겠는데.”

세정의 손이 호연의 허벅지부터 쓱, 훑어 올렸다. 남자의 기다란 손가락, 그 끝에 솟아오른 음핵이 눌렸다.

“아!”

세정이 쓸어 올린 다리가 쭉 뻗었다. 감각이 뭉텅, 잘려 나갔다.

“여기는 어떻게 살살할까요?”

이렇게?

갉작이듯이 툭툭, 굴곡을 만졌다.

“으으응……!”

이에 호연의 허리가 튀어 올랐다. 자극을 느끼다 못해 다시 뒤로 젖혀진 호연의 몸만큼 세정이 상체를 드리웠다.

눌린 신음에 놀란 호연이 제 입술을 막으며 도리질 쳤다.

세정은 이곳에 너와 나밖에 없다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호연의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었으므로.

불현듯 정신이 든 호연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미 풀어 헤쳐진 담요. 굵은 혈관이 솟은 세정의 팔뚝. 그런 게 벌어지는 다리 사이에서 움직였다. 눈앞이 하얘졌다.

“아, 아, 흐! 응……!”

호연의 몸은 자극 값을 넣는 대로 결과를 내뱉는 착실하고 착한 몸이었다.

세정은 호연의 아래를 빤히 응시했다. 허벅지와 허벅지 사이가 붉다. 깨물고 싶은데, 다디단 맛이 느껴지는데 어떻게 빨지 않을 수 있나. 혀를 내어 아랫입술을 핥았다. 이윽고 다시 눈을 들어 호연을 보았다.

이미 기진한 호연이 간신히 허리를 세우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아, 하아, 새하얀 신음이 머리칼을 헤집었다.

세정은 느른한 태도로 호연의 속옷을 들쳤다.

호연의 눈으로 긴장이 물씬, 어렸다. 서서히, 조금씩, 불쾌한 얼굴로 호연은 인상을 찡그렸다.

속옷이 손등을 감싼 압박감. 여자의 몸과 하나가 된 듯한 감각.

세정은 유독 좁은 듯한 호연의 내벽을 꾹꾹, 눌렀다. 끈적하게 달라붙는 감각은 착각이 분명할진대 이상하게 꽉 조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 씨발…….”

“흐으…….”

왜 좆을 처박는 느낌마저 들지.

아릿한 듯 허리를 뒤트는 호연의 안쪽으로 조금 더 손가락을 삽입했다. 원체 굽은 손가락이 잔뜩 흥분한 내벽을 긁었다.

어쩌면 매번 버거운 것 같을까. 제 것과 비교도 안 되게 얇은 손가락까지도 짓씹듯이 조인다.

그 빽빽한 밀도감에 세정이 낮게 씹……. 욕을 삼켰다. 척추로 찌릿하게 전율이 돌았다.

“아……. 아!”

세정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호연의 얼굴 근육을 보았다. 어쩌면 음계를 짚는 듯한 신음과 벌어지는 입술.

그 신음이 높아질 때마다 세정은 이를 악물었다.

피아노.

여자가 피아노 같았다.

손가락을 빼내었다. 무언가 딸려 나오는 듯한 느낌이 있다. 다시 강하게 처박았다. 손가락을 끊어내는 듯한 느낌이 있다.

이어지는 아, 아, 음계를 누르는 소리.

이 모든 게 착각이라고?

세정의 손가락이 세기를, 빠르기를 높였다.

“으응! 응! 아!, 잠, 깐……만요. 아, 아아! 아!”

이내 크게 몸을 흔들며 신음한 호연이 아, 하며 모든 힘을 풀어버릴 때 세정은 손을 빼내었다.

호연이 뒤로 스러졌다. 가는 숨을 고르는 호연의 가슴이 벌겋고 크게 부풀었다. 벌어진 걸 좁힐 줄도 모르는 하얀 다리가 무방비하게 있었다.

세정은 젖어 주름진 검지를 엄지로 문질렀다. 이내 개처럼 기어 호연의 아래에 얼굴을 처박았다.

“아!”

호연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습함이 밀려들자, 허억, 소리를 내며 머리를 들었다.

금이 간 부분을 길게 핥고 불쑥 손가락이 공간을 넓힌 곳으로 혀가 들어왔다.

“아! 아! 안 돼요! 안……! 아흑, 더럽, 더럽잖아! 아, 흐읏!”

수치스러웠다.

이내 아뜩한 감각에 피가 몰렸다. 호연은 허무하게 머리를 떨구며 담요를 구겼다.

뜨겁고 부드러운 혀의 수많은 돌기가 얇은 천 위로 단 하나의 통통한 돌기를 핥고 씹었다. 약한 입질에도 까무러치는 감각. 너무나도 생경하고 아찔하며 눈앞이 하얗게 점멸되는 부정한 느낌이었다.

“안, 아아! 흐, 될……! 것, 같 아아……. 요.”

곳곳으로 음성이 튀었다. 호연은 절망적인 고통을 느꼈다. 이보다 더 사람을 엉망으로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쾌감이 그랬다.

호연은 세정의 머리칼을 휘어잡았다. 그러자 남자의 콧날이 호연의 음핵에 비벼졌다. 이에 호연이 크게 앓으며 늘어졌다.

“아, 응! 제발……! 제에……. 아! 응, 아! 발요…….”

차라리 빌었다.

그러나 가까스로 힘주어 좁히려는 다리를 가볍게 짓누르며 쉽게 속옷을 벗기고 맨살에 혀를 갖다 대는 시점에서,

호연은 모든 걸 놓았다.

울컥, 무언가 터지는 것 같았다.

세정은 몸을 세웠다. 흐느낌과 함께 늘어진 호연을 보았다. 팔뚝으로 애액이 묻은 입술을 닦아내고 열이 오른 눈두덩을 눌렀다.

개처럼 흥분했던 주제에, 최대한 단정하게 물었다.

“내 기준에는 여기까지가 살살인데.”

호연이 탈력감에 물든 숨을 터트렸다.

감은 눈을 떠 천천히 깜빡였다. 순간순간, 빛이 나가는 것 같았다. 어느 토막이 끊겼다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더 약하게?”

이게 살살이라고.

기세정 씨 기준에는 이게 살살이라고.

“그냥…….”

목소리마저 힘이 빠져 가늘었다.

“그냥?”

세정은 호연의 납작한 배를 짚으며 상체를 내렸다. 호연의 시선을 따라, 거울로 눈을 맞췄다.

숨이 많이 섞여 흐려진 말과 입 모양을 짜 맞췄다.

호연은 아직도 형형한 세정의 눈을 들여다보기가 힘겨웠다.

“그냥…… 하세요.”

이내 체념한 호연이 눈을 감았다.

진심이었다.

“그게 더 좋아요…….”

지금처럼 나를 두지 말고 꽉 좀 안아주세요.

“아무 생각도 안 들어서…….”

그러면 모든 걸 잠시나마 잊게 돼서.

“그게 더 좋아요…….”

세정이 탁하게 웃었다.

“골 때려, 백호연 씨는.”

브래지어 안쪽으로 들어온 손이 언제나처럼 가슴 끝에 달린 유두를 비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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