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영주가 어떻게 쳤길래 얼굴이 이렇게까지 돼요?”
오랜만에 천사보육원을 찾은 호연은 교은을 보자마자 달려와 살폈다.
최근에 입소한 영주라는 애가 겁이 많아 다가오는 교은에게 주먹을 휘둘렀다는데, 어린애 힘 같지 않게 교은의 이마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호연은 보육원의 모든 애들이 언니, 누나! 하고 살갑게 붙는데 구석에서 좀체 나오지 않던 얼굴이 떠올랐다.
“처음이라 무서운 거야. 너도 좀 까칠했니?”
“제가 그렇다고 원장님을 때렸어요?”
“말로 많이 때렸지. 기억 안 나? 제 몸에 손대지 마세요! 하고 바닥에 토했던 거?”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오겠다는 오빠는 오질 않고, 공포로 뜨문뜨문한 기억은 머물렀던 집을 잊었다. 오빠를 찾으러 가지도 못했다. 그래서 예민했다. 소리를 지르고 음식을 거부하고 울기만 했다. 민형만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교은은 적응을 하라며 다가왔다. 그것마저도 괴로웠다.
“언제 적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호연은 이제 그때 이야기가 부끄러운 나이가 되었고, 교은은 그게 좀 새삼스러웠다.
“그랬던 애가 이제 다 커서…….”
교은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뿌듯하게 웃었다. 그러곤 고개를 들어 지나간 시간을 가만히 헤아려보는데 호연은 그녀의 목에 난 멍을 찾아내었다.
“여긴 왜 다치셨어요?”
“……아, 여기……. 여기도 영주.”
“영주 혼내줄까 봐요.”
“너도 똑같았다니까 그러네.”
샐쭉, 웃는 교은을 보며 호연은 괜히 속상했다.
“멍 빼는 연고라도 찾아볼까요?”
“됐어. 배고프지? 오늘 아침 삼계탕인데 좀 먹을래? 아니면 맛있는 거 시켜줄까?”
“삼계탕으로 먹을게요. 조금만요.”
금방 삼계탕 한 접시가 호연의 앞으로 놓였다. 다시 호연의 앞에 앉으려던 교은은 아,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이내 원장실로 들어가 챙겨두었던 작은 상자를 들고 나왔다.
“찾아달라고 했던 그 목걸이.”
호연은 국물을 떠먹다 말고 상자를 열어 보았다.
엄마가 홀로 도망가기 전 민형과 제 목에 하나씩 걸어주었던 것으로 초승달과 그믐달, 그 뒷면에 이름이 각인된 거였다.
강호연과 강민형.
만약 민형의 얼굴이 많이 변해 알아보지 못하면 증거로 쓰자, 했던 것인데, 기억이 난 지는 꽤 되었다.
다만, 보육원을 오기가 조금 망설여져서 미루고 민형이 아파 정신이 없다 보니 지금에서야 찾게 되었다.
“이거 오링도 망가져서 그냥 체인을 바꿨거든?”
문방구에서 파는 싸구려 목걸이였기에 체인이 세월에 삭아 어느 순간, 끊어졌었다. 이후로 호연의 것은 교은이 보관하고 있었다.
호연은 목걸이를 들어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어쩌면 민형보다 엄마를 더 생각나게 하는 목걸이였다. 호연은 애써 웃었다. 심장을 무언가가 짓누른 듯 무지근했다.
“감사합니다. 완전 새것 같아요.”
“그치? 민형이도 아직 가지고 있대?”
“아뇨. 못 물어봤어요. 하도 정신이 없어서……. 근데 설마 이걸 잃어버리진 않았겠죠.”
“줘봐. 채워줄게.”
호연은 돌아앉았다. 차갑게 닿는 목걸이의 펜던트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각인 된 글자가 느껴졌다.
엄마는 잘 지내고 있을까.
가슴이 찔린 듯 욱신거렸다.
“민형이는 많이 아파?”
교은은 많이 망설인 얼굴로 조심히 물었다.
민형은 수술 예후가 좋지 않았다. 재발과 합병증. 이후로는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병이 되었다.
어쩌면……. 그 평생이 아주 짧을 수도 있고.
마음이 아프긴 해도, 아플 거면 차라리 제 앞에서 아픈 게 낫지 않겠나. 쉽게 들여다볼 수도 없는 곳에서 민형이 죽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게 미국 국적을 가진 민형을 부득불 한국으로 데려온 이유였다.
호연은 민형이 얼마 못 살 수도 있다는 말을 생략하기로 했다.
“수술받고 많이 괜찮아진 거 같아요. 그런데 한동안은 퇴원 못 한대요.”
“그래도 참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민형을 얘기할 때 교은은, 마치 제 일처럼 기뻐했다. 가족이라면, 이런 것도 가족 아닐까.
요즘은 사소한 것에도 마음이 울렁거린다. 호연은 뭉클한 마음을 급히 감추었다.
눈이 침침해 몇 번 헛돌던 교은의 손이 끝났다는 듯 호연의 어깨를 짧게 감쌌다.
“다 됐다. 마저 먹어.”
호연은 다시 바로 앉아 삼계탕을 떠먹었다.
“근데요.”
“응?”
눈길 끝으로 계속 깜박이는 교은의 핸드폰 화면이 신경 쓰였다.
“원장님, 계속 전화 오는데…….”
“아……. 이거.”
교은은 떠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다가 이내 돌려두었다.
“누군데요?”
“스팸.”
“계속 같은 번호로요?”
“한 번 받아줬더니 그런가 봐.”
“……그래요?”
“더 줄까?”
“아니요. 이만큼밖에 못 먹었는데.”
“그러니?”
“방금 주셔놓고.”
호연은 어색하게 물을 따라주는 교은을 곁눈질했다.
뭔가 이상하다. 평소와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심증일 뿐 물증이 없다.
“……아직도 이렇게 어린 것 같은데, 언제 다 커서……. 이러다가 벌써 결혼도 하겠다고 할까 봐 걱정이야.”
그리고 입을 꾹, 다물게 하는 말이 있다.
* * *
체육 대회는 아이들이 아침을 배불리 먹고 난 후에 진행되었다.
“얘들아, 이쪽에 한 줄로 서자!”
호연은 손을 높게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매일 한데 얼려 살면서도 마주치기만 하면 시끄러운 아이들이었다.
호연이 대열에서 이탈하는 아이 하나를 잡고 한 번만, 한 번만……. 빌다가 또 다른 아이를 잡고 가지 마……. 그랬다. 결국 두 손을 모두 아이들에게 내주고서 엉망이 된 정원을 둘러보았다.
“아윤아! 줄 좀 서자!”
호연은 애걸하듯 사정했다.
“야! 줄 좀 서라고!”
그때 동혁이 뒤돌아서 떠드는 아윤의 어깨를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아! 야! 야아!”
아윤이가 어깨를 부여잡고 주저앉아 동혁을 노려보았다. 울 것같이 대롱대롱 눈물을 매단 채였다.
“……동혁아. 아윤이를 왜 때려?”
호연은 실색하며 달려가서 씩씩대는 아윤의 앞을 막았다. 동혁은 대답 없이 새초롬하게 눈을 뜨며 모르는 척 굴었다.
“왜 때려, 아윤이를. 그럴 수도 있지, 동혁아. 때리면 안 돼.”
동혁은 잠자코 듣다가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확, 열이 챈 얼굴로 성을 냈다.
“그치만, 쟤가!”
도통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에 호연이 다리를 접어 앉아 동혁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때리면 안 돼, 동혁아.”
“허아윤, 야! 그니까 왜 누나 말을 안 들어!”
다시 손을 들어 올리려는 힘이 느껴지자, 호연이 그를 꾹, 눌렀다.
자못 심각한 상황임이 분명하여 잠시간 넋이 나갔다.
“안동혁. 너 따라와.”
호연은 엄하게 부르고 앞장섰다. 무슨 일이니, 눈으로 묻는 교은에게 동혁을 눈짓하자 알겠다는 듯한 눈빛이 돌아왔다. 교은이 동혁을 보고 놀란 눈을 가라앉히기에 오래된 일이라고 짐작했다.
보육원의 뒷마당으로 온 호연은 동혁을 돌아보았다.
동혁은 갓난아이일 적에 버려져 호연이 업어 키웠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폭력적인 아이가 되었더라.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저 터트리는 아이가 되었더라.
호연은 눈을 내리뜬 동혁과 눈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노력에도 무색하게 동혁은 쉽사리 눈을 마주쳐주지 않았다.
“하…….”
호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움찔, 동혁의 어깨가 튀어 오르고 좁아 들었다.
응?
호연은 제가 했던 행위를 머릿속으로 다시 되짚었다.
“하아……?”
이제 동혁이 눈을 들어 눈치를 보았다.
잔뜩 겁이 나 흔들리는 동공. 그 아래 자르르, 떨리는 입술.
“너 왜 그래?”
정말 이상하다.
“아기가 됐어, 동혁아. 너 곧 중학생이야. 동생들도 많은데 모범이 되지 못하고……. 평소에도 그래? 아윤이 때리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잖아.”
“…….”
“동혁아.”
호연이 동혁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부드럽게 쓸어주는데,
“안 돼……. 안 되는 거……. 아는데, 나두…….”
울먹이는 어투와 함께 어깨가 들썩였다.
“울어?”
호연은 당황스러웠다. 봇물이 터진 듯 쏟아지는 울음에 섞인 말이 뭉개졌다.
“나 들었어. 보육원 망할지도 모른다면서. 우리 다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다면서……!”
“……어디서?”
동혁이 시뻘게진 눈으로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누나랑……. 원장님이랑…… 통화하는 거 들었어. 누나도 이제 우리한테 자주 안 오잖아……. 지금도 와서 계속 힘들어 보이고……. 그러면 정말 누나가, 누나가― 안 올 거 아냐. 그런데 아윤이, 쟤는 아무것도 모르고 누나 힘들게만 하고. 누나. 우리 버리지 마. 우리 버리지 마…….”
가슴으로 누군가 돌덩이를 던진 것 같다. 면적 큰 통증이 번졌다.
“누나…….”
동혁은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아윤이 때려서 미안해, 누나. 누나 한숨 쉬지 마. 힘들지 마. 지치지 마. 힘든 거 나한테 얘기해, 응?”
고작 열두 살인 애가 이런 생각을 한다.
머리가 굵어지고 제가 보육원을 찾는 일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불안에 떨었을 테다.
제가 결혼 이후에 방문 빈도를 줄이고 와서도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이면 눈에 띄게 눈치를 봤을 테다.
그를 보는 호연의 속이 무너져 내렸다.
아무리 힘들어도 보육원은 주기적으로 찾아왔어야 하는 건데. 티를 내서는 안 되는 건데.
어떤 날에는 모든 걸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 내가 왜 오빠를, 내가 왜 보육원을, 내가 왜 엔마트를, 내가 왜 나 자신을 책임지고 살아야 하나, 의문이 밀려오던 날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생각까지도 미안하다.
“네가 왜 그래야 해, 동혁아…….”
마음이 아프다. 가슴이 철렁거려 도무지 두 다리로 서 있질 못하겠다.
호연은 주저앉듯이 앉아 동혁을 감싸 안았다. 연신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며 토닥였다.
사실 모든 걸 그만두고 싶던 마음도 진심이 아닐 거라고, 저는 그래야만 한다고, 다짐 같은 생각을 했다.
* * *
아윤은 동혁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상대방이 사과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동혁에게 인지시켜 주기까지는 또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마음이 쓰이는 것은 둘째 치고 아무래도 동혁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불안이 극대화된 것부터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까지.
교은이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교정이 안 된 게 이상했다. 교은에게 말이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또 동혁은 보육원의 사정을 자신만 알고 있다고 했지만, 다른 애들도 아는 건 아닐까 싶어 호연이 교은에게 다가간 때였다.
“원장님.”
흐뭇한 얼굴로 정원을 바라보고 있던 교은이 돌아보았다.
“아, 호연아. 체육 대회 시작했고 후원자님들도 방금 다 오셨어. 백 대표님이 사람을 보내주셨고. 이번에는 새로 온 분들이 계시는데…….”
환한 웃음을 문 교은의 얼굴에서 시선을 미끄러트리자 낯선 얼굴이 있었다.
“북두 에너지 기한석 부사장님과 따님, 기원주 씨.”
북두 에너지 기한석과 딸, 기원주.
결혼식에서 봤을 텐데 호연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잠시간 굳어 있던 호연은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훑고 지나가는 시선이 아주 아랫것을 보듯 하찮았다.
그런 이들이 이런 곳에 봉사하러 오는 이유는 무얼까.
“지금 오시는 분이…….”
시선이 쭉 뻗는다.
“북두 리테일 기세정 전무님이셔, 호연아.”
북두 리테일 기세정 전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