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그래서 조금 짜증이 났다.
자신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열이 오르는데, 백호연은 대놓고 제 눈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척척, 쳐올리는 허리 짓에 짜증스러움이 묻었다. 호연은 커진 마찰음만큼이나 아무렇게나 반죽 되는 내벽을 참기 어려웠다.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골반을 트는데, 모든 곳이 성감대가 된 듯 남자의 성기가 휘저어질 때마다 눈앞이 번쩍거렸다.
“아, 아……. 아! 흐으응!”
눈이 멀 것도 같았다.
그랬는데,
세정은 돌연히 성기를 쑥, 빼내면서 호연의 옆에 누웠다.
“아읏…….”
허전해진 다리 사이에 당황한 호연은 눈을 떠 제 옆을 바라보았다. 불쑥, 살갗이 맞붙었다. 세정이 호연을 제 쪽으로 당긴 거였다. 반쯤 끌려온 호연은 여전히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옴쭉거리는 아래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방류되지 못한 절정감으로 흐느끼며 경련했다.
“혼자 자꾸 가네.”
이렇게 붉은 눈이 보고 싶었나.
세정은 하복부가 뭉치는 감각을 느끼며 호연의 다리 한쪽을 제 다리 위로 올렸다. 잠시 다물려 있던 아래가 마르지 않은 애액을 늘어트리며 벌어졌다.
“……하아……. 하…….”
호연의 눈 초점이 다시 흐무러졌다. 세정은 삽입하지 않은 채 호연의 갈라진 틈을 비볐다. 귀두로 구분된 뱀 같은 성기가 부푼 살점에 스칠 때마다 호연은 기묘한 쾌감에 이를 악물었다. 다시 느린 허리 짓이 시작되었다.
“이상, 이……. 상해, 요…….”
“그러라고.”
몇 번이고 두툼한 성기가 예민한 살덩이를 훑듯이 지나갔다. 호연은 세정의 시선에 묶여 있었다. 눈을 맞춘 채로 서로의 성기를 비비고 있다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운 기분인지, 남자는 모르는 것 같았다.
세정이 다시금 입술을 찾아 물었다. 이어지는 찐득한 키스에 호연의 굳어 있던 몸이 녹았다. 혀와 혀가 엉키면서 녹진한 애액이 몇 번이고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으나 호연은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끝까지 갈까요.”
말이 멀게 들렸다. 머릿속이 곤죽이 된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거기에 가해지는 이런 감각은 통제 불능이었다.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중간중간 세정이 숨을 억눌렀다.
“그만……. 흐……. 아…….”
다만 오히려 삽입하는 게 나을 것 같은 용감한 생각이 들었다. 와중에도 간지러운 아래가 완전히 맞붙었다가 서서히 떨어졌다.
“말을 해야 알지.”
호연은 저도 모르게 애가 타는 눈으로 세정을 바라보았다. 짧게 숨을 들이쉰 세정이 질구로 미끄러지던 성기를 다시금 빼내었다. 얕은 쾌감에 호연에게서 탄성이 터졌다.
“흐……. 넣, 아, 어주세, 요…….”
결국은 호연이 세정의 손목을 걸어 잡고 사정했다. 꾸물꾸물 기어와 가슴팍에 머리를 기대었다. 이렇게 절정에 오르지 못하는 순간은 싫다고. 그냥 차라리……. 빨리 끝내고 싶다고.
“씹…….”
그 물기 어린 눈매에 세정은 호연의 종아리를 잡아 벌렸다. 좁게 맞붙은 질구를 강하게 파고들었다.
“아!”
전과는 확연히 다른 강도였다. 순식간에 하복부부터 쾌감이 고이기 시작했다.
“좁아…….”
호연은 고개를 들어 세정을 올려다보았다. 내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던지, 시선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때마침 물러나는 성기에 몸을 단단하게 받치고 있던 벽 하나가 무너진 것 같은 울림이 있었다. 남자가 다시 척척, 쳐올릴 때마다 동공이 비벼질 듯 가까워졌다.
두려움과 희열로 얼룩진 마음이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호연은 다시 세정의 가슴팍으로 얼굴을 묻었다. 호연의 어깨를 끌어안은 세정이 다시 한번 세게 쳐올렸다.
“아아, 아, 아!”
단단한 몸은 부서질 것 같지 않아 좋았다.
호연은 제 머리칼을 부드럽게 헤집는 손길을 느꼈다. 동그란 가슴이 남자의 단단한 근육 아래 구겨지고 그 유두가 아무렇게나 쓸려나가도 좋았다. 더 많이, 더 센 자극을 원해서 남자의 가슴팍을 긁어내렸다.
“아, 응으응, 아, 흐으……. 아!”
결합부가 미친 듯이 맞부딪쳤다. 살짝 당겨진 머리칼이 또 다른 쾌감이 되었다. 머릿속은 완전히 흐려져 이곳이 어디인지조차 구별이 되지 않았다.
세정은 몸을 살짝 세워 더 깊이 찔러 박다가 호연이 크게 신음했던 부분을 잊지 않고 두들겼다. 꽂히듯 박히는 성기에 호연의 허리가 뒤로 휘어졌다.
“어딜 가.”
남자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세정은 잡고 있던 호연의 머리칼을 좀 더 당겨 목덜미에 이를 박았다. 동시에 호연이 사지를 벌벌 떨며 경련했다. 사냥이라도 하듯 목에 큰 울혈을 남긴 세정이 늘어진 호연을 보았다.
아직이었다. 굳은 채로 들썩이는 호연의 아래는 여전히 녹아내릴 듯 뜨겁고 끊어질 듯이 조였다. 세정은 빠르게 허리를 쳐올렸다.
절정을 지나 다시 절정을 맞은 호연이 가늘게 떨었다. 그런 호연의 아래를 찍듯이 박아 올리는 세정도 이제는 이를 악물었다. 공간을 울리는 소리가 천박할 정도로 야했다.
“아, 아! 아…….”
이윽고 삽입으로 세 번째 맞는 환희에 호연이 울음을 터트렸다. 입을 맞추는 세정에게 싫다고 고개를 저으려는데, 할 수가 없었다.
망가지는 것 같은 두려움을 안은 호연이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체계 없는 난맥의 쾌감. 폭주를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아, 아흑……. 흑……. 아!”
세정은 귓가로 쏟아지는 호연의 물기 어린 신음에 몇 번 더 허리를 세게 튕겨 넣었다. 사정감이 몰리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응! 아아…….”
호연은 제 깊은 곳에서 남자의 성기가 크게 부푸는 걸 느꼈다. 이윽고 꿀렁거리며 무언가를 토해내는 극렬한 움직임까지 몸에 담았다. 황홀할 만큼 고통스러워 두 눈을 감았다.
* * *
“아니이, 씨발……. 말이 돼요?”
―야, 올리버야.
미쳤나, 이게.
귓가에서 핸드폰을 떼어내고 빽, 소리를 질렀다.
“지랄도! 올리버? 존나 아저씨 같고 오글거려요.”
잔뜩 흥분한 음성 사이사이에 억누르는 힘이 가득한 석훈의 음성이 끼었다.
―민형아.
영어 이름은 올리버, 한국 이름은 강민형.
“이름은 오재성 하난데, 별명은 서너 개. 그딴 거예요? 뭔 씨발……. 올리버? 강올리버. 작명 센스 한번 존나 멋지네요.”
본명은 오재성.
“아, 한국에 들어온다는 설정은 왜 해요. 어차피 한국에 있을 때 출생신고도 안 돼 있었다며. 이런 것도 말 안 해줘서 내가 미국에서 얼마나 애먹은 줄 알아요? 그리고 내가 이런 거까지는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백호연 나 볼 때마다 존나 울어서 짜증 나요.”
본업은 깡패의 끄나풀이었으나 그 바닥 사정이 그렇듯 가장 먼저 목숨을 위협받는 계층이었다. 하여 시작한 잡일이 이딴 건데.
“뭘 또 연장이야! 돌았어요? 백호연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계속 여기서 썩으라고? 나 밝혀요? 밝힙니다. 백호연한테 내가 지 친오빠 아니라고, 네 친오빠는 진작 뒤졌다고 말한다! 악!”
생각보다 훨씬 귀찮고 머리를 쓰게 한다. 같은 일을 오래 하지 못하는 기질상 맞지 않는다.
―쩜오.
잠시만. 쩜오면 돈이 얼마야?
손으로 숫자를 헤아리던 재성이 웃음을 물었다.
“딜. ……아니, 아저씨. 돈 많이 주는 건 너무너무 고맙거든? 근데 나한테 그렇게 줄 돈 있으면 그 회사 좀 어떻게 하는 게 낫지 않겠어? 병원에도 사람 꼬셔놔야 할 거고 나한테도 퍼붓고. 감당돼요?”
이런 걱정을 하는 거 보면 머잖아 돈으로 회유되지 않는 날도 올 것 같았다.
미국에 있을 때는 여행 같아서 재미있기라도 했지. 재성은 진절머리 난다는 듯 환자복을 털었다.
1인실인 것도 좋은데, 아, 다 좋은데. 이건 뭐, 창살 없는 감옥이잖아.
재성은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리며 창문을 열었다.
“어라라…….”
재성은 왜? 되묻는 석훈의 말을 무시하고 핸드폰의 화면을 확인했다.
배경 화면으로 설정된 건 호연의 얼굴이었다.
그 똑같은 얼굴이 창밖에 있었다.
“아이씨…….”
짜증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욕을 내뱉는데, 시선을 느낀 건지 문득 호연이 이쪽을 올려다봤다.
재성은 홱, 몸을 굽혀 숨으며 핸드폰을 귓가로 붙였다.
“백호연한테 벌써 말했어요?”
―알려달라고 하니까…….
“왔잖아……. 됐어요, 씨발. 진짜, 아!”
끊어요!
핸드폰을 내던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부들부들 떨던 재성이 슬금슬금 기어 침대로 올라갔다.
이렇게 예고 없이 닥칠 순간이 많을 텐데……. 꼼짝없이 병실에 갇혀 있을 상황이 벌써 답답했다. 또 언제까지 다이어트를 하라는 거야…….
재성이 마른세수를 하며 돌아눕는데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재성은 억지로 입술 끝을 끌어올리며 네에, 대답했다.
“오빠…….”
아, 존나 지겹다.
* * *
“오전에는 학교. 동기들과 수업 같이 들으셨고 식사도 같이하셨는데, 남자 하나에 여자 둘입니다. 요청하시면 인적 사항 조사해서 올려 드리겠습니다. 또, 네 분이 카페를 가셨는데 다른 테이블에서 사모님께 번호를…….”
“됐습니다.”
VIP급 고객들을 상대로 서비스하는 심부름센터 업체 대표, 송영한은 말을 멈추었다.
그 끈질긴 남자에게 호연이 결국 번호를 주었다는 말은 생략하고 뒤를 이어 말했다.
“……병원, 에 가셨습니다. 산부인과 진료를 보신 것 같은데요.”
납작하게 몸을 굽혀 다가간 영한이 세정의 눈앞으로 사진 두 장을 밀어주었다.
“따라가 보니 산부인과 진료를 보는 쪽이었거든요.”
침울한 표정으로 병원에 들어가는 호연의 모습과 눈이 잔뜩 젖은 채로 나오는 호연의 모습이었다.
세정은 눈을 한 번 내려 감았다 뜨곤 영한을 보았다.
“됐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을 죽일 듯이 보네.
영한은 ‘병원’ 두 글자에 세정이 저를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당연히 말을 하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는데.
“이런 거 들으려고 돈을 쓰나.”
서늘하게 내려앉은 세정의 음성에 영한은 침을 꼴깍, 삼켰다.
세정은 도통 읽히지 않는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내 귀찮다는 듯 명령했다.
“백호연은 됐고 기휘영이나 좀 알아보죠.”
“아, 네, 네!”
백호연보다는 네덜란드지사에서 돌아온 기휘영을 지켜보는 게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영한은 나가보라는 세정의 말에 후다닥, 몸을 일으켜 나갔다.
홀로 남은 세정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사진을 구겨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똑똑, 이어지는 노크에 응답하자, 신원이 들어왔다.
“전무님.”
“네.”
“이런 게…….”
불확실한 대답에 세정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신원을 보았다. 신원은 곤란한 표정으로 손에 들린 것을 더 높게 들었다.
“뭡니까?”
보온병이었다. 세정은 매끈한 이마에 주름이 잡히도록 둔 채 의문 어린 눈을 보였다.
“방금 사모님이 가져다주셨습니다.”
신원이 쭈뼛거리며 다가와 책상 위에 보온병을 얹었다. 세정은 덩그러니 올라온 보온병을 물끄러미 보았다.
“하…….”
끝내 관자놀이를 꾹, 누르고 문을 향해 턱짓했다.
“데려와요.”
그 말에 신원은 조금 울고 싶어졌다.
이미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셨는데 제가 어떻게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