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그건…… 마치 조각칼로 깎아내린 것만 같았다. 곡선마저 능란하게 조각된 몸은 분명 움직이는 조각상이었다.
꾸준한 운동이 아니면 완성되지 않을 균형 잡힌 근육들은 잠시간 호연의 시선을 옥죄어 놓았다. 잘 짜인 흉곽, 그 아래를 가늠하는 눈길이 잠시 흩어졌다.
동시에 다시 한번 길게 번지는 짙은 감각에 호연이 급하게 눈을 내렸다. 납작한 배 아래로 기다란 손가락이 음핵을 문지르고 있었다.
호연은 아연한 눈빛으로 세정을 바라보았다. 반대로 천연한 눈빛이 올곧게 닿아왔다. 차츰 숨이 가빠졌다.
호연이 세정의 팔뚝을 붙들었다. 예민한 살점을 갉작이는 손가락이 불꽃인 양 뜨겁게 느껴져 엉덩이를 뒤로 빼는데, 남자는 다시 허리를 튕기듯이 들어 올리도록 했다.
“하, 놔, 놔주, 으읏……. 세요…….”
“놔?”
“응, 으응……. 흐으…….”
또 묻는 말에는 대답을 피한다.
몇 번이고 자극을 피하려는 호연의 애처로운 몸짓은 도리어 허리를 돌리는 것처럼 보였다.
세정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도 손짓은 멈추지 않아, 호연의 아래를 세로로 긁어내렸다. 얇은 천이 젖어 달라붙은 모양이 적나라했다.
천을 들치고 들어온 손가락이 여린 살점을 짓눌렀다. 호연은 온몸이 화마에 휩싸인 것 같았다. 다리를 세워 무릎으로 남자의 팔뚝을 밀어내는데 꼼짝도 하지 않아 괴로웠다.
다만 부드러이 문지르는 손길이 더 안쪽을 질금질금,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허벅지 안쪽으로 힘이 들어갔다.
“힘 빼요.”
힘을 뺄 수가 없는데.
세정이 속옷을 끌어 내린 후, 맞닿으려는 호연의 무릎을 다시 벌렸다.
“아…….”
화한 공기에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동시에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아래가 벌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씹…….”
“흐으! 아! 아, 아파요. 아! 아…….”
세정은 어깨를 퍽, 내려치는 손길을 감내했다. 밀어 넣은 손가락을 천천히 돌려 내벽의 사이즈를 가늠했다.
손가락 하나 박혀놓고 죽겠다는 듯이 울먹거리는 얼굴이 기도 안 찼다.
좁았다.
충분히 풀어 주었는데도 좁았다.
손가락 하나도 비좁게 들어가는 내벽으로 하긴 뭘 하겠다고.
호연의 납작한 아랫배가 경련하고 있었다. 유독 하복부만 벌겋게 물이 들어 복숭아 같기도 했다.
세정은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그마저도 밀어내는 느낌이 강했다. 온몸에 힘을 주고 있어 뭉텅뭉텅, 손가락을 조이듯이 한참을 쥐고 있었다.
“아아……. 아, 아……. 응, 으흐으…….”
맑은 애액이 묻어나오는 손가락은 호연이 아플 리가 없다는 걸 증명했다. 지금 쾌감이랑 통증을 구분하지도 못하는 거였다. 그러니까 조이고만 있지.
“돌겠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세정은 엄지로 호연의 부푼 살점을 튕겨보았다. 손가락질을 멈추지 않자, 점점 그 아래쪽까지 젖어 들었다. 척척, 올려붙일 때마다 물소리가 울렸다.
“하……. 앙, 아……! 아, 읏, 으, 아!”
잘게 부수어지는 신음이 전보다 달떠 있었다. 세정은 호연의 얼굴을 한 번, 아래를 한 번 바라보고 가슴을 베어 물었다. 호연이 그의 머리칼을 헤집어 쾌감을 참았다.
정말 이상했다. 몽글거리며 모인 감각이 남자가 손가락을 처박을 때마다 팍, 팍, 터졌다. 더 깊이, 더 세게 처박아 주었으면 하는, 알 수 없는 욕구가 밀려들었다.
“아! 응…….”
그러나 남자가 손가락을 빼내면서 쾌감이 미결되었다. 호연은 잔뜩 흐트러진 몸으로, 흐물거리는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타액과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가슴과 아래를 훤히 내보인 채로 동공만 굴려 남자를 눈에 담았다.
남자의 손이 협탁의 두 번째 서랍, 그 안쪽을 파고들어 콘돔을 끄집어냈다.
“풀어봐요.”
콘돔을 입으로 죽, 뜯어낸 세정은 호연에게 가벼이 명령했다. 그 명령에 반항할 생각 한번 하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이미 거의 풀려나간 가운이 호연의 손길 한 번에 툭, 풀렸다.
그 안으로,
“……못 해요.”
호연이 고개를 젓게 하는 게 들어 있었다.
완벽하게 조화로운 몸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 아래로 완벽히 부조화한 게 있었으니까.
“안 돼요…….”
세정은 그냥 피식, 웃었다.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호연은 콘돔이 씌워지는 남자의 성기를 보며 정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저런 게 들어갔다가는…….
세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붙여왔다. 성기 끝이 뜨겁게 느껴졌다. 호연은 두려운 마음에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러나 허벅지 밑으로 손을 넣어 쉽게 엉덩이를 잡아 내린 세정이 벌어지지 않은 틈에 성기를 비볐다.
이내 꽃잎처럼 툭, 벌어지는 그 끝에 천천히 귀두를 물렸다. 질척할 정도로 충분히 풀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진입이 어려웠다.
“아흑…….”
몸이 쪼개지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호연이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개처럼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는 게 훤히 보였다. 세정은 감아두었던 손을 풀어 호연의 납작한 배를 쓰다듬었다.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가 꺼지고, 다시 크게 부풀었다가 꺼졌다. 세정은 시선을 아래에 처박은 채 호연의 입술을 찾아 물었다. 살살 달랬다.
그렇게 힘이 빠진 아래로 조금씩, 조금씩 내벽을 벌렸다. 너무나도 좁아 내벽의 주름이 훤히 느껴지는 감각은 세정에게도 고문이었다.
“쥐어짜지 좀 마.”
코와 코가 맞닿은 간격에서 세정이 한숨처럼 말했다.
호연은 세정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흉포한 성기 위로 돋아난 굵은 핏줄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젖혔다. 천장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불안했다.
이내, 푹.
“아……!”
칼을 찌르듯이 크게 밀어 넣는 힘에 호연이 벌벌 떨었다.
“백호연 씨는.”
작살에 찔린 것처럼 펄떡대는 몸을 끌어안은 세정이 한 번 더 푹, 제 일부를 쑤셔 박았다.
“엄살이 너무 심해.”
항변은 다시 맞닿은 입술 사이로 뭉개졌다.
* * *
창밖으로 빗방울이 죽는 소리가 났다.
비가 온다. 아니, 눈이 오나. 한겨울에도 비가 내릴 수 있나. 아니, 여름인가. 작렬하는 더위가 맹렬하다.
비가 오지 않는데 이럴 수가.
몸 깊은 곳에서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번개 같은 감각이 시시각각 달라졌다.
온몸의 모든 것이 격렬하게 쿵쿵 울린다. 몸이 반으로 뚝 쪼개어질 것만 같다. 그저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뿐인데, 세상이 어지럽다.
“응, 응……. 아, 아! 읏, 하…….”
신음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왔다. 이제 이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 아, 아…….”
남자의 손이 닿는 곳마다 불덩이가 떨어졌다. 몸 위로 불꽃의 색이 남았다. 열이 아래로 몰릴 때는 타들어 죽을 것만 같았다.
불을 비비는 듯 이렇게나 뜨거울 수가 있는 건가. 목구멍이 막힌 듯 이렇게나 숨이 막힐 수가 있는 건가.
“아, 흐으……. 아! 응, 응…….”
남자는 끝까지 다 넣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차마 다 넣어달라는 말을 못 했다.
남자의 허리를 안지 못하고 풀린 종아리가 보였다. 벌어진 무릎 위로 피가 비쳐 있었다. 상처가 벌어졌구나. 힘없이 덜컹거리며 아, 아, 응, 제 것이 아닌 것 같은 신음만 겨우 내뱉었다. 단단하게 부푼 남자의 가슴팍을 아득하게 보았다.
어떤 순간은 멈추기도 하는 것 같았다.
찰랑이는 소리가 났다. 남자의 손가락이 납작한 아랫배로 기어오르는데 물기가 있었다. 대체 어디까지 젖어 있는 걸까…….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것처럼 어디론가 목적 없이 잡아당겨지는 듯한 감각이었다.
가슴을 꽉 쥐어오는 손의 악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호연은 허리를 뒤틀면서 크게 앓았다. 올라간 골반을 꾹 눌러 내리며 감싸는 손바닥에 호연은 이불을 놓았다.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델 것 같은데 버틸 만큼 뜨겁고, 아픈데 참을 만큼 쾌감이었다. 느낌이 생경해서 또 한 번 겁이 났다. 도무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세정은 도망가려는 호연의 허벅지를 붙잡아 끌어 내렸다.
호연은 두 눈을 가린 채 헐떡였다. 하아, 하아, 죽은 숨을 토하는데 주르륵, 눈물이 이불 위로 번졌다.
세정은 그를 봐주지 않았다. 호연의 두 손을 그러잡아 배꼽 쪽으로 내리곤 더 거칠게 처박았다.
“하으, 읏……! 아! 아! 아!”
더는 안 될 것 같아 도리질 쳤다. 세정은 몸을 세우려는 호연의 안에서…… 아주 깊게 토해냈다.
* * *
“삼월에도 눈이 오네요.”
차들이 느릿느릿 굼뜨게 전진하는 도로 속에서 지루함을 참지 못한 택시 운전기사가 말을 붙였다. 말이 끝난 뒤에는 하품을 쩍, 했다. 혼잣말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양 카 오디오의 볼륨을 만졌다.
라디오는 출근 시간대가 아닌데도 벌써 혼잡한 도로 교통 상황과 실로 오랜만의 눈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혹시.”
얇은 음성에 운전기사는 정물처럼 앉아 있던 호연과 백미러로 눈을 맞췄다.
부촌 골목에 서 있던 여자는 구겨진 옷차림으로 택시를 잡았다.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것처럼 급한 얼굴이기도, 지칠 대로 지친 피곤한 얼굴이기도 했다.
또한 목적지로 부른 동네가 또 다른 부촌이라 사정이 궁금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택시 운전기사가 말이 많은 것을 도통 좋아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입을 다물었는데, 제가 먼저 입을 열어 묻는다.
“새벽에 비는 안 왔나요?”
이상한 물음이라는 생각에 운전기사는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밖이 허옇잖어. 비가 쌓이나? 눈이 쌓이지. 사부작사부작, 쌓이는 줄도 모르고 쌓이지.”
그러면 그 새벽에 내렸던 비는, 천둥은, 번개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소름 끼치게 창문을 두드리던 빗소리는. 떨어져 부서지는 게 세상에 나 하나만은 아니라 위안을 얻었던 찰나는.
그러나 이제 와 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느리게 흘러가는 풍경을 말끄러미 보고 있자니 잠든 세정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다란 속눈썹 아래로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그 속에 저를 가둘 것 같은 두려움과 그 정반대의 평온함이 공존했다.
전쟁 같던 밤. 남자가 잡아준 자세도 유지하지 못하고 서툴게 무너지던 몸.
정사가 끝난 것은 하늘이 짙푸른 색으로 덧칠될 때쯤이었다. 잠을 잤던가. 흐리마리한 기억을 더듬을수록 조각난 것들만 떠올랐다.
멀어지던 남자의 등. 곧 돌아와 물을 건네던 손. 도통 일어나지 못하자, 허리와 어깨를 받쳐 가볍게 세워주던 단단한 팔뚝.
피가 묻은 침대 시트를 들고 나가던 남자. 따뜻한 것이 구석구석 몸을 스치던 감각. 곧 저를 품에 당겨 안고 있던 남자. 그리고 다시, 잠든 남자의 얼굴.
꿈인가 해서 다시 침대 시트를 확인하고 몸을 일으켰다. 계단에서 구른 듯이 통증으로 가득한 몸을 끌고 옷을 꿰입다가 다리 사이의 둔통이 심해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남자가 깰까 봐, 고요하게 앓으며 거울 한 번 보지 못하고 겨우겨우 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 마주한 세상은 설국이었다.
끔찍할 정도로 온통 눈부신 세상에 걸음을 잃었다. 나는 이토록 처참한데, 참담한데, 대비되듯 아름다워서 눈조차 깜박이지 못했다.
쉽게 녹지 않을 것 같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