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206화
[도널드 트럼프, 압도적인 격차로 미국 제45대 대통령 당선 확정! “이번 선거로 인해 미국은 더 위대한 나라가 될 것.”]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승리 요인을 힐러리 본인과 측근들의 스캔들이 연이어 터진 것을 꼽았습니다. 그 외에 인터넷과 SNS에서 반 힐러리 분위기가 조성된 점, 민주당의 강력한 우군인 닉스가 트럼프 쪽으로 돌아선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뚝.
잘 보고 있던 TV 화면이 꺼진다.
옆을 돌아보니 매형이 리모컨을 쥐고 있었다.
“매형, 언제 오셨어요?”
“방금.”
“오셨으면 기척이라도 좀 내시지.”
매형은 대답 대신 서류철 하나를 툭 던진다.
“이게 뭡니까?”
“뭔지는 나보다 네가 더 잘 알지 않을까?”
표정이 심상치 않다.
스승이 제자를 엄하게 꾸짖기 전에 짓는, 딱 그런 표정이었다.
괜히 눈치를 보며 서류철을 열어 본다.
[페이스북의 가입자 2억7천 명의 개인정보가 해킹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외에도 경영진은 개인정보 8천만 건을 정치 브로커에 제공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이 무단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음이 발각됐다. 더불어 구글은 앱 모음 서비스에서 수집된 개인정보 50만 건을 해킹당했다고 뒤늦게 발표해 비난을 받고 있다.]
[대현자동차가 신형엔진의 구조적인 결함을 알고서도 침묵했다는 보고서가 유출됐다. 신타B 엔진을 탑재한 차량은 현재까지 500만 대 이상이 팔렸으며 전량 리콜하려면 10조 원이 넘는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서류는 기업들이 숨겨왔던 비리가 폭로된 기사 요약본이었다.
내용이 어찌나 많은지 깨알 같은 글씨로 쓰여 있었음에도 족히 수백 장은 넘어 보였다.
“기업 비리의 종합선물세트군요. 그런데 이걸 왜 제게 보여주시는 겁니까?”
“내가 왜 보여준 것 같으냐?”
“흠…… 기업을 투명하게 경영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섭니까?”
“그래, 네 말도 맞다. 애초에 구린 게 없으면 까발려질 일도 없었겠지. 하지만 어째서!”
매형은 서류철을 쾅, 소리가 나게 내려치고 말을 잇는다.
“비리가 폭로된 기업들이 하나같이 닉스의 경쟁사거나, 그게 아니면 인수합병 목록에 들어간 기업들이었을까?”
“우연의 일치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나를 쏘아보는 매형의 눈빛이 뜨겁다. 계속 마주하고 있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실망이다. 강현우.”
“무슨…….”
“수아 씨에게 전부 들었다. 네가 1년간 틀어박혀서 무슨 짓을 했는지 말이다.”
뭐라? 수아가?
아차 싶었을 땐 이미 늦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터라 표정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역시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구나.”
“저를 떠본 거였습니까?”
“네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현우야. 이러지 않아도 닉스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잖니.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인 거냐?”
“…….”
“적어도 나는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닉스의 CEO로서, 그리고 너의 동반자로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이야길 들을 자격이라…….
매형이라면 차고도 넘친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닉스도, 지금의 강현우도 없었을 테니까.
다시 천천히 눈을 뜨고 시선을 마주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난 1년간, 먼 미래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미래를 어떻게 여행했단 말이지?”
“가상현실 기기인 닉스VR을 써서요. 애초에 닉스VR은 미래를 체험하기 위한 기기였습니다.”
“그것도 그 씬인가 뭔가 하는 인공지능이 만든 거냐?”
내가 천천히 고갤 끄덕이자, 매형이 얕은 한숨을 내뱉는다.
“믿기 힘드신 건 압니다만.”
“아니. 믿으마.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으니까.”
“예?”
놀란 내게 매형이 눈을 흘겨댄다.
“날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멍청이로 생각한 게냐? 내가 그래도 닉스의 CEO야. CEO. 최근 몇 년 사이에 닉스에서 개발해낸 신기술들, 그걸 봤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
매형은 아까보다 더 깊은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그 미래라는 곳에서 안 좋은 걸 본 모양이구나.”
“안 좋은 수준을 떠나서 끔찍할 정도였습니다.”
“뭘 봤기에?”
“전쟁입니다. 인공지능의 소유권 문제로 시작된 기나긴 전쟁 말입니다. 로봇과 첨단 무기로 치러진 전쟁은 전 인류의 80%가 죽어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75억 명의 80%는…… 60억 명이나 죽었다고?”
“아뇨. 그땐 인구가 늘어서 지구상에 400억 명에 가까운 인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80%면 대략 300억 명은 넘었겠지요.”
“미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는다면…….”
매형은 상상만으로도 치가 떨리는지 몸을 부르르 떨어댄다.
“저는 그 끝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보다 더 죽었거나. 아니면 아예 인류가 절멸했을지도 모릅니다.”
과장이 아니다.
당장 20세기에도 핵전쟁이 일어났다면 인류의 시대는 끝장났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던가?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뒤라면…… 누군가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으로 지구라는 행성이 사라질 수도 있다.
“결국,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셈인가.”
의사에게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마냥 분위기가 착 가라앉는다.
한참이나 말이 끊어지고.
매형이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가까스로 연다.
“현우야. 그 미래가 불변의, 그러니까 확정된 미래는 아니지? 그렇지? 그렇다고 해줘. 응?”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난 입가에 쓴 웃음을 머금고 말을 쥐어 짜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최악을 피하고자 필사적인 발버둥질을 하는 게 고작이니까요.”
“그래서 이번 같은 일을…….”
“그런 셈이죠. 더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만한 처지가 아니니까요.”
매형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더니.
“내가 뭐라 해줄 말이 없구나.”
표정에서부터 감정이 절절하게 드러난다. 저건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질 때 짓는 표정이었다.
“매형.”
“안 돼. 난 은퇴할 거다.”
미리 차단하고 나섰지만 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러지 말고 도와주시죠.”
“이번은 절대 안 돼. 약속까지 했잖아?”
“혼자서 낑낑거릴 제가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응, 전혀 안 불쌍해. 그리고 난 처자식이 있는 몸이야.”
“처자식을 위한다면 더더욱 도우셔야죠. 자식에게 그런 미래를 물려줄 겁니까?”
매형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쳐다본다. 그걸 보니 괜히 실실거리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웃지 마, 정들어.”
“이미 들 만큼 들었던 거 아니었습니까? 그러니 끝까지 같이 가시죠.”
그는 제 머릴 벅벅 긁어대며 말했다.
“어휴, 내가 어쩌다 이런 지독한 놈에게 걸려서는.”
* * *
선내였지만 바다 특유의 짠 내가 넘어온다.
주기적으로 느껴지던 바닥의 흔들림은 이제 익숙해진 듯했다.
의식적으로 둥그런 창 너머를 바라본다. 그곳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대니얼 강.”
말을 건넨 여인은 20대는 될까 싶은 외모의 기자였다.
“한국에서는 강현우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요?”
그녀는 어찌나 긴장했는지 마이크를 건네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부르는 호칭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보다 잠시 릴렉스하고 시작하는 편이 낫겠군요.”
“아, 앗. 감사합니다.”
뺨을 붉힌 그녀는 얕게 숨을 쌕쌕대기 시작한다.
저러면 안 하니만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그, 그럼, 인터뷰를 시작해도 될까요?”
“제가 물어봐야 할 거 같은데요.”
“저, 저, 저는 괜찮습니다.”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는 기자에게 고갤 끄덕여 준다.
그러자 우릴 비추던 카메라에 빨간색 불이 들어온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뉴스 라인의 리포터 안효주입니다. 오늘은 닉스의 창업주이자 명예회장을 역임하고 계신 강현우 회장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강현우 회장님.”
“안녕하세요.”
“2020년 11월 12일. 그러니까 어제 한국 시각으로 밤 11경, 닉스의 시가 총액이 20조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이것은 뉴욕증권 거래소 전체의 50%에 달하는 가치에 해당하는데요. 이에 한 말씀을 하신다면요?”
“우선, 닉스가 과분할 정도의 사랑을 받는 것 같아 기쁩니다. 성원에 보답하는 차원에서라도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회장님, 일각에선 닉스에만 쏠린, 비정상적인 자본 흐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잠시만요. 비정상적이라는 걸 누가 결정하는 겁니까?”
약간 쏘는 듯한 말투 때문인지 그녀의 몸이 얼어붙었다.
“이건 제 의견이 아니라 각계 전문가들의 말을 빌린 겁니다.”
“흠, 전문가가 맞는지 의심스럽군요. 저희는 투자처일 뿐,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투자자들의 몫입니다.”
“아, 제가 묻고 싶었던 것은 투자 문제가 아니라 기술 발전 문제였습니다.”
그녀가 내 눈치를 살핀다.
난 계속해 보라는 뜻으로 고갤 끄덕여 줬다.
“지난 십 년간 경쟁 관계던 IT 기업들. 그러니까 구글, 인텔, AMD, 퀄컴, MS, 노키아, IBM 등등 대부분이 닉스 산하로 편입되거나 사라졌잖습니까?”
“그랬었죠.”
“그 때문에 앞으로의 IT 기술 발전 방향이 다양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의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간신히 질문을 마친 기자가 제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양성은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집중으로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면 굳이 다양성이 필요할까요?”
“즉, 지금으로 충분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충분하고 말고요. 예를 들면, 닉스의 전면 자율주행 시스템을 들 수 있겠군요.”
그녀는 아는 부분이 나온 탓인지 잽싸게 맞장구를 쳐 온다.
“자율주행 도입 후, 교통사고가 1% 정도로 줄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물류비 절감으로 물가 안정에도 한몫하고 있고요.”
“그뿐만 아닙니다. 메가 푸드의 등장으로 기아가 사라졌고 암과 희귀병들도 하나둘 정복되고 있지요. 이 모든 일이 불과 5년 만에 이뤄진 성과입니다.”
난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말을 계속했다.
“여러분. 닉스는 궁극적으로 인류가 노동과 자본에서 해방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10년 안에 가능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예상에도 없던 폭탄 발언에 리포터가 어찌할 바를 모른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인터뷰를 강제로 종료시켰다.
“저기, 회장님!”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밖으로 걸어 나갔다.
끼익.
문을 살짝 열자, 금속의 듣기 싫은 소리가 난다.
힘껏 문을 열어젖힌다.
서해의 탁 트인 수평선과 바닷바람이 나를 맞이한다.
“현우 씨!”
수아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 온다.
“인터뷰는 벌써 끝났어요?”
“대충 마무리 지었지.”
“또 기자를 울리거나 한 건 아니죠?”
“누가 들으면 내가 진짜 그런 줄 알겠다.”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눈꼬리를 치켜 올린다.
“현우 씨는 이런 식으로 디폴트 인상이 날카로워요. 그래서 상대가 지레 겁먹어 버린다고요.”
“또 쓸데없는 소릴.”
그녀의 머릴 툭 치고 갑판 끝자락으로 걸어간다. 그곳에 늘어져 있는 난간에 기댄다.
아랠 내려보자 검은 바다색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으로 빨려들어 갈 듯한, 그런 느낌이 전해진다.
“아래를 왜 그리 빤히 보고 있어요? 그러다 빠져요.”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옛날 생각?”
그녀는 뒷이야기를 바라는 눈빛을 보내온다.
“바다에 빠진 적이 있었거든. 딱 이맘때쯤이었을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됐냐면…….”
난 얼굴을 그녀 앞에 바짝 들이밀고 말했다.
“죽었어.”
수아의 표정이 바닷바람보다 더 싸늘해진다. 난 괜히 한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농담이라도 그런 농담은 하지 마요. 저 화낼 거예요.”
그때였다.
주머니에서 부르르 하고 떨림이 느껴진다.
“잠시만. 뭐가 왔네.”
“또 적당히 넘어가려고 그러죠?”
“그런 거 아냐.”
휴대폰을 꺼내 들자.
하얀 배경에 까만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과거로 돌아가시겠습니까?]
[Yes/No]
어라?
순간 몸이 돌처럼 굳어버린다.
이건 미래에서 보낸 유리병 편지. 마지막 희망을 담아서 과거로 보낸 구조신호다.
이 근방에 있는 누군가에게 무작위로 전달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나를 적임자로 콕 집어서 선택했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대로 미래를 맞이해도 괜찮은 걸까? 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꽉 채운다.
내가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차라리 처음부터 진행할 수 있다면 더 완벽하게 대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수아와 눈이 마주친다.
“무슨 일이에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휴대폰을 바다에 던져 버린 뒤였다.
당황한 수아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는다. 난 그녀를 꼭 끌어안아 멈춰 세운다.
“아!”
휴대폰은 슬로우모션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퐁당.
그와 동시에 시간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현우 씨, 왜……?”
놀라서 커다래진 눈이 나를 향해 깜빡거린다.
내가 왜 그랬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강현우. 넌, 이미 최선을 다했어. 그래, 그거면 된 거다.
그리고 이 현실에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잖는가.
날 빤히 보는 그녀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헝클어트린다.
그리고 별거 아니란 듯 말했다.
“그냥 스팸 문자였어.”
※작품 후기
드디어 최종장이 끝났습니다.
약간 어설프게 들어갔던 도입부.
따끔한 질타를 받았던 애플편.
반응은 좋았지만, 더 잘 쓸 수 있었던 일본편.
북한과의 관계까지 이어가고 싶었던 트럼프와 만남까지.
쓰다 보니 계속 아쉽다는 소리만 쓰게 되네요.
제 미숙함으로 모든 걸 담지 못해 아쉬우면서도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래도 이번 작품을 쓰며 많은 것을 배운 거 같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봐주시는 독자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차기작은 이번 작품을 반면 교재 삼아 더 잘 쓸 수 있게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적의 IT재벌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