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204화
-휴. 현우야. 전기차를 반대하는 기존 완성차 업계들 로비가 장난이 아니다. 이놈들 완전 사생결단을 낼 기세야.
-에이, 매형도 참. 사생결단이고 뭐고 간에 전기차 연합엔 폭스바겐 그룹과 도요타, 르노까지 있는데 상대가 되겠어요?
-이놈아. 그리 쉬운 일이면 내가 이런 말도 안 해. 완성차 연합엔 석유 재벌들이 뒤를 봐주고 있어.
-석유 재벌이면 사우디 쪽요?
-사우디뿐만 아니라 중동 전체가 똘똘 뭉쳤다니까. 그놈들이 오일 머니로 백악관을 얼마나 들쑤셔 놨는지, 올해는 전기차 보조금이 끊어졌고 앞으론 가솔린 차량에 면세 혜택까지 얹어 준다더라. 옘병, 이게 말이야 방구야?
-와우. 세게 나왔네요.
-아무튼, 현우 네가 좀 움직여 주면 좋겠는데 말이지.
-지금 우는소리 하시는 이유가, 은근슬쩍 은퇴 타이밍 잡으시려는 건 아니죠?
-시끄러워 인마. 그놈의 연구인지 나부랭인지 빨리 끝내버리고 CEO 자리나 도로 가져가. 요즘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원형탈모가 왔을 정도다.
-매형을 위해서라도 두피 촉진제를 개발해야겠는데요.
-웃어넘길 말이 아니다. 너도 훅 가는 건 순간이야. 지금부터라도 관리 잘해. 알겠지?
-알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또 연락하마.
뚝.
스크린에 비치던 박준오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어서 얕은 한숨 소리가 실내를 메운다.
“휴…….”
의자 등받이에 무너지듯 기대는 여인. 그는 SG그룹의 유수아였다.
그녀는 시선을 옆으로 돌린다.
그곳엔 방금 통화했던 강현우는 온데간데없었고, 대신 동그란 드론이 떠다니고 있었다.
“수고했어, 씬.”
-감사합니다.
다시 휴, 하고 한숨 소리가 퍼진다.
드론은 눈치를 보는 것처럼 그녀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다.
“왜? 할 말이라도 있어?”
-임상실험실에 갈 시간입니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시간이 이렇게 된 줄도 몰랐네.”
몸을 일으킨 수아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는 의자에 걸린 가운을 걸쳐 입었다.
-이번 케어는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아냐. 내가 하게 해줘. 나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알겠습니다.
수아는 앞장서서 걸음을 재촉한다.
몸에 맞지 않는 가운이 바닥에 쓸려댔지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임상실험실]
수아는 잰걸음으로 실험실 입구까지 도착했다.
그곳엔 간단한 위생 장비와 에어커튼이 설치돼 있었다.
그녀는 능숙하게 마스크와 장갑을 찾아 끼고, 소독까지 하고 난 뒤에야 입구의 센서를 건드렸다.
드륵.
굳게 잠겨 있던 실험실 문이 열린다.
연구소 대부분이 전자장비와 실험기구로 난잡했지만, 임상실험실만은 침실처럼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기, 나 말이야……. 잘하고 있는 걸까?”
-어떤 부분을 말씀하십니까?
“전체적으로 말이야.”
-마스터 강을 간호하는 것이라면 10점을, 그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라면 4점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평가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수아는 드론의 카메라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인간은 힘들 때면 누군가에게 위안받길 원해.”
-그 누군가가 인공지능인 제가 된 겁니까?
“어휴, 지금 상황을 모두에게 비밀로 해뒀으니, 너 말고 털어놓을 대상이 없잖아.”
드론은 생각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제 자리를 빙글빙글 돈다. 그러다 한참 뒤 음성이 흘러나온다.
-사용자 유수아는 굉장히 잘 해내고 있습니다. 10점 드리겠습니다.
“늦었어. 이미 빈정 상했거든?”
수아가 흥, 하고 콧소리를 내며 가버리자, 드론은 몸체를 살짝 갸웃거리며 중얼댄다.
-인간의 감정, 특히 여자 쪽은 너무 복잡합니다.
임상실험실 가운데는 전동 시트 2개가 준비돼 있었다.
하나는 빈 시트였고, 다른 하나에는 잠이 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사내가 누워 있었다.
수아는 시선을 사내 쪽으로 둔다.
그는 미래로 가서 돌아오지 못한 강현우였다.
손을 뻗어 뺨에 가져댄다.
약하지만 확실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현우 씨…….”
그의 얼굴을 마주하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지금 어디예요? 언제 와요? 돌아올 수는 있는 거죠? 저……. 너무 힘들어요.”
그가 미래로 넘어간 지도 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포기했다면 벌써 열두 번도 더 했을 만한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내가 가서 데리고 오리라.
그런 일념 하나만으로 고된 적응훈련을 매일 같이 이어가고 있었다.
“저기, 씬.”
-말씀하시죠.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말이야. 내가 미래로 넘어가서 그이를 만났다면.”
-마스터 강이 어느 시대에 있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가상에서 만날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그러니까 만약이라고 했잖아. 만! 약! 에!”
드론의 카메라가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이리저리 조정된다.
-예, 만났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땐 현우 씨를……. 현실로 데려올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아는 드론을 향해 웃어 보인다. 그녀의 눈가에 고인 눈물 때문일까? 그 미소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희미했다.
“거짓말이라도 고마워.”
-…….
“나 정말 바보 같지? 이걸 몇 번이나 물어보는 건지. 어휴, 빨리 정리나 해야겠다.”
-여기 손수건입니다.
드론의 얇은 집게엔 손수건이 걸려있다.
수아는 손수건을 받아들고 말했다.
“나 말이야. 처음엔 널 많이 원망했잖아.”
-그랬었죠.
“지금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네가 없었다면……. 못 버텼을 테니까.”
눈물을 닦아 낸다.
여전히 눈앞이 뿌옇다. 한 번 닦는 거로는 부족했나 보다.
다시 눈물을 훔치려는데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닦으면 눈 화장이 다 번지잖아. 눈이 판다처럼 될걸?”
“판다면 어때. 여기선 누가 볼 사람도 없어.”
“우리 아직 신혼 아니었어?”
“에엥?”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갤 홱 돌린다. 그러고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 나온다.
“현우 씨?”
* * *
익숙한 천장이다.
이곳은 연구소에 딸린 의무실이다.
현실로 돌아온 지도 벌써 닷새가 지났다.
미래와 인공지능.
부의 집중화로 인한 분쟁.
그리고 인간의 욕망.
이젠 미래에서 겪었던 모든 일이 꿈처럼 느껴진다.
“끙…….”
몸을 움직이려니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전신에 납덩어리라도 매단 느낌이다.
그래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언제까지 누워 있을 순 없었으니까.
“윽…….”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걸 듣고 음식을 준비하던 수아가 벼락같이 달려온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일어나는 연습.”
“아직은 일어서면 안 돼요. 근육이 회복되려면 한참은 멀었다고요. 그렇지, 씬?”
대뜸 드론이 말을 받는다.
-맞습니다. 적어도 석 달간은 절대 안정이 필요합니다.
내가 없던 사이에 저 둘은 환상의 콤비가 됐다. 무슨 일이든 잔소리를 해대는 콤비 말이다.
“그놈의 잔소리는.”
뭐, 잔소리를 안 했어도 일어나진 못했을 거다. 지금의 난 혼자서 돌아눕는 것만으로도 땀으로 샤워를 해야 했으니까.
“후우……. 계속 누워 있으려니 좀이 쑤셔.”
“그럼 이야기나 풀어주세요.”
“뭘 풀어?”
“미래 이야기요. 그 이후는 어떻게 됐어요? 혁명은 성공했어요? 계층 간에 갈등이 해결된 건가요? 아니면……. 배드 엔딩?”
손을 내젓고 싶었지만, 힘이 없어서 고개만 돌린 채로 말했다.
“비밀이라고 했잖아.”
“칫, 너무해.”
삐친 것처럼 보이지만 저건 삐친 척을 하는 거다. 미래 이야기가 어지간히도 궁금했나 보다.
“미래의 강현우는 잘 먹고 잘살고 있어.”
순간 눈이 번쩍하고 빛난다.
“그리고 다른 건요?”
“고놈 콜라를 너무 좋아해서 이빨이 누렇더라. 미백 좀 하라고 했는데 귀찮다나 뭐라나.”
“아이참, 그런 거 말고요. 세계가 어떻게 됐는지, 그리고 미래의 인공지능이 어떤 영향을 줬는지, 그런 부분을 말해줘야죠.”
“알아서 뭐해? 이젠 전부 다 바뀔 텐데.”
“피이.”
고갤 돌려버리는 그녀.
“삐쳤어?”
“그런 거 아니거든요?”
뺨이 잔뜩 부풀어 있는 걸 보니, 이번은 진짜로 삐쳤나 보다.
“내가 이번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게 있는데.”
그녀의 귀가 쫑긋 선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서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더라. 아니지,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그게 무슨 뜻이에요?”
“말 그대로야.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갈구하고 더 얻으려 들어.”
“그게 인류가 번성한 이유잖아요.”
“맞아. 하지만 더는 발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두가 풍족해진 다음은 어떻게 될까?”
수아는 잠시 생각을 고르더니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내놨다.
“모두가 잘사는 유토피아가 되는 게 아닐까요? 힘들게 일할 필요도, 굶을 걱정도 없어질 테니까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아닌가요?”
“너도 봤잖아. 그 후에 어떻게 되는지를.”
“제가 봤다고요? 대체 뭘……. 헙, 혹시?”
2034년.
그때 이미 인류는 노동에서 완전하게 해방된 뒤였다.
더불어 노화까지 극복해 버렸으니, 현대인이 생각하는 유토피아가 완성된 셈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인류는 부의 불평등을 맞서서 싸웠지?”
“미래의 현우 씨가 혁명이라고 했었죠. 인류해방전선이었던가요?”
“맞아. 그들은 성공했어. 완전하진 않았지만.”
“와, 다행이네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입가에 쓴 웃음이 걸린다.
“그 뒤 10년은 어땠을 거 같아?”
“모두가 행복해졌으려나요?”
“아니. 그땐 인공지능의 소유권 문제로 국가 단위의 전쟁이 벌어졌어. 그 후 10년 뒤, 또 10년 뒤, 또 10년 뒤. 지겨울 정도로 시간을 넘고 또 넘었지만 싸움의 끝을 보는 건 불가능했지. 세상에 자원은 썩어 넘칠 정도로 많은데, 대체 왜 그럴까?”
내 격양된 목소리 탓인지 분위기가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다.
“미안. 내가 좀 흥분했지?”
“아니에요. 현우 씨가 어떤 미래를 보고 왔는지, 그리고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언제부턴지 땀이 폭포수처럼 흐르고 있었다.
땀을 대충 베개에 닦아 내고 말을 계속한다.
“난 세상을 그런 꼴로 만들고 싶진 않아.”
“하지만 그게 인간의 본능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아냐. 아직은 기회가 남아 있어.”
이를 꽉 물고 주먹을 말아 쥔다. 그러고는 상체를 스프링처럼 튕겨서 단숨에 일으킨다.
“현우 씨!”
수아가 놀라서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땐 이미 몸을 일으킨 뒤였다.
“후우-”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요?”
“괜찮아. 이쯤은 거뜬해.”
말은 그렇게 했다만 허리가 분리된 것처럼 아프다.
난 억지로 광대를 추켜올리며 말을 이었다.
“수아야. 내 계획을 들어봐.”
“무슨 계획인데요?”
“먼저 모든 세상의 부를 한 곳으로 집중해. 그리고 거기에 모인 자원을 가공하고 모두 공평하게 배분하는 거지.”
“세상에나. 그건 불가능해요. 공산주의가 어떻게 실패했는지 아시잖아요.”
“아니, 가능해. 그 주체가 완전무결한 인공지능이라면 말이야.”
너무 급진적인 계획이라서일까? 수아는 말을 잇지 못하고 표정이 굳어버렸다.
“수아야 잘 들어. 이 계획이 성공하면 미래에 있을 모든 분쟁과 갈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어.”
“하, 하지만…….”
“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 줄 알아. 하지만 인류를 영원히 끔찍한 전쟁 속에서 살게 할 거야?”
석상처럼 굳어버린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가로저어진다.
“좋아. 그럼 나를 좀 도와줘. 할 수 있지?”
“……어떻게요?”
“당장 누굴 좀 만나야 해. 하지만 몸이 이런 꼴이니 만날 수가 없잖아? 그치? 그러니 수아 네가 나를 대신해서 그 사람을 만나줘.”
그녀는 내키지 않는지 한참 동안 눈동자를 굴려댄다.
“제가 어떻게 현우 씨를 대신해요. 차라리 몸을 회복하고 만나는 건 어때요?”
“아니야. 그럴 시간이 없어. 그는 지금이 아니면 만나는 이유가 없어지는 사람이야.”
“누군데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난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줘서 그녀에게 뱉어냈다.
“도널드 O 트럼프.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 사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