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203화 (202/206)

기적의 IT 재벌 203화

타임 오버.

게임이라면 죽고 다시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곳은 가상의 게임 속이 아니다.

미래와 현실, 그리고 가상이 기묘하게 뒤섞인 세계.

이곳에서의 희로애락은 모두 뇌에 각인 되며, 고통은 뇌의 고통으로, 죽음은 뇌의 정지를 뜻한다.

“하하……. 뭐 괜찮아요. 저 여기로 오기 전에 각오했었거든요. 여차하면 현우 씨와 함께 이곳에서 살기로요.”

괜찮다는 수아의 목소리는 전혀 괜찮게 들리지 않는다.

충분히 이해한다. 제아무리 각오를 다졌더라도, 가상세계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당혹스럽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 어차피 배경이 미래가 된 것뿐이지 함께 한다는 건 달라지지 않잖아요? 그죠?”

“아니, 많이 달라. 아주 많은 것들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온 탓인지 그녀의 말이 뚝 끊어진다.

“우린 이곳에서 이방인이야.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모르고, 인증 칩인지 뭔지도 없어서 경찰을 만나면 또 끌려갈 수밖에 없겠지.”

“모르는 건 차차 배우면 되죠. 칩은 가서 심어 달라고 하면 되고요.”

“아니, 그리 쉽진 않을 거야.”

“왜요?”

“잊었어? 우린 미래를 체험하는 것일 뿐, 진짜 미래의 강현우와 유수아가 된 건 아니야.”

실제로 직접 미래의 내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자아에 혼동이 올 정도였기에 지금의 간접체험이라는 방식을 개발한 것이다.

“그 말대로라면, 이 세계에는 또 한 명의 현우 씨와 제가 있다는 말이에요?”

“그래. 이 세상에 진짜가 있는데 가짜인 우리를 인증해 줄 리가 없지. 안 그래?”

“그럴 수가…….”

“하지만 그게 오히려 우리에겐 돌파구가 될 거야.”

힘없이 떨어지던 고개가 번쩍 들린다.

“어떻게요?”

“잊었어? 네가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 말이야.”

“제가 오게 된 이유는……. 현우 씨에게 이곳이 가상임을 확실히 인지시키기 위해서?”

“맞았어. 그때의 의도대로 지금 이 세계가 가상이라는 것을 뇌에 박아넣을 수 있다면,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그거랑 이 세계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아!”

뭔가를 알아챘는지 수아가 손뼉을 짝하고 마주친다.

“이 세상에 있는 또 한 명의 우리를 만난다?”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을 확실하게 부정할 수 있겠지.”

* * *

문 너머로 부산함이 전해진다.

이어서 금속의 마찰음과 함께 달칵하고 뭔가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문이 열림과 동시에 눈이 마주친다.

“헛!”

깊게 눌러쓴 후드 아래로 상대의 놀란 표정이 생생하다.

철컥.

뭔가가 이쪽으로 겨눠진다.

“잠시만 내 말을 들어줘.”

“개수작하지 마라.”

섬뜩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지만 두렵진 않았다.

“침착해. 나를 보고 이야기해 줘. 내가 누군지 알지?”

“너…….”

“난 강현우다. 과거의 너지. 날 죽이면 미래의 너도 무사하진 못해.”

겨눠진 무기는 거둬지지 않는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상대방의 경계는 확연하게 수그러진 뒤라는 것을.

“증거는?”

“어릴 적 다니던 오락실은 황금성오락실. 주로 격투게임을 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던전앤드래곤을 했었지. 오래 하려고 마법사나 클레릭을 많이 골랐는데…….”

“그만하면 됐어.”

푹 눌러 쓴 후드가 벗어진다.

이번은 내가 놀랄 차례였다.

“컥!”

그는 젊을 때, 그러니까 지금의 나와 완전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뭘 놀라? 내 얼굴 처음 봐?”

“그게 아니라. 어, 어떻게 하나도 늙지 않은 거야?”

“아하, 이거?”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내걸고선 제 팔목을 움켜쥔다.

“잘 봐라.”

팔이 쑥 빠진다.

달리 표현할 방법은 없다. 그냥 쑥 빠졌다.

“뭐, 뭐, 뭐, 뭐야?”

“오토 암을 모르는 걸 보니, 이 시대 놈이 아닌 건 확실하군.”

그는 픽 웃으며 팔을 제자리에 박아 넣는다.

“오토 암?”

“착용자에게 곱절의 완력과 더불어 정밀한 작업을 가능케 하지. 이런 식으로.”

녀석은 신발장의 귀퉁이를 살짝 움켜쥔다.

으득.

신발장은 본디 모양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져 버렸다.

“뭐, 이젠 구닥다리 기술이나 다름없지만.”

“이게 구닥다리라고?”

그는 얼빠진 내 얼굴을 보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린다.

“그나저나, 옆에 있는 아가씨는 누구지? 내 기억으로 저런 이쁜 애인은 없었는데 말이야.”

“내가 온 과거는 지금과 조금 다른 일이 생긴 과거야.”

“복잡하군.”

그는 방의 중앙으로 가더니. 길게 늘어진 줄을 잡아당긴다.

방이 환해진다.

조명은 우리가 아는, 그 흔한 백열전구였다.

덕분에 나와 수아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왜? 전구 처음 봐?”

“처음 보는 게 아니라, 이런 미래까지 백열전구를 쓰는 게 이상해서.”

“요즘은 이런 게 유행이거든.”

그는 흥얼거리며 냉장고를 연다. 냉장고 역시 80년대에 쓰이던 냉장과 냉동이 한 칸에 있는 구형 제품이었다.

“음료는 콜라? 탄산수? 미안하지만 커피는 없어.”

“콜라.”

“저는 탄산수로 부탁드려요.”

우리 앞에 음료가 놓인다.

디자인은 달랐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아는 그 음료 캔이 맞았다.

그러나 막상 음료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어이, 왜 안 마시는 거야?”

“음……. 그게.”

그는 우리 표정을 한 번씩 훑어보더니.

“아차, 내가 너무 오버했나? 오랜만에 손님이 와서 그런 거니까 그 부분은 이해해달라고.”

“아니 그런 것보다. 넌 내가 과거에서 왔다고 했는데, 놀라지 않는 거냐?”

“과거?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는 자신의 콜라를 시원하게 열어젖히더니, 한 모금 깊게 넘기곤 말을 계속했다.

“이 세상은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야. 과거에서 또 다른 내가 왔다고? 그게 어떻단 거야? 타임머신 나부랭이라도 개발된 거겠지. 안 그래?”

“이 시대에 타임머신이 개발됐어?”

“아직은 없지. 하지만 미래엔 생길걸. 언젠가는 그 망할 인공지능들이 개발해 낼 테니까.”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나오자,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의 목소리에서 적의가 느껴졌다.

잠시 대화가 끊긴다.

강제 티타임이 이어졌고. 이번에도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넌 언제 넘어왔어?”

“정확하게 2014년 12월.”

“좋아, 2014년의 나. 넌 무슨 이유로 이 막장 미래까지 찾아온 거냐?”

“막장 미래라고?”

“그럼 이게 막장이 아니면 뭐냐?”

그가 허공에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긴다. 그러자 우리를 사이에 둔 허공에 스크린이 떠올랐다.

자동으로 영상이 재생된다.

두두두두.

쾅!

총과 대포가 불을 뿜자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처참한 광경이 이어진다.

전쟁영화에서나 볼법한 전투 장면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적군은 총을 든 인간이 아니라 사족 보행을 하는 로봇과 날아다니는 드론이었다.

“혹시 인공지능이 인류를 적으로?”

“워워, 진정해. 그런 스토리는 아냐. 그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싸움일 뿐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 기술발전이면 전 인류가 풍족하게 먹고살 수 있을 텐데, 어째서 또 피를 흘려야 한단 말인가?

그가 설명을 이어 나간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그래, 인공지능부터 설명하는 게 정답이겠군.”

그는 음료를 한 번 더 홀짝이고 말을 잇는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에는 특이점이 왔어. 그 전까지의 기술발전 그래프가 이런 식이었다면…….”

그의 손이 낮은 곳에서 완만하게 올라간다. 그러다가 갑자기 최대치로 손을 치켜올린다.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개발하게 된 이후엔 갑자기 이런 식으로 대폭 상승하게 됐다는 말이야. 이해했어?”

이런 개떡 같은 설명으로 이해했을 리가 있나.

“수치를 확실하게 설명해 줄 수 없어? 너무 추상적이잖아.”

“흠, 이걸 과거인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 그래. 무어의 법칙이라고 들어봤어?”

이번엔 수아가 끼어들었다.

“알아요. 반도체 집적회로 성능이 2년마다 2배로 성장한다는 법칙이잖아요.”

“맞았어, 똑똑한 아가씨네. 하지만 내가 말하고픈 건 무어의 법칙이 아니라 파고의 법칙이지.”

“파고의 법칙요?”

“그래, 파고. 알파고를 따서 붙은 거야. 2년이 지날 때마다 인공지능 기술은…….”

그가 손가락 2개를 펴 보인다.

“2배씩 성장하나요?”

“아니 2배가 아니라 20배만큼이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다.

2배와 20배는 단순한 10배 차이가 아니다. 딱 10년만 세월이 흐르면 기술 격차는 320만 배나 벌어지게 된다.

만약 그런 속도로 기술이 발전한다면…….

“인간이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없게 될 텐데?”

“맞아.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어. 인공지능을 개발하던 IT 업체. 그러니까 애플, 구글, IBM, 텐센트 같은 기업들이 너무나도 앞서나간 나머지 남은 모든 파이를 집어삼키게 돼.”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당장 닉스만 해도 애플이나 오성 같은 경쟁자의 몫을 엄청나게 빼앗아 왔으니까.

“부의 집중은 철저한 기득권 카르텔을 만들었고, 하위계층은 넘볼 수도 없는 거대한 벽이 생겼지.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어. 자본의 집중으로 2032년에는 늙지 않는 유전자 배열을 찾아냈고 전 인류가 노화에서 해방돼는 계기가 됐으니까.”

“늙지 않는다면 지금의 너처럼?”

“맞아. 하지만 마냥 좋은 건 아니었어. 늙어서 죽는 사람이 없으니 필연적으로 다른 방식의 인구조절에 들어가야 했거든.”

“다른 방식이면……. 출산 억제겠군.”

“맞아. 기득권 외엔 출산이 금지됐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때의 우린 눈을 감아 버렸어. 그 누구도 늙어 죽는 건 싫었거든.”

출산을 장려해도 출산율이 안 올라가는 현대를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어. 기득권 놈들은 인체에 감시 칩을 심고, 정보를 통제해서 우릴 관리했어. 나중엔 범죄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뇌까지 헤집으려 들더군. 망할 자식들 누굴 병신으로 아나. 퉤!”

“그래서 싸움을 벌인 거냐?”

“흥, 이건 싸움이 아니야. 인류를 해방하는 혁명이지.”

그는 팔을 걷어붙이고 문신을 보여준다. 그곳엔 ‘인류해방전선’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우린 녀석들 서버를 완전히 날려버릴 생각이야.”

“승산은 있고?”

“물리적으론 힘들겠지만 수천, 수억의 해커 동지들이 동시에 달려든다면 충분히 가능해. 성공만 하면 인공지능이 없던, 그 옛날로 세상이 리셋되는 거지.”

이곳은 닉스가 없던 미래다.

닉스가 존재하는 나의 미래에도 세상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누군가 내 등을 콕콕 찔러 댄다.

“현우 씨.”

“응? 왜?”

“휴대폰이 다시 작동해요.”

벌떡 일어서서 휴대폰을 켜본다. 그녀의 말대로 먹통이던 휴대폰이 멀쩡하게 작동했다.

“어이, 갑자기 왜 그래?”

미래의 내가 묻는다.

“이제 갈 시간이 됐다는군.”

“그래? 아쉽게 됐네. 참으로 오랜만에 말동무를 만났는데 말이야.”

“또 만날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난 시선을 수아에게로 돌리고 말했다.

“늦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바로 시작하자.”

“알겠어요.”

“내가 셋을 세면 가는 거야. 알겠지?”

“예.”

우리가 떠나려 하자, 미래의 내가 급히 막아 세운다.

“잠시만 기다려!”

“왜? 할 말이 남았어?”

“그게 그러니까……. 만약 다음이라도 미래에 가게 된다면.”

“난 현실로 돌아가는데?”

“그러니까 만약이라고 했잖아.”

“좋아. 일단 말이라도 해봐. 들어는 주지.”

그는 고민되는지 한참이나 입을 우물거린다. 그러다 결국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됐다. 그냥 가라.”

“혹시 혁명이 성공했는지 보고 와 달라는 거 아냐?”

“너, 그걸 어떻게…….?”

“난 과거의 너다. 당연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은 예상할 수 있지.”

“칫, 사람 쪽팔리게.”

난 그의 어깨를 툭 치곤 고갤 끄덕였다.

“가능하면 보고 와주마.”

“고맙다, 짜식아.”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성격이나 행동, 말투까지도 비슷한 녀석.

40년이나 지났음에도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나 보다.

다시 시선을 수아에게로 돌린다. 그녀는 우리 대화가 언제 끝나는지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는 끝났어?”

“아까부터 끝났거든요?”

뾰로통한 모습이 퍽 귀였다. 난 그녀의 뺨을 어루만진다.

“뭐예요?”

그러다 갑자기 볼을 꽉 꼬집는다.

“아파요!”

“좋아. 이번은 네가 셋을 세.”

그녀는 아까보다 몇 배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날 노려본다.

“안 세?”

“재촉 안 해도 셀 거예요. 하나! 둘! 셋!”

그녀가 셋을 외침과 동시에 하얀 빛무리들이 퍼져 나온다.

빛들은 수아를 환하게 감싸 안았고, 잠시 후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어이, 너…….”

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곳엔 내가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가씨는 어디로 사라진 거야?”

“그녀는 본래의 시대로 돌아갔다.”

“그럼 너는?”

“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야지.”

“뭐?”

난 그에게 이가 드러날 정도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보스를 클리어할 때까지 포기 않는 성격이라는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