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202화
컴퓨터는 내 인생의 가장 절친한 친구라 할 수 있다.
코흘리개 시절엔 고인돌 따위의 도스 게임으로 안면을 텄고, 학창시절엔 대항해시대와 삼국지, 스타크래프트로 사랑을 나눴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내가 먹고살 수 있게 도와주는 지원군 역할도 자처했다.
그러나 10년의 세월이 흐른 친구는 내가 다룰 수 없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
“이걸 어떻게 켜는 거야?”
전원은 어찌 켰다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System Error! 입력 시간이 경과했습니다. 비밀번호 인증절차를 다시 진행해 주십시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싶어도 컴퓨터에 달린 건 모니터 하나가 전부였다.
그 외에는 흔한 키보드나 마우스도 없었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 감이 안 잡힐 정도다.
어떻게든 비밀번호를 입력을 해보려고 낑낑대던 차에.
“현우 씨, 현우 씨! 빨리 와 보세요. 어서요!”
거실을 살펴본다던 수아의 목소리였다.
혹시 큰일이라도 났나 싶어서 헐레벌떡 방을 뛰어나간다.
“뭐야?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저기 한번 보세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창밖의 하늘이였다.
“하늘? 저기 뭐가 있다고 그래?”
“자세히 보세요. 뭐가 날아다니잖아요.”
“뭐가 있다고…….”
작은 점이 줄지어 떠다니기에 새들이 날고 있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새가 아니었다.
그건 짐을 줄줄이 싣고 있는 드론의 행렬이었다.
“드론 배송은 효율이 안 나올 텐데 쓰고 있단 말이야?”
“이 시대는 효율을 뛰어넘을 정도의 자동화가 이뤄진 게 아닐까요?”
“아니, 이 시대라고 해봐야 방금 있던 곳에서 고작 10년이 흘렀을 뿐이라고.”
“그럼 저건 어때요?”
수아가 이번에 가리킨 곳은 차가 줄지어 내달리는 도로였다.
“평범한 자동차잖아? 배기구가 없는 걸 보니 전기차 같긴 한데……. 그 외에는 특별한 게 없어 보여.”
“차를 보는 게 아니라 차가 이동하는 패턴을 한번 보세요.”
그녀의 말대로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흐름을 유심히 지켜본다.
운행 중인 차들의 속력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딱 적당한 속력을 유지 중이다.
또한, 앞차와 뒤차의 간격은 자로 잰 것처럼 모든 차가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모든 상황에서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는, 완전한 자율주행에 도달한 건가.”
“그런 거 같아요. 그리고 10분 정도를 지켜봤는데 도로에는 일체의 추월이나 과속 같은 특이 행동을 하는 차가 없었어요.”
“진짜?”
“예, 진짜예요. 마치, 줄지어 이어진 기차를 보는 거 같았다니까요.”
완전한 자율주행은 그리 놀라운 게 아니다. 지금도 기술은 거의 완성된 것과 다름없었고, 남은 건 데이터를 모아서 완전하게 만드는 단계만 남았을 정도였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놀란 이유는 10분간, 단 한대도 수동 운전 차량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거다.
“이건 말이 안 돼. 도로의 모든 차가 자율주행으로 움직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기술발전 속도로 봐서는 지금쯤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은 거 같은데요.”
“아냐. 자율주행 기술이 완성된다 한들, 기존의 구형 차들은 어떻게 할 거야? 전부 폐차시키고 새 차로 바꿔준다? 그건 절대 무리야.”
“아하, 듣고 보니 그렇겠네요.”
“게다가 수동 운전을 즐기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텐데, 도로엔 전부 자율주행 차만 다니고 있어. 이 말은 즉, 도로에 수동 주행 자체를 금지했다는 소리야.”
“잠깐만요. 자동차는 대표적인 사유재산 중 하나인데 그걸 정부에서 통제한다고요? 이게 가능한 일이에요?”
“장기적으로 바꿔나가는 건 모르지만 고작 10년 만엔 절대 불가능하지.”
수아는 당황스러운지 헛웃음을 흘려댄다.
“하하……. 그런데 창밖엔 그게 실현된 풍경이 펼쳐져 있네요.”
“분명, 이 시대엔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무슨 일이.”
난 창밖을 다시 시선을 던진 뒤 말했다.
“일단 밖으로 나가보자. 좀 더 확인해 봐야겠어.”
대로변에 도착한 우리는 도시에 막 상경한 시골 사람처럼 주변을 둘러봤다.
물건을 싣고 하늘을 줄지어 떠다니는 드론. 공장에서 찍어 낸 것처럼 같은 모양의 고층건물들.
저 멀리에는 에어 튜브를 접목한 고속철도도 운행 중이다.
“도로를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와닿네요. 이건 자동차가 아니라……. 24시간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를 보는 것 같아요.”
“덕분에 교통의 효율은 확실히 나아졌을걸.”
“그래도 저는 별로예요. 뭔가 거부감이 든다고 할까요?”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현대의 노인들도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처음 접했을 땐 똑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길을 걷다 보니 건설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규모를 보아하니 주거용 건물을 짓는 듯했다.
“현우 씨, 저것 좀 보세요!”
“뭔데 그래?”
그녀가 호들갑을 떨어대는 곳엔 4족 로봇이 건설 자재를 운반하고 있었다.
“저긴 로봇이 자재를 조립하고 용접까지 하는데요? 이 정도 기술력이라면 건물 하나 만드는 건 일도 아니겠어요.”
“어쩐지 길가에 있는 건물들이 다들 비슷한 모양새더라.”
“더 놀라운 건 감독하는 사람도 없어요. 완전한 무인 건설화라니, 이런 시대라면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된 게 아닐까요?”
모든 인간이 24시간을 자신이 하고픈 일에만 몰두하는 삶.
과연 그녀의 말처럼 유토피아적 미래가 우릴 기다리는 걸까?
우린 궁금증을 풀기 위해, 건설 현장을 더 가까이서 관찰하기로 했다.
로봇이 정말 인간의 조종 없이 스스로 작업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건설 현장에 거의 다 다가갔을 때였다.
누군가 우릴 불러 세운다.
“거기 두 사람 잠깐! 현장에 다가가면 안 돼.”
경찰 제복을 입은 사내였다.
특이점이라면 타원형의 고글을 쓰고 있다는 것 정도.
“그럼 여기서는 구경해도 됩니까?”
그는 우리를 이상하다는 듯 훑어본다.
“여기서 얼쩡거려봐야 좋을 거 하나도 없어. 그러니 어서 돌아가.”
아무리 경찰이라고 하지만 굉장히 고압적인 태도다.
한 마디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곳은 이곳만의 규칙이 있을 터.
일단은 순순히 물러나기로 했다. 그런데 되려 경찰이 우릴 불러 세운다.
“두 사람, 거기 잠깐!”
“뭡니까?”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내 전신을 훑듯 쳐다본다. 그러자 그가 쓴 대형 고글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온다.
“이름 강현우, 나이 50세. 이 근방에 살고 있군. 그런데 신호가 왜 안 잡히지? 인증 칩은 어쨌나?”
“무슨 칩?”
“말로 해선 안 되겠군.”
반응할 새도 없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
빛이 번쩍하더니 다리가 풀려 버린다.
“어, 어?”
바닥에 엎어졌음에도 황당해서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
다리가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손으로 주물러봐도 감각이 없는 것이 신경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놀란 수아가 내게 다가온다.
“현우 씨 괜찮아요?”
“다리가 안 움직여. 아무래도 하체가 마비된 거 같아.”
“뭐라고요?”
수아는 곧장 경찰을 돌아보곤 소리쳤다.
“다짜고짜 사람을 공격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당신이 그러고도 경찰이에요?”
“정식 절차에 의한 제압이다. 신자유법 제3장 제2항. 인증 칩이 없는 인간은 즉각 체포한다. 이걸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세상에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억지라고? 하하, 이거 참. 그래 너도 한번 확인해 보자.”
다시 한번 그의 고글에서 빛이 새 나온다.
“이름 신수아, 나이 49세……. 어, 잠깐. SG그룹의…….?”
수아는 그가 당황하는 걸 놓치지 않고 재깍 따지고 들었다.
“왜요? 저도 제압할 건가요?”
“아, 아닙니다. 뭔가 착오가 있었나 보군요. 가끔 통신에 문제가 생기는 일도 있으니까요.”
방금까지만 해도 고압적이던 녀석이 단번에 꼬랑지를 내려버린다.
“그럼, 강현우 씨만 신병 확보를 하겠습니다.”
“장난해요? 그이는 제가 데리고 왔다고요.”
“인증 칩을 임의로 추출한 사람을 그냥 보내면 제가 곤란해지는 터라…….”
수아는 냉랭한 표정으로 경찰 코앞에 얼굴을 들이민다. 그러자 경찰은 반사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당신, 이런 식으로 나오고도 멀쩡할 거라 생각해? 내가 말 한마디만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죄, 죄송합니다.”
“어서 꺼져. 내 마음 바뀌기 전에.”
경찰은 몇 번이나 고갤 숙이더니, 꽁지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도망가버렸다.
“현우 씨 괜찮아요?”
“나쁘지 않아. 다만, 하반신에 감각이 없다는 것 정도?”
“그게 나쁘지 않은 거예요?”
“신경 쪽을 마비시킨 거 같아. 흐음, 신기한 물건이네. 번쩍했을 뿐인데 마비가 된다니 어떤 구조로 만들었을까?”
“그런 걸 궁금해할 때가 아니잖아요!”
그녀는 버럭하고 소릴 질러댄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고 있어. 기다리면 괜찮아질 거야.”
“휴,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녀.
방금의 싸늘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평소 내가 아는 유수아로 돌아와 있었다.
“그보다 수아 너, 갑질이 수준급이더라?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아이참, 재벌가 사람들은 드라마에서 항상 이렇게 나오잖아요. 똑같이 따라 해본 것뿐이에요.”
“흐음……. 내가 모르는 수아의 얼굴이 있는 건가.”
“지금 농담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또 다른 경찰이 왔을 땐 안 통할지도 모른다고요.”
그녀의 말대로 여기 계속 있는 건 위험해 보인다.
이 시대에는 경찰이 말한 ‘인증 칩’이라는 게 없으면 범죄자 취급을 받는 듯했으니까.
“인증 칩이라는 게 아무래도 신분증 비슷한 걸 말하는 거겠지?”
“정황상 사람 몸에 심는 거 같았어요. 임의로 추출했다는 말을 했으니까요.”
인간 몸에 칩을 심을 수 있다면 GPS나 광대역망을 통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게 된다.
고도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풍요롭게 만들고 노동에서는 해방했지만, 반대로 자유를 앗아간 셈인가.
이 사안의 옳고 그름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먹고 살 만한 사람에겐 자유가 필요할지 몰라도,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에겐 자유보다 물질적 풍요가 우선순위일 테니까.
“이 시대를 더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할 수 없지. 다음으로 건너뛰자.”
“다음이면 또 10년 뒤로요?”
“그래. 적어도 내 방으로 이동된다면 쫓길 일은 없을 거야. 이번은 신중하게 움직이자고.”
* * *
눈을 뜨자 모든 것이 시커멓다.
드문드문 기계가 반짝이는 불빛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어둠을 이겨내기는 역부족이었다.
“현우 씨? 어디에요?”
“나 여기 있어.”
“바로 옆에 있었네요. 다리는 좀 어때요?”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두들겨도 본다.
“멀쩡해. 새 걸로 갈아 낀 느낌이야.”
“정말 다행이에요.”
어둠 속이었지만 수아가 안도의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죠?”
“일단 불부터 찾아보자. 여기 상태를 알아야 계획을 세울 테니까.”
“알겠어요.”
어두운 벽면을 손으로 쓸어간다. 자세히 살펴보니 콘크리트가 아니라 임시로 쓰는 컨테이너 같은 재질이었다.
원룸에서 오피스텔로, 그다음은 가건물 신세라니. 미래의 나란 놈은 뭘 하고 다닌 거냐.
한참이나 벽을 탐험하는 도중, 수아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 현우 씨? 문제가 생겼어요.”
“무슨 문제?”
“플래시를 쓰려고 휴대폰을 켰는데……. 완전 먹통이에요.”
우리의 휴대폰은 가상현실을 오갈 때 쓰는 일종의 컨트롤러다.
그 말은 즉, 휴대폰이 고장 나면 현실로 복귀할 수 없음을 뜻했다.
“재부팅은 해봤어?”
“전원은 켜지는데 새하얀 창밖에 안 떠요. 이제 어쩌죠?”
내 휴대폰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거 큰일인데. 나도 먹통이야.”
“뭐가 잘못된 걸까요?”
“내 생각엔 이 방에 기계를 무력화하는 장치가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혀, 현우 씨. 혹시……. 우리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이 찾아온 건 아닐까요.”
수아의 목소리가 가늘 게 흔들린다.
우리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
그건 뇌가 이곳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 즉, 귀환할 수 없음을 뜻했다.
“타임 오버는 억측이야. 우리가 넘어온 지 고작 서너 시간밖에 안 됐잖아?”
“서너 시간요?”
“아니면 대여섯 시간쯤 됐으려나?”
어둠 속에서 풀썩하고 뭔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야? 무슨 일이야?”
눈이 익숙해졌는지 살짝 실루엣이 보인다. 그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수아였다.
“흑…….”
“수아야?”
손을 더듬어 그녀를 부축한다. 하지만 그녀는 축 늘어진 채로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제가 넘어왔을 땐, 현우 씨가 가상으로 떠나고 벌써 하루가 흐른 뒤였어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왔을 땐 고작 한 시간도 안 됐을 때야.”
“아직 모르겠어요? 이곳은 우리가 사는 현실보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요!”
귓가에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와 함께 세상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 피를 쥐어짜는 심장마저 멎은 느낌이다.
“현우 씨, 우리는 이미 제한 시간을 넘겼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