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201화 (200/206)

기적의 IT 재벌 201화

나 자신에게 굳이 미래를 봐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했던 것 같다.

난 이미 닉스라는 성공한 기업을 거머쥐었고, 미래 따위와는 상관없이 승승장구할 날만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고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를 들여다봤던, 그 짧고 강렬했던 기억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곳에서 난, 여전히 포장공장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과장 강현우였다.

그건 인공지능이 보여준 단순한 허상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회귀하지 않았을 때 겪게 될 진짜 현실?

어쩌면 난 이미 죽었고 닉스의 창립자, 강현우의 삶 자체가 허상일지도 모른다.

무엇 하나 확실한 건 없었기에 더 불안하고 초조했다.

잠들고 깨어나면 다시 중소기업 과장 강현우로 돌아갈 것만 같았고, 지금껏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인공지능이 보여줄 미래와 그곳에서의 나 자신과 직접 마주하기로.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면 그땐 평안한 마음으로 새벽을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 * *

사방이 막힌 새하얀 방이다.

“이곳이 미래?”

흡사 외계인 연구시설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덕분에 몸이 바짝 긴장하게 된다.

두어 걸음을 내딛는 사이에 익숙한 나비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미래와 연결된 통로입니다.

“씬?”

나비는 내 머리 위를 한 바퀴 돌더니, 눈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제가 접근할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공간이라면…….”

-말 그대로입니다. 이 이후부터는 저의 개입이나, 그 어떤 조언도 받으실 수 없습니다. 그래도 진행하시겠습니까?

“지금 겁주는 거냐?”

-사실만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난 일고의 고민도 없이 답을 냈다.

“네가 뭐라 해도 간다.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순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손에 들린 것을 봐주십시오.

언제부터였는지 내 손에 닉스폰 1세대가 들려있었다.

“이건 닉스폰?”

-편의상 닉스폰 모습을 따왔을 뿐, 실제로는 체험을 위한 디바이스입니다. 그것으로 더 먼 미래로 갈지, 아니면 다시 현실로 돌아올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컨트롤러라는 건가.”

닉스폰을 조작해서 내부를 둘러 본다.

별다른 특이점은 없는, 흔히 볼 수 있는 스마트폰이었다.

“체험을 위한 디바이스라고 해도 특별히 다른 구석은 없어 보이는데?”

-디바이스는 날짜를 변경하는 것으로 작동시킵니다. 돌아오고 싶을 땐 오늘 날짜를 입력하시면 됩니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

기기 설정 메뉴에 들어가서 날짜를 수정한다.

[2024년 12월 14일]

정확히 오늘로써 10년 후다.

“날짜를 바꾼 다음은 어떻게 하면……. 헙!”

다른 부연설명은 필요 없었다.

이미 주변 환경은 숨이 막힐 정도로 좁은 방으로 변한 뒤였으니까.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안 그래도 좁은 방의 절반을 책상과 침대가 차지하고 있었다.

침대엔 정리되지 않은 옷가지들이, 책상의 모니터 옆엔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꽂힌 컵이 놓여있다.

“이곳은…….”

더는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공간.

이곳은 영일포장에서 근무할 때 내가 살던 원룸이었다.

묘한 흥분감에 심장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한다.

“정말로 돌아온 건가?”

돌아온 게 아니라 미래로 넘어왔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회귀하기 전인 2020년보다 4년이나 더 먼 미래로 말이다.

반가운 침대에 앉아 본다.

그간 스프링이 더 늘어졌는지 엉덩이가 쑥 들어간다. 동시에 이불에서 올라오는 퀴퀴한 홀아비 냄새가 현실감을 더해줬다.

그나저나, 그때부터 4년을 더 일했는데 여전히 원룸에서 사는 거야?

비트코인으로 날린 돈이 많긴 했다만, 살짝 충격이다.

“아차, 이럴 시간이 없지.”

미래로 왔다고 밖을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세상을 직접 돌아다니는 것보다 웹으로 세상을 훑는 편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다.

의자를 끌어와 컴퓨터 앞에 앉는다. 평소에 전원을 끄지 않았기에 마우스만 살짝 건드려도 화면이 켜진다.

“좋아. 시작해 보자고.”

손을 싹싹 비비고 키보드 위로 올린다.

먼저 웹에 접속해 포털로 들어선다. 처음으로 입력한 검색어는 닉스폰이었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닉스폰은 없다.

닉스라는 기업은 있었으나 IT기업인 닉스가 아니라 패션 브랜드 닉스만 검색됐다.

“다음.”

이번 검색 키워드는 인공지능.

이 당시엔 인공지능이 테크 분야의 최대 화두였기에 검색된 뉴스만 해도 억 단위가 넘었다.

검색 결과를 가장 많이 본 순으로 정렬한다. 그러자 눈을 확 사로잡는 뉴스들이 위로 올라선다.

-인공지능 융합기술 특허출원 급증! 미국 1위, 중국 2위, 한국은 16위. 국가적 투자 허사로 돌아가나?

-인공지능 분야 선점을 위한 거대 공룡들의 연합전선. 애플·IBM 연합에 대항하여 아마존·MS, 구글·포드 연합 탄생. 중국 업체들은 국가 주도로 한데 뭉치기도.

-펜타 카메라와 향상된 인공지능을 앞세운 애플의 신형 애플폰XIV 출시! 1,999달러라는 가격은 과하다는 평이 지배적. 이번에도 성공할까?

흥미로운 뉴스들이 많았지만 세상이 확연하게 변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살던 2020년보다 고작 4년이 지난 셈이니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겼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리라.

다시 폰을 집어 든다.

이번 설정값은 2034년 12월 13일.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였다.

아까처럼 당황하지 않도록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다.

“후우…….”

그리고 눈을 질끈 감을 채 손을 치켜들었다.

마음속으로 셋을 센다.

하나, 둘, 셋.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딱, 그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우 씨, 잠깐만요!”

당황해서 하마터면 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뒤를 돌아본다. 그곳엔 이곳에 있을 수 없는 여인이 서 있었다.

“수아? 네가 어떻게……?”

그녀는 다짜고짜 내 가슴에 주먹을 내지른다.

“이 거짓말쟁이.”

“수아야 잠깐만. 잠깐 진정해.”

“내가 진정하게 됐어요? 안 간다고 약속했잖아요! 나쁜 놈! 나쁜 놈!”

그녀의 손을 낚아채 주먹질을 멈춘다. 그냥 두기엔 가슴팍이 너무 아팠다.

“왜 혼자 왔어요? 이럴 거면 차라리 같이 오자고 했어야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널 데리고 여길 어떻게 와? 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땐 할 수 있는 말이 하나밖에 없었다.

“미안, 수아야.”

그녀의 눈물샘이 폭발한다.

둑이 터진 것처럼.

하염없이.

그녀는 쏟아 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지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말했다.

“흑……. 현우 씨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내가……?”

“그래요. 현우 씨가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남겨진 저는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어디 말 좀 해봐요.”

혼자 남겨진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정말로 난……. 이기적인 놈이었을지도.

“그래서. 같이 갈 생각이야?”

“당연하죠.”

“다시는 현실로 못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현우 씨 없는 세상에 혼자 돌아가 봐야 무슨 소용이에요? 차라리 현우 씨가 있는 이 세계에 남아 있는 게 낫죠. 안 그래요?”

그녀는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채로 방긋 웃어 보인다.

윽,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저런 얼굴이면 NO라고 답할 수가 없잖아.

“휴……. 좋아. 잠깐만 보고 돌아가자. 20일 전후가 리미트라고 했으니 안전하게 15일 정도까지만 보고 돌아가는 거로. 오케이?”

“아, 그 부분에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제?”

“예상했던 것보다 뇌가 가상현실에 적응하는 속도가 빨랐어요. 수치로 따지자면 대략 2배 정도?”

2배라면 남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열흘이다. 거기다 여유시간까지 고려한다면 실제 체류 가능 시간은 7일에서 8일 남짓.

생각보다 시간이 빡빡할지도 모르겠다.

“그 때문에 씬이 급하게 연락을 넣었어요. 현우 씨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제가 옆에 있으므로 뇌의 적응을 늦출 수 있대요.”

“녀석, 쓸데없는 짓을…….”

중얼거리는 내게 수아가 눈을 흘겨댄다.

“쓸데없다뇨. 제가 안 왔으면 현우 씨는 20일을 꽉 채우고 나오려 했을 거 아니에요.”

“꽉 채울 생각은 없었어.”

“그럼요?”

“17일이나 18일쯤…….”

“그게 그거죠. 그땐 이미 타임 오버라고요.”

틀린 말이 없었기에 반박할 수가 없다. 난 화제를 돌리고자 쥐고 있던 휴대폰을 흔들어 보인다.

“시간이 없으면 더 빨리 움직여야겠다. 그치?”

“현우 씨는 매번 이런 식이야.”

그녀는 못 이기는 척 휴대폰을 꺼내 든다. 내가 들고 왔던 닉스폰과 같은 모델이었다.

“날짜는 2034년 12월 13일. 시간은 지금 그대로 가는 거야. 준비됐어?”

“예, 준비 완료예요.”

“셋을 셀 게. 셋이라고 외치면서 동시에 누르는 거다.”

“좋아요.”

그녀는 살짝 긴장했는지 마른침을 꼴딱 삼킨다. 나 역시 어깨가 잔뜩 굳은 게 느껴진다.

“간다. 하나, 둘, 셋!”

“셋!”

* * *

조심스레 눈을 뜬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엉망으로 이불이 널브러진 침대였다.

바로 옆 책상엔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꽂힌 재떨이가 있었으며, 그 옆을 빈 음료 캔들이 장식하고 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여전히 그대로인 풍경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방의 크기가 좀 커졌다는 것 정도일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흘렀는데 여전히 원룸에서 살고 있었다면……. 왠지 슬플 것 같았다.

내 옆에 있던 수아 역시 열심히 눈을 굴려댄다.

“여긴 어딜까요?”

“아마도……. 미래의 내 방이겠지.”

“현우 씨, 방요? 이렇게 좁은 곳이요?”

그녀가 되물을 만도 하다.

시가총액 1위 기업의 최대주주가 이리 좁은 침실을 쓴다는 게 상상이 안 될 거다.

“뭐라고 해야 하나……. 쉽게 설명하자면 강현우가 닉스를 설립하지 않았을 때의 미래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지. 아까의 그 방도 마찬가지고.”

“아…….”

“초라해서 실망했어?”

“그럴 리가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닉스의 강현우가 아니라 IT 기기 덕후인 강현우인걸요.”

IT 기기 덕후.

굉장히 오랜만에 듣는 명칭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첫 만남도 휴대폰 판매장에서였지. 정말이지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었다.

상념에 빠진 내게 수아가 얼굴을 가까이한다.

“현우 씨, 무슨 생각 해요?”

“응? 아아, 미안. 잠시 우리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라서.”

“아하, 기억나요. 그때 현우 씨가 옴레아가 최악의 실패작이 될 거라고 열변을 토했었죠.”

“내가 그랬었나? 대화까진 기억이 안 나서 말이야.”

“그랬었나가 아니라 그랬어요. 얼마나 살랄하게 비판하던지, 그때 KG전자에서 개발하던 신제품이 더 엉망이었는데 말을 못 하겠더라니까요. 물론 그런 해박함이 멋지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녀는 입이 한발이나 튀어나온 채로 날 흘겨본다. 난 그런 그녀의 머리를 엉망으로 헝클어뜨린다.

“자자, 과거는 돌아가서 이야기하고, 지금은 미래에서 할 일부터 후딱 해치우자고.”

“알겠어요. 저는 뭘 도우면 될까요?”

“역시 시작은 저기서부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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