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96화 (195/206)

기적의 IT 재벌 196화

인간의 인생은 결핍의 연속이다.

어린 시절은 돈이 부족하며, 성년 시절은 시간이 부족하다. 돈과 시간이 풍족한 노년에 접어들어서야 무언가를 해보려 하지만, 그땐 건강이 사라진 뒤다.

그 때문에 건강보조제나 노화를 방지하는 실버 상품들은 고가에도 불티나게 팔려 나갔으며. 최근에는 젊은 피를 수혈하거나, 인체에 방사능을 쬐는 위험천만한 서비스도 성행하고 있었다.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젊었을 때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그런 노인들의 갈망을 채워 줄 물건이 드디어 세상에 등장했다.

이름하여, 닉스VR. 첫 공개부터 범상치 않았다.

인류 최초로 달에 도달한 우주비행사, 에드워드 밀러가 노화를 잊고 달에 착륙하는 것으로 모자라, 그가 달에 첫걸음을 내디뎠을 땐 완벽하게 젊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 방송이 있었던 직후.

업계 전문가들은 닉스VR이 허무맹랑한 속임수라고 떠들어 댔다. 현존하는 기술로 방송에 나온 것들을 이루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 때문에 닉스는 물론이고, 직접 체험한 당사자인 에드워드 밀러와 제이 팰런에게까지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몇몇 투자단체들은 닉스가 노인들을 현혹해서 투자를 이끌어내려 한다는 이유로 주가조작 소송을 준비하기도 했다.

온갖 추측성 기사와 뜬소문으로 닉스VR이 홍역을 앓고 있던 가운데, 드디어 닉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닉스VR 일반인 체험관 공개!]

[닉스VR 체험관은 한국의 닉스 코리아, 일본의 닉스 재팬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할 예정. 닉스의 관계자 “체험관은 점진적으로 늘려나갈 것.”]

[닉스의 CEO 대니얼 강, 주가조작 의혹에 “직접 보고 판단해 달라.” 강한 자신감 내비쳐. 이에 닉스를 비난하던 전문가들, 일단 관망세로 돌아선 듯.]

[닉스VR, 1회 체험이 요금이 1,000달러에 달하는 고가로 책정됐음에도 일순간에 예약자 3,000만 명이 몰려. 이에 닉스는 추첨으로 체험자를 선별할 것이라 밝혔다.]

희대의 사기극이냐, 아니면 인류의 진보냐.

VR 분야의 현업 종사자들은 여전히 닉스가 사기를 치고 있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현존 VR 시스템은 한계가 명확한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그와는 달리 기업 분석가들은 닉스가 자신 있게 체험존까지 공개한 만큼, 방송으로 내보냈던 수준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현존 VR기술보다는 개선된 형태가 아니겠냐는 의견이었다.

양측의 의견은 온도 차가 있긴 했다만, 완전한 가상현실 구현은 불가능하다는 것만은 같았다.

그렇게 전 세계의 관심을 받은 닉스VR 체험존이 공개된 당일.

가장 빠르게 소식이 퍼진 곳은 일본 웹의 VR 커뮤니티였다.

-어이, 제군들. 우리 중엔 닉스VR 체험된 사람이 없는 겨? 뉴스에는 오늘만 500명이나 체험했다고 나오던디.

┗말이 500명이지 경쟁률이 50만 대 1이라네요.

┗복권보단 높은 수준인 것이다. www

-햐. 난 행복할 수 없어. 왜 하필 추첨이냐고! ヽ(#`Д´)ノ

┗추첨이 아니었다면 전 세계의 졸부 늙은이들이 돈을 싸 들고 찾아왔을걸? 그나마 추첨이니까 운에라도 기대 볼 수 있는 거지.

-오늘 닉스VR을 체험하고 왔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글을 남겨주세요. 댓글 달아 드리겠습니다.

┗진짜가 나타났다! 진짜가!

┗거짓말 아냐?

┗인증샷 같은 건 없는 거야?

-안타깝게도 체험공간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에이 그럼 어떻게 믿어.

┗관심이 필요한 친구인 것이다.

-저는 339번째 체험자로 2시간가량 VR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에 맞춰 체험존에 입장하자 도우미들이 자리를 배정해 줬고, 편한 의자에 누워 방송에서 봤던 헬멧을 쓰는 것으로 체험이 시작됐습니다.

┗호오? 그럴싸한데? 계속해 봐.

┗빨리 다음. 다음.

-체험 장소는 방송을 탔던 우주와 함께, 에베레스트와 로키산맥 등반, 그랜드캐니언 관광, 소금호수 탐사, 마리아나해구 잠수 등의 자연경관 위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물론, 체험자 대부분이 우주를 택한 듯합니다.

┗현실감은 어땠어? 에드워드 밀러의 말대로 현실과 구분이 힘들 정도였어? 그 정도는 아니었지?

-그것이…….

┗왜 갑자기 뜸을 들여?

┗정말로 주가조작을 위한 사기였던 건가요?

-아뇨. 그 반대입니다. 유토피아가 가상이라는 자각이 없었다면 현실로 받아들였을 정도로…… 너무나도 생생했습니다.

┗거짓말! 너 닉스에서 푼 알바지? 그렇지?

┗체험했던 위너들은 하나같이 찬사를, 체험을 못 해본 루저들은 의심과 비난을. 어째 결과는 벌써 나온 거 같은디?

┗닉스의 판정승.

-난 판단 보류다. 현실보다 현실 같은 가상이라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선 못 믿겠어.

┗뇌에 직접 신호를 주는 방식이라 그런 거 아닐까? 그 때문에 미국서는 닉스VR이 의료기기로 분류돼서 체험존 설립 자체가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뇌에 영향을 주는 기계를, 일본 정부는 검사도 없이 OK 한 거야?

┗일본 정부는 닉스에 우호적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닉스에 너무 많은 편의를 주는 거 아닌가?

-당신들은 동일본대지진을 벌써 잊었습니까? 그때 닉스가 아니었으면 일본 열도는 방사능으로 뒤덮였을 겁니다.

┗닉스가 없었어도 일본인들은 재난을 극복했을 거다.

┗너 머리에 총 맞았냐? 방사능을 어떻게 극복한단 말이야? 체르노빌이 지금 어떤 꼴인지 검색이라도 해보라고.

┗어이, 너희들.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잖아. 지금은 닉스VR 주제에 집중해

-체험자 씨, 진짜 방송처럼 젊어지거나 하는 거예요?

-그건 방송의 연출인 듯합니다. 시작 전에 체험할 나잇대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10대부터 60대까지 가능하더군요. 아, 참고로 전 40대라서 20대를 골랐습니다.

-몸을 늙게도 할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네요.

┗쓸데없는 기능이야. 누가 늙은 몸을 체험하려 들겠어?

┗미리 늙음을 체험해 보면 건강에 더 신경 쓸지도 모르는 것이다. www

-잠깐만. 지금 중요한 질문이 안 나왔잖아. 그건 할 수 있는 거야? 그거!

┗그거?

-가상현실이면 당연히 섹스 아니냐, 섹스. 가상현실의 초절정 미녀와 함께…… 으흐흐.

┗어머나 망측해라. ( ´ ∀ ` )

┗음란마귀가 두뇌를 지배했군.

┗이봐, 다들 이게 제일 궁금했으면서 점잔 떨지 말라고.

-솔직히 저도 이게 궁금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시작할 때 경고문이 뜨더군요. 음란행위를 하는 즉시 체험이 종료된다고요.

┗닉스, 이 꽉 막힌 놈들.

-하지만 그런 경고 문구가 있다는 건, 행위 자체가 가능하다는 소리 아닐까요?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누가 명확하게 말 좀 해줘. 나 지금 급해!

┗되지만 일단은 막아 둔 게 아닐까? 19금 컨텐츠가 추가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가령 체험자들끼리 그렇고 그런 짓을 한다든지?

┗너무 나갔어.

┗생각해 봐. 노인들이 젊은 육신을 가지게 되면 뭘 하려 들겠어? 우주여행? 오지 탐험? 그것도 한두 번이지, 남은 건 섹스밖에 없잖아. 이건 인간의 본능적인 부분이야.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가상현실의 성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체험자끼리 손을 터치했을 때, 그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섹스 산업이 가능하면 게임 끝이잖아?

-가상현실에서의 섹스라……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특이점이 온 건가. (´ω`)

-오케이, 당장 닉스 주식 담으러 간다.

┗아서라. 닉스 주가가 연초 대비 4배나 올랐다는 건 알고 있어? 지금 들어가는 건 줄 없이 번지점프 하는 꼴이라고.

-생각보다 번지점프를 즐기는 사람이 많은 거 같은데?

┗무슨 소리야?

┗닉스 주가가 오늘만 60% 넘게 올랐어.

┗60%? 진짜 60%?

-이대로라면 닉스가 애플의 시가총액을 넘어서는 것도 시간문제겠군.

* * *

한국으로 비행 중인 전용기 안.

소형에 분류되는 기체지만 침실이나 휴게실은 물론이고 10명이 동시에 쓸 수 있는 회의실, 심지어는 욕조가 딸린 샤워실까지 마련돼 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와인 셀러를 뒤지는 매형의 모습이 보인다. 뭐가 그리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대고 있었다.

“뭐 하세요?”

“좋은 놈을 찾고 있지. 잠깐만 기다려 봐. 어디 있었더라…….”

한참이나 셀러를 뒤지던 매형이 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찾았다, 요놈!”

1787년산 샤또 라피뜨.

병당 10만 파운드에 달하는 최고급 와인이다.

예전에 누군가가 선물로 넣어 준건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은 특별한 와인을 따야지 않겠니?”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생일? 아니면 결혼기념일?”

“쯧쯧. 이렇게 둔해 빠져서야.”

매형은 능숙하게 마개를 개봉하고 향기를 맡는다.

“으흠. 이 세월의 향. 오늘을 기념하기 딱 좋은 향이구나.”

“무슨 날인데 그러세요?”

“닉스의 기념일이지.”

“닉스?”

“오늘 자로 닉스가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달성했다.”

“아!”

본래의 역사대로라면 2018년 8월 3일, 애플이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닉스는 그보다 4년이나 빨리 그 역사를 따라잡게 됐다.

“드디어 1조 달러가 넘었군요.”

“자식아, 좀 더 기뻐해. 이건 역사책에 나올 만한 대업적을 이룬 거라고.”

“저도 압니다. 다만…… 실감이 안 난다고 할까요?”

“실감이 안 나면 한 잔 받아. 실컷 마시고 취하면 실감이 나게 될 테니까.”

매형은 자신의 잔이 넘칠 정도로 와인을 따랐다. 그러고는 단숨에 잔을 비워낸다.

“크흐, 와인을 음미할 새도 없어. 달아서 술술 넘어가는구나.”

“한 잔 더 따라드려요?”

“좋지.”

이번은 잔을 반쯤만 비우고 준비해 둔 치즈를 입에 홀랑 넣는다. 매형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실실 웃어대며 입을 열었다.

“현우야, 난 네가 진짜 해낼 줄 알았다.”

“뭐가요?”

“닉스를 애플 이상 가는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했잖냐.”

버릇처럼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다.

와인으로 혀를 살짝 적시자 인상이 확 찌푸려진다.

달긴 개뿔. 너무 숙성된 탓인지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기괴한 맛이 난다.

“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제가 닉스로 애플을 넘겠다고 했을 때, 매형이 저를 미친놈처럼 쳐다봤잖아요.”

“내가 그랬었나?”

매형은 뺨을 긁적거리며 딴청을 피우더니, 슬쩍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것보다, 이번에 출시한 닉스VR 말이다. 미국에선 끝까지 의료기기로 묶을 모양이더라.”

“어쩔 수 없죠.”

닉스VR은 뇌의 시냅스를 조작해서 인위적인 꿈을 만드는 기기다.

주목적이 어떻든, 일단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기에 의료기기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전례가 없는 의료기기가 국가적인 승인을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아. 어쩌면 장기전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별은 금방 딸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얼굴에 기대가 확 드러난다.

“어떻게? 뭔가 작업이라도 쳐둔 거야?”

“아뇨, 우리가 따는 게 아닙니다. 닉스VR을 절실하게 원하는 대중들. 그들이 대신 별을 따줄 겁니다.”

가상현실을 실수요로 하는 층은 노인과 장애인이다.

물론 대다수가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부유한 노인이겠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로 노인과 장애인은 상대적인 약자다.

명분은 그들에게 있었고, 이에 시민단체와 언론이 가세하면 여론은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매형은 내 말을 대번에 이해한 듯 고갤 끄덕였다.

“가상현실을 게임이 아니라 관광과 실버 사업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 신의 한 수가 되겠구나.”

“그런 셈이죠.”

반쯤 차 있는 와인 잔을 치켜든다.

예전엔 반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젠 반이나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때가 된 걸까?

남은 와인을 깔끔하게 비워낸 뒤, 입을 연다.

“요즘 바쁘세요?”

“그걸 말이라고 해? 브로드컴 인수 건을 끝냈더니 그다음은 노키아와 AMD라니. 정말이지, 요즘은 내 몸이 열 개면 좋겠다니까.”

“웃돈을 주더라도 빨리 끝내 버리세요. 자고 일어나면 곳간이 꽉 차 있을 텐데 뭐가 걱정입니까?”

“이놈아. 돈은 많을수록 아껴 써야 하는 법이야. 그리고 인수만 하면 단 줄 알아? 내부 교통정리도 해야 하고…… 어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참에 인수합병 쪽 말고 경영을 하는 건 어떠세요? 마침, 좋은 CEO 자리가 하나 날 거 같은데 말이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매형이 반색해 온다.

“야! 내가 모토로라 CEO 자리 덜컥 맡았다가 피똥 싼 거 몰라? 그때 확실히 느꼈다. 나란 놈과는 경영이 안 맞는다는 걸.”

“모토로라는 지금도 잘나가잖아요?”

“그거야 닉스가 끌어주니까 그런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진즉 중국 업체에 먹혔어.”

“흠…….”

“난 힘들어도 닉스가 편해. 그러니 다른 생각 하지 마라.”

빈 잔을 채우던 매형과 눈이 마주친다.

눈빛을 보니, 또 모토로라 같은 곳에 보내면 결사 항전이라도 할 기세다.

“그럼 닉스 CEO 자리는 괜찮다는 소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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