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93화 (192/206)

기적의 IT 재벌 193화

차창 밖으로 캘리포니아의 해안가가 보인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멋들어진 광경이지만 이 근방이 사유지인 탓에 풍경을 즐기는 이는 없었다.

부들부들한 모래사장을 지나쳐 한참을 달리다 보면 삐죽 솟아오른 암석지대로 접어든다.

바위에 피어올라 있는 꽃들의 이름이 궁금해질 때쯤,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닉스 서부 연구소.

과거 닉스 지진연구소로 불리던 곳이다.

오는 길목의 풍경은 예전과 같았으나 연구소의 모습은 확연히 변해 있었다.

우선, 과거보다 넓어진 돔형 건축물이 눈에 확 들어온다.

기존의 연구소 건물을 철거치 않고, 외부에 돔을 씌워 인위적으로 확장한 형태였다.

거기에 건물을 중심으로 이중 삼중으로 둘러쳐진 보안 라인은 이 시설을 호기심이나 다른 목적으로 접근하려는 방문자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차량이 보안 라인 입구에 들어서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보안 문이 개방된다.

안에서 기다리던 보안 요원들이 경례해 온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만약에 사태를 대비해 존재할 뿐, 시설의 모든 보안은 무인 시스템의 관리하에 있다.

보안 라인을 넘어 돔형 연구소 입구에 들어선 뒤에야 차가 멈춰섰다.

“대표님, 도착했습니다.”

말을 마친 샤오후가 잽싸게 내려 주변을 둘러본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연구소 내부에도 경계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이…….”

그는 잠시 뜸을 들인다.

아무래도 말을 고르는 듯하다.

“무슨 일이 있었군요.”

“얼마 전, 보안 장치에 오작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연구소 보안 장치요?”

“그렇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길을 잃은 설비팀 직원이 상해를 입었다고 하더군요.”

“상해라면 스턴건이라도 쏜 겁니까?”

“양쪽 발목을 절단당했습니다.”

“…….”

식도를 타고 쓴 물이 올라온다.

이 연구소의 보안을 담당하는 녀석은 평범한 보안 프로그램이 아닌, 적응형 인공지능 컴퓨터인 씬이다.

녀석이 실수라도 한 걸까?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씬은 사소한 행동거지 하나에도 논리적인 계산을 토대로 작동한다. 이번 일 역시 그 설비팀 직원이 들어오면 안 되는 곳에 접근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터.

하지만 겁을 줘서 쫓아내든가, 그게 아니라면 기절만 시켰어도 될 일에 양쪽 발목을 잘라냈다니.

이건 지독한 과잉 방어행위였다.

“그 직원은 어찌 됐습니까?”

“잘린 면이 워낙 깨끗했던지라 접합 수술에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합니다. 재활만 잘 진행하면 멀쩡하게 걷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휴유.”

크게 한숨을 토한 뒤 말을 이었다.

“그 직원은 샤오후가 책임지고 신경 써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야기가 끊어지자 샤오후는 다시 연구소 안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평범한 걸음걸이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방을 경계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혹시 모를 보안 시스템 오작동에 대비하는 듯했다.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들어가겠습니다.”

화들짝 놀란 샤오후가 돌아본다.

“대, 대표님!”

“뭘 그리 놀라십니까?”

“만약 오작동이라도 일어나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이곳의 시스템을 만든 사람은 접니다. 혹시 제가 통제를 못 할 거로 생각하십니까?”

“그런 뜻은 아닙니다만…….”

난 그의 어깨를 툭 두드려줬다.

“입구를 잘 지켜주세요. 또 누군가의 발목이 날아가면 큰일이니까요.”

“알겠습니다.”

고갤 숙인 그를 지나쳐 안으로 향한다.

홀로 걷다 보니 저절로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나온다.

“통제라…….”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공지능.

그런 녀석을 내가 통제할 수 있을까?

만약 완전한 통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씬을 세상에 내보낼 생각은 없다.

녀석의 맹목적인 성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솔직한 심정으로, 씬을 평생 이곳에 가둬둘 수 있다면 그리 하고 싶었다.

적어도 내가 눈감는 그 순간까지는 말이다.

연구실의 중앙 로비까지는 그 어떤 장애물도 없었다. 보안문은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열려 있었고, 조명과 무빙워크까지 연구실 내부 쪽으로 가동되고 있었다.

로비에 내가 딱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 부산스러운 소리와 함께 조그마한 드론이 날아온다.

날파리를 닮은 녀석은 전면에 달린 LED를 깜빡거리며 말했다.

-서부 연구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스터 강.

마스터 강.

기존에는 사용자 강현우라고 하던 녀석이 영미권 소설을 학습하더니 이런 식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반지의 제왕이나 스타워즈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오늘은 표정이 안 좋으시군요. 분노 31%, 혼란 26%, 긴장 26%. 대체로 부정적인 감정의 비율이 높습니다.

“마음대로 표정 분석하는 거, 지금부터 금지다.”

-알겠습니다.

드론에 달린 카메라가 위아래로 움직이며 나를 훑는다. 그건 마치 사람이 눈치를 살필 때 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뭐 하는 거지?”

-표정을 제외한 다른 생체반응을 통해서 마스터 강의 감정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혈색이나 동공, 걸음걸이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내 감정을 파악하라는 명령은 한 적 없다.”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고 행동하는 것은 인간사회에 필요한 절차라고 학습했습니다.

“넌 인간이 아니야. 그러니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

경쾌하게 날던 드론이 힘없이 가라앉는다. 마치, 키우던 강아지가 혼나서 꼬리를 축 늘어뜨리듯 말이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가짜 감정. 여기에 동조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일 뿐이다.

메인 연구실의 문을 열어젖힌다.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하는 것은 귀가 먹먹할 정도의 환기구 소리였다. 컴퓨팅 설비가 늘어난 만큼 공조 설비도 그것에 맞게 커져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환경이었다.

소음을 억제하는 헤드폰으로 귀를 틀어막고선 안으로 들어선다.

중앙에 마련된 거대한 설비들.

이 복잡한 장치들은 인공지능을 품고 있는 연구소의 핵심시설이었다.

이것들은 총 2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좌측은 기존의 씬을 채굴했던 설비들이며, 우측은 새롭게 구성된 자이를 구동하는 신형 설비들이다.

씬, 그리고 자이.

닉스OS에 탑재된 자이는 특정 분야에만 작동하게 만든, 씬의 마이너 카피 버전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씬을 시중에 풀어 둘 수 없었기에 마련한 궁여지책이라고나 할까?

자이는 개인정보와 닉스의 빅데이터를 토대로 스마트폰과 개인화, 사물 인터넷 분야 같은 닉스 모든 서비스를 스스로 학습해서 관리한다.

다만 나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자이의 데이터에는 접속할 수 없다는 절대 규칙을 걸어 뒀다.

이건 자이의 데이터에 씬이 접속하면, 또 어떤 사달이 날지 몰랐기에 걸어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씬, 질문이 있다.”

내 뒤를 따라, 땅에 거의 닿을 듯 말 듯 날던 드론이 다시 팔랑거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스터 강.

“설비팀 직원의 발목을 날렸다고 들었다.”

-그는 제2급 보안시설에 접근하려 했습니다.

“알고 있다. 그건 우발적인 사고였어? 아니면 의도한 방어행위의 일환이었어?”

-보안시설에 접근한 침입자는 행동불능으로 만든다는 지침을 따랐습니다.

걷던 걸음을 멈추고, 드론의 카메라를 응시한다.

“왜 그랬지? 너라면 직원의 발목을 잘랐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줄 알고 있었을 텐데.”

-알고 있었기에 행동불능으로 만들었습니다.

“무슨 헛소리를…….”

그때였다.

드론이 백색의 LED를 점멸시키며 원을 그린다. 그러고는 지금까지의 음성과는 다른, 노이즈가 잔뜩 낀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빨리 결과를 가져와 줬으면 한다. 의뢰인의 조급증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연구소 보안이 군사시설 수준이야. 여기까지 들어오는 것만 해도 얼마나 힘들었던 줄 알아? 이 돈 받고 이 짓거리를 하는 건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의뢰인이 다른 업체에도 의뢰를 넣었다고 한다. 가까운 시일 내에 새 작업자가 도착할 거다.

-망할.

-지금까지의 노력을 헛것으로 만들기 싫다면, 한시라도 빨리 연구소 데이터를 빼 오도록.

-한다고. 하면 되잖아.

그것을 마지막으로 녹음된 음성이 끝났다.

난 멍하니 드론을 쳐다봤다.

녀석은 내 말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LED마저 끈 채로 조용히 고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녹음 파일을 어디서, 어떻게 얻은 거지?”

-연구소의 안전을 위해, 출입하는 모든 통신장비의 권한을 제가 강제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도청을 관리라고 포장하다니. 기가 차서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녹음 파일에서 언급된 다른 스파이의 행방은? 찾은 거야?”

-사건이 있고 난 뒤, 연구소를 이탈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겠지. 동업자의 양쪽 발목이 날아갔으니 제정신이면 남아 있을 리가.”

중앙에 마련된 내 전용 소파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그러고는 시선을 천장에 고정한 채로 생각에 잠겼다.

씬의 목적은 명확하다.

연구소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

그 때문에 극단적인 본보기를 통해 다른 스파이의 접근까지 막아버렸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람의 발목을 자르는 행위는 정당한가?

YES/NO

도덕적으로는 NO라고 하겠지만, 상대가 내 목숨을 노렸을 때도 NO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

내 목숨이 위험할 판이면 그깟 발목이 대수야? 그땐 모가지를 날려도 무조건 YES지.

난 누운 채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샤오후, 발목 날아간 직원. 아무래도 그놈이 스파이 같습니다. 어디 못 가게 단단히 붙들어 두세요.”

할 말만 던지고 통화를 끝낸다.

그 틈에 조용히 눈치를 살피던 드론이 내 옆을 얼쩡거린다. 이 모습은 잘했으니 칭찬해 달라는 모습처럼 보였다.

“씬,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내게 즉각 보고하고 행동에 옮기도록 해.”

-일전에는 통신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건 중대 사항이잖아. 스스로 판단 못 해?”

-중대 사항은 보고한다. 중대 사항은 보고한다. 확실히 기억했습니다.

드론이 좁은 연구실 천장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소파 옆에 착지한다.

눈알을 닮은 카메라는 여전히 나를 향한 채다.

“너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적응형 인공지능인 제가 따라야 할 존재입니다.

“어휴, 됐다. 됐어. 당사자에게 물은 내가 잘못이지.”

녀석이 무슨 달콤한 대답을 하든, 내 안에 불신이 남아 있다면 의미가 없는 법이다.

난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건 그렇고, VR(Virtual Reality · 가상현실) 게임 테스터 모집. 네가 꾸민 짓이지?”

-그렇습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게임을 만든 거야? 심심했어?”

-일전에 명령하신 부분의 최종 테스트를 위함입니다.

무슨 명령?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애초에 씬을 다루는 건 위험을 동반했기에 자이를 만든 것을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있었다.

군대에서 고문관 후임이 들어오면 ‘야! 넌 아무것도 하지 마.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알겠어?’ 이런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고민해도 답이 나오는 게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직접 묻기로 했다.

“내가 무슨 명령을 했었더라?”

-현실에서 저의 과거를 볼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위해 VR을 통한 간접체험을 준비 중입니다.

“아!”

어느새 드론이 둥근 무언가를 집어왔다.

그것은 플라스틱 재질의 헬멧이었다.

정수리 부분은 뻥 뚫려 있고 뒤편엔 밴드가 있는 특이한 모양이었다.

“이건……?”

-가칭, 닉스VR머신. 아직 조정단계지만 간단하게 체험할 수준에는 도달했습니다. 체험을 원하시면 머신을 머리에 쓰시면 됩니다.

머신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지금은 사라진, 또 다른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창구. 하지만 현실의 내가 흐릿해져 버리기에 다시는 접하고 싶지 않았던 경험.

그것을 씬은 가상현실을 통해서 해결하려 했던 것인가?

난 머신을 집어 들다가 멈추고 말했다.

“생명에 지장은 없는 거지?”

-물론입니다. 가벼운 두통이나 어지러움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휴우, 찝찝하지만 어쩔 수 없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도 착실히 머신을 머리에 쑤셔 넣는다. 어느 정도 들어가자 센서가 달려 있는지 머리 둘레에 맞게 크기가 자동으로 조정된다.

조정이 끝나자 이어서 눈앞으로 고글이 내려온다.

그제야 미지의 무언가를 접한다는 실감이 나는지 가슴이 쿵쿵 뛰어오른다.

심장 소리는 점점 귀와 가까워져, 나중에는 귓바퀴에 심장이 달린 듯 소리가 커져 왔다.

난 의식적으로 심호흡을 반복했다.

“후우- 후우-”

-준비가 끝나셨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왕 시작한 거, 망설임은 없었다.

“준비 완료.”

-VR체험 모드로 접속합니다. 3…… 2…… 1…….

고글에서 익숙한 빛무리들이 새 나온다.

“자, 잠깐만!”

저항하기 위해 억지로 눈을 감으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미 내 몸은 내 의지를 벗어나 있었다.

-또 다른 세계, 닉스VR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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