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92화
애폴이 자사의 구형 기기를 사용자 몰래 성능을 낮춘 사건, 일명 클록다운 게이트는 언론을 타고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인터넷상으로 의혹이 퍼져 나갈 초창기쯤만 해도 다들 흔해 빠진 음모론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IT전문 매체들이 파고들어, 하나둘 실제 실험 결과를 공개하면서 분위기가 확 반전되는데.
실제로 2년 전에 출시된 애폴폰5S부터 성능이 느려지기 시작했으며, 3년 전 출시된 애폴폰5는 출시 초기보다 성능이 무려 70%나 감소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구형 기기 클록다운 논란이 거세지자 애폴은 공식 성명문을 발표하게 된다.
애폴폰에 탑재된 리튬이온배터리는 잔량이 적거나 기온이 내려갈 때 전력공급에 차질이 발생합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애폴은 자체적으로 사용자 기기의 성능을 관리한 것뿐입니다.
애폴이 클록다운 논란을 자체적인 성능 관리라는 말로 면피하려 들자, 애폴의 대응을 지켜보자던 애폴 마니아들까지 반발하고 나섰다.
-저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기기를 조작하려면 사용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했어야지. 몰래 느리게 만들었다는 건 신형을 팔아먹겠다는 수작으로밖에 안 보여.
-난 내 애폴폰5가 노후화돼서 느려진 줄 알고 이번에 신형을 샀다고. 그것도 무려 999달러나 주고 128GB짜리를 말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배터리만 교환해서 계속 썼을 텐데.
-뭐? 관리? 망할 애폴. 엿이나 먹으라고 해.
-실망이다. 정말 실망이야. 예전부터 정이 떨어져도 어쩔 수 없이 애폴OS 때문에 애폴폰을 사 왔는데, 이젠 닉스OS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게 됐구나. 안녕 애폴. 안녕 애폴폰.
클록다운 게이트로 인해 애폴OS 사용자 이탈은 눈에 띄게 가속화됐다.
팀 시옹마오에서 배포한 탈옥툴을 쓰면 애폴OS와 완벽하게 같은 환경을 제공받으면서도 애폴이 제한했던 성능과 기능들을 쓸 수 있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이에 애폴은 위기를 느꼈는지 즉시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우리가 애폴폰의 구형 배터리를 관리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객들에게 다양한 피드백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애폴은 진심으로 사과
……(중략)……
구형 애폴폰의 배터리 교체 비용을 $29로 할인해서 서비스하겠습니다.
공짜 교환도 아니고 할인이라는 말에, 여론은 들끓다 못해 폭발하게 된다.
이번은 단순히 인터넷상의 움직임으로 끝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직접 애폴 본사 앞으로 찾아가 시위를 하고 나섰으며, 미국 각지의 애폴 스토어는 물론이고 캐나다, 호주, 유럽 등의 해외까지 시위가 확산하기에 이른다.
* * *
로얄 시티즌 호텔의 대연회장.
홀을 가득 메운 잡담 소리가 귀를 찌르르 울려댄다.
저마다 한 손에는 술잔을 움켜쥔 채 춤을 춘다. 그들 중엔 이게 춤인지, 아니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건지 구분이 안 되는 이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늘은 그러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으니까.
“자! 다시 한번 건배하겠습니다.”
얼굴이 시뻘겋게 익은 브릭이 잔을 쳐든다.
그러자 주변의 직원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건배에 동참했다.
회사의 성공으로 인한 특별 성과금. 거기에 이어지는 특별 휴가까지.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잔이 돌수록 분위기는 더 고조된다.
나는 그런 시끌벅적함과는 별개로, 3층 높이의 테라스에서 혼자서 술을 자작하고 있었다.
궁상떠는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혼자서 조용히 자축하고 싶을 뿐이었다.
“애폴을 넘어서기까지, 딱 6년이 걸린 셈인가.”
반쯤 비어버린 잔에 샴페인을 채워 넣는다.
흘러넘치기 직전, 아슬아슬할 때까지 술을 밀어 넣는다는 게 멈추지 못하고 줄줄 흘려대고 만다.
“모자란 것보단 넘치는 게 낫지.”
중얼거리며 잔을 치켜드는 내게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그것도 혼자서.”
뒤를 돌아본다.
그곳엔 빈 잔을 들고 서 있는 엘런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용히 축배를 들고 있었습니다.”
“고독을 씹으면서요?”
내가 픽 웃자, 그녀는 두 걸음 앞으로 다가와 잔을 내민다. 난 자연스럽게 그녀의 잔을 채워줬다.
“여긴 어떻게 왔습니까?”
“아래는 시끄러워서인지 취할 수가 없더라고요.”
챙, 하는 잔 부딪히는 소리가 퍼진다.
목을 한 번 축이고 말했다.
“엘런에게 말 한 번 걸어보려고 노력 중인 사내들이 아쉬워하겠군요.”
“관심 없어요. 저는 독신주의자니까요.”
반만 마신 나완 달리, 그녀는 술잔을 모두 비웠다.
작년 초, 그러니까 나와 수아의 약혼식이 치러진 뒤부터 그녀는 줄곧 독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나와의 거리를 두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의 달라진 행동 덕에 부담은 덜게 됐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 미안함과 허전함이 공존하는 복잡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애폴 다음은 어디예요?”
“뭐가요?”
“오성전자 다음은 아마존, 그다음은 애폴. 대표님은 끝없이 정복하는 칭기즈칸 같은 사람이잖아요. 또 다음 정복지를 생각하느라 여기 계신 거 아니었어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비쳤었나?
난 애매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딱히 그런 생각은 없습니다. 애폴도 아직 완전히 넘어섰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태고요.”
“아이참, 대표님은 너무 신중해서 탈이라니까요. 이미 모바일 시장의 과반을 닉스OS가 접수했고, 지금 이 시각에도 닉스OS의 점유율은 오르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작년까지만 해도 모바일OS 생태계는 안드로이드OS가 40%, 애폴OS가 35%, 닉스OS가 18%를 유지하는 첨예한 3파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애폴의 삽질로 인해 닉스OS로 망명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때를 틈타 닉스OS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강수를 두면서 균형추가 일순간 우리 쪽으로 기울어 버렸다.
“그래도 모르는 일입니다. 애폴이 그리 호락호락한 회사가 아니라는 거, 엘런도 잘 알잖아요?”
“이번만은 다시 일어서기 힘들어 보이던데요.”
“왜죠?”
“사임한 전 CEO 쿡이 이사회와 폭로전에 들어갔어요.”
순간 손에 힘을 너무 준 나머지 술잔이 미끄러질 뻔했다.
“쿡이 사임했다고요?”
“예.”
“언제요?”
“오늘 점심때쯤요. 한 시간쯤 됐으려나?”
급히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검색에 들어간다.
검색 단어는 ‘톰 쿡’.
사실 검색할 필요도 없었다.
포털 최상단에 노출된 뉴스엔 그녀의 말대로 [애폴 CEO 톰 쿡, 전격 사임!]이 떠 있었다.
“클록다운 게이트의 책임을 지고 사임한다는 뜻을 밝혀……? 허허, 이럴 수가. 쿡이 물러나다니.”
애폴을 시가총액 1조 달러에 올린 장본인이 리타이어했다. 미래란 누구도 알 수 없는 거라지만……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발표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임한다지만 사실상 이사회에서 목을 친 거겠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쿡이 애폴에 공헌한 게 얼만데,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내버린단 말입니까?”
“그만큼 애폴의 내부 문제가 크다는 방증 아닐까요?”
천천히 검색 결과를 훑는다.
뉴스란을 지나쳐 최신 SNS 검색 기록까지 넘어오자. 쿡의 공개된 SNS가 검색된다.
그곳엔 이번 클록다운 게이트뿐만 아니라, 마진을 위해 구성품을 빼거나 램과 배터리를 인색하게 기획했던 행위, 대중적인 32GB 용량 라인업 삭제 등등.
모든 반 사용자 정책은 물론이고, 혁신을 버리고 안정을 택한 모든 행위가 대주주인 이사회의 작품이라는 걸 폭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런 메시지로 마무리됐다.
-저는 잡스의 유지를 받들어, 애폴을 세계 최고의 혁신적인 회사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제겐 그럴 능력이 없었군요. 미안합니다, 애폴을 사랑해 준 모든 팬 여러분.
애폴 특유의 감성과 잡스의 향수를 자극하는 그의 메시지에는 벌써 수백만 개의 좋아요와 수십만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댓글의 내용은 당연하게도 애폴 이사회를 욕하는 내용들로 도배돼 있었다.
“주 소비층이 돌아서다니, 제아무리 애폴이라 해도 이번은 타격이 크겠군요.”
“타격 정도가 아니라 저는 게임이 끝났다고 봐요. 애폴은 자신들의 강점인 프리미엄 이미지와 독자적 애폴OS, 두 가지를 모두 잃었으니까요.”
“모두 잃었다라…….”
“통계상으로도 확연히 드러나는 사실이잖아요?”
그녀의 말대로 클록다운 게이트 이후, 애폴폰7의 판매량은 반의반 토막으로 떨어졌다. 그런 반면에 닉스폰 3세대는 반사이익으로 공장에서 찍어내기가 무섭게 팔려 나가고 있었다.
마치, 예전의 애폴폰 전성기 때처럼 말이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층부터 자유를 찾아 애폴OS를 탈출하고 있어요. 덩달아 안드로이드나 윈도모바일 사용자들까지 닉스OS로 넘어오는 추세고요.”
“저도 보고로 들었습니다.”
“기기를 팔아서가 아니라 사용자의 선택으로 인해 과반을 넘기다니, 이건 보통 상징성이 있는 사건이 아니에요. 이대로라면 과반이 아니라 모바일OS 시장 전체를 닉스가 움켜쥘지도 모른다고요.”
순간 오싹한 느낌이 내 전신을 휘감는다.
애폴도 도달하지 못했던 미래.
난 그곳의 입구에 서 있다.
과연 이 길의 끝은 어디로 이어져 있을까?
* * *
“으음…….”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머리가 찌그러질 듯한 두통만이 지난날의 업보를 짐작하게 할 뿐이다.
“나란 놈은 얼마나 마셔댄 거냐.”
습관적으로 머리맡을 더듬어 휴대폰을 찾아낸다.
언제나처럼 부재중 통화와 문자 메시지가 꽉꽉 들어차 있었다.
그중 가장 절박해 보이는 번호로 연락을 넣는다.
뚜우- 뚜우- 뚜우-
철컥.
-대표님?
배기태의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넘어온다.
“기태 씨. 전화하셨던데 무슨 일입니까?”
-아, 그게…….
부재중을 10번이나 찍은 사람치곤 급한 느낌이 아니다. 난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쥔 채 말했다.
“급한 일 없으면 끊습니다. 다른 곳에도 들어온 전화가 많아서요.”
-아 잠시, 잠시만요!
수화기 너머에서 심호흡하는 소리가 들린다.
배기태 녀석. 무슨 말을 하려고 이리 뜸을 들이는 거지?
잠시 후 그의 목소리가 다시 넘어왔다.
-저기…… 대표님. 닉스 스튜디오 말고 새로운 게임 개발팀을 꾸리셨던데요.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따지고 들려는 게 아니라, 제게까지 비밀로 하실 건 없지 않았나 싶은 마음에 연락을…… 아무튼 개발팀을 꾸린 것에 대해서인데요. 독자적인 팀을 꾸리셨으면 그게 저…….
머리도 아프고 목도 뻑뻑한데, 중언부언 지껄이는 목소리까지 들려오니 짜증이 확 밀려온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보세요.”
내 말투 때문인지 배기태의 목소리가 더 기어서 들어간다.
-아, 그게 그러니까…… 아무래도 제가 닉스의 게임 분야를 총괄하고 있잖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모르는 게임이 발표되니까…… 저도 체면이라는 게…….
“후, 기태 씨. 제가 화난 게 아니라 진짜 몰라서 그래요. 그러니까, 대체 뭐가 발표됐다는 말인지 그 부분을 확실히 말해 보세요. 저도 모르는 걸 답할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옙! 닉스에서 새로운 게임의 테스터를 모집한다는 발표가 났습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가상현실 게임이라고 하던데요.
“가상현실 게임?”
-예. 그래서 그 분야만 따로 대표님이 개발팀을 꾸린 게 아닌가 해서 연락드린 겁니다.
“사실무근입니다. 기태 씨도 아시다시피 제가 멀쩡한 개발팀을 두고, 팀을 따로 꾸릴 만한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
-역시 헛소문이었군요.
“당연히 헛소문…….”
아니지, 잠깐.
게임이라면 전혀 모르는 일이긴 한데, 가상현실이라면 짐작 가는 곳이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