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91화
닉스 소프트 제1개발실.
눈앞을 날아다니는 서류철들.
키보드를 부술 기세로 두드려대는 개발자와 수화기를 들고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대는 직원들.
샌프란시스코에 미사일이라도 떨어지면 이런 광경일까?
어느 정도 예상하고 왔음에도 적응이 안 될 정도다.
“스칼릿을 찾아야 하는데…….”
전쟁 통에 헤어진 가족을 찾는 사람처럼 주변을 둘러본다.
안 그래도 넓은 사무실에 정신없이 전화가 울려대고 사람들이 뛰어다니니, 자력으로 그녈 찾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드문드문 인사를 해오는 직원들에게 그녀의 행방을 물었으나, 그들 역시 횡설수설해댈 뿐 필요한 답을 들을 순 없었다.
그렇게 일 분 정도가 흘렀을까?
드디어 애타게 찾아 헤매던 붉은 머리의 여인을 찾아냈다.
스칼릿은 무도장에서나 볼 법한 화사한 프릴 원피스에 커다란 꽃이 달린 머리핀, 그리고 우아한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매번 선머슴처럼 하고 다니던 그녀가 회사에서 이런 복장을 하고 나타나다니, 처음엔 본인이 맞나 싶어 한참을 쳐다봐야만 했다.
그녀도 나이가 차니 여성스러워진 걸까?
난 천천히 걸어가 말을 건넸다.
“저기, 스칼릿. 나 좀 볼래요?”
“염병. 나 바쁜 거 안 보여? 용무가 있으면 번호표 뽑고 기다리라고!”
아아,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염병이라니.
여성스럽다는 말, 취소다.
홱 돌아보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어? 뭐야, 대니얼이었어?”
“그럼 누군 줄 알고 번호표를 뽑으라고 한 겁니까?”
“아! 몰라. 지금은 완전 바쁘니까 할 이야기 있으면 나중에 해. 지금은 애폴, 그 미친놈들 때문에 돌아버리기 직전이야.”
닉스 소프트의 총괄 개발팀 팀장인 그녀로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날 이후.
애폴의 보복 조치는 그 무엇보다 신속하게 이뤄졌다.
앱스토어의 닉스챗, 닉스서클, 닉스페이 등의 8종 앱을 보안상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삭제했으며, 동시에 기존에 설치됐던 앱마저 접근 권한을 막는 초강수를 뒀다.
“바쁜 건 알지만 잠시 시간 좀 내주시죠.”
“중요한 일이야?”
“예, 아주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스칼릿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손에 든 서류를 구겨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돌아본다.
“왜 그리 뿔이 나 있습니까?”
“내 꼴을 봐. 안 그러게 생겼어? 파티장에서 이제 막 즐기려던 참인데, 애폴 그 염병할 똥통 자식들의 개 짓거리 때문에 옷도 못 갈아입고 출근했어. 그게 벌써 사흘 전이라고!”
염병과 똥통, 그리고 개 짓거리.
욕 한 번 찰지다. 게임 속 바바리안 여전사가 실존한다면 딱 저런 식으로 상대를 도발할 것이다.
“그래서 머리에 꽃을 달고 있었군요.”
“꽃? 망할, 이걸 달고 있는데 말해주는 놈들이 아무도 없었어?”
“잘 어울리니까 그랬겠죠.”
“퍽이나.”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더듬더니, 꽃 머리핀을 신경질적으로 잡아 빼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일의 진척은 좀 되고 있습니까?”
“창과 방패의 싸움이야. 녀석들이 밴 시키면 우리가 또 뚫어내고, 다시 막으면 또 뚫는 거지.”
현재 닉스챗 앱은 완전히 밴 당해서 쓸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급한 대로 웹으로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닉스챗을 쓸 수 있게 만들어 뒀다.
과거에 멀티 플랫폼을 지원할 때 쓰던 방법을 다시 살려둔 것이었는데, 애폴도 그걸 두고만 보진 않는지 닉스 사이트 자체를 블록하는 식으로 맞불을 놓고 있었다.
“사용자 측에서 접수된 불편사항은 있습니까?”
“많지. 너무 많아서 돌아버릴 정도로.”
스칼릿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곤 말을 잇는다.
“웹으로 접속하면 속도도 느릴뿐더러, 푸시도 제때 안 와서 반쪽짜리 메신저로밖에 쓸 수 없어. 지금 당장은 불편해도 웹 버전 닉스챗을 쓰겠지만,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사용자 이탈은 필연적이야.”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글쎄,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우리가 예상하는 시기보다는 빠를 거란 건 확실해.”
그녀는 책상 위에 있던 애폴폰7을 집더니 내게 보여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한 번 봐봐, 애폴이 최근 강제로 설치한 앱들을.”
애폴폰7에 자동으로 설치된 앱은 노골적으로 닉스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돼 있었다.
QR코드 결제 서비스인 닉스페이를 대체할 애폴페이, 라이드셰어링 서비스인 닉스제로의 경쟁사인 리프트, 지도와 네비게이션을 겸한 닉스맵을 대신할 구글맵 등등.
거기에 닉스챗을 대신할 애폴 메신저를 전면에 배치해 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완전 우리를 저격하는 구성이네요.”
“그러니까 더 짜증 난다는 거야. 상대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왔는데, 우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얻어맞고만 있잖아.”
“보안 문제를 우려하는 사람은요?”
“거의 없다고 보면 돼. 양치기 소년의 말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게다가 이번 닉스폰과 애폴폰의 대립 관계를 생각하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일걸?”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다행이라는 말에 스칼릿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상황이 최악인데 내가 너무 태연한 반응을 보인 탓이리라.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이쪽을 힐긋힐긋 쳐다보는 저 시커먼 놈들은 뭐야?”
“시커먼 놈들?”
그녀가 가리킨 개발실 입구에는, 동양인 사내 두 명이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아차, 내 정신 좀 봐. 저들은 제가 모셔온 분들입니다.”
“모셔왔다고? 누구기에?”
난 진한 미소를 머금고서 말했다.
“애폴에 카운터 펀치를 날려줄 해결사들이죠.”
나와 스칼릿, 그리고 그 시커먼 사내들은 소회의실로 자리를 이동했다.
“우선 소개를 하죠. 이쪽은 닉스 소프트의 총괄 개발팀장인 스칼릿입니다. 참고로 닉스는 임원을 제외하면 팀장이 가장 높은 직급이니…….”
내 말이 끝나기 전에 큰 시커먼 사내가 말을 받는다.
“그녀가 이곳에선 탑이라는 소리군.”
“그런 셈이죠.”
난 시선을 스칼릿에게로 돌리고 말을 잇는다.
“이쪽은 중국의 마오 형제입니다. 현재 팀 시옹마오를 이끌고 있으며 이번에 우리를 도와줄 구원투수죠.”
“정확히 뭘 하는 사람이야?”
그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작은 마오에게서 나왔다.
“사이버 아티스트다.”
“사이버? 뭔 소리야?”
내가 설명을 덧붙인다.
“이들은 애폴OS에서 애폴이 제한하고 있는 기능을 풀거나 관리자 권한을 임의로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툴을 개발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해커라고 하면 되겠군요.”
“탈옥Jailbreak을 만든 애들이 얘네였어?”
스칼릿이 아는 체를 해주자, 마오 형제는 팔짱을 낀 채 턱을 치켜든다.
“우릴 알고 있나 보군.”
“물론 알지. 너희가 닉스OS도 뚫으려고 기웃거린다는 것도 알고 있고.”
“기웃거리다니. 그저 탐색해 봤을 뿐이다.”
“그러셔? 그래, 탐색의 결과는 어땠어?”
큰 마오가 양손을 X자로 교차시킨다.
“뚫을 가치가 없었다.”
“뭐라?”
두 그룹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진다.
한쪽은 OS를 운영 중인 개발자.
다른 한쪽은 그 OS를 함락하려는 침략자.
사이가 좋은 게 이상한 관계였다.
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중재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미 닉스OS는 많은 자유도를 허가합니다. 그 말은 힘들게 커널을 뚫고 뒷문을 열어도, 굳이 들어올 사람이 없다는 소리죠. 안 그렇습니까?”
시선을 받은 마오 형제가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스칼릿, 이분들은 우릴 도와주러 왔습니다. 거친 언행은 삼가세요.”
“해커가 우릴 돕는다고?”
해커라는 말이 나오자 즉각 작은 마오가 끼어든다.
“해커가 아니다. 사이버 아티스트다.”
“아티스트는 무슨, 뒷구멍으로 들어오려는 도둑놈이겠지.”
“连艺术都不会欣赏的愚蠢女人.”
“뭐야? 지금 나더러 욕한 거지?”
“흥!”
이들을 보고 있자니, 견원지간이라는 말이 딱 떠오른다. 아니지 고양이와 판다였던가? 아무튼, 다시 언쟁이 이어지기 전에 난 잽싸게 주도권을 가져왔다.
“해커든, 아티스트든, 지금 중요한 건 애폴이라는 공동의 적을 공략하는 거 아닙니까?”
“이들이 뭘 해줄 수 있단 말이야?”
“아까 말했잖습니까. 애폴OS의 잠겨있는 권한을 풀 수 있게 해준다고요. 그 잠겨 있는 권한에는 당연히 닉스 서비스를 밴한 것도 포함입니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거듭하다 입을 열었다.
“탈옥으로 밴을 무력화시키겠다는 발상은 좋지만…… 일반 사용자들이 보안 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탈옥을 하려 들까?”
“단순히 밴을 무력화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럼?”
“탈옥 툴을 써서 애폴폰에 닉스OS를 심는 겁니다.”
그녀는 놀라서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다.
“마, 말도 안 돼. 애폴폰은 부트롬이 CPU 내부에 있어서 닉스OS를 마운트 하는 건 불가능해. 설사 가능하다 해도 사람들이 그걸 좋아할까? 애폴폰을 산 사람들은 애폴OS가 익숙해서 쓰는 거잖아. 내 말 틀렸어?”
난 그녀 앞에 기기를 밀어다 놓는다. 그건 작업이 끝난 애폴폰7이었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직접 한 번 보고, 다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을 보내는 스칼릿.
난 그녀에게 씩 웃어줄 뿐이었다.
* * *
애폴OS 사용자들은 닉스 서비스 밴을 일시적인 현상이라고만 생각했다. 닉스가 저번처럼 애폴과의 협상을 통해서 이번 상황을 타개할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후.
애폴의 공식 SNS에서 충격적인 메시지가 등장한다.
[애폴은 보안을 가볍게 여기는 닉스 서비스를 영구히 퇴출하기로 했습니다. 이 결정에 번복은 없으며, 사용자들은 다른 대체 서비스로 눈을 돌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입니다.]
이 발언은 애폴OS 사용자들을 패닉에 빠뜨렸다.
특히 쌍방으로 통신하는 모바일메신저는 단순히 한 쪽에서 대체 앱을 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기에 충격은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애폴OS 사용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애폴의 정책을 받아들이던 중. 아시아 쪽에서부터 특이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드디어 탈옥하고 왔다. 와, 속이 다 시원하네.
┗진즉에 하지 그랬어.
┗히힛, 애폴 순정OS는 똥이라고! 똥!
-통화녹음, 자유로운 파일 이동, 테마와 폰트 변경, 블루투스 기능 확장, NFC. 왜 애폴은 이 많은 기능을 막아 둔 걸까?
┗나중에서야 열어주고 생색낼 속셈이겠지. 짜쟌! 새로운 기능이 생겼습니다. 대신 돈을 더 내세요. 이 호구들아!
┗그거 참 어메이징 하군.
-요즘 탈옥하는 사람이 늘어서인지, 아예 판매처에서도 탈옥 상태로 기기를 개통해 주더라.
┗안 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님? 닉스챗이나 닉스페이 쓰려면 무조건 탈옥해야 하잖아.
-애폴에서도 뒤늦게 난리가 났나 봐. 탈옥하면 AS 절대 안 해준다고 길길이 날뛰던데?
┗그럴 만도 하지. 이젠 유럽이나 북미에서도 엄청나게 탈옥해대니까. 벌써 20%의 사용자들이 탈옥했다더라.
┗와우, 겨우 그것밖에 안 했어? 내 주위는 거의 다 한 거 같던데.
┗아직 몰라서 그렇거나, AS 때문에 그렇겠지.
┗다시 순정으로 돌리니까 AS 잘만 해주더라.
┗예전엔 탈옥하면 흔적이 남았거든. 이젠 아예 완벽하게 복원돼서 탈옥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단다. 애폴만 완전히 망한 거지.
┗꼴 좋다. 닉스를 뭉개려고 꼼수 쓰더니만. 쯧쯧.
-팀 시옹마오도 참 대단하지. 어떻게 애폴OS에 닉스OS를 올릴 생각을 다 했을까? 걔들은 천재야, 천재.
┗엥? 이거 닉스OS였어?
┗몰랐냐? 닉스OS에서 UI나 테마만 애폴OS를 씌워 둔 거야. 그러니 스마트 뱅킹도 가능하고 닉스OS에만 있던 자이도 쓸 수 있게 된 거지.
-일단 망할 시리가 자이로 대체 된 것만으로도 탈옥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자이라고 해봐야 단순히 음성비서 아냐?
┗아직도 자이를 못 써본 불쌍맨이 여기도 있네.
┗그 둘은 아예 차원이 다르다. 시리가 음성만 인식해서 읽어주고 검색만 하는 정도라면, 자이는 스스로 학습해서 미리 필요한 걸 잡아주는 수준이다.
┗자이가 기기 관리까지 해줘서 성능도 빨라지고 배터리도 더 오래간다는 결과가 나왔어. 이쯤이면 완전 대박 아니냐?
┗아아, 어쩌다 애폴이 이리됐을까. 혁신은 잡스와 함께 사라지고, 이젠 장사꾼 쿡만 남아버렸구나.
-야야, 대박 소식. 완전 대박 소식!
┗뭔데 호들갑이야?
-애폴에서 스캔들 터졌어. 완전 초대박 스캔들! 애폴이 사용자 몰래 구형 애폴폰 성능을 낮추고 있었대!
┗그게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이야기해봐.
┗애폴이 왜 자사 제품 성능을 낮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왜 말이 안 돼? 사람들이 신형 애폴폰을 사게 하려면 구형을 느리게 만들어야 할 거 아니냐. 어지간해선 고가인 애폴폰을 안 바꾸려 들 테니까.
-미친! 어쩐지 탈옥하고 나서 성능이 더 빨라지더라니.
┗난 애폴폰5 쓰다가 너무 느려져서 이참에 애폴폰7으로 바꿨는데…… 이게 사실이면 진짜 뒤통수다. 지금껏 쌓여 있던 애폴에 대한 신뢰도가 한 방에 무너질 정도야.
-음모론 자제 좀요.
┗못 믿겠으면 검색해 보든가. 커뮤니티에서는 다들 난리도 아냐. 내일이면 언론에도 쫙 퍼질걸? 벌써 애폴 주가 쭉쭉 내려간다. 쭉쭉.
┗아 제발. 난 저번 주에 애폴 주식 들어갔다고.
┗떡락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