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89화
도착한 메시지를 가장 먼저 확인한 이는 마틴이었다.
“대, 대표님. 이번에 애폴에서 신제품을 하나 더 출시한다고 합니다.”
“애폴패드 신형이라도 내는 겁니까? 아니면 맥북?”
“아닙니다. 애폴폰7의 파생형인 애폴폰7C라고 합니다. 4인치 액정에 원가절감을 해서 가격대를 낮춘 듯합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마틴은 물론이고 원탁에 앉은 모두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컴팩트 사이즈인 애폴폰C 시리즈.
본디 2013년에 나왔어야 할 물건이 1년이 지난 시점에 등장했다. 그것도 별다른 예고도 없이 말이다.
난 동요를 감춘 채 질문을 이어 나갔다.
“가격은 공개됐습니까?”
“예, 549달러부터 시작해서 649달러까지입니다.”
“애매한 가격이군요.”
여유로운 나완 달리 다들 패닉 상태다. 출시 사흘을 앞두고 경쟁사의 조커가 등장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모든 근심을 짊어진 듯한 표정의 브릭이 물어온다.
“보스, 3세대 물량 예상치를 조정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549달러라면 우리 쪽에도 타격이 클 거예요.”
난 브릭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말을 이었다.
“동요할 필요 없어요. 애폴은 이번 결정으로 제 발등을 찍은 거니까요.”
“발등을 찍다뇨? 3세대 가격이 849달러고 이번 애폴폰7C의 가격이 549달러니. 300달러 차이면 그쪽으로 넘어갈 유인이 충분하다고요.”
“그거야 일반적인 스마트폰 구매자일 때 이야기죠.”
브릭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난 그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주기 위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애폴폰과 닉스폰은 이미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양사 제품을 구매할 그룹은 이미 800달러에 가까운 기깃값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죠. 그런 이들에게 어설픈 보급형이 눈에 차기라도 하겠습니까?”
“아…….”
브릭은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갤 끄덕인다. 그러는 사이에 열심히 다른 문자를 확인하던 마틴이 물어왔다.
“대표님, 그렇다면 중국이나 인도, 남미, 동남아 쪽에 들어갈 물량은 조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지역은 가격 때문이라도 애폴폰7C를 택하는 경우가 많을 거로 생각합니다만.”
“그곳도 그대로 갑니다.”
이번은 마틴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중국과 인도 시장은 구매력 측면에서 849달러로 책정된 3세대 수요가 적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쪽 시장 사람들이 549달러의 애폴폰7C는 살 만하다고 생각할까요?”
“300달러 차이라면 충분히 고려해봄 직하지 않을까요?”
“인도의 급여는 월 100달러 남짓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스마트폰 하나를 사겠다고 6개월분의 급여를 덥석 낸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요.”
“아!”
마틴은 물론이고, 이야길 듣던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인도나 신흥국 쪽 급여가 적다는 건 알았지만 월 100달러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현재 신흥국에서 프리미엄폰의 수요는 상위 10%의 재력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옵니다. 그들에겐 스마트폰도 명품을 사듯,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지닌 최고의 기기를 갖고자 할 뿐이지요.”
“그렇다면 대표님은 이번 애폴의 행보가 의미 없는 액션이 될 거란 말씀이신지요?”
“의미가 없는 수준을 넘어서 제 무덤을 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애폴 하면 떠오르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 먹은 꼴이니까요. 어쩌면 이번 시즌은 닉스가 최초로 애폴을 넘어설지도 모르겠군요.”
그는 긴가민가한 얼굴이 되어 날 쳐다본다.
닉스가 아무리 선전한다 한들, 업계의 독보적인 1위인 애폴을 제칠 순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한 번 두고 보세요. 결과가 어떻게 되나.”
* * *
닉스와 애폴.
애폴과 닉스.
양사는 피할 수 없는 정면승부에 돌입했다.
같은 날 제품을 공개하고.
같은 날 예약을 받았으며.
같은 날 제품을 판매했다.
이 대결은 업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누구든 관심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은 애폴이라고 해도 힘들걸? 닉스가 아주 칼을 갈았는지 스펙부터 역대 최강으로 달고 나왔더라.
-그래도 가격 정책이 좀 에러야. 이번은 셀카봉 미포함에 849달러니, 사실상 100달러 이상 오른 거잖아. 그에 반해 애폴폰7C는 549달러에 나왔던데.
-플라스틱 쪼가리로 만든걸 500달러나 주고 왜 삼?
-난 무조건 닉스폰 3세대로 간다. 8860mAh의 배터리 용량을 박아 넣고 두께가 7㎜라니. 이런 스펙이라면 죽었다가 깨도 애폴이 이길 순 없어!
-미안하지만 애폴폰을 쓰던 사람은 또 애폴폰을 쓸 수밖에 없어. 일단 애폴 생태계에 발을 들이면 어지간해서는 다른 폰으로 넘어갈 수가 없거든.
인터넷상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닉스폰이나 안드로이드폰을 쓰던 사람들은 압도적인 성능의 닉스폰 3세대를, 반대로 애폴폰 사용자들은 기존의 두터운 사용자층을 토대로 애폴폰7의 우세를 예상했다.
대중들의 극렬한 관심 속에서.
드디어, 양사의 스마트폰 판매가 개시됐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애폴이었다.
주력의 애폴폰7, 컴팩트 사이즈의 애폴폰7C.
크기가 다른 두 종을 동시에 출시하는 애폴의 전략은 성공했는지 첫 주 만에 현장판매만 400만 대, 예약판매까지 합하면 1,000만 대를 돌파하는 판매량을 기록하게 된다.
타사가 1년 동안 판매하는 물량을 단 한 주 만에 팔아버린 것도 놀라운데, 아직 출시조차 안 된 나라들이 수두룩했으니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애폴폰7을 성공작이라 평가하고 나섰다.
그에 반해 닉스폰 3세대의 소식은 뜸했다.
닉스는 예약 물량이 많다는 것과 함께, 생산공장이 24시간 가동 중이라는 소식만 드문드문 들려올 뿐. 이렇다 할 뉴스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애폴의 임시회의실.
반 원형의 탁자에는 5인의 이사회라 불리는 애폴의 실세들이, 그 반대편엔 애폴의 CEO인 톰 쿡이 자리에 앉아 있다.
서류 넘어가는 소리만이 사륵거리며 들리는 실내.
쿡은 무거운 분위기 탓에 먼저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언제 말을 걸어주려나 싶을 때쯤, 목소리가 들려온다.
“쿡, 한 주간의 판매량 보고는 잘 받았습니다.”
말을 꺼낸 이는, 이사회의 바실리 브린이었다. 그는 5인의 이사회 중 가장 깐깐한 성격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1,000만 개를 살짝 넘기는 수준으로 나왔더군요.”
“그렇습니다.”
“좋은 출발이 아니란 건 알고 계시죠?”
한 주간 판매량 1,000만 개.
타사였다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판매량이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판매량을 손에 쥐고서도 쿡을 다그치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출발이라 생각합니다.”
“나쁘지 않다라……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고작 이 정도 판매량으로 말입니다.”
“고작이라 불릴 정도는 아닌 거 같습니다. 작년에 출시한 애폴폰6도 첫 주의 판매량은 900만 개 수준이었으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말을 끊어먹은 브린은 제 할 말을 이어서 한다.
“무리해서 연말에 출시할 애폴폰7C를 당겨서 출시한 것으로 모자라, 2차 출시국이던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대만, 벨기에, 핀란드, 터키까지 동시에 판매를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고작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면 어쩌라는 겁니까?”
“아시다시피 같은 날에 닉스폰 3세대가 출시 됐습니다. 작정하고 달려드는 경쟁자가 있는 걸 감안하면 충분히 선방했다고 생각합니다.”
브린의 입가가 한쪽으로 비틀린다.
그는 아까부터 훑고 있던 서류를 쿡에게로 툭 던진다.
“뭡니까?”
“일단 읽어 보시죠.”
쿡은 무례한 브린의 행동에 울화가 치밀었지만, 속으로 꾹꾹 밀어 넣은 채 서류를 치켜들었다.
서류는 팩스로 들어온 간략한 숫자 몇 줄이 전부였다.
“이게 무슨 숫자입니까?”
“닉스폰 3세대의 일간 출고량입니다. 오프라인 판매는 개시도 안 했으니, 순수 예약된 온라인 출고량만 따진 것이지요.”
쿡의 눈이 크게 떠진다.
서류에 적힌 수량을 합하면 어림잡아도 1,800만이 넘어 보였다. 게다가 출고량이라 했으니 실제 예약량은 이보다 더 많으리라.
“이제 상황 파악이 됩니까?”
“이사님, 잠깐만요. 이게 닉스폰 3세대 실제 출고량 맞습니까?”
“지금 저를 못 믿는 겁니까?”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이런 출고량이 나왔다면 애폴을 넘어섰다고 사방팔방으로 홍보하고 다녔을 텐데, 닉스는 어째서 함구하고 있는 겁니까?”
브린은 깍지낀 손으로 턱을 괴더니, 팍 인상을 구긴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중요한 건 우리가 필사적으로 매달렸음에도 닉스폰 3세대보다 판매량에 밀렸다는 겁니다. 여기에 변명의 여지가 있습니까?”
“변명이라…… 변명할 거리라면 수없이 많죠.”
평소에 고분고분하던 쿡이 반기를 들자, 브린은 물론이고 다른 이사회 사람들까지 표정이 굳는다.
“저희는 안전한 변화만을 받아들여 변수를 차단했으며, 구성품을 빼거나 부품의 급을 낮춰 마진을 극대화했습니다.”
이야길 이어가는 쿡의 목소리가 점점 격양돼 높아진다.
“이 모든 행위는 사용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주주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왔던 이사회분들의 방침을 따른 결과입니다. 실제로 그런 방침으로 지금까진 승승장구해 왔었죠. 대적할 상대가 없었으니까요.”
“지금 책임 소재를 우리에게 떠넘기려는 겁니까?”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가 행했던 모든 것들을 닉스는 반대로 해왔다는 겁니다.”
싸움닭처럼 반박할 준비를 열심히 하던 브린의 입이 닫힌다. 그 틈에 쿡은 하고 싶었던 말을 속사포처럼 이어 나갔다.
“우리가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안정을 택했을 때, 닉스는 과감하게 전면 카메라를 강화해서 셀카봉 붐을 일으켰습니다. 우리가 램 1GB냐 2GB냐로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을 무렵, 닉스는 램은 물론이고 AP, 저장용량, 배터리까지 모든 부품을 최고의 것들로 구성했습니다. 그 대신 마진을 포기했지요.”
“마진……?”
“예, 마진. 이번에 출시한 애폴폰7은 사상 최대의 마진을 노리고 만든 제품입니다. 그래서 마진율이 무려 72%나 되죠. 그에 반해 닉스폰 3세대의 마진율은 얼만지 아십니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기에 쿡은 자문자답을 해야 했다.
“10%라고 합니다. 849달러 중 겨우 10%요.”
이사회 모두의 표정이 경악에 물들었다.
마진율 10%에 유통과 마케팅비용을 포함하면 마이너스로 돌아서 버린다. 그런 물건을 겁도 없이 수천만 대나 찍어 내는 판단을 닉스가 했다고 하니 깜짝 놀랄 수밖에.
“닉스는 우릴 이기기 위해서라면 제 살을 깎아내는 것도 마다치 않았습니다. 반면에 우린 눈앞의 이익을 위해 원가절감을 최우선으로 두고 제품을 만들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사회 내부에서도 뭔가 느낀 바가 있는 듯. 심각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신기술을 더 과감히 채택하는 방향으로.”
“우리가 과거의 영광에 취해, 너무 안일했던 겁니다.”
“이제라도 마진에 목매는 경영 방식을 버릴 때가…….”
“하지만 어떻게요? 저들은 마진 10%라지 않습니까. 밑지고 팔 수는 없습니다.”
쿡은 수군대는 이사회 사람들이 들리도록 일부러 크게 헛기침을 해댄다.
“흠흠.”
시선이 그에게로 모이고.
“제게 한 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귀가 쫑긋해진 브린이 즉시 반응해온다.
“한번 말해보시죠.”
“아시다시피, 잡스가 있던 무렵엔 닉스와 우리 사이가 이렇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사건 이후로 급격하게 갈라서게 됐죠.”
여기서 그 사건이란.
애폴에서 모바일메신저 시장을 집어삼키고자 닉스챗을 강제로 밴했던 것을 뜻한다. 그 일을 계기로 애폴과 닉스는 완전히 갈라져 서로 철천지원수처럼 지내게 된다.
“이미 지난 일을 인제 와서 꺼낸들 어쩌란 말입니까?”
“관계를 복원하자는 겁니다.”
“복원?”
“예, 관계만 돌이킬 수 있다면 예전처럼 디자인도 협업해서 쓸 수 있고, 더 나아가 신형 배터리도 납품받을 여지가 생기겠지요.”
닉스의 디자인과 신형 배터리.
업계에선 독보적이었기에 가질 수만 있다면 억만금을 주더라도 아깝지 않은 것들이다.
이사회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눈을 빛내기 시작한다.
“최대의 경쟁사인 닉스가 그걸 해주겠습니까?”
“닉스가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주력은 소프트웨어 분야입니다. 닉스챗이나 닉스제로, 닉스서클 따위 말입니다. 현재까지도 애폴OS를 통해서도 서비스 중이지요.”
“으음…….”
쿡은 자신의 안경을 천천히 쓸어 올리며 말했다.
“우리가 조금만 양보하는 제스처를 취해주면 닉스도 거절하진 못할 겁니다.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의 37%를 차지한 애폴OS의 사용자층을 포기하긴 쉽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