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86화
한국의 볼보 전기차 공장.
야심한 시각임에도 공장의 불은 꺼질 줄을 몰랐다.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움직이는 부품들. 그것들을 하나씩 로봇팔이 들어 올려 용접으로 메운다.
그렇게 완성된 섀시에 모듈화된 부품들을 끼워 조립하면 대략적인 차체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제 남은 것은 내장을 채워 넣고, 도장처리를 하면 끝이다.
기존의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한 구조였지만, 부품이 적게 들어갈수록 잔 고장은 적어지고 신뢰성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내가 앞서 걷고 닉스 에너지의 손만호 사장이 뒤를 따른다. 별말 없이 공정만 훑고 있자, 그는 불편한지 연신 눈치를 살펴댄다.
“직원이 좀 줄어든 것 같군요.”
드디어 내 입이 열리자, 손만호는 반갑게 설명을 시작했다.
“직원 숫자는 기존과 같습니다. 다만, 모듈화를 통해서 작년보다 공정이 40% 이상 간소화됐기에 일부 직원을 야간근무로 돌리고 있습니다.”
“야간교대 근무로 바뀐 것에 불만이 나오진 않던가요?”
손만호 사장은 웃으며 손을 내젓는다.
“불만이 있을 리가요.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야간에 일하는 걸 환영한다고요?”
“우리 공장은 공정의 자동화가 잘 된 탓에 노동강도가 높지 않습니다. 그러니 야간에 근무하고 급여를 더 가져가는 걸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올해 들어 기존의 교체형 전기차 수요가 폭증했다.
그 때문에 차종 불문하고 전기차라면 찍어내는 족족 팔려 나갔으니, 손 사장이 생산량 증대를 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노동경감을 위해 도입한 자동화가, 되려 야간에도 일을 시킬 유인이 돼버리다니.
마음 한편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완전한 자동화가 이뤄진다면 인간은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그땐 또 다른 무언가에 매달려 노동을 해야 할까?
내가 입을 다물자, 손만호 사장이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대표님, 닉스 산업단지 지원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지요?”
“예, 그저께 통과됐다더군요.”
“축하드립니다. 그리 속을 썩이더니 오성이 개입하니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처리시켜 버리네요.”
“원래 이 바닥이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국내는 오성 공화국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오성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특히 정·재계 인사들과 이어진 끈은 여타 기업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했다.
이번은 정용재를 잘 구슬려서 넘어갔지만, 앞으로 또 이번 같은 일이 생긴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국내라면 깔끔하게 포기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 하지만 그 배경이 타국, 그러니까 미국과 같이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면?
현 미국의 대통령인 오바마와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그는 철저한 실리주의자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닉스라는 기업을 버리는 데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다음번 미국 대통령이 될 사람은 의외성 No.1인 도널드 트럼프 아니던가.
어떡하지? 그에게 미리 줄을 대야 하나?
미래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법.
대책 없이 트럼프에 줄을 댔다가 힐러리가 당선되면 닉스는 그날부로 고난의 행군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렇다는 건 역시…….
부정하고 싶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단 하나였다.
씬.
녀석을 잘만 컨트롤할 수 있다면, 앞으로 날 방해하는 세력을 막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있던 끈적한 응어리가 그 생각을 막아서려 한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조립공정을 빠져나와 연구소로 들어섰다.
통로를 지나자 익숙한 보안 문이 우릴 맞이했다. 닉스 연구단지에서 쓰던 그 보안 시스템이었다.
손만호 사장이 ID카드와 지문을 태그하자 간단하게 문이 열린다. 만약 일반 사원이었다면 이보다 곱절이나 복잡한 절차를 거쳤어야 했을 거다.
“이곳에도 닉스 시큐리티팀의 작품이 들어왔군요.”
“예, 보안은 철저할수록 좋은 법이니까요.”
“직원들이 불편하다는 말은 없었습니까?”
그 말에 손만호 사장은 씩 웃어 보인다.
“가끔 대표님과 이야길 해보면 말이죠. 정작 창업주인 대표님께서 닉스를 너무 낮게 평가하시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현재 닉스가 보유한 기술력은 세계 탑티어급입니다. 소프트웨어적인 분야는 물론이고, 스마트폰, 전기차. 특히 배터리 분야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죠. 그런 회사에서 보안을 강화하겠다는데 누가…… 아,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손만호 사장은 하던 말을 멈췄다.
자세히 보니 그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손 사장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감격스러워서 그럽니다. 태양광 받아서 전기 팔아먹던 회사가 이렇게 컸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게 믿기지 않아서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꿈일까 봐 조마조마할 정돕니다.”
“제가 처음에 그러지 않았습니까. 닉스는 애폴을 능가할 회사가 될 거라고요. 혹시, 그걸 허무맹랑한 소리라 생각했던 건 아니시죠?”
그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입을 우물거리더니.
“솔직히 말해서 그랬습니다. 누가 그 말을 믿었겠습니까.”
씩 웃으며 말을 받았다.
“사실 저도 그랬어요.”
우리는 쿡쿡거리며 연구실 승강기에 올랐다.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운행되는 승강기였지만 ID카드를 태그하자 없던 지하 2층과 지하 3층까지 운행하는 메뉴가 나타난다.
우리의 목적지는 지하 2층에 있는 신차 개발실이었다.
쿵.
승강기가 멈추고 문이 열린다.
중앙으로 쭉 뻗은 통로. 그 양옆으로 멋스러운 자동차들이 자신들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녀석들은 외관만 완성된 콘셉트카 들이다.
내가 콘셉트카 디자인을 보내주면 신차 개발실에서 실체화시키고, 그중 최고의 녀석만 진짜 생명을 얻어 출고되는 시스템이다.
콘셉트카들을 지나쳐 중앙에 마련된 원형 홀로 걸어간다.
그곳엔 암막으로 가려진 최고의 작품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그겁니까?”
손만호 사장은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완성도는 어떻습니까? 달릴 정도는 됩니까?”
“차량 컨디션만 보면 당장 출고해도 문제없을 정돕니다.”
“손 사장님 표정을 보니, 제법 잘 뽑혔나 보군요.”
“잘 뽑히다마다요. 닉스 이름을 내건 첫 상용차 아니겠습니까? 모든 기술을 다 때려 박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긴장돼서 자꾸만 손을 꼼지락거리게 된다.
손만호 사장은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단번에 암막을 걷어 넘긴다.
“닉스의 첫 전기차, NX1080을 공개합니다!”
밤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진청색 컬러의 스포츠 세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감탄사가 본능적으로 튀어나온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날카로운 인상의 헤드라이트였다. 그와 함께 전면의 라디에이터 그릴이 있던 자리는 멋들어진 닉스 로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대표님이 주신 디자인과 최대한 흡사하게 나온 겁니다. 실물은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다마다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한 걸음 다가간다.
유선형 차체에 딱 맞아떨어지는 어두운 크롬 라인. 전체적으로 스포티한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여느 스포츠카들처럼 너무 별난 것도 아닌,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차에 감탄하다가 내가 뱉은 첫마디는.
“지금 달려볼 수 있습니까?”
엔지니어들이 차량을 지상으로 이동시켜줬다.
운전석에 오르자 자동으로 시트가 내 몸에 맞는 포지션을 잡아준다.
조작부는 기존의 내연기관 차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전벨트를 확인하고, 이어서 시동 버튼을 터치한다.
묵직한 배기음과 함께 차체의 떨림이 느껴진다.
“가상 배기음이군요.”
“예, 아직은 자연스러운 진동과 소음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옵션으로 클래식 모드를 끌 수도 있습니다.”
그가 가리킨 곳엔 주행모드 변경 버튼이 달려 있었다. 본디라면 기어 레버가 있어야 할 자리였다.
클래식 모드를 해제하자 찰칵, 하고 뭔가 걸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
“자, 그럼 갑니다.”
천천히 핸들을 움켜쥐고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그러자 차체가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큭!”
상체가 시트 쪽으로 훅 쏠린다.
놀란 나완 달리, 조수석에 앉은 손만호 사장은 예상했다는 표정이다.
“반응감이 장난 아니죠?”
“전기차가 오랜만이라 깜빡했네요. 훅 나가는 걸 고려했어야 했는데.”
“그것도 전기차만의 매력이죠. 한 번 빠져들면 답답해서 기존 내연기관차를 탈 수가 없게 됩니다.”
“이 녀석, 제로백이 얼마죠?”
“마의 1.9초대를 넘어서 1.8초입니다. 포르쉐 918보다 0.3초나 빠른 셈이지요.”
“멋지군요.”
서킷만 한 번 돌 생각으로 나왔으나, 한 번 주행에 맛을 들이니 그냥 돌아가긴 아쉬웠다.
“연구소 밖으로 나가보죠.”
“국도로 말입니까?”
“예.”
속도를 높이자 손만호 사장이 당황한 듯 목소릴 높인다.
“밖으로 나가면 디자인이 유출될 텐데요.”
“어차피 얼마 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될 녀석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그 전에 단독 쇼케이스 하는 셈 치고 나가보죠.”
한적한 새벽을 뚫고 밤하늘을 닮은 차가 쏘아져 나간다.
밟으면 밟는 대로 차가 나가는 느낌.
그 어떤 저항감도 느낄 수 없었다.
주행성능과 경제성은 말할 것도 없고 부드러운 승차감과 안정감, 거기에 반응성 좋은 조타력은 기분 좋은 주행감까지 선사한다.
이런 전기차가 시중에 풀린다면 기존의 내연기관 차량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른손을 놀려 클래식 모드로 전환해본다.
익숙한 배기음이 운전석으로 스며들어왔다. 핸들에는 묵직한 떨림이 느껴진다. 전기차 특유의 이질감은 싹 사라진 지 오래다.
난 이번 주행으로 한 가지를 확신했다.
내연기관차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것을.
* * *
[아시아 최대의 첨단 산업단지, 파주에 첫 삽을 뜨다!]
[특별 지원법 통과로 닉스산업단지 공사에 탄력 붙어. 내년 중순 무렵 완공 예정.]
[오성, KG, SG. 국내 3대 기업과 함께 글로벌기업인 닉스와의 시너지 효과? 전문가들, 10년간 300조 원의 경제효과 창출 예상.]
[가디언지 “파주에 미국 기업인 닉스가 들어가기에 전쟁 억제력도 기대할 수 있어”.]
지지부진했던 닉스산업단지 설립은 오성의 참여로 인해 급물살을 타게 됐다.
기존에 우호적이던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반대표를 던졌던 국회나 매번 부정적 기사를 쏟아내던 언론들까지 닉스산업단지를 찬양하고 나섰다.
한국이 새로운 산업단지 설립으로 떠들썩한 와중에도 세계의 IT 기업들은 저마다 착실히 자신들의 세를 불려 나갔다.
애폴은 매년 열리는 WWDC에서 최신형 AP와 독자적인 지문인식 시스템인 터치ID를 탑재한 애폴폰6를 발표했다.
그에 대응해 오성, KG, 소니, HTC, 폭스콘, 화웨이, 샤오미, 에이서, 델, 필립스 등 수많은 전자회사에서 스마트폰을 쏟아냈다.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스마트폰의 이익률은 바닥을 쳤지만, 그래도 포기하는 기업은 없었다.
다가올 미래엔 IT를 거머쥐는 기업이 모든 것을 차지하리란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시간이 흐를수록 치열해지는 IT기술경쟁.
닉스도 그 틈바구니에서 몸부림쳤고 그러는 동안 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