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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185화 (184/206)

기적의 IT 재벌 185화

“다만, 앞으로는 철저히 품질 위주로 발주 비율을 조정하겠습니다.”

난데없이 품질이라는 말이 나오자, 궁금증을 참지 못한 진승모가 되물어 온다.

“선배님,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바뀐다는 것인지요?”

“부품의 최종 상표는 닉스 로고가 찍히겠지만, 생산 공장을 따로 명시할 예정입니다.”

“혹시 닉스 내부에 따로 품질평가기관이 생기는 겁니까?”

“아닙니다. 닉스에서는 기존과 같은 수준의 QC만 진행할 뿐, 따로 평가할 계획은 없습니다.”

품질을 따져서 발주량을 조절하겠다고 하고선, 정작 평가를 하지 않겠다니? 두 사람 모두 아리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현행과 달라지는 것은 단 하나. 발주처에서 생산업체를 직접 지정하게 할 생각입니다. 그럼 제가 인위적으로 비율을 조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질이 좋은 쪽으로 오더가 몰리겠죠.”

“헙!”

순간 정용재의 입이 쩍 벌어진다.

현재 오성전자의 전기차 부품은 베트남에서, KG전자의 부품은 한국 공장에서 생산 중이다.

그 때문에 마감이나 품질은 단연 KG전자 쪽이 좋았으나, 오성은 베트남의 값싼 인건비로 더 낮은 단가를 내걸어 갭을 메꾸고 있었다.

하지만 발주처에서 지불하는 부품 단가는 동일했으니.

현행처럼 양사의 부품 단가가 같게 나간다면 made in korea를 쓰지 made in vietnam을 누가 쓴단 말인가?

“자, 잠깐만요. 강 대표님. 난데없이 이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어디 있긴요. 여기 있죠. 품질향상은 협력업체에 요구하는 기본사항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게…….”

“제 말에서 틀린 부분이 있습니까?”

난 별거 아니라는 듯 툭 던졌지만, 받아들이는 정용재로선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었다.

베트남 생산제품에 QC를 아무리 빡빡하게 한다 한들, 완성도나 마감, 그리고 신뢰도 면에서 한국 생산인 KG전자 부품을 이길 리가 만무했다.

“아무튼,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오더량을 조절할 테니, 양사는 이점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잠깐!”

뭐라도 해야겠다는 듯 정용재가 급히 말을 막아섰다.

“다른 의견이라도 있습니까?”

“발주처에서 선택하게 할 거라면 단가라도 차등 적용하게 해주십시오.”

“두 업체가 납품하는 것이 같은 부품이라는 거, 잊으신 건 아니시죠?”

“알고는 있지만 이대로는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잖습니까.”

난 우습다는 쿡쿡대며 그를 쳐다본다.

“단가를 차등 적용하면 필연적으로 등급을 구분해야 합니다. KG전자 생산 모터는 AA급에서 A급. 오성전자 생산 모터는 B급이나 C급으로 말입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정용재는 아차 싶었는지, 나직한 신음성을 토한다.

전기차 사업은 이제 날아오를 준비를 마친 유니콘 같은 사업이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 초기 이미지 선점이 중요한 법인데, 이런 시기에 B급이라는 딱지를 단다는 것은 기껏 오성이 쌓아 올린 브랜드를 스스로 망치는 꼴이었다.

썩은 표정의 정용재가 입을 달싹거린다. 그러나 이미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베트남서 부품을 생산하는 오성에는 최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의 주제가 품질에서 다른 방향으로 넘어간다.

전기차 부품에서 완성차 양산 계획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자, 자연스럽게 신형 배터리 수급 문제도 화두로 떠올랐다.

“현재 신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곳은 한국의 닉스 에너지와 일본의 파나소닉, 두 곳이 전부입니다. 물론 미국에도 공장을 짓고 있지만, 내후년은 돼야 물량이 나올 수 있겠지요.”

말을 여기서 끊고, 편하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그러자 애가 탔는지 진승모가 얼른 질문해 온다.

“신형 배터리의 위탁생산을 저희에게 맡겨 주실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축 처져 있던 정용재도 얼른 끼어든다. 오성SDI 쪽도 급한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오성도 포함이겠죠?”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는 특정 업체를 편애할 생각이 없다고요.”

두 사람의 눈에서 생기가 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얼마 전 닉스가 발표한 신형 배터리 탓에 기존 리튬이온배터리 공장의 가동률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플러그인 전기차 업체는 물론이고 하이브리드차를 중점으로 생산하던 도요타가 전기차로 이탈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나 할까.

“물론, 신형 배터리 역시 다른 전기차 부품과 동일한 프로세스를 적용합니다. 발주처에서 생산 공장을 결정하는 것으로요.”

이번에도 두 사람의 표정은 극명하게 갈렸다.

KG화학의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은 한국에 있지만, 오성SDI의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은 중국 텐진에 있었다.

“아, 아아…….”

정용재는 두통이 밀려오는지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댄다. 그와는 반대로 떨어진 감을 받아먹은 진승모는 광대가 하늘로 승천할 기세였다.

“자,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서…….”

이후,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1시간가량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두 사람의 분위기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완성차 업계는 극도의 보수적인 방식으로 부품을 선정한다.

조그만 부품의 하자로 대규모 리콜은 물론이고 인명피해까지 생길 수 있으니, 그건 당연한 절차였다.

이런 상황에서 오성과 KG의 이름에서 주는 신뢰도가 같다면, 남은 것은 어느 공장에서 생산했냐를 따질 것이 너무나도 뻔한데.

여기서 오성은 죽었다 깨나도 KG를 이길 수 없었다.

“나머지 자세한 사항은 실무진에서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오늘 미팅은 마치도록 하죠. 두 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진승모가 기분 좋게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선배님, 먼저 가보겠습니다.”

“예, 승모 씨. 들어가세요.”

그가 빠져나갔음에도 정용재는 한참이나 시체처럼 허공을 응시한다.

얼굴이 바싹 마른 것이 미스트라도 좀 뿌려주고 싶을 정도다.

“정용재 씨.”

“…….”

“정용재 씨?”

“아, 예.”

그제야 널려 있는 서류를 집어 드는 녀석.

“이번 일은 안타깝게 됐습니다. 경쟁사가 타 업체였다면 오성도 꿇리지 않겠지만, 하필이면 경쟁 상대가 국내 생산인 KG였으니까요.”

“…….”

그는 대답하지 않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벌써 가시게요?”

“예.”

“남아서 이야기 좀 더 하다 가시죠.”

“급한 스케줄이 있습니다.”

“무슨 스케줄인지는 모르겠지만 취소하는 걸 추천합니다.”

갑자기 뭔소리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

난 그에게 히쭉 웃어주며 말을 잇는다.

“제가 지금부터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할 거거든요.”

* * *

아침부터 날씨가 우중충하더니 9시가 넘어서자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랬음에도 국회의사당 입구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은 요지부동이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하는 것은 예사고, 간헐적으로 고성이 오가는 일도 있었다.

평소 느슨한 분위기의 국회에 이런 인파가 몰린 이유는, 오늘이 이번 정부의 첫 국정감사가 벌어지는 날이라서였다.

차에서 사람이 내릴 때마다 플래시 세례가 쏟아진다.

여당의 대표이자 4선인 김지원 의원.

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자, 차기 대표로 유력한 박문수 의원.

그리고 18대 대선후보였던 박혜근 전 대표와 문인재 전 대표도 모습을 드러냈다.

굵직한 정치인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그 외에 기자나 국회사무처 직원들, 피감기관 증인들까지 몰려들자 국회 내부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런 혼잡한 분위기 속에서 여유 있게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대현그룹의 최승룡 이사였다.

그의 자리는 야당의 박문수 의원 바로 뒤.

언제든 그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명당 중에 명당자리였다.

잠시 후.

기자들에 둘러싸인 박문수가 자리로 들어선다.

그는 능숙하게 기자들을 물리고, 구겨진 옷깃을 바로잡는다.

“박문수 의원님.”

“오, 최 이사님 아닙니까? 여긴 어쩐 일로.”

“어쩐 일이긴요. 닉스의 강현우가 제 발로 출석할지를 확인차 왔습죠.”

박문수는 고개만 돌려 그를 쳐다보더니, 어흠어흠 하는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증인으로 불출석해도 벌금만 내면 그만이라 생각할 테니, 안 올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불출석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국회를 우습게 본다는 프레임을 씌워서 처리 중인 법안을 보이콧할 명분이 생기는 거니까요.”

“알겠습니다. 아차, 그것보다…….”

박문수의 목소리 톤이 확 낮아진다.

“전에 요청했었던, 그거는 언제쯤 볼 수 있습니까?”

“이번 국정감사만 잘 진행되면 꽉 채워서 챙겨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의원님은 아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국회의원에게 뿌리는 떡값은 적게는 수천만에서 많게는 수억대에 이른다. 그러나 그 대상이 국내서 세 손가락에 드는 대현이라면 그 끝에 0 하나가 더 붙을 정도로 액수가 커지게 된다.

박문수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내민다.

“흐흐,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유, 의원님 제가 더 부탁드려야지요.”

최승룡은 박문수와의 대화를 끝낸 즉시, 여당 쪽 의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늘의 키맨인 여당 대표, 김지원 의원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주위에는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있는 탓에 인사도 못 하고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어쩔 수 없지. 인사는 나갈 때 하는 수밖에. 그사이에 별일이야 있겠어.’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10시.

시장바닥 같던 회의실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깔린다.

미리 호출했던 증인들이 하나둘 출석하자, 국회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호통 소리가 연이어 들려온다.

회의실 내부가 재판장이었다면 회의실 밖은 전쟁터였다.

돌발질문에 대응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공무원들과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취합해 의원에게 제공하는 보좌관들.

의원들이 고고하게 물 위를 유영하는 백조라면 그들은 수면 아래서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물갈퀴와 같았다.

오전의 질의가 끝나고.

오후 질의시간이 시작되자, 아침보다 더 많아진 기자들이 회의실 안까지 자리싸움을 시작한다.

“아 쫌! 밀지 좀 마소!”

“여기는 우리가 먼저 잡았거든요?”

“당신네 어디 소속이야? 여긴 KBS 지정 자리라고!”

“지금 종편이라고 무시하나요?”

기자들이 자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오후 잡혀 있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를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감사 내용은 인터넷 서비스업체의 과도한 개인정보 침해였다.

본디 이리 과열될 안건이 아니었으나 이번 감사에 엮인 사람이 닉스의 창업주이자 CEO인 강현우였기에, 그가 직접 출석할 것인지로 세간의 이목이 쏠려 있었던 탓이다.

-지금부터 인터넷 서비스업체의 과도한 개인정보 침해에 관한 국정감사를 실시하겠습니다. 감사 건을 신청하신 민주당의 김지원 의원님.

지목받은 김지원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마이크를 켠다.

-예, 우선 증인부터 세우고 시작하겠습니다. 증인, 들어오십시오.

입구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엔 놀람과 당황, 그리고 허탈한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사내가 단상에 선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포털 NEVER를 운영 중인 NHK의 대표, 유해진입니다.

회의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본디 닉스의 강현우가 서기로 했던 자리에, 경쟁사나 다름없는 NHK의 유해진이 서다니?

그것만으로도 깜짝 놀랄 일인데, 감사에 들어간 김지원은 유해진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나섰다.

-유해진 대표님, 최근 포털의 악성 댓글 관리 안 하십니까?

-하고 있습니다.

-하는 게 이 모양입니까? 지금 포털 댓글 한 번 보세요. 온갖 세력들과 자동 계정들이 NHK사 포털에 몰려서 난리입니다. 도저히 눈 뜨고는 못 봐줄 정도예요.

그는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갤 숙였다.

-그에 반해 닉스와 SG컴즈가 운영하는 트와일라잇은 악플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그건 주기적으로 클린 캠페인을 벌여 악성 사용자를 정리해서 그렇다더군요. NHK는 그렇게 못 합니까?

-노력하겠습니다.

-노력이 아니라 실천을 하란 말입니다! 실천을!

주어진 시간 동안 김지원 의원의 속사포 같은 질책과 호통만이 계속 이어진다.

그 때문에 본디 감사의 목적이었던 개인정보 이야기는 나올 새도 없었다.

증인석에 있던 유해진 대표가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이후에야 감사가 끝났다.

회의실에 있던 모든 이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있던 가운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최승룡 이사가 꽁지에 불이 붙은 마냥 달려온다.

“김 의원님!”

김지원은 그를 아래로 내려다보더니.

“누군가?”

“그때 한 번 뵀지 않습니까. 대현의…….”

“아아, 그 사람이었구먼.”

최승룡은 왠지 모르게 싸한 느낌이 들어 눈치를 살핀다. 상대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다.

“오늘 증인은 강현우 대표를 세운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랬었지.”

“그런데 왜 NHK의 유해진 대표가 나온 겁니까?”

“강 대표님 바쁜 사람 아닌가, 그런 사람을 여기다가 불러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불과 며칠 새, 약속을 뒤집어버리자, 최승룡도 약이 바짝 올라 말투가 공격적으로 변한다.

“닉스 쪽에 붙겠다는 겁니까?”

“공직자가 누구 편이 어디 있어. 그저,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는 거지. 내 말이 틀렸나?”

“인제 와서 그래 봐야 소용없습니다. 원내 과반인 야당의 힘만으로도 닉스산업단지는 막아설 수 있으니까요.”

심기를 건드리려고 던진 말이었지만, 어째선지 김지원 의원은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최승룡이 답답해서 인상만 찌푸리는 가운데, 김지원이 그의 어깨를 툭 두드린다.

“이렇게 정보가 어두워서야. 대현도 주류에선 밀린 모양이구먼.”

“갑자기 뭔 뚱딴지같은 소립니까? 우리가 밀리다뇨?”

“자네들이 닉스산업단지를 암만 막아서려 해봐야 이젠 불가능해졌어.”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껌뻑이는 최승룡에게, 김지원이 혀를 쯧쯧 찬다.

“닉스산업단지에 오성이 참여하기로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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