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82화
한 사내의 얼굴이 모니터에 비친다.
최근 들어 닉스에 뻔질나게 드나든다던, 정책실장 박현이었다.
-대표님! 반갑습니다!
급하게 뛰어왔는지 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불과 한 달 전, 느긋하게 날 대하던 행동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박 실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런데 닉스엔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아, 그게 인사나 드릴 겸…….
“이거 참. 나랏일도 바쁘신 분이 고작 인사나 하러 닉스까지 오셨단 말입니까?”
이미 정부에 대한 기대치는 바닥을 친 것으로 모자라 지하층까지 뚫은 뒤였다.
상대도 그걸 아는지, 까칠한 반응에도 웃으며 말을 계속 이어간다.
-사실은 강 대표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흠? 멀쩡한 거래도 파투나는 사이에, 부탁을 하러 오셨다고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번 일만 도와주신다면…… 제가 책임지고 닉스에 힘을 실어 드리겠습니다. 한 번만 믿어주십시오.
“먼 걸음 하셨으니, 이야기는 들어 드리겠습니다만, 큰 기대는 마시길.”
내 심정은 정부를 구슬려서 뭔가를 해보겠다는 게 아니라, 그를 한시라도 빨리 쫓아내고 하던 연구를 계속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 내 속도 모르고 박현은 이제 한고비 넘겼다는 표정으로 이야길 계속했다.
-아시다시피 이달 들어 정부 지지율이 많이 내려갔습니다. 그 배경에는 언론이 때려댄 것도 있지만 인터넷 여론도 한 몫을 거들었지요.
“정권 초기에 흔히 겪는 일 아닙니까?”
-그런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저희가 조사해 보니 인터넷상에 여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더군요. 마치, 누가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론조작팀입니까?”
-그렇습니다. 포털의 추천 반대는 물론이고 매크로로 댓글을 밀어내는 방식이…… 아무래도 전문적인 팀이 움직이는 듯합니다.
범인이 누군지 단박에 알 것 같았다.
전 정권이 남기고 간 유산인 국정원의 끄나풀들이겠지.
“정부에서 자체 조사는 해봤습니까?”
-조사는 착수했습니다만, 상대도 보통내기들이 아니더군요. IP를 수시로 바꾸는 건 물론이고 지방 모텔이나 차를 타고 이동하며 작업해대니 시일이 제법 걸릴 듯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대선에서 닉스가 했던, 그 캠페인을 다시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클린 캠페인?”
-아, 예. 그겁니다. 그거 한 방이면 세력들이 일거에 싹 쓸려 나가던데,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쯧쯧, 제집 안방에서 그런 짓을 하는 줄도 모르고 내게 도움을 청하러 왔다니. 코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죄송하지만 지금이 대선 같은 특수한 시기도 아닐뿐더러, 그런 곳에 관심을 쏟을 여유도 없습니다.”
-이번 공격을 막지 못하면 정부는 국정 동력을 잃고 맙니다. 부디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도…….
난 그의 말을 중간에 잘라먹고 말했다.
“박 실장님.”
-말씀하시죠.
“정치권에서는 이럴 때만 국민을 찾는 모습이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게…….
“아무튼, 저는 도울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돌아가 주시죠.”
축객령에 박현의 얼굴이 새파래진다.
대놓고 쪽을 줬으니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내 예상을 뒤엎고, 다짜고짜 무릎을 꿇어 왔다.
-저를 욕해도 좋습니다. 부디, 힘을 보태주십시오.
옆에서 지켜보던 서진서가 깜짝 놀라서 나와 박현을 번갈아 쳐다본다.
“왜 이러십니까, 박 실장님. 이만 일어나시죠.”
-그럴 순 없습니다. 허락해 주실 때까지 이 자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진서 씨, 뭐합니까. 어서 박 실장님 모시세요.”
-아, 알겠습니다.
서진서가 일으키려 했지만, 그는 석상처럼 요지부동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대표님, 저는 이 자리에서 죽을 생각으로 왔습니다! 다시 한번만 생각해 주십시오!
정권의 실세라는 사람이 새파란 젊은 놈에게 이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뜻이겠지.
내게 있던 측은지심이라는 녀석이 입을 연다.
“휴, 좋습니다. 뜻은 알겠으니, 일단 일어나세요.”
-이대로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이 아저씨,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난 마음대로 해보라는 뉘앙스로 손을 휘젓는다.
-이번 일만 도와주신다면, 국토교통부 장관을 닉스 사람으로 선임하겠습니다.
귀가 솔깃해져 온다.
국토교통부는 국토 계획과 건설, 도로, 교통에 관한 사무를 관리하는 부서다.
서열은 낮으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에 기재부와 법무부 등을 제하면 가장 파워있는 자리였다.
국토 ‘교통’부였기에 당연히 택시 운수법이나 자동차, 전기차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이기도 했다.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쁘진 않군요. 한데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대현에서 가만있지를 않을 텐데요.”
국토교통부에서는 자동차의 허가문제나 리콜 여부도 결정할 수 있다. 그 말은 즉, 내가 국토교통부라는 칼을 손에 쥐면 대현의 발목을 거는 수준이 아니라 발목을 잘라 버릴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이번만큼은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식물 정부로 임기를 마쳐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진즉 그랬으면 우리 사이도 더 가까워졌을 텐데. 아쉽습니다, 박 실장님.
-그러게 말입니다.
박현이 애매하게 미소짓는다.
그건 자신에 대한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좋습니다. 정부 측 의견을 들어봤으니, 이제 우리 측 요구 조건을 제시해야겠지요?”
-말씀만 하시지요.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제가 큰 욕심은 없습니다만, 평소에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닉스 코리아가 아직도 사옥이 없어, 셋방을 전전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
“그러니 이번 기회에 강남에 땅을 좀 받았으면 합니다.”
강남이라는 말에 박현의 얼굴색이 어두워진다.
현재 비어 있는 강남땅은 딱 3곳이다.
한국감정원, 한국전력, 서울의료원 부지.
한국감정원 터는 이미 오성이 낙찰을 받았고, 남은 두 곳을 가지고 전국의 재벌과 부호들이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만약, 정부가 나서서 이 땅을 닉스 손에 쥐여준다면, 그건 앞으로도 정부가 닉스의 손을 들어준다는, 일종의 시그널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셈이다.
“이왕이면 크게 짓고 싶습니다. 랜드마크 수준이 될 정도로요. 그러니 적어도 10만 평은 됐으면 합니다.”
-10만 평이라면…….
박현의 얼굴이 어둡다 못해 썩었다.
현재 강남에 남아 있는 땅 중, 10만 평이나 되는 곳은 없다.
한국전력이 7만 평, 서울의료원 3만 평.
즉, 남은 두 곳을 몽땅 닉스가 먹겠다는 소리였다.
-이, 일단 이런 부분은 저도 상의를 좀 해봐야 하는지라…….
“박 실장님.”
이름이 불리자, 박현은 움찔하고 놀라서 쳐다본다.
“이번이 고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겁니다.”
* * *
반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정부는 닉스의 모든 요구 조건을 수용하기로 했다.
물론 이번 일로 여론의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때, 라는 단서를 붙인 채로 말이다.
그로부터 1일째 되던 날.
인터넷상의 모든 유령 계정들이 자취를 감췄다.
그 때문인지 포털의 좋아요와 싫어요의 숫자가 반의반 토막이 났으며, 인터넷 뉴스에서 도배되다시피 달렸던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댓글은 자취를 감추게 됐다.
2일째 되던 날.
SNS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무분별하게 허위 뉴스를 퍼 나르던 일벌 계정은 물론이고, 허위 뉴스를 생산하던 여왕벌 계정들까지 하나둘 정지되기 이른다.
이날부터 정부의 지지율이 소폭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3일째 되던 날.
각종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소위 정부에 비판적이던 아이디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밀린 이유는 친정부적인 게시물과 댓글을 다는 계정들이 대거 유입된 탓이었다.
비판세력들은 정부의 작전이라고 몰아세웠지만, 기존에 정치적 침묵을 지키던 일반 계정들이 합세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이 커뮤니티에서 추방되기 이른다.
5일째 되던 날.
닉스 철수설을 닉스의 CEO인 강현우가 직접 나서서 부인하고 나섰다. 그로 인해 정부의 지지율은 다시 30%대를 회복했으며, 여론도 대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정부는 분위기를 굳히기 위해, 앞으로도 닉스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한다는 공식 입장문을 발표하게 된다.
6일째 되던 날.
유령 계정들이 슬금슬금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서울 곳곳에는 기록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모든 언론이 시위에 스포트라이트를 가져 대고 총력전을 펼치는 가운데 다른 쪽에서 대형 스캔들이 터지게 된다.
[위험한 삼각관계, 국민 여배우 김미란을 두고 재벌가 형제 난투극 벌여.]
국민 여배우 김미란만 해도 파격적인데, 거기에 재벌가 형제라는 자극적인 요소가 곁들여졌으니. 루머는 삽시간에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 입에 뉴스가 오르내리자 기자들의 심층취재도 뒤따라 이어졌다.
루머의 재벌가는 대현그룹이었으며, 형제는 김미란을 두고 조폭까지 고용해서 혈투를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스캔들로 인해 반정부 시위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시위를 주최했던 단체들도 이날을 기점으로 사분오열되어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 * *
청와대 정책비서실.
심각한 표정으로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정권의 허리라 불리는 최진수 비서실장과 박현 정책실장이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서류는 비공식적으로 수집한, 정부의 지지율 변화 보고서였다.
집권 당시 60%를 넘봤던 지지율은 이달 초 30%가 붕괴했으며, 중순에는 23%까지 곤두박질쳤다. 이제 출범 5개월 차로 접어든 정권으로선 절망적인 성적표였다.
그랬던 지지율이 추이가 오늘 자로 40%대로 회복됐다고 보고가 올라왔다.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최진수는 웃을 수가 없었다.
“40%?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닉스에 손을 벌린 지가 고작 일주일 전인데 그사이에 무려 15%가 넘게 오르다니!”
“통계가 틀리진 않았을 겁니다. 인터넷 여론이 바뀐 건 물론이고, 언론들도 우리 눈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찌, 기업 하나가 정치판에 이 정도 파급력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이건 한국 정치사에 전무후무한 일일세.”
“닉스 정도의 기업이 생긴 것도 한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최진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박현을 쳐다본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인정해야 할 건 인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닉스가 날고 기어도, 국내에서는 재벌가를 못 이겨.”
“재벌들은 우물 안 개구리일 뿐입니다. 당장 국내 투톱이라 불린 오성과 KG를 보십시오. 닉스에 공급하는 스마트폰과 전기차 부품 때문에 바짝 숙이고 들어가지 않습니까?”
박현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지만, 사람의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최진수는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내젓는다.
“재벌가의 진짜 힘은 그들만의 인맥이야. 제아무리 닉스라고 해도 국내에선 어쩌지 못해.”
“이번에 대법원장 후보로 올라 있는 박승구 대법관이 누구 라인인지 잊으셨습니까?”
“크흠…….”
한국의 대법원장은 대법관 임명 및 판사 보직권, 심지어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지명도 가능하면서 탄핵이나 금고형이 아니고선 파면되지도 않는다.
그런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자리까지 닉스의 입김이 닿는다면?
“앞으로도 닉스의 영향력은 계속해서 커질 겁니다. 시류를 읽지 못하고 반대로 향하다간 도태되고 말겠지요.”
“대통령께선 여전히 닉스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계시네. 일전의 공장 건도 그렇고, 이번에도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잖는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박현은 이미 결심을 하고 온 듯,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저라도 배를 갈아타는 수밖에요.”
“자네!”
최진수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음에도 박현은 대수롭잖게 고개를 쳐든다.
“최 실장님, 이대로 흘러간다면 다음 정권은 누가 잡을 거 같습니까?”
“크흠…….”
닉스는 단 일주일 만에 여론을 뒤집어냈다.
그들이 택한 곳이 다음 선거의 승자가 될 거란 것을 잔뼈가 굵은 최진수가 모를 리 없었다.
최진수가 답이 없자, 박현은 자리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아직 앉아 있는 그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닉스의 강 대표가 그러더군요. 이번이 고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