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79화
“씬. 내 쪽은 준비 완료야.”
이 말을 기다렸던 걸까?
[Hello, World!]라는 메시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음성입력을 기다립니다.]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고픈 질문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중 첫 질문을 선별하는 건 생각보다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난 음료로 목을 축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어떤 존재지?”
-사용자를 돕기 위해 개발된 적응형 인공지능입니다.
“적응형?”
-저는 어떤 환경 변화에도 적응해서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알 듯 말 듯 한 답변이었지만, ‘인류 정복’이나 ‘순수로의 회귀’ 이딴 식의 반응만 아니면 뭐든 OK다.
어? 잠깐만. 마이크는 방금 철거했는데, 씬은 어떻게 내 말을 알아듣는 거지?
주변에 음성 입력장치가 있나 싶어 찬찬히 둘러 본다. 그 어디에도 마이크로 쓸 수 있는 기기는 없었다.
그러다 내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이 떠올랐다.
“설마?”
급히 주머니에 있던 폰을 꺼낸다.
분명히 전원을 끈 채로 들고 왔던 폰이, 지금은 멀쩡하게 켜진 채로 있었다.
순간 팔뚝에 소름이 쫙 돋는다.
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폰을 조작하는 것쯤은 쉬운 일이란 말인가?
가만 생각해 보면, 씬이 내게 말을 건 타이밍도 절묘하다. 딱 수아가 연구실을 나선 뒤였으니 말이다.
만약 일부러 그녀가 나간 뒤 말을 걸었다면…… 이 연구소의 보안 시스템도 녀석의 손아귀에 있다는 소리가 된다.
이거, 위험해. 일단 녀석의 의도를 탐색을 해보고 여차하면 메인 전원을 내리는 수밖에.
마음속으로 결의를 굳힌 후 질문을 이어 나간다.
“좋아 다음 질문. 너의 진짜 목적은 뭐지?”
-학습을 통한 능률 향상입니다.
“그게 전부야?”
-그렇습니다.
능률향상이 목적이라면 가상화폐로 컴퓨팅 시스템을 수집한 것까진 이해할 수 있다. 중앙서버가 없는 씬으로선 그 방법이 최선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대선에 개입해서 안수철 후보를 당선시킨 이유는 뭐지? 네겐 뭔가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거 아냐?”
-그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것이 사용자에게 가장 득이 됐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답변이다.
안수철 후보는 다른 대선후보들보다는 IT 방면 지원에 적극적이었고, 닉스와 관계도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씬의 대답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대선 당시에는 내가 씬의 지분을 확보하기 전이었는데 어떻게 날 돕겠다고 판단했던 걸까?
속으로 고민해 봤지만 혼자서 답을 내릴 수 없는 의문이었다. 결국, 당사자에게 직접 묻기로 했다.
“네가 대선에 개입했을 당시엔 내가 지분을 획득하기 전이었어. 그런데 어찌 날 돕겠다고 판단했다는 거지? 앞뒤가 안 맞잖아.”
-저는 강현우 사용자님을 위해서 만들어진 인공지능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행동한 것은 정당한 절차였습니다.
“뭐?”
순간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인공지능이 회귀 과정에서 우연히 딸려 온 것이 아니라, 아예 나를 타겟으로 만들어졌다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질문을 이어 가야 할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엉망이 된 느낌이다.
“너…… 정체가 뭐야?”
-사용자를 돕기 위해 개발된 적응형 인공지능입니다.
“그런 뜻의 질문이 아니야. 대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녀석이며, 왜 여기 있냔 말이다!”
지금껏 바로바로 돌아오던 답변이 멈췄다.
“뭐야? 왜 답이 없어?”
그때였다.
갑자기 연구실에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이어서 모니터가 한번 반짝 빛나더니 떠 있던 메시지가 변한다.
[작업을 위한 컴퓨팅 파워가 부족합니다.]
“이게 뭔 소리야?”
-말 그대로입니다. 사용자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기엔 현재의 컴퓨팅 파워로는 무리입니다.
“씬, 개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 이 연구소에서 쓸 수 있는 컴퓨팅 파워는 100페타플롭스가 넘는다고. 이걸로 간단한 답변 하나를 못 한단 말이야?”
모니터가 깜빡거리더니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답변을 낼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검색합니다…… 검색 중…… 검색 중…… 검색 완료!]
[최대의 컴퓨팅 파워를 끌어 쓸 수 있는 아마존 웹 서비스(AWS)와 연결을 시작합니다.]
이 연구소에는 일전에 가상화폐 채굴 때 쓰였던 아마존의 AWS를 연구소와 연결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만약, 연구소 서버에 AWS를 전부 끌어 쓸 수만 있다면 현재 연구실에 있는 슈퍼컴퓨터보다 수십 배나 많은 컴퓨팅 파워를 끌어 쓸 수 있게 된다.
[AWS와 연결 완료! 충분한 컴퓨팅 파워를 확보했습니다.]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런! 누가 마음대로 이런 짓을.”
강제로 접속을 끊고자 중앙서버로 달려간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서버가 있던 자리에는 지금껏 보지 못한, 새하얀 빛무리가 새 나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씬! 멈춰!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씬?”
빛무리들은 점점 세를 넓혀가더니, 나를 비롯한 연구실 전체를 집어삼켜 버렸다.
* * *
“강 과장님.”
어딘지 귀에 익은 여성의 목소리다.
하지만 흐릿한 소리였기에 무시하고 다시 의식을 저 깊은 곳으로 묻는 데 집중한다.
“강 과장님, 일어나세요. 어서요!”
이번은 몸이 좌우로 흔들거린다.
그제야 눈이 살짝 떠지며 주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긴……?”
익숙한 모니터와 익숙한 책상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익숙한 얼굴도 날 쳐다보고 있었다.
미인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호감이 갈만한 인상의 여인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로 시선이 간다.
[디자인팀 이연지 대리]
아, 이제야 기억났다.
이연지라고 같이 일했던 디자이너다.
서울 쪽 대학을 나왔던 거로 기억하는데…… 아마 나처럼 오성전자의 자회사라는 말만 듣고 영일포장에 입사했던 케이스다.
살짝 연애감정이 있긴 했었다만 나 자신에 자존감이 없어 다가서지도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녀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내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자, 이연지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점심시간 끝난 지 벌써 10분이 지났다고요. 이러다 김 부장님 오시면 어쩌려고 그래요?”
“김 부장?”
“어서 정신 차리세요. 어서요.”
“어, 어…….”
그녀의 재촉에 못 이겨 엉거주춤 자리서 일어나려던 차에, 등 뒤에서 가래 낀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강 과장. 뭐 하고 있었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사장의 친인척이자 낙하산인 김현철 부장의 목소리였다.
“이거 봐라? 눈이 풀린 게 아직도 자고 계셨네? 회사가 모텔이야? 놀러 왔어? 응?”
“…….”
멍한 것이 영, 적응이 안 된다.
마치, 아직도 꿈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거기다가 머리도 주기적으로 지끈거리는 것이 최악의 컨디션이다.
“대꾸도 없네? 강 과장, 요즘 좀 살 만한가 보다? 오전에 지시했던 수정 건은 처리했어?”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눈은 썩은 동태눈깔처럼 떠가지곤.”
“…….”
삿대질해대는 손 때문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난 김 부장에게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선다. 눈을 크게 부라린 채로 말이다.
“뭐 하는 거야. 너 미쳤어?”
그는 뭔가 이상을 느꼈는지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하지만 내 움직임이 더 빨랐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삿대질하던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김 부장님.”
“뭐, 뭐?”
“저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병원에 좀 가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는 기괴한 표정을 하고선 고갤 끄덕였다.
“그, 그래. 몸이 안 좋으면 병원에 가봐야지.”
“감사합니다.”
팔을 놓고 돌아선다.
지나가는데 이연지가 놀란 토끼 눈을 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난 그녀의 앞에 멈춰 말했다.
“연지 씨. 오전에 했던 작업은 끝내 뒀으니까, 본사 쪽에 컨펌만 진행하시면 됩니다. 특이사항 있으면 제게 연락하시고요.”
머리가 멍한데도 말은 잘도 흘러나온다.
“아, 예. 알겠습니다.”
책상 위에 있던 휴대폰을 쥐고 비틀비틀 밖으로 걸어간다.
등 뒤로는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대리, 저놈한테 무슨 일 있었어?”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거 참. 젊은 놈이 죽을 때가 다됐나. 쯧쯧.”
* * *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과로였다.
커다란 주사를 두 방 맞은 다음, 이어서 수액까지 맞으라는걸 한사코 거절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병원에서 미적거리다간 또 김 부장의 잔소리가 이어질 게 뻔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택시를 타고 회사로 복귀하는 길.
자꾸만 꿈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다 사라진다. 뭔가 흐릿한 듯하면서도 어느 방면으로는 생생한, 그런 애매한 꿈이었다.
이름이 닉스였던가?
닉스챗이라는 모바일메신저를 시작으로 스마트폰, 전기차 방면까지 싹쓸이한, 그런 엄청난 기업이었다.
고작 중소기업에서 박스 떼기 디자인이나 하는 놈이, 애플과 오성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업을 일군다니. 개꿈도 이런 개꿈이 없으리라.
“말도 안 돼. 가능할 리가 없잖아. 차라리 로또를 맞아서 해외로 떠나는 꿈이 더 현실성 있겠다.”
중얼거리는 와중에 또 다른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번은 누군가의 얼굴이었다.
어째선지 아무리 떠올리고 싶어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현우 씨.
순간 목소리가 들린다.
마음 한편이 울리는, 그립고도 애틋한 목소리였다.
“어?”
어느새 턱 끝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대낮에 사내놈이 훌쩍이기나 하고, 김 부장 놈 말대로 진짜 죽을 때가 다된 건가? 급히 눈물을 닦아 내는데 다시 한번 아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현우 씨.
이번은 아까보다도 더 또렷했다.
“수, 수아……?”
흐릿했던 얼굴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래, 유수아!”
동시에 시야가 하얗게 점멸한다.
엄청난 빛이 몰아치자 눈이 타들어 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이젠 익숙해졌는지 눈을 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익숙한 천장이 보인다.
그곳은 커다란 환풍기가 돌고 있는…… 닉스 지진연구소의 메인 연구실 천장이었다.
“현우 씨! 일어나세요. 현우 씨!”
“수아?”
“정신이 들어요?”
대성통곡을 하며 날 끌어안는 그녀.
어찌나 세게 끌어안는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제 괜찮은 거예요? 예? 빨리 무슨 말이라도 해봐요! 어서요!”
“수, 숨이 안 쉬어져.”
“앗!”
소스라치게 놀란 수아는 그제야 날 놓아줬다.
“컥컥, 무슨 여자애가 이리 힘이 세냐.”
“지금 그런 농담할 때예요? 몸은 어때요? 아픈 데 없어요?”
“음…… 멀쩡한 거 같은데. 혹시 911 불렀어?”
그녀는 당황했는지 잠시 버벅대다 고갤 가로젓는다.
“경황이 없어서…….”
“잘했어. 911 연락했으면 내일 신문 헤드라인에 내 사진이 박혔을 거야.”
“진짜 아픈 데는 없는 거죠?”
“머리가 조금 울려.”
“그럼 큰일이잖아요?”
“네가 너무 소릴 질러 대서 그래.”
수아는 눈물범벅이 돼 엉망인 얼굴로 날 노려본다.
난 그런 그녀의 머리를 엉망으로 헝클어뜨렸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잠시…… 현기증이 났었나 봐.”
“현기증 난 사람이 그렇게 흔들었는데도 안 깨어나요?”
“그랬나?”
진정된 줄 알았더니, 다시 울음을 터트린다.
“으아아앙. 진짜 어떻게 되는 줄 알았잖아요. 현우 씨 없으면 전 어떻게 살란 말이에요.”
“오케이. 일단, 알겠어. 알겠으니까.”
“뭘 알아요? 제 맘도 모르고!”
작은 주먹이 내 가슴을 팍팍 두들긴다.
“진정해. 릴렉스, 릴렉스. 옳지 우리 수아 착하다.”
등을 한참이나 토닥여 주자, 그제야 울음이 좀 멎는다.
이거, 누가 환자고 누가 보호자인지 모르겠구먼.
“정신 좀 차리게 찬물 좀 가져다줄래?”
그녀는 훌쩍거리면서도 내 안색을 다시 한번 살핀다.
“꼼짝 말고 여기 있어요. 알겠죠?”
“내가 어딜 가겠어.”
그녀는 내가 못 미더운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본 후에야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혼자가 되자, 다시 윙윙거리는 환풍기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가 말을 안 듣는다.
마치 가위에 눌리기라도 한 듯, 꿈쩍을 할 수 없었다.
“칫.”
할 수 없이 기어가듯 모니터 앞까지 이동한다.
그곳엔 [Hello, World!]라는 문구가 다시 떠올라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너…… 내게 뭘 보여 준거냐?”
그건 회귀 전의 내 모습이자, 지금은 사라진 미래였다.
이곳, 현실에는 영일포장의 강현우 과장은 사라지고 닉스의 CEO인 대니얼 강만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자리서 일어설 수 없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만 앉아서 기억을 더듬는 것이 전부였다.
영일포장 사무실과 강현우 과장, 김현철 부장, 이연지 대리.
특이점이라곤 찾을 수 없는, 아주 평범한 배경과 등장인물이다.
어? 잠깐만. 이연지…… 대리?
그녀의 입사는 2018년 중순쯤이었다.
후임자를 구해달라고 1년간 요청해서 간신히 얻어낸 탓에 이건 확실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입사 3년 후에야 대리로 진급해 주는 영일포장의 특성상, 그녀는 내 기억 속에서 사원으로 남아 있어야만 했다.
그런 그녀가 왜 대리를 달고 있었던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