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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174화 (173/206)

기적의 IT 재벌 174화

타닥타닥.

한쪽에는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다른 한쪽에선 화상통화를 이어간다.

통화 상대는 한국의 닉스 연구소 소장, 무자파다.

“이번은 산소 농도를 반대로 조절해봅시다. No0058810 샘플보다는 조금 더 짙게. 반응이 나오면 3% 내외로 더 응축시키는 겁니다. 알겠죠? 듣고 있습니까, 무자파?”

-듣고 있다. 방금 샘플 가동 들어갔다.

“좋습니다. 결과 나오는 대로 넘겨주시고요. 그동안 우린 샘플 하나 더 걸어봅시다.”

모니터 너머에 있는 무자파가 손바닥을 들어 보인다.

-잠깐. 기다려 달라.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무슨 일 있는 게 아니라 일이 너무 많다. 이런 많은 작업, 검증 절차, 우리 실험실에서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카메라를 집어 든 무자파가 실험실 전경을 한 번 비춰준다. 그곳엔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기계적으로 실험대 앞에 매달려 있었다.

하나같이 초점 없는 눈동자로 멍하니 말이다.

-오늘만 벌써 22시간째다. 연구원들 지쳐 있다.

“시간이 그렇게까지 됐었군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무자파는 고갤 절레절레 흔들고선 말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연구에 매달리는 거냐? 연구는 우리의 몫, 경영은 대니얼의 몫 아니었나?

“이번 방식은 성공할 가능성이 큽니다. 저를 믿고 따라 주세요.”

-못 믿는 거 아니다. 대니얼 뛰어나다. 하지만 이렇게 급하게 하는 거 반대다. 사람들 못 버틴다. 대니얼도 못 버틴다.

지금의 연구 스케줄이 무리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골인 지점이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데도 아슬아슬하게 잡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니, 중간에 끊을 수가 없던 것이다.

“정 그렇다면,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전원 2시간 뒤 다시 보는 거로 하죠.”

-우리 연구는 오늘 못 하면 내일도 할 수 있다.

“반대로 오늘 끝내고 내일 쉬면 안 될까요?”

팔짱을 낀 무자파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쳐다본다.

-한국 사람들 빨리빨리 좋아하는 거 안다. 나도 빨리빨리 결과 내고 싶다. 하지만 닉스 급하지 않다. 지금도 닉스 연구소 이차전지 부문 최고다.

“그건 알고 있지만…….”

그런 와중에 무자파는 다시 한번 연구소 내부를 비춘다. 이번은 샘플실 내부까지 들어가서 직원들을 비춰준다.

꾸벅꾸벅 졸면서 일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이래서야 성공할 실험도 실패할 것만 같았다.

“휴, 좋습니다.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다시 하죠.”

-훌륭한 판단이다.

틱, 소리와 함께 모니터가 꺼진다.

그와 함께 내 몸뚱이를 의자에 늘어뜨렸다. 긴장이 풀리자 지금까지 외면해 왔던 피로감과 허기가 한 번에 몰려온다.

“뭐가 잘 안 됐나 보죠?”

수아의 목소리였다.

돌아보니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에너지 드링크를 들고서 말이다.

“언제 온 거야?”

“한 시간쯤 됐으려나요?”

“뭐? 한 시간? 왔으면 왔다고 이야길 하지 그랬어.”

그녀는 자신의 미간을 과장되게 주름지게 만들고서 콧등까지 찡그려 댄다.

“이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고서 앉아 있는데 어떻게 말을 걸겠어요?”

“내가 그랬나?”

“그랬나가 아니라 그랬어요. 일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좀 쉬엄쉬엄하세요. 그러다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내가 말없이 에너지 드링크만 홀짝이고 있자, 수아가 다시 말을 붙여 온다.

“성과는 좀 있었어요?”

“어떤 성과? 씬에 대한 연구? 아니면 배터리?”

“둘 다요.”

방금까지는 걱정스러웠던 그녀의 표정이 이젠 호기심으로 물들어 있다. 누가 공순이 아니랄까 봐 이런 부분에서는 나보다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난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해댄 뒤 입을 열었다.

“씬에 대해서라면 알아낸 게 별로 없어. 아직 어떤 방식으로 구동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방면으로까지 쓸 수 있는지조차 미지수야. 다만…….”

“다만?”

“엄청난 녀석이라는 건 확실하지. 지금 진행하는 배터리 연구만 해도 기존 2년 동안 연구했던 것보다 이 녀석과 사흘간 씨름했던 게 훨씬 진보가 빠를 정도야.”

수아의 눈이 달덩이처럼 커진다.

“그 정도 능력이면 천지가 개벽할 수준 아니에요?”

“워워, 수아야, 일단 진정해 봐.”

“제가 어떻게 진정하겠어요. 씬을 제대로만 다루면 인류의 기술이 수십 년은 앞당겨질 텐데요. 암을 정복하거나 노화를 막아내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고요!”

확실히 그녀의 바람대로만 된다면 씬의 발견은 인류의 특이점이 온 날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리 쉽게는 되지 않는 법이었으니.

난 흥분한 그녀를 억지로 자리에 앉힌다.

“잘 들어, 수아야. 씬은 도깨비방망이처럼 뭐든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아니야. 예를 들어 ‘다른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방법을 가르쳐줘!’ 따위의 질문을 해봐야 아무런 반응도 없었어.”

“금으로 바꿀 방법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니. 특정금속을 입자 가속기에 넣으면 소량이지만 금을 만들어 낼 수 있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탓에 아무도 쓰지 않지만 말이야.”

“방법이 있는데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요? 그것참 이상하네요. 제가 블록체인 개발할 땐 적극적으로 도와주던데…… 사람을 타나?”

보통이라면 그냥 농담으로 넘어갔겠지만, 씬은 지금껏 세상에 없었던 인공지능 시스템.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어쨌든, 이놈이 언제 다시 변심할지 모르니 지금은 배터리 기술에만 올인할 셈이야. 이것저것 쑤시다가 망하는 것보단 하나라도 제대로 건지는 게 나을 테니까.”

“그래서 요 며칠간 무리를 하셨군요…….”

난 걱정하는 그녀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다. 머리 만지면 싫어한다는 걸 알지만 어째선지 틈만 나면 쓰다듬게 된다. 벌써 나쁜 버릇이 든 거 같다.

“현우 씨.”

“아 미안미안.”

내가 손을 떼려 하자, 그녀가 되려 손을 붙잡는다.

“저 결심했어요.”

“갑자기 무슨?”

“현우 씨는 계속 배터리 연구를 해주세요. 씬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제가 나서서 알아볼게요.”

그녀의 진지한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다. 갑자기 이런 말을 들으니 뭐라고 답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

열심히 하라고 해줘야 하나? 그게 아니면 건드리면 안 된다고 막아야 하려나?

머릿속이 혼란한 가운데 그녀가 얼굴을 내 쪽으로 가까이 내민다.

“저, 할 수 있어요. 씬의 능력을 처음 알아낸 것도 저였다는 거, 잊으신 건 아니죠?”

* * *

한국의 닉스 에너지 본사.

본디 태양광 패널을 만들던 조그만 공장이, 지금은 연간 40만 개의 자동차용 배터리를 만드는 초대형 공장으로 변해 있다.

이 배터리 공장에 폭스바겐, GM, 도요타, 혼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완성차 기업의 경영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기가 배터리 테스트 룸입니다. 보시다시피 리튬에어배터리는 그 어떤 충격에도 발화하지 않습니다.”

방문자들의 면면이 화려했기에 공장 소개는 책임자인 손만호 사장이 직접 진행하고 있었다.

“심지어 강제로 불을 붙여도 번지긴커녕 불씨가 사그라들 정도죠. 이보다 더 자동차에 어울리는 배터리가 있을까요?”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손만호 사장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손을 번쩍 드는 사내.

그는 도요타의 도요다 아키라 사장이었다.

“리튬에어배터리의 테스트는 우리도 독자적으로 진행을 마친 상탭니다. 충·방전 효율이 나쁜 것을 제하면 용량, 안정성, 온도 저항력, 모든 면에서 완벽한 배터리더군요. 안 그렇습니까?”

다른 완성차 경영진들도 도요다 사장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시선을 다시 손만호 사장에게로 돌린다.

“공장 투어를 하려고 우릴 한국까지 초대한 건 아니겠지요, 손만호 사장님?”

“하하, 그럴 리가요. 이번 공장 투어는 일종의 에피타이저입니다. 오늘 초청한 기업들은 닉스와 파트너사가 될지도 모르니, 미리 예의를 보이는 거라고나 할까요.”

파트너사라는 말에 반신반의하며 한국행을 택했던 완성차 경영진들의 표정이 환하게 펴진다. 특히 GM의 CEO이자 자리의 유일한 여성인 메리 바덴은 손뼉까지 쳐대며 기쁨을 표했다.

그들이 초청 한 번으로 먼 한국까지 왔던 이유, 그것은 닉스의 배터리 계약을 따내기 위함이었다.

현재 테슬라와 볼보에만 독점적으로 제공되는 리튬에어배터리를 확보할 수 있다면 자신들도 전기차 분야에 진입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공장 투어를 마친 그들은 접객실로 안내됐다.

접객실은 거대한 공장 규모에 비하면 아담하고 작은 공간이었다.

그들이 준비된 차와 다과를 마시는 도중, 잠시 사라졌던 손만호 사장이 다시 나타났다.

“공장 구경은 잘하셨습니까?”

다들 지친 기색으로 고개만 끄덕인다. 하고 싶지 않은 공장 투어였지만 계약을 위해 억지로 끝마친 표정들이다.

손만호 사장은 준비해 온 서류뭉치를 앞으로 꺼내 들며 말을 이어간다.

“앞서 도요다 아키라 사장님이 말씀하셨듯, 닉스에서 개발한 리튬에어배터리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그건 충·방전 효율이 낮아, 배터리 교환형으로밖에 쓸 수 없다는 거죠.”

“그 때문에 우릴 부른 것 아닙니까?”

불쑥 말을 꺼낸 건 폭스바겐 그룹의 빅터 CEO였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배터리 교체형 전기차는 교환소 인프라가 많이 깔려야 대중화가 빠르죠. 그래서 우리 완성차 업체와 협업해서 순식간에 인프라를 완성할 생각 아닙니까?”

그는 자사의 강점인 시장지배력을 강조해, 배터리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모습이었다.

손만호 사장은 음험한 미소를 속으로 숨긴 채 말을 이어간다.

“배터리 교체형 전기차라면 빅터 대표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특히 업계 1위인 폭스바겐 그룹이라면 인프라만 따져놓고 봤을 때 최고의 파트너사가 되겠지요.”

“잠깐!”

이번은 도요타의 도요다 사장이었다.

“도요타도 그에 못지않은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모리 총리가 전기차 대중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만큼, 일본 시장에서 강한 우리 도요타도 충분히 강하다는 거 잊지 말아 주십시오.”

폭스바겐과 도요타가 치고 나오자, GM과 혼다도 지지 않겠다는 듯 자사의 PR에 나섰다.

“어허, 왜 그러십니까? 전기차 기술력은 혼다도 못지않습니다.”

“GM은 전기차 생산 준비가 끝났어요. 배터리만 있으면 양산에 들어간다고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완성차 업계의 경영자들이 자신의 환심을 사고자 싸워대는 꼴이라니. 손만호 사장은 짜릿한 쾌감에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자, 다들 진정하십시오. 아직 닉스가 어떤 제안을 할지도 모르시지 않습니까? 일단 이야기부터 들어봅시다.”

도요다 사장의 말에, 그제야 추태를 부린 걸 깨달았는지 급히 헛기침해대는 경영진들.

손만호 사장은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신히 참아가며 서류를 집어 든다.

“먼저 드리는 건 일종의 카탈로그입니다. 새로운 배터리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다 기재돼 있으니 충분히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별생각 없이 서류를 받아든 경영진들의 표정이 얼마지 않아 경악으로 바뀐다.

“충·방전 효율 99.4%? 게다가 충전 최대 속도가 기존의 4배인 400㎾라니. 수치가 잘못 기재된 거 아닙니까?”

“귀하신 분들을 모셔두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 이러면 교체소 인프라의 의미가 없어져. 아니지, 이게 보급되면 내연기관 자동차의 시대가…….”

그는 뒷말을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내연기관의 시대가 저문다는 건, 달리 말하면 자신들의 시대가 저문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자, 다음은 신형 배터리 계약서입니다. 잘 살펴보시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이 자리에서 질문하시면 됩니다.”

싱긋 웃는 손만호 사장과는 반대로, 서류를 받아든 완성차 경영진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그들 중엔 눈을 질끈 감아버리거나, 고갤 털레털레 흔드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러한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계약서에는 신형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핵심부품인 모터와 더불어, 기타 전자장비 17종을 닉스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독소조항이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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