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72화 (171/206)

기적의 IT 재벌 172화

차세대 가상화폐인 씬(XIn)을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컴퓨팅 파워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화폐를 얻는 채굴형 수집법이 있으며.

두 번째로는 타인이 채굴해 둔 씬을 거래소를 통해 주식처럼 매수하는 매입형 수집법이 있다.

두 방식에는 장단점이 명확했다.

전자인 채굴형은 안정적으로 씬을 수집할 수 있지만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게 문제다. 지금까지 시장에 풀린 씬보다 더 많은 양을 새로 찍어 내야 했으니 말이다.

후자인 매입형은 채굴형과 달리 돈만 있다면 단기간에 씬을 수집할 수 있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의 법칙 탓에 씬의 시세가 폭등할 우려가 있었다.

내가 택한 방법은 당연히 ‘둘 다’였다.

우선 채굴로 최대한 많은 씬을 긁어모은다.

그리고 모자란 만큼을 일순간에 거래소에서 싹쓸이해 와 51%를 만들면 혼란은 최소화하면서 목적을 이루게 된다.

방법이야 어떻든 51%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면 게임은 끝이다.

내가 51%를 들고 있는 이상, 남은 49%는 휴짓조각으로 변할 것이고. 보상을 위해 컴퓨팅 파워를 제공하는 사람도 사라지게 된다.

난 그때쯤이면 씬을 만든 녀석의 실체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일을 진행해 갔다.

그러나 상황은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상화폐, 씬(XIn) 급등! 열흘 새 900%나 올라. 거래량 역대 최대폭 증가.]

[가상화폐 열풍에 기업들 너도나도 블록체인 연구에 뛰어들어. 전문가들 투자 주의 권고.]

[채굴 수요 증가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그래픽카드 품귀 사태. 웃돈을 2배 얹어 줘도 못 사. 물량 부족 현상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듯.]

[가상화폐 가치, 1년 새 0.05달러에서 240달러로 수익률 4,800배! 그 끝은 미래인가 거품인가.]

[가상화폐로 인생역전? 가상화폐로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미국의 가상화폐 수집가 데이먼 차드. “가상화폐는 계속 오를 것이므로 매각할 이유가 없다.”]

“어째서 이런 일이…….”

난 가상화폐 광풍을 직접 겪었던 산 증인이다.

그때 역시 미래의 기술로 접근했던 가상화폐는 투자의 대상이 됐고, 점차 욕망으로 점철된 투기로 흘러갔다.

격랑과 같은 흐름 속에서도 소수의 초기 투자자들은 떼돈을 챙겼지만, 그 돈이 어느 주머니에서 나왔겠는가?

대다수의 일반 투자자는 원금도 건지지 못한 채 광기에 휩쓸려 이리저리 표류하다 파멸을 맞이했다.

난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거래소에서 씬을 매입하는 행위를 지양했었다.

하지만 그런 내 계획은 씬의 20%를 모음과 동시에 물거품이 돼 버렸다.

언론의 IT면은 물론이고 경제, 사회, 종합면에도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씬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초기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깊이 있는 기사도 올라오곤 했지만 늘 그렇듯 기술적 이야기는 저 아래로 밀려나 버렸고.

상위에 남아 있는 기사는 가상화폐가 엄청나게 급등했으며, 앞으로도 얼마나 오를지 모른다는 투기 조장 기사들뿐이었다.

“가상화폐 붐은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던 것인가.”

스트레스 탓인지 뒷골이 찌르르하고 땅겨온다.

난 의식적으로 시선을 모니터 쪽으로 돌린다. 씬의 현시세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1달러 : 0.003921XIn]

눈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가치가 올라있다.

수익실현 매물도 드문드문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수요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대로라면 300달러대를 넘어서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의 숲 안으로 향한다.

빼곡하게 들어선 슈퍼컴퓨터 사이엔 바삐 돌아다니는 수아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블록체인에 대한 개념도 몰랐던 문외한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단 이틀 만에 채굴에 대한 매커니즘을 꿰뚫어 보더니, 지금은 자처해서 나 대신 채굴 쪽 파트를 관리해 나갔다.

“수아야, 바빠?”

“아뇨, 안 바빠요. 무슨 일이세요?”

안 바쁘다는 그녀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실내는 코가 시릴 정도로 추웠는데도 말이다.

“별다른 건 아니고 채굴 쪽은 어떻게 돼가나 해서.”

“현우 씨 표정을 보니, 거래소 쪽은 흐름이 안 좋은 모양이네요.”

“말도 마. 언론에서 투기를 하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니까. 나중에 씬이 폭삭 망하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그녀는 뭐가 그리 웃긴지 입을 틀어막고 웃어댄다. 그래 봐야 쿡쿡거리는 웃음소리가 다 새 나왔지만 말이다.

“왜 웃어?”

“현우 씨가 투덜대는 모습, 너무 생소해서요.”

“그랬나?”

“그랬나가 아니라 적어도 제 앞에선 그랬어요. 매번 혼자서 다 해내는 슈퍼맨 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런 면도 있었네요?”

괜히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어 주제를 다시 돌려놓는다.

“흠흠,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채굴은 어떻게 돼가?”

“이쪽도 분위기가 안 좋은 건 마찬가지예요. 씬의 가치가 급등한 탓에 채굴에 뛰어든 유입 마이너들이 많아졌거든요.”

“얼마나 늘었기에?”

“신규 마이너 증가량은 약 1,960% 정도?”

억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의 수치다. 이래서 언론에서 주목하기 전에 후다닥 해치우려 했건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신규 마이너들은 규모가 영세하다는 거예요. 기존 마이너 그룹과 합치면 대략 221페타플롭스 정도 된다고 보시면 돼요.”

“칫, 지금 같은 속도로 채굴하면 41%를 확보하는 건 한세월이겠군.”

41%는 내가 정해둔 마지노선이다.

거래소에서 한 번에 확보할 수 있는 물량은 10% 정도가 한계였기에, 최소 41%의 물량은 순수하게 채굴로만 마련해야만 했다.

“지금 우리 쪽의 기여도가 274.54페타플롭스니까 이대로 정확히 55일 하고도 4시간 뒤 41%가 확보돼요. 하지만 신규 마이너가 계속 늘어나는 게 변수예요. 지금처럼 가상화폐 채굴 붐이 이어진다면 목표치까지 도달 기간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겠죠.”

“운도 지지리도 없지. 왜 하필이면 지금 같은 타이밍에 가상화폐 투기 열풍이 시작되서는…… 아?”

순간 묵직한 뭔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만약 단 한 달이라도 가상화폐 투기 붐이 늦었다면 내가 손쉽게 51%를 채우고 씬을 무력화했을 거다. 그러지 않았기에 이런 상황이 온 것 아니던가?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

세상에 우연은 없다.

그것도 지금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우연이라면 더더욱.

“수아야. 그걸 써야 할 거 같아. 준비 좀 해줄래?”

“그거요?”

그녀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선 내게 재차 물어온다.

“너무 성급하신 거 아니에요? 조금 더 추이를 지켜 보고 결정하셔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니, 이미 흐름은 저쪽으로 넘어갔어.”

“거품이 꺼질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지금의 씬은 본래 가치보다 고평가됐다고요.”

“고평가 됐다라…….”

그녀는 인간의 욕망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씬보다 원시적인 비트코인이 투기 열풍으로 2만 달러까지 치솟았다는 걸 알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물며 비트코인보다 진보된 형태인 씬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번 가상화폐 투기 열풍은 자연적인 게 아니야. 씬이 인위적으로 조장해 낸 거지.”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씬은 여론을 헤집어 대선 결과까지 뒤집었어. 그런 녀석이 비정상적인 투기 열풍과 관련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수아는 납득한 듯 고갤 끄덕여 온다.

“좋아요, 현우 씨. 어디서부터 공략을 시작할까요?”

“우선, 여론부터 묶어 보자고.”

* * *

씬의 시세는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200달러 선을 돌파하냐 마냐로 갑론을박을 벌일 때가 불과 나흘 전이었는데, 어느새 그 가치는 2배 이상이 뛰어올라 500달러 선에 근접해 있었다.

그러나 상승 분위기에 초를 치는 사건이 터졌으니.

바로 닉스의 공식 의견서 발표였다.

======

XIn에 대한 닉스의 공식 의견서.

*들어가기에 앞서, XIn(이하 씬)은 닉스와 그 어떤 관련도 없는 가상화폐라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가상화폐, 씬은 채굴자의 컴퓨팅 파워를 한데 모아, 생명공학이나 빅데이터, 딥러닝, 인공지능 따위의 인류를 위한 사업에 쓴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씬은 컴퓨팅 파워를 범죄에 사용했으며, 그 증거로 수차례나 닉스의 서버를 공격해 왔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에 닉스는 씬의 범죄행각을 더는 묵과할 수 없는바. 씬의 전체 지분 51%를 모아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무력화시킬 예정입니다.

씬의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무너지면 가상화폐의 가치가 상실될 가능성이 크니, 씬을 채굴하고 계시거나, 씬을 거래하고 계신 분들은 한시라도 빨리 처분하시기 바랍니다.

======

닉스의 공식 의견서는 가상화폐 일대에 핵폭탄이 돼서 떨어졌다.

-혹시 하고 들어와 봤더니 난리 났구먼. 510달러에서 바로 450달러까지 처박다니.

-으아, 쫄린다 쫄려. 계속 존버 해야 하나? 아니면 튀튀?

-존버가 답이다. 늘 그렇듯.

-450선 무너졌다 449! 447!

-주워 담아! 저가 매수의 마지막 기회야.

-떡락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지 꽉 잡아.

-미친, 거래소가 먹통이야. 뭐가 어떻게 돼가는 거야?

-이러다 가상화폐가 망하는 건 아닐까?

한때 500달러를 넘어섰던 씬의 가치는 450달러 선을 횡보하다가 일순간 360달러까지 패닉셀이 일어났다.

인터넷 가상화폐 커뮤니티들의 분위기 역시 암울하게 흘러갔다.

매번 오늘은 얼마까지 시세가 오를 것인가? 라는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던 곳이, 지금은 언제 팔아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게시물들만 도배되다시피 했다.

분위기가 바뀐 건 인터넷 여론뿐만이 아니었다.

매번 투기를 조장하던 언론들도 방향을 바꿔, 당장에라도 가상화폐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닉스의 발언과 언론의 합작으로 가상화폐계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대다수는 씬을 팔고 떠나는 추세였지만, 닉스가 마지막에 매수해 줄 거라 믿고 저가 매수에 나서는 사람도 있었다.

거기에 단타 세력들까지 얽혀 버리자 씬의 시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그 자체로 변해갔다.

거래소가 홍역을 앓는 와중에도 씬의 채굴이 줄어드는 일은 없었다.

씬을 채굴하는 채굴기야 기존부터 돌고 있던 거고, 전기세쯤은 뽑고도 남을 정도의 이윤이 나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프가 너울너울 춤을 춘다.

310달러였던 시세가 10분 만에 220달러까지 처박혔다가, 다시 360달러까지 치솟는다.

가상화폐 시장은 주식과 달리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즉, 이런 상태가 무한으로 반복된다는 소리다.

내가 씬에 돈을 넣은 투자자라면 제정신으론 쥐고 있지 못했을 거다.

“이쯤이면 털 사람은 다 털었을 테고 슬슬…….”

그때 수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현우 씨.”

“왜?”

“뭔가 일이 터진 거 같아요.”

“뭔데?”

그녀는 내 옷깃을 끌어 바로 옆자리로 앉힌다.

“이거 한 번 봐주실래요?”

모니터에는 황금색으로 요란하게 휘갈겨진 게시물이 떠올라 있었다.

[가상화폐채굴협회 공식 의견서]

가상화폐채굴협회는 가상화폐 채굴장이 모인 단체다. 회원은 대량으로 채굴장을 운영하는 중국인들로 이뤄져 있으며, 이들이 담당하는 컴퓨팅 파워만 해도 100페타플롭스 이상일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어디 보자.”

안 그래도 붉은 배경에 금색 글씨라 눈이 아픈데, 글자 크기마저도 작다.

“얘네는 이걸 읽으라고 올린 거야?”

“읽어 보실 필요까진 없어요. 요점만 요약하자면 자기들 밥그릇 챙기려고 닉스에 맞불 놓겠다는 소리니까요.”

“맞불?”

“예, 우리가 컴퓨팅 파워를 올리면 자기네들도 따라 올려서 51%를 절대 못 모으게 하겠다는 거죠.”

옆 모니터로 시선을 돌려 그래프를 확인한다.

220달러였던 시세가 360달러를 넘어, 지금은 450달러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래프만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계획이 성공한 듯 보였다.

“쯧쯧, 기껏 나올 시간을 줬더니 하는 꼬락서니 하곤.”

“어쩌실 생각이에요?”

“어쩌긴 뭘 어쩌겠어. 나올 생각이 없으면 거기 있으라고 해. 어차피 배가 가라앉을 때 최후의 수장 멤버는 필요했던 참이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