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70화 (170/206)

기적의 IT 재벌 170화

언론들은 일제히 안수철 당선인의 닉스 방문 보도를 쏟아냈다.

전 국민의 기대가 새로운 대통령에게 쏠린 만큼 조간신문은 10면 가까운 지면을 그에게 할애했는데 그중 절반이 닉스와 관련된 소식이었다.

600억 달러에 달하는 닉스의 시가총액을 한국 기업에 비교하며 김칫국을 마시는 기사는 애교 수준이었고, 실체도 없는 경제효과 1조설은 신문사를 한 바퀴 돌고 오자 1조가 20조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의 행보는 닉스를 시작으로 다른 기업까지 이어졌다.

오성이나 KG같은 전자회사로 시작해서 SG텔레콤, 하이넥스, 대현자동차 등등의 첨단 산업이 관련된 대기업이라면 전부 훑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당선인 신분으로 기업들을 방문하는 사이에, 그를 대표하던 새정치는 어느새 사라지고 미래산업이라는 키워드가 그 빈자리를 차지했다.

[안수철 당선인의 광폭 행보! 미래 먹거리를 찾아 닉스에 이은 첨단 산업체 잇달아 방문. 안수철 당선인 “미래산업을 이끌어갈 기업에 정부가 지원해야.”]

[토목사업과 이별을 고한다. 안수철 당선인 “미래산업 육성은 나라를 부흥케 하는 것.” 첨단기술 육성에 강한 의지 피력.]

[여론조사 결과 안수철 당선인의 행보 지지한다 74%.]

[20·30세대는 89% 안수철 지지. 청년층을 위한 청춘콘서트 계속 이어가기로.]

언론의 일면은 물론이고 사설까지 그를 찬양하는 글 일색이다. 지금까지의 행보만 보자면 내가 아는 정치인 안수철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옆에 유능한 참모라도 붙은 걸까?”

혼자 중얼거리며 신문을 한 장 넘긴다. 그러던 차에 똑똑하고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왔다.

“대표님, 기술팀장 배기수입니다.”

“들어오세요.”

부스스한 머리와 퀭한 눈을 한 배기수가 들어온다.

그는 요 며칠간 회사에서만 생활 했는지 그저께 입었던 셔츠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어서 오세요.”

난 읽던 신문을 탁탁 털어 옆으로 치우고 자리를 권했다. 그는 흐느적거리는 좀비처럼 다가와 소파에 앉는다.

“기수 씨, 요즘 무리하는 거 아닙니까?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닉스에 입사하기 전에는 한 달간 회사에서 먹고 잔 적도 있습니다.”

애써 웃어보지만 그늘진 미소가 흘러나올 뿐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기술팀장인 배기수로선 휴가를 떠난 사이에 이런 사건이 터져버렸으니, 심적 부담이 엄청날 것이다. 아마 복귀한 당일부터 밤낮으로 범인 색출에만 몰두했으리라.

초췌한 배기수의 몰골을 보고 있자니 자꾸 미안한 감정이 밀려온다. 사실, 이번 사건의 결정적 원인 제공자는 기술팀을 휴가 보낸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난 괜히 그에게 농담을 던져 본다.

“이제부터라도 슬슬 몸 관리를 하셔야죠. 기수 씨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는 거 아시잖습니까?”

배기수는 쑥스러운지 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닉스는 이제 대기업입니다. 팀장급 한 사람 없어진다고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겠습니까?”

“원년 멤버인 기태 씨가 게임 부서로 빠져나갔는데 기수 씨까지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때가 되면 혼자남은 서진서 씨마저 사표를 던질지도 모릅니다.”

“에이 설마요. 진서가 애도 아니고 닉스처럼 대우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겠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죠. 아무튼, 오늘은 꼭 퇴근하세요. 기수 씨를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뻔한 말치레였지만 듣는 사람으로선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그게 최고경영자에게 듣는 거라면 더더욱 그러리라.

한층 풀어진 분위기에 배기태는 자신의 셔츠처럼 꼬질꼬질한 보고서를 꺼내 들었다.

“보고드릴 사항은 지난 대선에서 난장판을 친, 일명 악성 봇에 대해 조사한 결과입니다.”

“계속해 보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보고서를 읽어 내려간다.

“지난 일주일간 저희 닉스 코리아와 미국의 닉스 소프트는 대선 시기에 활동했던 봇들을 추적했습니다. 2차 조사 결과, 악성 봇은 약 97만 개의 유령 계정을 만들어 냈으며, 실제로 45만여 개의 계정들이 여론조작에 사용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럼 나머지 52만 개는요?”

“생성만 하고 쓰인 흔적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예비로 만들어 뒀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진다.

유령 계정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그걸 예비로 52만 개나 만들어 둔다? 그것도 단 사흘간 쓰고 삭제할 계정들인데?

이해 안 되는 일투성이였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여 보고를 이어가게 했다.

“악성 봇을 가동한 사용자들의 계정과 게시글은 전부 사라졌지만, 아시다시피 닉스 계정을 생성할 때 필요한 인증 과정에서 IP를 서버에 수집하게 돼 있습니다.”

“수집한 IP가 있다 한들, 그게 진짜 IP인지는 모르는 일 아닙니까? 범죄행각에 쓰이는 IP주소는 일반적으로 우회를 하거나 변조를 거친다고 아는데요.”

“보통은 그렇습니다만, 이번에 수집된 IP들은 별도의 조작이나 우회 과정이 없는 실제 IP주소였습니다.”

“그럼 범인을 잡은 겁니까?”

쉽지 않을 거로 생각했던 일이 너무 쉽게 풀려서일까? 어느덧 내 목소리가 살짝 격양돼 있었다.

“안타깝게도 범인을 특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죠? 실제 IP주소만 있으면 찾는 건 일도 아니잖습니까?”

“서버에 수집된 악성 봇의 IP주소가 5만 개 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배기수는 눈을 동그랗게 뜬 나를 향해 찬찬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상식적으로 이런 일에 5만 명이라는 사람이 일제히 달려들 가능성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만한 인력은 동원하기도 힘들뿐더러 비밀이 새나갈 가능성도 너무 크니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러니 이번 악성 봇 사건은 5만 명이 동원된 것이 아니라 5만 개의 PC가 동원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5만 개의 PC를 동원하기 역시 쉽지 않아 보이는데…… 어? 잠깐만요. 이거 혹시 좀비 PC 같은 방식인가요?”

좀비 PC란 해커들이 퍼뜨린 악성코드에 감염되어 원격으로 제어 당하는 PC를 뜻한다.

악성코드에 감염된 PC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해커의 원격조정으로 특정 사이트를 공격하거나, 스팸을 보내는 등의 인터넷 범죄수단에 쓰이게 된다.

배기수는 고갤 끄덕이며 말했다.

“대표님이 말씀하신 좀비 PC와 흡사한 형태는 맞지만, 그보다는 좀 더 진보한 형태입니다. 평범한 좀비 PC는 트래픽 공격이나 스팸 전송 같은 단순한 작업이 한계인 반면에, 이번 악성 봇은 스스로 분석해서 분란을 조장하는…… 일종의 인공지능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습니다.”

“인공지능요?”

내가 놀란 표정을 지었던지, 배기수가 급히 설명을 덧붙인다.

“인공지능이라고 했지만 거창한 건 아닙니다. 특정 사이트에서 키워드를 수집하고 그럴싸하게 짜 맞추는 정돕니다.”

“저는 구분이 힘들 정도였습니다. 봇이 쓴 거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요.”

“인터넷이나 SNS의 글은 맞춤법이나 어순이 안 맞더라도 대수롭잖게 넘어가잖습니까. 그러니 봇이 쓴 글을 구분하는 게 힘들 수밖에요.”

내키진 않았지만 일단 보고를 끝까지 들어보고 판단할 사항이다. 난 계속하라는 뜻으로 고갤 끄덕였다.

“좀비 PC로 공격한 해커를 잡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바이러스가 퍼뜨린 경로를 역추적하는 것이죠.”

“듣기만 해도 쉬워 보이진 않는군요.”

“보통 이런 사건은 정부기관에 협조요청을 합니다. 미국에서는 CIA, 한국에선 국정원에 의뢰하죠.”

국정원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인상이 팍 찌푸려진다.

만약 국가기관에 따른 신뢰도를 1에서 10까지로 평가하라고 한다면, 난 국정원에 대한 신뢰도를 -10을 줄 용의가 있다.

“국정원에 기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거 같군요. 이번 일은 단순히 인터넷 공격을 넘어서,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 사안으로 다뤄질 가능성도 크니까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배기수는 말을 이어간다.

“사실, 악성코드를 유포한 경로는 이미 찾았습니다. 하지만 건드릴 방법이 전혀 없는지라 찾으나 마나였다고 할까요.”

항상 일을 척척 해내던 배기수가 이런 말을 하니 궁금함이 앞선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유포됐기에 저런 말을 하는 걸까?

내 시선을 받은 그가 답을 꺼내 놓는다.

“이번 악성 봇은 씬 코인(Xin Coin)이라는 가상화폐를 통해 유포됐습니다.”

* * *

1세대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이미 인터넷에서 자취를 감췄다. 아무래도 내가 50.1% 공격을 감행하면서 강제로 사라진 듯하다.

그러나 비트코인을 대체할 새로운 가상화폐가 생겨 있었으니. 일명, 씬 코인(Xin Coin)이라 불리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가상화폐였다.

씬 코인은 비트코인처럼 컴퓨터를 켜두면 코인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같았다. 하지만 두 코인은 채굴이 어떻게 진행되냐는 부분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기존의 비트코인이 쓸모없는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컴퓨팅 파워와 전력을 허비하고 말았다면, 씬 코인은 채굴자의 컴퓨팅 파워를 한데 모아 무언가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

정보를 모으기 위해 가상화폐 포럼에 게시된 글을 읽어 나간다.

그러던 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잘 정리된 가상화폐 연대기였다.

-09년 1월 3일, 첫 번째 비트코인 클라이언트 생성. 사토시 나카모토가 첫 채굴을 통해 50비트코인을 채굴.

-09년 10월 5일, 비트코인의 첫 가격이 1$에 1309.03비트코인으로 공시됐다.

-2009년 12월 30일, 비트코인의 채굴난이도가 처음으로 상승했다.

……

-2011년 7월 3일, 비트코인의 비정상적인 변동이 목격됐다.

-2011년 8월 5일, 한 사용자가 전체 비트코인의 50.1%를 넘겨 버렸다. 사실상 비트코인의 사망선고가 내려진 날이다.

-2011년 9월 10일, 비트코인을 대체할 차세대 가상화폐인 씬 코인(Xin Coin)이 나타났다.

-2011년 11월 14일, 씬 코인의 최초 거래소가 등장. 첫 거래는 1$에 29XIn.

-2012년 5월 10일, 씬 코인의 컴퓨팅 파워가 슈퍼컴퓨터 1대를 능가했다.

-2012년 10월 11일, 씬 코인의 컴퓨팅 파워가 100페타플롭스를 넘어섰다. 이것은 미국의 슈퍼컴퓨터인 타이탄의 6배에 가까운 수치다.

씬 코인으로 모여든 컴퓨팅 파워는 생명과학이나 학술연구 등, 인류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한다고 돼 있었지만…… 결국, 녀석이 했던 일은 유령 계정을 모아 여론을 조작하는 일이었다.

가상화폐를 통해서 악성 봇이 유포됐다는 배기수의 가설은 틀렸다.

악성 봇은 가상화폐로 유포된 것이 아니라, 가상화폐 그 자체였던 셈이다.

“씬 코인(Xin Coin)? 웃기시네. 사실은 닉스 코인(Nix Coin)이겠지.”

일전에 폐기해 버렸던 인공지능 비트코인 채굴기는 자신이 살 수 있는 터전을 직접 만들어 냈다.

그런 녀석이 왜 여론을 움직여 안수철을 당선시켰을까? 코인 이름을 NIX의 반대인 XIN으로 지은 이유는? 앞으로도 닉스의 행보에 언제, 어디까지 개입할 속셈일까?

내 의문에 답해줄 상대는 인터넷상에만 존재한다. 그것도 패킷 단위로 찢어져서 조각조각 흩어진 상태로 말이다.

혹시 싶어서 직접 채굴을 해봤으나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막대한 씬 코인을 사들이는 방법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가상화폐에 숨은 인공지능.

이대로라면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르는 가상의 상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만 했다. 물론 녀석이 지금까지는 내게 호의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만,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니던가?

인공지능의 진짜 저의를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난 녀석을 가상에서 현실로 끌어내야만 했다.

그것이 무력을 동반한 강제적인 방법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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