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68화 (168/206)

기적의 IT 재벌 168화

대선을 일주일 앞둔 시점.

닉스 코리아는 자체적으로 ‘깨끗한 댓글 문화 만들기’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말이 깨끗한 댓글 문화 만들기지, 실제로는 인터넷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 악성 게시글을 퍼 나르거나, 댓글의 순위를 조작하는 봇 계정을 추방하는 프로젝트였다.

네티즌과 언론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지금까지는 뭐 하다가 이제서야 움직이냐는 지적도 있었고, 해봐야 얼마나 바뀌겠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다수 존재했다.

검은 뿔테 안경에 덥수룩한 머리의 사내.

이번 깨끗한 댓글 문화 만들기 캠페인을 총괄 지휘했던 배기수 팀장이다. 그는 그간의 진행 상황을 요약한 보고서를 들고 내 앞에 섰다.

“보고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그는 긴장한 듯 얕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지난 사흘간 닉스서클부터 시작해서, 닉스챗 그룹채팅방, 닉스 계정으로 로그인하는 포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모니터링이 이뤄졌습니다. 그 결과 총 8만2천여 개의 불량 계정을 선별했으며, 7만9천여 개가 자동으로 동작하는 봇 계정으로 판단되어 계정 잠금 조치를 진행했습니다.”

“봇 계정이 8만 개나 된다고요?”

“이것도 한국 내 사용자에 한해서입니다. 범위를 세계로 넓히면 이보다 수십 배는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문득 인터넷 여론의 절반은 봇이 좌지우지한다던, 엘런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잠금 조치를 하는 선별 기준은 어떻게 정해진 겁니까?”

“대부분이 여론 조작을 위해, 반복적으로 포털 댓글에 ‘좋아요’를 누른다든지, 그게 아니면 SNS나 커뮤니티 등지에서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계정들입니다.”

“그들 중 실제 사용자가 포함됐을 가능성은?”

“만에 하나 실제 사용자가 있다고 해도 본인인증 절차만 거치면 다시 복구되기에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난 보고를 이어가라는 뜻으로 고갤 끄덕거렸다.

“현재 7만9천여 개의 정지 계정 중 본인인증으로 정지를 해제한 계정은 670개 남짓입니다. 나머지 계정의 99.8%는 인증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봇이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입니다.”

“불량 계정을 솎아낸 뒤, 유의미한 변화는 있던가요?”

“유의미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확실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배기수는 급히 보고서를 두어 장 넘겨버리고 보고를 계속했다.

“깨끗한 댓글 문화 만들기 캠페인으로 불량 계정이 정지되고 포털 댓글은 62%가 감소했으며, 1면에 뜬 기사의 ‘좋아요’와 ‘싫어요’ 등의 댓글 평가는 70%까지 감소한 걸 알 수 있습니다.”

“우연…… 이라고 하긴 너무 확실한 수치군요.”

“그렇습니다.”

단편적인 통계였지만 평소에 봇 계정들의 여론 조작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는 결과였다.

“기수 씨, 제가 왜 갑자기 이런 캠페인을 지시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깨끗한 인터넷 문화에 닉스가 앞장선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섭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세요?”

배기수는 속으로 생각한 말이 있는 듯했지만,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내놓진 않았다.

난 그를 다그칠 생각은 없었기에 툭툭 어깨를 두드려주고 말았다.

“갑자기 이런 일감을 던져줘서 힘들었을 텐데, 잘해주셨습니다.”

“아, 아닙니다.”

“이번 캠페인에 힘써주신 직원분들, 모두에게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기간은 지금부터 시작해서…… 선거가 끝난 이후까지면 적당하겠군요.”

예상치 못한 휴가 발언이 나오자, 그는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뭘 그리 놀라세요? 연장근로를 했으면 그만큼 쉬게 해드리는 게 정상이죠. 이번 특별휴가는 팀장급도 예외 없이 다녀오도록 하세요.”

“그러지 않으셔도…….”

난 말을 중간에 끊으며 그를 호명한다.

“배기수 팀장.”

“아, 옙!”

“즐거운 휴가 보내세요.”

그는 얼떨떨한 표정이었지만, 내 말에서 단호한 의지를 읽었는지 고갤 숙이고 방을 빠져나간다.

“휴, 이제 1단계는 끝났고 다음 스테이지인가.”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곤 휴대폰을 꺼내 들어 귀에 가져다 댄다.

연결 대기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수화기에서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 엘런입니다.

“준비는 잘되고 있습니까?”

-이미 다 끝나고 오케이 사인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한국은 이제 무주공산이니, 마음껏 뛰어놀아 보세요.”

* * *

대통령 선거 당일이 찾아왔다.

여권의 강력한 후보인 박혜근과 야권단일화 후보인 안수철. 두 후보의 양자 대결로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전문가 대부분은 박혜근 후보의 압승을 예상하였다.

내 생각 역시 그들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미 열흘 전에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격차가 7% 이상이었으며, 그 후에도 안수철 후보 쪽에선 이렇다 할 호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 여론은 잠시 꿈틀거리긴 했다.

닉스가 나서서 기존의 봇 계정을 싹 날려 버렸고, 거기에 엘런이 심은 새로운 봇이 안수철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대세를 뒤집는 건 불가능했다.

우선 여론을 움직인 기간이 3일 안팎으로 짧았다는 점과 더불어, 박혜근 후보를 지지하는 층은 고령층이 많았기에 인터넷 접근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걸 알면서도 무리해서 인터넷 여론을 움직인 것은 정치권에 보내는 일종의 경고였다.

닉스가 마음만 먹으면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 제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대통령이라 해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리란 계산이 깔려 있었다.

-제18대 대통령 당선인의 윤곽이 발표될 시간입니다. 앞으로 30초의 카운트 다운이 지나면 방송 3사의 공동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됩니다. 자! 카운트 다운 들어가겠습니다, 30!

텅 빈 집무실에 홀로 앉아 TV를 지켜본다.

누나와 매형이 같이 개표 결과를 보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선거 방송은 혼자서 끝까지 보고 싶었다.

20! 19! 18!

내겐 박혜근 후보를 실각시키고 안수철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 시간이 있었다. 아니, 마음만 독하게 먹었다면 내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골라서 대통령 자리에 앉히는 것도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

15! 14! 13!

나라의 미래가 걱정돼서?

웃긴 소리. 내가 언제부터 나라를 걱정했다고.

자조적인 미소가 절로 나온다.

10! 9! 8!

이번 일은 새로운 미래와 마주할 자신이 없는, 내 두려움이 선택한 도피다.

나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대한민국은 무당을 비선 실세로 두고 있는 대통령이 통치하게 될 것이다.

3! 2! 1!

눈을 감아 빛바랜 현실을 마주할 준비를 했다.

-야권통합후보인 안수철 후보가 50.1%! 자유당 박혜근 후보가 48.9%! 오차범위 내 초박빙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예측 조사됐습니다.

“이, 이게 무슨……?”

난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서서 TV 앞으로 다가간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를 토대로 예측한 결과이기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안내해 드리며…….

남은 개표 상황을 복잡한 심경으로 지켜봤다.

개표 시작부터 1% 남짓 벌어져 있던 격차는 끝까지 좁아 들지 못했고, 밤 10시가 되자 방송사들이 안수철 후보의 당선 확실을 예측해 버렸다.

대통령 안수철?

“이건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외투를 챙겨 든다.

난 급히 방을 빠져나와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 * *

“어랏? 대표님? 이 시간에 저희 집엔 어떻게 오셨어요? 한국에 계시던 거 아니었어요?”

엘런은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어떻게 한 겁니까?”

“뭘 어떻게 해요?”

“어떻게 했길래 결과가 이렇게 됐냐고요!”

내가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음에도 그녀는 침착하게 말을 받았다.

“일단 진정하시고 안으로 들어오세요. 입구에 서서 할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그죠?”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긴다.

아담하게 꾸며진 단독주택의 거실엔 조그만 벽난로가 타오르고 있었다. 독특한 디자인의 핑크색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물이라도 드릴까요? 역시 커피가 나으려나요?”

“됐고, 빨리 질문에 답이나 해주세요.”

“저기 대표님. 죄송한데요. 아직 뭘 물으시는지도 모르겠거든요?”

“모른다고요?”

내가 다그쳤지만, 그녀는 싱긋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엘런은 달콤한 코코아와 그보다 더 달콤해 보이는 커피를 들고 나타났다.

“달달한 커피는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답니다.”

“기분 좋아지고 싶지 않으니까, 빨리 앉기나 하시죠.”

“일단은 한 모금씩 마시고 이야기해요. 예?”

내가 째려보자 그녀는 어깰 으쓱거리곤 말했다.

“저 어디 도망 안 가거든요?”

“좋습니다. 딱 한 잔만 마시고 합니다.”

커피의 거품만 호로록 빨고 다시 질문을 던진다.

“한국에서 뭘 했길래 이런 결과가 나온 겁니까? 혹시 선거 조작이라도 한 겁니까?”

“진짜 딱 한 모금만 하시네.”

“말 돌리지 말고, 똑바로 대답해 봐요. 어떻게 하면 당선자가 바뀌는 겁니까?”

“꼭 당선자가 내정돼 있었던 거처럼 말씀하시네요.”

날카롭게 포인트를 파고들어 온다. 그 덕분에 잠시 내 말문이 막혀 버렸다.

“뭐예요? 진짜 당선자가 내정돼 있던 거예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여론조사서 7%나 차이 나던 후보가 어떻게 이길 수 있냐, 뭐 이런 이야기죠.”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날 쳐다본다. 난 커피를 마시는 척하면서 시선을 피해냈다.

“하긴, 박혜근 후보를 내정했으면 대표님이 방해했을 리가 없겠죠.”

“당연하죠. 제가 미쳤다고 리스크만 가득한 정치판에 뛰어들겠습니까? 아무튼, 무슨 일을 했는지부터 말해봐요. 답답해 죽을 거 같으니까.”

엘런은 들고 있던 코코아를 내려놓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한 거 없어요.”

“어물쩍 빠져나가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진짜예요. 뭘 하고 싶어도 조건이 맞아야 하죠.”

내가 계속 불신의 시선을 보내자, 그녀도 억울하다는 듯 항변에 나섰다.

“대표님, 제가 여론을 움직이려면 진실한 정보, 자본금, 메신저. 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죠?”

“그랬었죠.”

“그런데 이번 한국 선거에는 모든 게 미흡했어요. 자본금을 투입해서 휘두르기엔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고,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한 실제 정보도 특출난 게 없었잖아요.”

엘런의 말은 사실이다.

내겐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이나 비선 실세 같은 파격적 정보가 있긴 했지만, 이번 선거를 박혜근 후보가 이길 것으로 생각해서 철저히 함구하고 있었다.

“무슨 일을 벌이기엔 조건이 안 좋긴 하군요.”

“이제야 제 말을 믿어주시는 거예요?”

“아니, 그럼 결과는 왜 이렇게 나온 겁니까?”

“저도 그건 모르죠. 혹시 여론조사가 엉터리였던 거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로 모르는 눈치다.

이런, 내가 잘못 짚은 건가?

믿기지 않는 결과가 나온 터라, 엘런이 선거 조작이라도 한 줄 알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녀가 그런 일을 벌일 만한 동기가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내린 지시는 안수철을 당선시키라는 게 아니라, 인터넷 여론을 인위적으로 흔들라는 것이었으니까.

사건이 미궁이라는 구렁텅이로 빠졌다.

단순히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안수철 후보가 당선됐단 말인가? 아니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필연만이 있을 뿐.

분명, 내가 놓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머리를 쥐어 짜내기 위해 억지로 커피를 홀짝인다.

그러길 잠시, 엘런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무릎을 ‘탁’ 친다.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뭔데요?”

“제가 봇을 풀었을 땐, 한국에서 쓰이던 봇 계정을 몽땅 정지시켰다고 했잖아요?”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런데 막상 작업에 들어가려니까, 계속 활동 중인 봇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뒤늦게 서버에 남은 기록을 좀 살펴봤어요. 선거 직전, 한국의 포털과 SNS에서 활동하는 봇이 얼마나 되는 지를요.”

봇 계정을 정지시키고 남은 선거기간은 고작 사흘이다. 그때 부랴부랴 봇을 돌리려 해도 회원 가입만 하다가 선거기간이 끝날 것이다.

“기껏 해봐야 천 개는 있던가요?”

“아뇨, 그보다 많아요. 아주아주 많아요.”

“얼마나 되기에?”

“저는 버그라고 생각해서 말을 안 했던 건데…….”

그녀는 말을 하다 말고 코코아 잔을 내려놓는다. 그런 뒤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연다.

“단 사흘 동안 100만 개의 계정이 새로 생성됐다가 선거가 끝난 동시에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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