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67화 (167/206)

기적의 IT 재벌 167화

2012년 12월 19일에 열린 대한민국 제18대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결과를 가늠하기 힘든 선거였다.

현 집권당인 자유당은 박혜근 후보를 일찌감치 확정 지은 상태였지만, 그에 맞서는 야당은 민주당의 문인재 후보와 무소속 안수철 후보를 두고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이 당시 박혜근 후보의 지지율은 55%가 넘을 정도로 압도적이었기에 야당의 두 후보는 무조건 단일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문인재, 안수철, 두 후보 모두 박빙의 지지율을 보였기에 쉽사리 포기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는 거다.

시간만 지지부진하게 흐르던 가운데, 결국 선거 한 달여를 남기고 무소속인 안수철 후보가 불출마를 선언하여, 민주당의 문인재 후보가 야당의 통합 후보로 대선을 치르게 된다.

하지만…….

[무소속 안수철 후보, 가상대결과 적합도 조사, 모두에서 민주당 문인재 후보에 앞서.]

[긴급 여론조사 결과! 무소속 안수철 후보 56%, 민주당 문인재 후보 39%. 안수철 후보가 17% 차로 리드.]

[야권단일화후보는 무소속 안수철 후보로 결정. 문인재 후보.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부디 정권교체를 이뤄내길.”]

눈으로 뉴스를 읽어 나가던 중, 나도 모르게 탄식이 섞인 혼잣말이 나온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내가 알던 미래와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의 흐름은 너무 뜬금없는 일이었다.

그때 문 쪽에서 똑똑하는 노크 소리가 넘어온다.

“예.”

“한국대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 하세요.”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머리에 흰머리가 듬성듬성 자라있는 중년인이 안으로 들어온다.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대 정치학과 교수인 한명국이라고 합니다.”

“어서 오세요, 한 교수님.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귀하신 분을 만나 뵐 수 있어서 제가 다 영광이지요.”

우리가 자리에 앉자, 각자 앞에 커피가 하나씩 놓인다. 쟁반을 든 비서가 퇴장하고 나서야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다.

“제가 전해 듣기론, 국내 정치분석 분야에서는 한 교수님이 최고라고 하더군요.”

“어디서 그런 말씀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소일거리나 하러 다니는 노인네일 뿐입니다.”

“그러지 마시고 제 궁금증을 좀 풀어주십시오.”

“혹시 이번 대선 관련 일입니까?”

내가 옅게 미소를 보이자, 작게 떠진 한명국 교수의 눈이 일순간 반짝인다.

“허허, 국내 정치엔 관심이 없는 분이라 들었는데. 소문이 잘못됐나 보군요.”

“여전히 정치에는 관심 없습니다. 다만, 궁금한 게 생기면 그냥은 못 넘어가는 성격이라서요.”

탁, 하는 찻잔 내려놓는 소리가 울린다.

“좋습니다. 아는 한도 내에서 답해드리죠. 정확히 어떤 부분이 궁금하십니까?”

“이번에 진행된 야권단일화에 대해서입니다.”

“아하, 안수철 후보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신 거군요?”

한 교수의 반응을 보니, 내가 안수철 후보에 줄을 대려는 거로 지레짐작한 듯하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특정 후보를 지지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이번 단일화 과정에서 어떻게 안수철 후보가 승리했는지를 알고 싶을 뿐이지요.”

“이미 결판이 난 싸움의 이유를 알고 싶으시다니. 확실히, 강 대표님은 특이하신 분이군요.”

그는 본격적으로 이야길 시작하려는 듯 헛기침을 몇 번 해댔다. 나도 궁둥이를 앞으로 당겨 경청할 준비를 마쳤다.

“안수철 후보가 승리한 건 길게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이길 만한 사람이 이긴 것뿐이죠.”

“이길 만했다고요?”

“왜 그러십니까? 혹시 안수철 후보가 이기기엔 부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무의식중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나 보다. 난 황급히 표정을 갈무리하고 말했다.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좀 의외의 결과라서요. 아무래도 무소속 후보보다는 정치기반이 있는 민주당의 문인재 후보가 단일화에서 승리하리라 예상했거든요.”

“세력은 물론이고 경력을 봐도 문인재 후보가 압도적으로 유리했습니다. 안수철 후보는 검증조차 되지 않은 정치 신인이지만, 문인재 후보는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지냈던 베테랑 중의 베테랑 아닙니까?”

“그런데 왜 안수철 후보가……?”

“안수철 후보의 인기가 더 많았으니까요. 단지 그뿐입니다.”

너무 허무한 결론이다.

어깨의 힘이 탁 풀릴 정도로 말이다.

“원하는 대답이 아닌가 봅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럼 약간만 더 깊게 들어가서, 안수철 후보의 인기 이유에 관해서 설명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난 고갤 끄덕이는 것으로 그의 말을 재촉했다.

“안수철 후보는 기존 정치세력의 대안이라는 국민의 기대를 받으며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더러운 정치권에 발을 담그지 않은, 깨끗한 이미지가 최대 강점인 셈이죠. 하지만 그건 달리 말하자면 정치적으로 이룬 게 아무것도 없다는 소리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도 문인재 후보가 유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 하지만 여기서 큰 변수가 하나 생겨 버립니다. 바로, 혜성처럼 나타난 닉스의 창업자, 강현우 대표님의 존재 때문이죠.”

갑자기 내 이름이 왜 나와?

한 교수는 내가 뭐라 답을 할 새도 없이, 제 할 말을 이어나간다.

“과거에 한국을 대표하는 슈퍼스타라면 박세리, 박찬호, 박지성 같은 스포츠 스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IMF와 금융위기를 겪으며 시대가 변했습니다. 더는 자수성가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나라에서, 갑자기 맨손으로 세계급 IT기업을 세운 20대 젊은이가 뚝 떨어졌으니. 대중의 관심이 없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어째, 나를 너무 치켜세우는 듯한 느낌이라 거부감이 느껴진다.

“그것과 안수철 후보의 인기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상관관계가 왜 없습니까? 안수철과 강현우, 두 사람은 성공한 IT 기업인이라는 교집합이 있잖습니까?”

말도 안 되는 괴변이다.

그딴 사소한 것 때문에 안수철 후보의 인기가 올랐다니, 지금까지의 나눴던 대화가 시간 낭비만 한 것 같아 짜증이 밀려올 정도다.

한 교수는 내 속내를 들여다봤는지 부연설명을 이어간다.

“강 대표님, 대중들은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이성적인 척해댈 뿐이지요.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최종적으로는 감성에 이끌려 투표하는 존재입니다.”

“정치학 교수님께서 할 만한 발언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거짓말을 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둘 사이에 대화가 끊어졌다.

어색한 침묵 속에 커피잔이 딸깍거리는 소리만 불규칙하게 들려올 뿐이다.

불편한 시간이 흘러가는 가운데, 잔을 다 비운 한 교수가 자리서 일어선다.

그는 나를 보며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실 거 없습니다. 지금의 대중들은 국가를 개인의 힘으로 살려낼 슈퍼스타를 찾고 있습니다.”

“그건 누가 대통령이 되든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대중들은 기적을 바라는 겁니다. 비슷한 이미지인 안수철 후보에게, 닉스라는 기적을 일으킨 강현우 대표님을 투영하는 거죠.”

“정말 그것뿐입니까?”

“억지로 짜내보자면 같은 IT기업인이니 닉스의 투자유치를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됐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차라리 그런 대답이 낫군요.”

내 퉁명스러운 대답에 한 교수는 애매한 웃음을 남기고 방을 빠져나갔다.

* * *

한명국 교수가 집무실을 떠난 뒤.

난 급히 포털에서 대선 후보의 지지율부터 찾아봤다.

박혜근 48.4% vs 안수철 41.5%

비록 열흘 전에 조사한 기록이지만 선거를 코앞에 두고 7%의 격차라면 좁히기 힘든 정도로 벌어진 셈이다.

“역시 이변은 없다는 건가.”

사실 누가 야권통합후보가 되든, 내겐 상관없는 일이다.

상대인 박혜근 후보의 지지세력은 절대적이다. 그런 그녀가 18대 대통령이 된다는 건 시대의 흐름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생각할 것은 그녀가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고 닉스가 어떤 포지션을 취할 것이냐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박혜근 후보 쪽에 지지 선언을 하고 이권을 챙길까? 아니지, 그랬다가 괜히 나중에 나쁜 일로 엮이면 기업 이미지만 나빠질 뿐. 이번 정부처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이 최선이다.

난 쓸데없는 정치사에 관심을 기로 마음먹고, 본업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이번에 아마존 관련해서 시간을 쓴 탓에 전자결재할 거리만 해도 수백 건이 밀려 있었기 때문이다.

딸깍. 딸깍.

마우스 소리만 집무실에 울려 퍼진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문 쪽에서 누군가의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대표님, 샤오후입니다.”

“들어오세요.”

터질듯한 슈트를 입은 장신 사내가 집무실로 들어온다.

“무슨 일입니까?”

“안수철 후보 캠프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대표님을 꼭 한번 만나 뵙고 싶다고 합니다.”

“여기에 찾아 왔다고요?”

“예, 지금 응접실에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미간에 짙은 주름이 생긴다.

정치권과 거리를 두려고 했건만, 결심하고 몇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마주치게 될 줄이야.

이거, 여러모로 난감하게 됐다.

“제가 한국에 온 걸 어찌 알고 왔답니까?”

“아무래도 한명국 교수가 닉스에 드나든 걸 보고 알아차린 듯합니다.”

“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만나자니 내가 지지 선언을 했다는 헛소문이 돌지도 몰랐고, 그대로 돌려보내자니 앙심을 품고 닉스에 해코지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던가?

결국, 내가 한 선택은 회피였다.

“전용기 준비돼 있습니까?”

“급유만 하면 출발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죠. 한국에 있어 봐야 쓸데없는 일에 엮이기만 할 뿐이니까요.”

“알겠습니다.”

외투와 노트북만 챙겨서 밖으로 나선다.

임원 전용 승강기를 이용하면 누구도 만나지 않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컴컴한 주차장에 한 발을 내디딘다. 걸음을 감지한 LED 램프들이 빛을 내뿜는다.

평소 주차해 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 기둥 뒤에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걸음을 뒤로 물리려는 차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깐.”

그림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건장한 체격의 사내 넷과 왜소한 중년인 하나. 그들은 풍겨오는 분위기부터 일반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야기 좀 하시죠?”

사내가 내 두 걸음 앞으로 다가오는 차에, 갑자기 붕!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을 나른다.

“끄억!”

하늘을 날랐던 사내는 중력의 법칙에 따라 바닥에 처박힌다. 그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허리를 활처럼 굽힌 채 비명을 흘려댔다.

“끄으으으으…….”

남은 사내들이 놀라서 나를 쳐다본다. 아니, 실제론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샤오후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신원을 먼저 밝히십시오. 아니면 대표님에게 접근하는 건 금지합니다.”

“이, 이 경호원 놈이.”

샤오후가 너무 쉽게 장정을 날려 버린 탓인지 그 누구도 다가올 생각을 못 한다.

눈치만 살피던 차에, 리더로 보이는 중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닉스의 강현우 대표입니까?”

“그렇습니다만.”

“저희는 국정원 소속 직원들입니다.”

“국정원?”

중년인은 무슨 수첩 같은 걸 내밀었다. 난 수첩 대신 그를 한 번 쓱 훑어보곤 말을 이었다.

“정보기관 분들이 저를 왜 공격하시는 겁니까?”

“공격이라뇨. 가당치도 않습니다. 그저, 뭐 하나를 여쭈고자 찾아 왔습니다.”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에 국정원 직원들이 바닥에 널브러진 사내를 부축해 일으킨다. 그는 여전히 끙끙대는 앓는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궁금하신 일이 있으면 직접 공문을 보내든 하시지, 왜 숨어서 저를 기다리신 겁니까?”

“나랏일에는 비밀이 많습니다.”

알면 다친다는 뉘앙스다.

웃기고 앉았네. 나랏일은 무슨, 왜 왔는지 뻔히 알겠다.

난 모른 척하고 질문을 이어간다.

“궁금하시면 빨리 질문하세요. 저, 바쁜 사람입니다.”

“혹시 안수철 캠프에 가시는 겁니까?”

“아쉽게도 안수철 캠프 사람은 사무실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고, 저는 그들 몰래 공항으로 빠져나가는 중입니다.”

중년인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겠다는 듯, 고갤 까딱거리곤 옆으로 비켜섰다.

“가던 길, 그대로 가셔도 됩니다.”

“아주 고맙군요.”

샤오후가 먼저 앞장서고 내가 그 뒤를 따른다.

중년인 옆을 딱 지나가려는 차에, 그가 사족을 덧붙인다.

“혹시 해서 말씀드립니다만, 공항이 아니라 안수철 캠프 쪽으로 가신다면 저를 다시 만나실 수도 있습니다.”

“뭐요?”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에 머리에 피가 확 솟구친다.

그를 홱 돌아봤지만, 사내들은 날 무시하고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대표님, 붙잡을까요?”

샤오후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속에서는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최근에 이런 굴욕을 경험한 것이 언제던가? 백악관도 내게 이런 취급을 한 적 없는데, 일개 국가흥신소 따위가…….

내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느꼈는지, 샤오후가 그들을 쫓으려 든다.

“됐습니다. 가게 두세요.”

“괜찮겠습니까?”

“잡아서 어쩌게요? 두들겨 팰 겁니까?”

“그래도 말이라도 해두는 것이…….”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머쓱한지 샤오후는 뒷머리를 쓱쓱 긁어댄다.

“말보다는 힘으로 보여주는 게 맞습니다.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힘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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