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66화 (166/206)

기적의 IT 재벌 166화

미 법무부의 아마존 반독점법 위반 발표는 미국 유통업계의 파란을 일으켰다.

아마존에 밀려서 기를 못 쓰고 있던 이베이나 엣시 같은 온라인 유통업체들은, 이번 기회에 시장점유율을 늘리고자 대규모 투자유치에 나섰으며, 월마트나 베스트 바이 같은 오프라인 업체까지 가세해서 아마존의 빈자리를 노렸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마존 CEO인 베저스의 갑작스러운 병가로 인해, 계획됐던 자사주매입이 불투명하다는 소식까지 퍼지게 된다.

일련의 소식들로 간신히 부양하고 있던 아마존 주가는 하루아침에 200달러 선이 무너졌으며, 일주일새 50달러나 더 내려앉아 150달러 선까지 밀리게 됐다.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주가, 경영 복귀가 불투명한 CEO, 그리고 아마존의 몰락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들.

돌아가는 분위기만 보자면 아마존은 세기말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암울해 보였다.

“……그러한 악재가 이어졌기에 금일 아마존 주가는 136달러로 마감됐으며, 저희 총 보유 지분은 오늘 자로 31.27%입니다. 자세한 내역은 보고서를 참조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한 번 확인해 보죠.”

그녀가 내민 주식 매입보고서를 찬찬히 훑는다.

보고서에는 주식을 언제, 어느 기관을 통해 매입했으며, 공매도와 파생상품을 활용해서 수익이 난 내역까지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

완벽에 가까운 보고서다. 억지로 흠을 잡으라면 너무 자세하게 기록된 탓에 내용이 너무 많다는 것 정도일까?

상세 보고분을 읽다가 덮어버리고 다시 요약본을 펼쳐 든다. 그곳의 결과 보고엔 총 매입 지분 17.91%. 총 보유 지분 31.27%라는 수치가 쓰여 있었다.

고갤 끄덕이고 넘어가려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수치 하나가 밟힌다.

[종합 투자 성공률 77.2%]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치가 어떻게 나온 거지?

풍부한 자본을 바탕으로 지분을 주워 담는 건 쉬운 일이다. 기준 가격을 정하고, 그 이하로 주가가 내려올 때마다 주워 담는 원칙만 잘 지키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이나 널뛰기해대는 주가를 예측해서 투자 수익을 올리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내 표정이 심각했는지 엘런이 물어온다.

“보고서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투자 성공률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군요. 아무리 아마존 주가 하락이 예상됐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면 미래 예지가 가능한 초능력자나 가능한 수준 아닌가요?”

그녀는 내 표현이 재미있는지 쿡쿡거리며 웃어댄다.

“미래를 예지하는 초능력은 없지만, 미래를 잠시 속이는 것쯤은 가능하답니다.”

“미래를 속인다?”

“동양에는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죠? 직접 확인시켜 드릴게요.”

엘런은 탁자 구석에 놓아둔 노트북을 내 앞으로 가져온다. 노트북의 바탕화면엔 실시간 경제 뉴스들과 함께 용도를 알 수 없는 프로그램들이 다수 떠 있었다.

“이게 다 뭡니까?”

“가공의 집단 지성을 움직이는 열쇠죠. 여기서 명령을 내리면 수천 개의 계정에서 SNS에 글을 퍼 나르고 수만 개의 가짜 ID들이 댓글과 RT를 반복해서 여론을 움직이게 된답니다.”

그녀는 설명하면서도 능숙하게 노트북을 조작해댔다.

“고작 이런 방법으로 주가를 움직였다고요?”

“가짜도 떠드는 입이 많아지면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요.”

“에이, 인터넷 정보를 믿고 투자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럽니까.”

“정 그렇게 생각하면 저랑 내기 한 번 하시죠. 지는 사람이 오늘 저녁 근사하게 쏘는 거로. 생각 있으세요?”

“오늘 저녁은 선약이 있는데…….”

“싫으면 어쩔 수 없고요.”

엘런은 내 앞에 뒀던 노트북을 치우려 든다. 난 급히 그녀의 손을 가로막았다.

“잠깐, 스톱! 내기하죠. 내기하면 될 거 아닙니까.”

“헤헷, 좋아요. 무르기 없어요?”

“저녁 사는 것쯤이야 언제든 가능합니다. 단, 제가 납득할 정도의 성과가 있어야 합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

왠지 당한 느낌이 든다. 그녀로선 나와 저녁을 먹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이기든 지든 상관없는 거 아니던가?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말한 ‘미래를 속인다’는 행동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타닥. 타닥.

바쁘게 노트북을 조작하던 엘런은 마지막으로 엔터를 딱! 소리 나게 두드리는 것으로 입력을 멈췄다.

“다 됐어요.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뭘 어떻게 했는데요?”

“페이스북 CEO인 저커버그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루머를 퍼뜨렸어요. 제 예상대로라면 주가가 소폭 하락하겠죠.”

“흠…….”

여전히 믿을 수 없었지만 호언장담하는 그녀의 기세 탓에 일단은 입을 다물고 지켜보기로 했다.

그로부터 약 오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띠링! 하는 효과음과 함께 속보가 떠오른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건강 이상설? 현지 시각 11시 무렵, 마크 저커버그로 보이는 환자가 샌프란시스코 알토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퍼졌다. 공개된 사진에 따르면…….]

먼저 반응이 나온 건 미국 언론이 아니라, 일본의 닛폰 게이지 신문이었다.

“닛폰 게이지면 일본에서는 메이저급 언론인데 이런 루머를 물다니. 일본 언론들은 대체…….”

그러나 욕을 이어갈 시간조차 없었다.

띠링! 띠링!

이어서 들려오는 속보 효과음들.

언론 한 곳에서 스타트를 끊자, 전 세계 언론들이 기사를 받아서 퍼다 나르기 시작했다.

[마크 저커버그 건강 이상설! 현재 응급실에 입원 치료 중인 것으로 보여.]

[IT기업의 연이은 악재. 아마존의 베저스에 이은 페이스북 저커버그도 병원행.]

[저커버그 중태? 경영 복귀에 기약 없어. 사령탑 잃은 페이스북 빨간불.]

언론들은 허구의 정보에 살을 덧붙여 점점 일을 키워가고 있었다.

초반엔 그런 소식이 있다, 정도의 추측성 기사가 주를 이뤘다면, 이젠 아예 저커버그의 입원이 기정사실이라도 된 것처럼 기사화되고 있었다.

엘런은 의기양양한 승리자의 표정으로 말했다.

“제 실력이 어때요?”

“아직입니다. 실질적으로 주가 변동이 있었는지 확인해 봐야죠.”

“후후, 그러세요.”

노트북을 조작해 실시간 페이스북 주가를 확인한다.

주가는 본디 34달러 선이었던 것이 루머가 퍼지고, 단 5분 만에 32달러까지 내려 와있었다.

“이럴 수가…… 말도 안 돼요. 고작 SNS로 주가를 조작하다니…….”

“왜 말이 안 돼요. 실제로 주가가 내려갔잖아요.”

“주가라는 게 이리 쉽게 조작되는 거였습니까?”

“이게 쉬웠으면 누구나 조작해서 돈을 벌었게요?”

“그럼 어떻게……?”

그녀는 내게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설명을 시작한다.

“주가를 움직일 정도의 파급력을 내려면 세 가지 준비가 필요해요.”

“세 가지?”

“예, 첫째로는 진짜 정보예요. 방금 제가 퍼뜨린 저커버그의 건강 이상설은 사실을 절반 섞어서 가공한 루머예요. 실제로 저커버그는 오늘 건강검진 때문에 병원을 방문했어요. 진짜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절반의 가짜였기에 신빙성을 키울 수 있었던 거죠.”

페이스북도 이리 쉽게 루머를 만들 수 있는데, 그보다 많은 정보가 있었던 아마존이라면? 마음만 먹었다면 베저스의 사망 소식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리라.

“두 번째로는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자본이 필요해요. 루머와 동시에 자본으로 주가를 흔들어버리면 더 쉽게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게 된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요?”

“루머를 퍼다 나르는 메신저들이 필요해요.”

“메신저라면 아까 사용했던 유령 계정과 봇들을 말하나 보군요. 그런데 봇이 떠든다고 루머가 퍼질까요?”

“아뇨. 유령 계정은 선동하기 위한 도구일 뿐, 진짜 루머를 퍼 나르는 주체는 실제 SNS 사용자들이에요. 유령 계정들은 평소엔 멀쩡하게 활동하다가 이번 같은 일이 있을 때만 루머를 퍼 나르는 역할을 하죠.”

음? 자동으로 돌아가는 유령 계정들이 어떻게 멀쩡한 SNS 활동을 한다는 거지?

엘런은 내 의문을 짐작했는지 눈치껏 설명을 이어 나간다.

“유령 계정들은 알게 모르게 진짜 사용자들 사이에 숨어들어요. 그리고는 상대가 호감 갈 만한 행동과 키워드를 분석해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죠.”

“긴밀한 관계라니. 에이, 과장이 너무 심하네요. 아무리 둔하다 해도 상대가 사람인지 봇인지도 모를 리가요.”

“과연 그럴까요? 대부분은 모르고 있지만 실제 페이스북, 트위터, 닉스챗, 포털의 뉴스, 그 외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모든 여론의 절반쯤은 자동으로 돌아가는 봇이 만든 거예요.”

봇이 어설프게 사람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사람처럼 친구를 사귀고 관계를 유지할 정도의 능력은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시대까진 말이다.

“전혀 안 믿는 눈치네요.”

어느새 가자미눈을 뜬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아뇨, 완전히 믿습니다. 그러니 이번 내기는 제가 진 거로 하죠.”

“후후, 좋아요. 저녁에 어디로 갈까요? 페어몬트 호텔? 세인트 리치 호텔? 아니면 미슐랭 가이드에 나온 퀸스 레스토랑도 나쁘지 않고…….”

“저녁은 카페 닉스에서 간단하게 때우죠. 신메뉴 샌드위치도 나왔대요.”

“아깐 풀 코스라면서요!”

“제가 커피까지 풀 코스로 쏘겠다는 말이었죠.”

“대표님 진짜 이러기예요?”

엘런은 볼을 빵빵하게 만든 채, 주둥이가 한 뼘이나 튀어나온다. 이대로 슬쩍 넘어가기엔 후폭풍이 두렵다.

난 먼저 일어나 외투를 챙겨 들며 말했다.

“저녁 먹고 시간 남으면 영화 한 편 볼래요?”

“진짜요?”

그녀가 다루기 쉬운 타입이라 다행이다.

* * *

아마존 인수 건으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닉스폰 2세대는 차근차근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이번 닉스폰은 일주일 만에 300만대의 사전 예약물량이 동났으며, 정식 출시일에는 24시간 만에 120만 대를 팔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그 120만 대도 재고가 없어서 그 정도였지 재고만 넉넉했다면 애플폰5가 세운 24시간 200만 대의 기록을 갈아 치울 정도의 많은 구매자가 몰려들었다.

열렬한 반응 덕분에 바빠진 건, 닉스폰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모토로라 텍사스 공장이었다.

지금의 공장 규모로는 폭발적인 닉스폰 2세대 수요를 감당할 수 없자, 매형은 궁여지책으로 텐트형 가건물을 세우고 임시직을 대폭 충원해서 물량을 찍어 냈다.

그렇게 미국 외 지역에도 닉스폰 2세대를 보급할 여유가 생기자, 가장 먼저 물량을 받아낸 것은 한국의 SG텔레콤이었다.

오사카의 SG컴즈 일본 지사.

집무실에 도착하자, 신용화는 호들갑을 떨며 나를 맞이했다.

“이야, 우리 강 서방. 요즘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

“친한 척하는 거 보니, 어지간히 물량이 고팠나 봅니다.”

“야, 말도 마라. 닉스폰 어떻게 안 되냐고 어찌나 닦달해 대는지. 내가 한국에서 오는 전화를 안 받을 정도였다.”

“아직 미국 말곤 출시된 곳도 없잖습니까?”

“어휴, 누군들 그걸 몰라서 그러겠냐? 내가 너랑 친분 있는 걸 아니까 그러는 거지. 그럴 거면 자기들이 받아오던가, 쯧.”

“그래서 물량이 얼마나 필요한데요?”

그는 대뜸 손가락 다섯 개를 딱 펴 보인다.

“5만 대?”

“야! 그걸 누구 코에 붙여.”

“그럼, 50만 대나 달란 말입니까?”

“그 정돈 줘야지. 한국에서 닉스폰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

“신용화 씨는 어차피 팬틱의 레이서N 팔아먹으면 되잖습니까? 뭐가 그리 문젭니까?”

“그게 말이다. 휴…….”

그는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습관적으로 안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든다.

“하반기에 오성에서 출시한 노트2 말이다. 그게 대히트를 친 건 알고 있지?”

“경쟁사 제품인데 당연히 알죠.”

“그 오성 놈들이 우리에게 앙심을 품었는지 보조금을 터무니없이 낮게 지급했어. KT보다 절반 수준으로 말이다. 그 때문에 우리 점유율 과반이 무너지기 직전이야.”

“그래서 물량을 50만 대나 달라?”

눈치를 살피던 신용화는 초조했는지 애꿎은 담뱃갑만 만지작거려댄다.

“20만 대로 하죠.”

“아이, 강 서방. 우리 사이에 왜 이래? 섭섭하다 정말.”

달라붙는 그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친다.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데요?”

“그러지 좀 마라. 진짜, 나 급해.”

“저번에 모토로라 공장 인수해 달라니까 헛소리했던 게 누구시더라…….”

그의 표정에 다급함이 묻어난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은지 급히 준비한 카드를 꺼내 든다.

“한국에서 닉스폰 프로모션, 몽땅 SG텔레콤이 부담하는 거로 하자. 애플폰과 같은 조건이야, 어때?”

“30만 대로 콜.”

“야 이, 진짜.”

“싫으면 안 해도 됩니다. 물량 달라는 데는 천지니까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던 신용화가 결국엔 백기를 들었다.

“졌다. 졌어. 30만 대라도 최대한 빨리 보내줘라. 응?”

“잘 생각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이달에 돈 들어갈 데가 천지구만, 너까지 내 돈을 빼먹어야 속이 시원하겠냐?”

“어디 투자라도 했습니까?”

“투자는 무슨, 이번에 일본은 중의원 선거한다고 시끄러웠고, 한국도 대통령 선거가 코앞 아니냐. 양측에 때려 넣은 돈만 해도 빌딩이 몇 채는 나올 거다. 아호, 생각할수록 아까워 죽겠네.”

벌써 그럴 시기던가?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이미 결과를 다 알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그나저나, 닉스는 한국 정계에 로비 안 하는 모양이네?”

“딱히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해봐야 택시업계 반발을 무릅쓰고 닉스 제로를 허용해 줄 것도 아닌데요. 그냥 적당히 당선되는 후보에 떡값 정도만 넣어줄 생각입니다.”

“크으, 확실히 외국 기업이 좋네. 우린 양쪽 다 눈치 본다고 죽을 맛이다.”

“누가 내수기업 하랍니까? 진즉에 해외로 나오지 그랬어요.”

“그러게 말이다.”

신용화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겠는지 결국 담배에 불을 붙인다. 뿌연 연기가 주변으로 퍼져 간다.

난 손을 휘휘 저어 연기를 흩으며 말했다.

“SG그룹은 어디에 걸었습니까? 박혜근 후보? 아니면 문인재 후보? 그도 아니면 둘 다?”

신용화는 무슨 소릴 하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너, 진짜 정치에 관심 없구나?”

“무슨 소립니까?”

그는 혀를 쯧, 하고 차더니.

“인마, 문인재 후보 사퇴하고 안수철 후보로 단일화된 지가 언젠데.”

뭐? 그럼 이번 선거가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지, 그보다 이후에 탄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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