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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IT재벌-165화 (165/206)

기적의 IT 재벌 165화

시끄러운 헬기 소리가 헤드폰을 뚫고 귀를 때려 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헬기 아래의 풍경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에메랄드색 바다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안가.

한 뼘 정도 떨어진 섬에서는 고풍스러운 별장이 멋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환상적이라는 말 말고는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이 풍경들 덕분에 지금까지 봐왔던 부호들의 별장이 소꿉놀이처럼 여겨질 정도였으니까.

섬에 마련된 착륙장에 헬기가 내려선다.

자연이 만들어낸 낙원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들은 다짜고짜 금속 탐지기를 내 앞으로 들이댄다.

“신원이 확실한데도 수색을 받아야 합니까?”

“누구든 이 안으로 들어가려면 수색을 마쳐야 합니다. 그게 당신 같은 유명인이라 해도 예외는 없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장 사내들은 꼼꼼하게 안주머니와 벨트, 시계를 검사했고, 지참한 가방 안의 내용물까지 다 확인한 후에야 수색을 끝마친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사내들을 지나쳐 별장 입구로 들어선다.

별장은 멋스럽긴 했지만, 규모가 어마어마한 건 아니었다. 아담한 섬과 어울리는 정도의 크기, 그러니까 친구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즐기기엔 딱 좋을 정도였다.

벽난로가 있는 거실을 지나 응접실에 도달하자,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는 흑인 사내가 나를 아는체한다.

“오, 대니얼.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그는 이번 재선에 성공한 미국의 44대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였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대통령님.”

“답답한 격식은 집어치우세요. 지금은 황금 같은 휴가 중이란 말입니다.”

“휴가 중에 찾아온 제가 불청객이 되는 건가요?”

“손님이 어떤 선물을 가져왔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자, 일단 여기로 앉으시죠.”

오바마 대통령이 바로 옆자리를 내준다.

경호 직원도 없는 곳에서 자칫하면 큰일 날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닉스와 나를 믿는다는 대통령의 제스쳐이기도 했다.

“나의 절친한 친구이자 메시아께서 어떤 용무로 왔을까나요.”

“부담스럽게 왜 이러십니까.”

“후후, 제가 궁금해서 그럽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끼리 대화 같다. 마치, 옆집의 친한 아저씨와 대화하는 듯한 그런 느낌 말이다.

하지만 그와 실제 대화를 나눠 본 것은 두어 번 남짓이 다였다. 마주한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화술은 오바마 대통령이 가진 능력 중 하나였다.

“그 친구가 청구서를 들고 왔으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그것도 천문학적인 액수가 적힌 청구서를요.”

“하하, 진정한 친구라면 무리한 청구서를 들이밀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청구서란 이번 재선에 사용된 닉스의 후원금을 뜻한다.

보통의 미국 기업들은 공화당과 민주당, 두 후보 모두에게 밉보이지 않는 하프밸런스 포지션을 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난 그런 관례를 깨고 오바마 캠프에 몰빵에 가까운 후원금을 보내줬다.

공식적으로는 다른 기업들보다 0 하나가 더 많은 액수였으며, 비공식적으로는 그보다 배 이상 많은 돈을 밀어 넣었다.

나로선 오바마의 재선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했던 투자의 일종이었지만, 당사자인 오바마로선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닉스에게 호감을 사는 계기가 됐다.

“먼저, 준비한 선물이 있습니다.”

“오호.”

선물이라는 말에 관심을 보인다.

난 그를 향해 씩 웃어 보이며 가방에서 조그만 상자를 꺼내 들었다.

“이건?”

“닉스에서 곧 출시 예정인 신형 스마트폰입니다.”

상자를 받아든 그는 이리저리 포장 부분을 살핀다.

겉면은 까만색을 더 검게 만드는 리얼 블랙 코팅에 닉스의 상징인 N이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박스를 개봉하자 미려한 자태를 뽐내는 기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멋진 스마트폰이군요. 우리 딸애가 좋아하겠습니다.”

“혹시 해서 여쭈어봅니다만…… 대통령님께서 직접 써주실 순 없겠습니까?”

미국 대통령이 쓰는 스마트폰이라는 타이틀은 그 어떤 마케팅 방식보다 뛰어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난처하다는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저도 그래 드리고 싶지만, 이놈에게 이미 익숙해져서 다른 폰으로 바꾸기가 힘들더군요.”

그는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조그만 액정 하단부에 자판이 붙은 스마트폰, RIM사의 블랙베리였다.

“안타깝게 됐군요. 닉스폰 2세대를 대통령님이 직접 써주시면 상징적인 의미도 남다를 텐데요.”

“상징적 의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닉스폰 2세대의 미국 생산은 자국 기업의 해외 공장을 미국 본토로 복귀시킨, 대표적인 정책 성공 사례 아니겠습니까?”

“계속해 보시죠.”

지금까지의 웃음기 섞인 말이 아닌, 진지한 목소리가 돌아온다. 분위기가 옆집의 편한 아저씨에서 대통령 오바마로 돌아온 순간이다.

난 경청하는 그의 눈을 마주하고 약간 격양된 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만약, 여기서 닉스가 멈춘다면 해외 공장의 미국 복귀는 선거용 요식행위로 여겨질 것입니다. 나중엔 공화당의 공격거리로 전락할지도 모르죠.”

“모토로라의 텍사스 공장은 정상적으로 가동 중인 거로 압니다만.”

“이번 정책이 성공적이라고 여겼다면, 다른 기업들도 미국으로 복귀 의사를 밝혀야 정상입니다. 하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미국으로 돌아오는 기업이 있던가요?”

오바마 대통령은 잠시 생각을 고르더니, 곧이어 고갤 가로 저었다.

“아쉽게도 그런 보고는 없었습니다.”

“그렇겠죠. 텍사스 공장이라고 해봐야 직원 3천 명 규모의 공장일 뿐. 그걸 성공이라고 포장해도 셈이 빠른 기업들은 수지타산이 안 맞다고 생각했겠지요.”

“이런 말을 먼저 꺼내 놓는 걸 보니, 특별한 묘책이라도 있는 거로 들립니다?”

눈을 마주친 대통령이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온다. 잔뜩 기대한 그의 눈동자가 일렁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아쉽게도 묘책은 없습니다.”

순간, 그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생겼다 사라졌다. 동시에 눈동자에서 일렁이던 기대감 역시 사라졌다.

“그래서 저는 우직하게 정면돌파를 준비 중입니다.”

“돌파?”

“닉스폰 2세대를 생산하는 텍사스 공장을 5배 규모로 확장할 예정입니다. 고용도 현행 3천 명에서 2만 명 수준으로 늘어나게 되겠지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오바마 대통령은 벌떡 자리서 일어선다.

“오, 신이시여.”

텍사스 공장 확장 계획은 단순히 2만 명을 고용한다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해외로 나가지 않고 미국 본토에서 공장을 가동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국 기업에 보내는 일종의 시그널인 셈이다.

“텍사스 공장은 언제 확장할 예정입니까? 아니지, 계획은 수립됐습니까?”

“이미 부지 선정까지 끝냈습니다. 남은 건 착공 발표를 내는 것뿐입니다.”

주먹을 불끈 쥔 오바마 대통령은 흥분감을 주체 못 해, 같은 곳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돌아다닌 뒤에야 자리에 앉는다.

“모토로라의 대단지 공장이 성공하는 걸 지켜본다면 기업 경영자들의 생각도 바뀌겠군요.”

“정부가 자국 공장을 지원하는 기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는 그리되리라 믿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활짝 웃으며 내 손을 붙잡는다.

“대니얼, 당신은 정말이지. 최고의 휴가 선물을 가져 왔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암. 그렇고 말고요. 애플 하나만 붙잡아도 파급력은 엄청날 겁니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인 애플은 모든 제품을 대만 폭스콘에 위탁 생산한다.

그 폭스콘에서 근무하는 중국 공장 직원만 해도 100만 명이 넘을 정도였으니. 이들 중 일부만이라도 미국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수만 개의 일자리가 생기는 건 떼놓은 당상이었다.

“내 당장 스마트폰을 닉스폰으로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지, 백악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기기도 닉스폰으로 교체해 보이죠.”

“그렇게까진 안 해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안 그래도 제가 블랙베리를 고집하는 바람에 백악관 직원들도 억지로 블랙베리를 쓰던 중입니다. 이참에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바꾸는 게 맞아요.”

그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셀러에서 와인 한 병을 꺼내 내 앞에 따라 준다.

“기분 좋은 날엔 특별한 와인이 제격이죠. 자, 받으세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잔을 부딪칠 시간도 없었다. 그는 이미 병째로 와인을 들이켜고 있었다.

“크흐. 요즘 골치 아픈 일 천지였는데, 간만에 시원한 소식을 가져다 줬군요. 고맙습니다, 대니얼.”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대통령은 다시 한번 와인을 목구멍에 흘려 넣는다. 난 그가 충분히 술을 홀짝일 수 있게 기다려줬다.

잠시 후, 병을 바닥에 내려둔 그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지만, 표정만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자, 이제 닉스에서 날아온 진짜 청구서를 받을 시간인가요?”

* * *

닉스폰 2세대의 사전 예약 신청은 출시 일주일을 남긴 12월 3일에 진행됐다.

전작인 닉스폰 1세대가 이슈화를 위해 누구나 터치 한 번으로 사전 예약을 할 수 있었다면, 이번 2세대의 사전 예약은 수량을 300만 대로 지정하고 결제단계까지 마친 사람만 예약할 수 있게 시스템을 개선했다.

그렇게 닉스폰 2세대 예약이 열린 첫날.

닉스폰을 사고자 이날만을 기다렸던 닉스 매니아들. 호기심에 참여한 일반 사용자들. 거기에 닉스폰 프리미엄을 노리고 달려든 리셀러까지 가세하자 닉스폰 예약 페이지는 새벽까지 죽었다가 살아나길 몇 번이나 반복해야만 했다.

그런 닉스폰의 행보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곳이 있었으니. 그건 닉스폰 대항마라는 딱지를 붙여서 파이어폰을 출시했던 아마존이었다.

적막이 감도는 아마존 중역 회의실.

다들 CEO인 베저스의 눈치만 보는 가운데, 사락거리는 서류 넘기는 소리만이 실내를 울린다.

현재 아마존의 분위기는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자사주 매입이라는 초강수로 주가 하락은 어찌 틀어막았으나, 이대로 4분기에 역대급 적자공시를 해버리면 주가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적자를 메우려면 재고로 남은 파이어폰의 가격을 낮춰서 파는 수밖에 없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에 낼 정도로 담이 큰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이번에도 총대를 멘 것은 COO인 올리버 루소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저기…… 대표님. 이번 파이어폰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추가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프로모션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는 베저스였지만, 그도 상황을 알고 있었다. 이대로는 가라앉는 것 말곤 답이 없다는 것을.

“얼마나 가격을 내릴 생각인가.”

“기존보다 150달러를 낮춘, 449달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저스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파이어폰의 제조단가는 500달러가 넘는다. 각종 홍보비나 유통비용을 제하고도 말이다.

그런 물건을 50달러나 손해 보고 팔아야 한다니. 속에서 쓴 물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지난주 파이어폰 판매량이 얼마나 됐지?”

“저 그게…….”

루소는 답은 않고 눈치를 살펴댄다.

“판매량이 아직 안 올라왔나?”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지난주 판매량은 총 1,200대입니다.”

재고를 300만 대나 쌓아둔 기기의 판매량이, 12만 대도 아니고 고작 1,200대라니? 베저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1,200대가 확실해?”

“그, 그렇습니다.”

“그럼 이번 주는 얼마야?”

“이틀간의 집계밖에 없지만, 160대로 보고됐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을 뜻하는 걸까? 베저스는 그대로 등받이에 몸을 기대곤 눈을 감았다.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스마트폰 사업은 아마존의 주력 사업도 아니었으니, 주가만 200달러 선을 유지한다면 주주들도 이해할 거야. 문제는 이번 4분기 적자를 어떻게 처리하냐는 건데.’

그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한다.

어떻게 하면 파이어폰 재고를 다른 곳으로 떠넘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회계처리를 다음 분기로 미룰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답도 없는 고민이 이어지는 차에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린다. 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이번 M&A에 대응해서 조직한 특별팀의 팀장이었다.

그는 종종걸음으로 회의실을 가로질러 베저스에게 다가갔다.

“대표님, 구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구글?”

심각했던 베저스의 얼굴이 살짝 펴진다.

구글은 이번 적대적 M&A에서 닉스에 맞설 백기사였다. 덕분에 베저스의 개인 지분을 좀 떼주기로 했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만한 출혈이었다.

“그래, 구글에서 얼마나 지원해 준다고 연락이 왔디? 10%? 15%?”

“그게…… 지원 요청을 거절하겠다고 합니다.”

“뭐라고?”

놀랄 새도 없이 또 한 번 문이 열린다.

이번은 베저스의 개인 비서였다.

“큰일 났습니다!”

“또 무슨 일이야?”

“법무부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었습니다. 이걸 한 번 보십시오.”

그녀는 들고 온 노트북을 대뜸 들이민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마존은 전자책 부문에서 83%, 전자상거래 부문 63%, 그 외에 클라우드, 비디오 스트리밍 등의 부문에서도 과반을 넘겨, 반독점법 위반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법무부는 12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예정이며…….]

베저스는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았다.

벌금 12억 달러가 문제가 아니었다.

반독점법에 한 번 걸려들면, 이후 해제를 위한 후속 조치로 일부 사업을 포기하거나 기업을 쪼개야 했기 때문이다.

그걸 막기 위해 아마존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터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가가…… 주가가…….”

쿵! 하는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건 자신의 뒤통수에서 난 소리였다.

“대표님, 대표님? 정신 차리세요! 여기 911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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