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63화
IT 전문 매체에 소속된 평론가들은 앞다퉈서 파이어폰에 대한 비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 어떤 평가도 데스크를 넘어 외부로 게시되는 일은 없었다. 유통을 장악한 아마존의 힘은 미국 내에서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버크셔 헤서웨이, 아마존의 신형 스마트폰 출시를 사흘 앞두고 지분 전량 매각!]
버크셔 헤서웨이의 수장, 워렌 버핏을 상징하는 투자법은 장기투자다. 그런 버핏 회장이 매입한 주식을 3개월 만에 전량 내던졌으니. 그 파급력은 월가를 뒤흔드는 것으로 모자라 발칵 뒤집어 버렸다.
300달러 선을 뚫고 320달러에 근접했던 주가는 단숨에 280달러까지 곤두박질쳤으며, 설상가상으로 공매도 세력까지 달라붙어 주가 하락을 부채질했다.
이 소식이 경제지를 통해 퍼지자, 대중의 관심은 다른 곳에서 몰렸다. ‘대체 파이어폰 상태가 어떻길래 버핏 회장이 주식을 던지고 빠졌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증권가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도 시간은 흘러갔다. 그렇게 약속된 11월 10일이 찾아왔고, 다른 의미로 역대급 관심을 받은 파이어폰이 출시됐다.
[닉스폰의 대항마 파이어폰 출시! 접속자 폭주로 아마존 구매 페이지 순간 먹통이 되기도.]
[아마존의 하이엔드급 스마트폰인 파이어폰, 출고가 799달러로 확정. 아마존 회원에게 200달러 할인해 주는 프로모션을 실시해 가격부담을 확 낮춰. 이번 아마존의 행보가 스마트폰 거품 빼는데 신호탄이 될까?]
“잘들 논다. 잘들 놀아.”
하나같이 아마존 파이어폰에 우호적인 기사를 뽑아대는 언론들.
버지나 비즈니스 인사이드 같은 IT매체는 그렇다 쳐도 월스트리트 저널, 뉴욕 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같은 이름깨나 있다는 언론사들의 기사 역시 비슷했다. 흡사 복사해서 붙여넣은 듯 말이다.
“어멋, 대표님 혹시 저한테 하신 말은 아니죠?”
언제 왔는지 엘런이 책상 맞은편까지 다가와 있었다.
“엘런? 언제 왔어요?”
“처음부터 여기 앉아 있었는데요.”
“엥?”
그녀는 쥐고 있던 텀블러를 들어 보인다.
“대표님 집무실에서 추출한 커피 맛이 좋아서 자주 신세 지고 있거든요.”
집무실의 커피머신은 명장급 바리스타가 직접 세팅하고 원두도 스페셜티를 내 취향대로 섞어서 쓴다.
그 때문에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집무실에 마음대로 드나드는 건 좀 곤란하군요.”
“안 되나요?”
날 바라보고 배시시 웃는 그녀.
사람을 홀리는 여우가 실존했다면 딱 저런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당연히 안 됩니다.”
“칫. 너무해. 어차피 집무실에는 잘 안 계시잖아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대신 제가 있을 때 마시는 것까진 허용합니다.”
“어쩔 수 없네요. 계실 때라도 자주 올게요.”
아쉽다는 듯한 말투였지만 어째선지 표정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뭘 보고 계셨는데 그런 혼잣말을 하신 거예요?”
“아, 그거요? 파이어폰에 대한 언론 반응이 웃겨서요. 한 번 보실래요?”
“한 번 봐요.”
엘런은 책상을 쪼르르 돌아서 내 옆으로 다가온다. 글자가 잘 안 보이는지 눈에 힘을 주고 모니터에 얼굴을 들이민다.
난 그녀가 모니터를 잘 볼 수 있도록 몸을 옆으로 비켜 주며 말했다.
“예상했던 대로 호평 일색입니다. 너무 뻔하게 흘러가니 헛웃음이 나오네요.”
“범상치 않은 파이어폰 구매 행렬. 신형 스마트폰 출시를 한 달여 앞둔 닉스, 나 떨고 있니? 풋, 이거 너무 웃긴데요?”
“그건 차라리 양반이죠. 다음 기사 한 번 보세요. 아주 가관입니다.”
“뭐라고 했길래요?”
엘런은 마우스를 움직이며 몸을 내 쪽으로 숙여온다. 그녀의 상체가 너무 붙은 탓에 말캉한 감촉이 내 어깨를 타고 생생하게 전해진다.
“더우니까 너무 붙지 마시죠.”
“지금 11월이거든요?”
“아무튼, 좀 떨어져요. 훠이 훠이.”
“칫, 완전 철벽이네.”
삐진 것처럼 엘런은 입을 삐죽거리더니.
“이럴 땐 그냥 모른 척하고 가만있어 주는 게 매너예요.”
“저 임자 있는 몸입니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줄 아세요? 두고 봐요. 언젠간 제 매력에 푹 빠지게 할 테니까요.”
“빠지게 만든 다음엔 어쩔 건데요?”
“그땐 역으로 빵 걷어차는 거죠. 날 애먹인 벌로요.”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행동이 적극적으로 변한 건 순전히 우리 누나인 강현경 씨 때문이다.
엘런이 누나에게 인생 상담인가 뭔가를 받은 뒤부터 행동이 변하더니 줄곧 이런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피곤해지는 건 오롯이 내 몫이고 말이다.
아무튼, 쓸데없이 오지랖 떠는 건 세계 제일이라니까.
난 뾰로통하게 있는 엘런의 등을 떠밀어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앞에 아마존 주가 분석표를 내밀었다.
“실없는 소리 할 시간 있으면 일이나 합시다. 아마존 건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피. 맨날 이런 식이야.”
그녀는 툴툴거리면서도 책상 위 화이트보드에 차트를 그려나갔다.
“널뛰기가 좀 있었지만, 현재 아마존의 주가는 270달러 선을 유지 중이에요. 파이어폰 출시 효과를 노린 개인들의 저가 매수로 살짝 반등한 모양새죠.”
“생각보다 하락 속도가 더디네요?”
“아뇨. 딱 예상했던 수준이에요. 월가의 작전이 들어가려면 오늘 장 마감까지는 슬금슬금 올라야 정상이거든요.”
“작전?”
내가 물었으나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어 보일 뿐, 답을 꺼내주진 않았다.
난 잠시 생각을 고른 뒤 정답을 제출했다.
“상황 굴러가는 걸 보면 파이어폰에 우호적인 기사를 뿌려 대는 게, 아마존이 아니라 월가 쪽이란 소리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딩동댕, 정답입니다. 버핏이 눈치 빠르게 털고 나오면서 폭탄을 떠안은 건 월가의 큰손들이에요. 그들도 빠져나오고 싶을 텐데, 누군가는 폭탄을 받아 줄 사람이 있어야지 않겠어요?”
“마지막으로 손실을 떠안는 건 정보에 어두운 개인 투자자들. 즉, 개미지옥 엔딩이 준비되고 있다는 거네요.”
“준비 중이 아니라 이미 종착점 코앞까지 왔답니다. 큰손들이 쥔 마지막 물량을 오늘이나 내일 장 마감 직전에 던지는 것으로 진짜 지옥이 펼쳐지는 거죠.”
정보의 비대칭성만 보더라도 개인은 기관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이래서 주식은 국가가 공인한 사기라는 소리가 나오는 거다.
“큰손들이 던질 때 우리가 싹 받으면 하락 폭이 줄긴 하겠군요.”
“우리가 그걸 왜 받아요?”
“음? 아마존 지분을 확보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녀는 손가락을 까딱거리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화이트보드를 딱딱 짚으며 말했다.
“낙폭이 커질수록 우린 이득이에요. 이미 제3의 창구로 아마존 주가 하락에 엄청난 베팅을 해뒀으니까요.”
“엥? 그 말은 아마존 주식을 끌어 내리는 공매도 세력이 엘런이었어요?”
그녀는 뭐 이리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런 기회를 제가 놓칠 리 없잖아요. 어쨌든, 이 지점에서 주가가 1포인트 내려갈 때마다 4억 달러씩 수익이 발생하니까 우리 예측치인…….”
“잠깐만요, 엘런.”
난 화이트보드 위의 손놀림을 멈춰 세운다.
“이번 아마존 흔들기의 주목적은 아마존 지분을 확보하고, 아마존 경영권을 가져오는 거 아니었어요?”
“그렇죠.”
“그런데 왜 주식 거래를 해서 리스크를 키우는 겁니까? 큰손들이 던지는 것만 받아먹으면 경영권 확보는 문제없잖아요?”
“이게 다 우리 대표님이 유능한 탓이죠.”
“예?”
그녀는 꼬았던 다리를 우아하게 반대 방향으로 바꾼 뒤, 다시 마커를 놀리기 시작했다.
대충 낙서처럼 휘갈기던 선이 어느새 성 모양으로 완성됐다.
“아마존 인수전을 전쟁이라고 가정할게요. 우리는 외부인이에요. 아마존 성을 차지하려는 침공군으로 하죠.”
“알겠습니다.”
“대표님이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아마존은 성을 지키던 장군이 탈주했어요. 그것도 일부 병력을 우리에게 넘기기까지 했고요.”
아마도 장군은 버핏 회장을 뜻하는 거 같다.
“이 때문에 전장은 질 수 없을 정도로 유리해졌어요. 전쟁 시작도 전에 장군이 도망갔는데 병사들은 어떻겠어요? 성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 빨리 도망가고 싶겠죠. 그쵸?”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때 도망가는 병력을 잡아먹는 건 하책이에요. 아직은 병사들이 쌩쌩해서 잡기 힘들 테니까요.”
“그럼 상책은 뭡니까?”
“계속 흔들어 약하게 만드는 거죠. 직접 성을 때린다든지,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혼란을 줄 수도 있죠. 지금의 아마존은 구심점이 없으니 조금만 충격을 주면 주가가 롤러코스터처럼 등락을 반복할 거예요. 스트레스를 버티다 못한 주주들은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겠죠. 우리가 주식을 사 모으는 건 바로 그때랍니다.”
요점은 주식을 인위적으로 하락시켜서 싸게 매수한다는 소린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일까?
제아무리 그녀의 능력이 뛰어나다지만 아마존은 미국의 대표적인 우량주 아니던가.
내 표정에 속내가 드러났는지, 그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은 팝콘만 준비하세요. 이번 일은 제가 깔끔하게 처리할 테니까요.”
평소엔 예쁘게만 보였던 그녀의 미소가, 어째선지 오싹하게 느껴진다.
* * *
이튿날.
아마존 주가는 슬금슬금 고개를 드는가 싶더니, 정오를 막 지나는 차에 수직으로 고꾸라졌다.
주가 하락의 결정적 원인은 파이어폰의 반품률이 20%를 넘겼다는 뉴스였다.
높은 반품률의 이유는 파이어폰의 가격할인 프로모션 때문이었다. 아마존 회원에게 200달러를 할인해 주는 건 맞지만 프로모션 적용 기기에는 아마존 광고가 떴던 것이 문제가 됐다.
단순히 인터넷 쇼핑 중에 뜨는 광고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잠금화면이나 바탕화면 상단, 통화화면까지 아마존 광고가 자리를 차지했으니. 구매자들이 반품 신청을 해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마존으로선 가격을 200달러나 낮추는 대신 광고로 그 손해를 메꿀 생각이었겠지만, 소비자들로선 599달러나 주고 산 물건에 계속 광고가 뜬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260달러 선까지 내려왔습니다.”
“기다리세요. 이제 시작입니다.”
“대량 매도 주문이 몰렸습니다. 월가의 큰손들도 포기하고 털기 시작한 거 같습니다. 255달러, 253달러. 계속 내려갑니다.”
이곳은 엘런이 직접 꾸린 팀인, 일명 특별 재무팀의 사무실이다. 다급한 콜이 오가는 가운데 나는 뒷자리서 묵묵히 그래프의 등락만 지켜보고 있었다.
비전문가인 내가 낄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250달러 무너졌습니다! 지금부터는 수익 구간입니다.”
“여기가 분기점이에요. 한 번에 큰 충격을 줘서 추세 자체가 꺾이게 만들어야 합니다. 언론팀은 지금 연락 돌리세요. 오전에 줬던 기사들 지금 풀라고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경제지에서 속보가 올라온다.
[KG전자 “아마존에서 산업스파이 보냈다.” 아마존을 상대로 파이어폰 판매 금지 소송 예정. 파이어폰 외부에 쓰인 특수소재 가공기술에 대한 것으로 추정.]
[HTC, 파이어폰 생산 중단. 예상보다 밑돈 판매량이 원인인 듯.]
[파이어폰에서 일부 메신저 사용 불능. 아마존OS와 호환성 문제로 알려져. 구매자들 집단 발발.]
[IT매체들, 잇달아 파이어폰 리뷰 공개. 더 버지 “799달러의 가치가 없는 기기”, 비즈니스 인사이더 “파이어폰은 베저스의 욕심이 만든 괴작.”, 컨슈머 리포트는 최하점에 가까운 4.0점으로 평가해.]
언론을 통제했던 큰손들이 털고 떠나자, 쌓아뒀던 악재가 격랑처럼 터져 나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엘런이 자체적으로 뿌린 자료까지 더해지니, 아마존 관련 악재만으로도 경제면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한 번에 230달러까지 내려왔습니다!”
“지지선이 무너졌습니다. 개인 투자자들도 매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사님?”
“여기서 한 번 더 내려갑니다. 안전띠 꽉 매세요. 언론팀은 2차로 터뜨릴 기사 다시 확인하고, 2팀과 3팀은 개미들 물량 받을 준비하세요.”
아마존 같은 미국의 대형주를 한낱 작전주처럼 주물럭거리다니. 이게 가능한 일이었단 말인가?
일본에서 벌어들인 재단 자본이 어마어마하다곤 하나, 핵심은 신기에 가까운 엘런의 운영 능력이었다.
그녀는 놀라운 통찰력으로 시장을 예측했으며, 언론과 인터넷 여론을 움직여 공포를 만들어내는 영리함을 갖췄다.
거기에 월가의 핵심 인물이나 큰손들에게만 전달되는 비공개 정보까지 조작해내는 치밀함도 보였는데. 난 그 모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상황이 어찌나 급박하게 돌아가는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입술이 바짝 말라온다.
커피라도 한잔할까 싶어 몸을 일으킨 그때, 주머니가 부르르 하고 떨려온다.
[버핏 회장]
그도 아마존 주식 상황을 보고 있겠지. 한 끗 차이로 이번 사태를 피했으니 가슴이 철렁했을 거다.
감사 인사라도 하려고 연락한 건가?
전화를 받아 든다.
“여보세요.”
-오, 대니얼. 바쁜데 연락해서 미안하네. 별일 없지?
별일 없냐는 말이, 어째 그 반대 의미로 들린다.
“저야 별일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연락하셨습니까?”
-허허, 성격 급한 건 여전하구먼. 다른 게 아니라 자네를 꼭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서 연락했네.
“그게 누굽니까?”
-누구긴 누구겠나. 자네가 때려대고 있는 회사의 CEO. 베저스일세.
“그가 왜 저를……?”
-글쎄. 백기를 들고나올지, 결사 항전을 외칠지는 모르겠네만, 아주 다급해 보이는 건 확실하더구먼.
다급한 쪽은 항상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만약 베저스가 백기를 들고나오면 통째로 삼킬 테고, 항전한다면 그대로 밟아줄 뿐이다.
“좋습니다. 회장님이 적당한 자리를 마련해 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