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61화 (161/206)

기적의 IT 재벌 161화

닉스폰과 빼닮은 아마존 스마트폰의 출시.

솔직히, 이 소식이 놀랍거나 하진 않았다. 모바일 결제 비중이 차츰 커지는 만큼 인터넷쇼핑과 스마트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그런 꿀 같은 시장을 유통 공룡인 아마존이 진출하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실제로 아마존은 2014년에 독자적 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인 파이어폰을 출시했으나, 끔찍한 성적을 내고 아마존 흑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랐다.

우선, 시기가 그보다 2년 빠른 2012년이라는 것과 함께, 단독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생산에 잔뼈가 굵은 HTC와 손잡았다는 점이다.

TV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던 엘런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분통을 터뜨린다.

“저 정도면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옆 라인은 그렇다 쳐도 전면부와 소재는 컨트롤C, 컨트롤V 수준이잖아요.”

“렌더링을 일부러 저렇게 뽑았을 겁니다. 지금은 닉스폰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니까요.”

“그들이 노렸던 건 처음부터 자사의 제품 이슈화란 말씀이세요?”

“그렇죠. 실제 기기가 출시될 땐 살짝만 수정해서 나오면 그만이니까요.”

아마존의 방식은 예전 오성전자가 애플을 따라붙던 전략과 판박이였다.

선발주자를 빠르게 카피해서 격차를 줄이고 비슷한 디자인과 기능으로 이슈화까지 시킨다.

그와 동시에 언론과 매체를 총동원해서 애플과 오성을 동급으로 놓는 듯한 기사를 계속 퍼다 나르는 것이 핵심인데, 이런 작업이 계속되면 대중은 양사가 경쟁 관계라도 되는 양 착각하게 된다.

실제론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체급이 벌어져 있는데도 말이다.

칫, 아마존이 노리는 건 닉스폰의 프리미엄 이미지인가. 언젠간 이런 공격을 받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당해보니 기분 더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난 찡그렸던 인상을 풀고 그녀를 바라본다.

“저는 올라가 보겠습니다. 특이사항이 생기면 보고해 주세요.”

내가 돌아서려 하자, 엘런이 나를 붙잡는다.

“저기 대표님!”

“무슨 할 말이 남았나요?”

“이번 버크셔 헤서웨이의 움직임 말인데요. 아무래도 그게 아마존의 스마트폰 사업과 연계된 거 같아요.”

유통망의 아마존과 양산 능력의 HTC.

두 기업의 연합전선만 해도 골치 아픈데 거기에 자금력의 버크셔 헤서웨이까지 엮이다니.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이었다.

“확실한 정보입니까?”

“버크셔 헤서웨이가 닉스 지분을 축소하면서 사들인 주식이 애플과 아마존 두 곳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애플과 아마존?”

“예. 그것도 극단적이라 할 정도로 두 기업에만 비중을 늘렸더라고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긴 버핏이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순간 팔뚝에 소름이 쫙 끼친다.

IT산업의 원톱인 애플과 유통망의 아마존.

분야가 전혀 다른 기업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미래에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달성할 기업이라는 거다.

어찌 이런 기업만 딱 집어서 투자할 수 있는 걸까? 이런 걸 보면 투자의 귀재라는 버핏의 위명이 과장이 아니다 싶다.

내가 나만의 생각에 빠져 있자 엘런이 얼굴을 들이민다.

“듣고 계신 거 맞죠?”

“예? 아, 당연하죠.”

그녀는 탐탁잖다는 표정으로 입을 삐죽인다.

“다른 생각 하시는 거 같던데…… 어쨌든, 대표님은 버크셔 헤서웨이의 움직임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들이 아마존 주식을 산 것만으로 관계를 단정 지을 순 없습니다. 단순히 미래의 가치를 보고 투자했거나, 아니면 아마존의 스마트폰 사업 소식을 듣고 비중을 늘린 걸지도 모르니까요. 버핏 회장의 돈 냄새 맡는 실력은 세계 제일이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녀는 생각만으로도 짜증이 나는지 미간을 잔뜩 주름지게 만든다.

“그런 것치고는 움직임이 너무 노골적이에요. 버핏의 뒷주머니가 닉스 주식은 하락에, 아마존 주식은 상승에 베팅했더라고요.”

“어떻게 그런 걸 파악했습니까?”

“버크셔 헤서웨이의 움직임으로 주가가 널뛰기할 때마다 나타나서 돈을 쓸어 담는 헤지펀드들을 추적했죠. 일전에 대립각을 세운 뒤부터는 항상 신경 쓰고 있었거든요.”

그녀의 말대로라면 닉스 주식 매도를 요란스럽게 발표했던 것도 헤지펀드 수익을 위해서라는 소리가 된다. 이런 너구리 같은 영감탱이를 봤나.

“재무팀은 지금처럼 자체적으로 대응해 주세요. 특이사항이 생겼을 때만 보고하면 됩니다.”

“대표님은 어쩌실 생각이세요?”

“어쩌긴요. 적이 누군지 알았으니, 이제부터 반격에 나서야죠.”

“저희가 이길 수 있을까요? 이번은 상대가 만만치 않은데…….”

난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지금은 세 업체가 견고히 공동전선을 펼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솥의 얇은 다리처럼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임시동맹이나 마찬가지죠.”

“방법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당장 비대한 두 개의 다리를 치는 건 힘듭니다. 하지만 확연하게 약해 보이는 다리 하나. 그것만 비틀어버릴 수 있다면…….”

“있다면?”

그녀의 눈앞에 손바닥을 가져다 댄다. 그리곤 홱 반대로 뒤집으며 말했다.

“나머지가 버티고 있어 봐야 판이 엎어지는 건 막을 수 없겠죠.”

* * *

늦은 오후에 도착한 대만 타오위안 공항.

서둘러 차를 갈아타고 도심 쪽으로 향했다.

잠시 눈을 붙일까도 했지만, 이미 9시간의 비행을 마친 탓에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차창 밖으로 이어진다.

중국 본토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들이었지만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개성이 있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는 데 주저할 듯한 모습이다.

한적한 도시를 삼십 분간 내달린 차량이 멈춰선다.

도심의 모습처럼 조금은 낡은 건물이다. 입구에 새겨진 HTC라는 글귀가 없었다면 여기가 목적지나 맞나 싶을 정도였다.

“대표님, 도착했습니다.”

경호를 담당하는 샤오후가 문을 열어준다.

그때였다. 내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다섯의 사내들.

반사적으로 내 앞을 막아서는 샤오후 너머로 딱딱한 억양의 영어가 넘어온다.

“닉스에서 오신 대니얼 강이십니까?”

“그렇습니다만.”

“저는 HTC 사내의 보안을 담당하는 왕 레이입니다.”

차에서 내려 그를 훑어본다. 새카만 정장에 위압적인 모습으로 보건대, 안내보다는 감시를 위해 온 듯했다.

“HTC 본사에는 타사 경호 인력을 들일 수 없습니다. 경호원은 여기서 대기하시고 대니얼 강만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즉각 반발하려는 샤오후를 내가 막아섰다.

“싫다면요?”

“예?”

“싫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냥 돌아가면 되는 건가요?”

내 돌발 발언에 그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샤오후는 경호원이 아니라 제 통역이자 참모입니다. 그를 대동하는 건 상관없겠죠?”

“그건…….”

“허락한 거로 알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자, 왕 레이는 허둥지둥 날 앞질러 막아섰다.

“경호원은 진입이 안 됩니다.”

“저더러 통역도 없이 들어가란 말입니까?”

그는 난처한 듯 어딘가로 연락을 주고받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릴 안으로 안내했다.

HTC 본사의 내부는 오래된 건물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했다.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벽면과 좁은 복도. 거기에 승강기마저 낡아 가동 중에 끼릭거리는 소음이 들려오기도 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작은 홍보관 느낌을 주는 방이었다. 쭉 이어진 진열대에는 지금까지 출시된 HTC의 스마트폰들이 줄지어 전시돼 있었다.

터치 듀얼, 터치 다이아몬드 같은 윈도우모바일 탑재기부터 시작해서, 구글 ODM으로 생산한 넥서스 원, HTC의 자존심인 디자이어와 센세이션 시리즈도 있다.

진열대의 라인업만 보더라도 HTC가 스마트폰 과도기에 바짝 성장한 회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성, 소니, 노키아 등의 메이저 업체들이 스마트폰과 피처폰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던 동안, HTC는 위탁생산으로 얻은 기술을 스마트폰에 집중해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한때는 HTC 스마트폰이 오성전자 스마트폰 판매량의 3배를 이상을 차지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게 최후의 불꽃이었지. 이후 오성에 따라잡힌 HTC는 영영 반등하지 못했으니까.

장식장을 다 둘러보고 자리에 앉자, 타이밍 좋게 문이 열린다.

“안녕하세요. 닉스에서 오신 손님들.”

안으로 들어온 이는 화장을 짙게 한 여인이었다. 화장이 어찌나 짙은지 나잇대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반갑습니다, 대니얼 강이라고 합니다.”

“저는 HTC의 회장인 왕 커쥔입니다.”

“음? 저는 CEO인 피터 추를 만나러 왔습니다.”

왕 커쥔은 부채로 입을 가리고 웃어댄다.

“소문으로만 듣던 닉스의 CEO를 직접 보고 싶어서 제가 나왔어요.”

“이거 영광이로군요.”

“앉아서 천천히 차나 한잔하시죠.”

그녀는 들고 있던 부채를 착 소리 나게 접더니 자랑스럽게 벽면을 가리킨다.

“좋은 차를 많이 준비해 뒀으니 어디 한 번 골라보세요.”

그곳엔 처음 보는 차들이 종류별로 나열돼 있었다. 방금까지 휴대폰을 구경한다고 있는 줄도 몰랐던 것들이었다.

“차를 마시는 것도 좋지만 일 이야기를 먼저 했으면 합니다.”

“아마존 건으로 오신 거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내뱉은 목소리엔 단호함이 깃들어있다.

제법 세게 나오시겠다 이건가? 미안하지만 나도 웃으며 이야기하러 온 건 아니라서 말이지.

난 슬쩍 손을 뻗어, 왕 커쥔의 손에 있던 부채를 빼앗았다.

그녀는 깜짝 놀랐는지 빽 소리를 질러댄다.

“무, 무슨 짓이에요!”

“쥐고 있던 걸 뺏겨보니 기분이 어떠세요?”

“지금 저랑 장난하자는 거예요? 닉스 CEO가 이렇게 경우 없는 사람인 줄은…….”

말을 내뱉던 그녀는 내 뜻을 알아챘는지 인상을 팍 구긴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제가 이 자리에 온 이유를?”

“뚱딴지같은 소리나 할 거면, 부채 내려놓고 나가세요. 어서요.”

“음? 그 말, 감당할 수 있습니까?”

“보안요원! 보안요원!”

귀가 아플 정도로 빼액 소리를 내지르는 그녀.

본래라면 천천히 구슬리려는 계획이었지만, 상대가 이런 식으로 빽빽거리면 신사다운 대화는 글러 먹은 듯하다. 일단 저 주둥이부터 다물게 해야겠지.

“저는 HTC에 대한 소프트웨어 지원을 끊을 생각입니다.”

귀를 찌르던 고주파 소리가 뚝 끊긴다.

눈을 부릅뜬 왕 커쥔은 나를 매섭게 노려본다. 그 때문인지 눈가의 짙은 화장이 가뭄이라도 난 것처럼 쩍쩍 갈라진다.

잠시 눈싸움을 하던 그녀는 콧방귀를 끼더니.

“흥! 난 또 뭐라고. 그따위 협박으로 내가 꿈쩍이나 할 거 같아요?”

“꿈쩍이 아니라 벌벌 기어 다녀야 할 거 같은데요.”

내가 너무 당당하게 나오자 무슨 소린가 싶어서 말을 곱씹는 그녀.

난 생긋 웃으며 해답을 내놓는다.

“제가 텐센트의 최대주주인 거, 알고 계십니까?”

“테, 텐센트?”

HTC의 스마트폰이 해외에서도 쏠쏠히 판매된다곤 하나, 최대 시장은 당연히 본토인 중국이다.

그런 중국 내에서 텐센트 서비스인 웨이-씬과 QQ메신저, QQ페이, 텐센트 마켓을 못 쓴다는 건 휴대폰을 팔지 않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이제야 사태 파악이 됩니까? 제가 결정만 내리면 HTC는 다시 하청업체 시절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럴 수는…….”

하얗게 찍어 바른 얼굴이 더 새하얗게 뜬다. 바닥에 눕혀두면 시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때 시기적절하게도 문이 벌컥 열린다.

“회장님! 무슨 일입니까?”

뛰어 들어온 이는 나를 여기까지 안내했던 왕 레이였다.

그는 호들갑스럽게 안으로 들어왔으나. 돌아온 것은 왕 커쥔의 축객령이었다.

“나가세요.”

“예?”

사태 파악이 안 되는지 나와 왕 커쥔을 번갈아 쳐다본다.

“나가라는 말 못 들었어요? 빨리 나가요, 당장!”

“아, 알겠습니다.”

왕 레이를 쫓아낸 그녀가 이쪽을 돌아본다. 억지로 미소 짓고 있었지만, 눈에선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방문의 목적이 뭔가요?”

“이번에 HTC에서 생산할 아마존 신형 스마트폰에 관해서입니다. 디자인이야 그렇다 쳐도 KG전자의 특소 소재기술까지 빼가셨더군요.”

“저희도 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이건 아마존이 요청해서 어쩔 수 없이…….”

“잠깐만요.”

난 그녀의 말을 도중에 막아섰다.

“이것부터 묻죠. 이번 일을 꾸민 건 HTC입니까? 아니면 아마존입니까?”

“당연히 아마존에서 지시한 거죠. 우리가 미쳤다고 경험도 없는 특수소재 제품을 만든다고 했겠어요? 아마존에서 대량 오더를 넣어두고 나중에 말을 바꾼 거라고요. 그, 그래, 함정에 빠진 거예요. 아마존의 함정.”

눈동자가 떨리는 것이 어설퍼도 너무 어설펐다. 이래서야 속고 싶어도 못 속아줄 정도다.

보나 마나 아마존에서 닉스폰과 똑같이 만들어 줄 수 있겠냐고 의뢰했을 거고, HTC에선 좋다고 덥석 물었겠지. 쯧쯧, 이런 걸 보고 자업자득이라는 거다.

“모든 일은 아마존이 시킨 짓이다, 이 말씀이죠?”

“그렇죠.”

난 쥐고 있던 부채를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그 말씀은 아마존이 했다는 증거도 있겠군요. 안 그렇습니까?”

“아…… 그러니까, 아쉽게도 증거는 없어요. 아시겠지만 미국 애들이 그런 쪽에서는 철저하잖아요.”

턱도 없는 소리를 지껄여 대니, 비웃음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난 웃음을 참기 위해서라도 이를 꽉 물어야만 했다.

“그렇게 나오신다면 저도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소프트웨어 지원을 끊어서라도 파이어폰 생산을 막는 수밖에요.”

“증거를 드리고 싶어도 없단 말이에요.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다른 조건을 원하시면 뭐든 들어드릴 테니까, 텐센트의 지원을 끊는 것만은 다시 생각해 주세요.”

“더는 할 이야기가 없을 거 같군요.”

난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왕 커쥔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잽싸게 다가와 내 옷을 잡고 늘어진다.

“선생님, 다시 한번만 생각해 주세요. 예?”

“이럴 시간에 아마존이 지시했다는 증거를 찾아보는 건 어떻습니까?”

“없는 걸 어떻게 찾으란 소리세요.”

왕 커쥔의 손아귀를 억지로 뿌리친다. 그러자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그녀.

그러거나 말거나 난 옷을 툭툭 털며 말을 이었다.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없는 걸 억지로 찾기보다는 만들어내는 게 빠를 수도 있습니다.”

“그, 그 말씀은…….”

“옳은 선택을 하시길 빕니다. 왕 커쥔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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