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58화 (158/206)

기적의 IT 재벌 158화

매달 첫 번째 수요일은 닉스 코리아 팀장들의 정기보고가 있는 날이다.

보고사항은 메일이나 서류로 받아도 그만이었지만, 내가 굳이 대면 보고를 고집하는 이유는 한국 시장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은 규모로만 따지면 세계 10위 권을 간신히 턱걸이하는 수준이지만 그 어떤 곳보다 IT트랜드 확산이 빠른 곳이면서 유의미한 피드백이 돌아오는 시장이기도 했다.

“최근 분석 결과에 따르면 닉스폰은 단종 이후도 지속적인 키워드 노출이 있었습니다.”

빔프로젝터 앞에 서서 보고 중인 여인은 닉스 코리아의 서진서 총괄팀장이다. 그녀는 닉스서클 초창기 개발 멤버로, 현재까지도 닉스 코리아를 훌륭하게 이끌고 있었다.

“이것은 닉스서클에서 수집한 닉스폰 키워드 빈도를 그래프 화한 것입니다.”

그녀가 손짓하자 프로젝터의 화면이 전환된다.

“보시다시피 단종 시점 이후, 오히려 키워드 등장 빈도가 늘었으며. 수집된 대표 키워드는 닉스폰 차기작, 닉스폰2, 닉스폰 생산 재개, 닉스폰 중고 등이었습니다.”

한 번 더 신호를 보내자, 이번은 그래프의 개수가 늘어난다.

“단종 후, 닉스폰의 수요가 늘었다는 근거는 키워드 분석 외에도. 닉스폰 중고 기기가 연일 최고가를 갱신 중이라는 것과 더불어, 닉스폰 차기작에 대한 루머가 애플폰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점입니다.”

“애플폰? 그 정도까지 관심이 몰린단 말입니까?”

묵묵히 보고를 듣던 내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자, 서진서는 더 힘을 받아 이야길 이어나간다.

“미국의 IT 전문 매체인 더 버지의 관심 기사 1위와 2위가 닉스폰 차기작 루머입니다. 지금이 애플폰 출시를 목전에 앞둔 시점인 걸 고려하면 엄청난 일이죠.”

“와우. 놀랍군요.”

더 버지는 친 애플 성향으로 유명한 매체다. 적의 본진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닉스폰 소식이 1위를 달성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래서 저희는 닉스폰의 지속적인 관심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리서치 기관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그녀는 스크린을 다음 페이지로 넘기고 발표를 이어나간다.

“이 도표는 닉스폰 구매자, 혹은 닉스폰 구매 예정자 천 명을 상대로 닉스폰의 반응을 조사한 내용입니다. 소재와 디자인이 67%, 긴 배터리 타임 47%, 뛰어난 퍼포먼스 26%, 닉스OS의 안정성 16%. 마지막으로 닉스OS 독점 게임이 46%로 조사됐습니다.”

“음? 예상했던 거보다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네요. 주요 셀링포인트라고 생각했던 배터리 타임과 비슷한 정도였다니.”

“듀얼 배터리 시스템을 바라보는 시각은 실사용자와 구매 예정자들 사이에서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긴 배터리를 강점으로 꼽은 분포는 닉스폰 실사용자들이 82%, 구매 예정자 쪽에서는 29%로 나타났습니다.”

타사 대비 2배 이상 오래가는 배터리는 마법에 가까운 기술이지만 실제 체험하지 못하면 느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배터리 시스템과는 반대로 닉스OS 독점 게임은 구매 예정자층에서 더 높은 관심도를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게임은 데모 영상이나 광고만으로도 기대감을 심을 수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종합해 보면 하드웨어보다는 게임이 새로운 사용자를 끌어모으는 데 효과적이란 소리군요.”

“통계적으론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게임 파트 쪽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죠.”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 배기태 팀장이 앞으로 나섰다.

“닉스 스튜디오를 담당하는 배기태입니다. 우선은 닉스 스튜디오 출범 이후 발생한 통합 매출을 먼저 보고하겠습니다.”

“매출 보고는 2분기까지 이미 받아 봤습니다.”

“3분기는 팬틱의 중국 공장에서 레이서N이 쏟아졌잖습니까? 그 때문에 게임 매출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한 번 들어보죠.”

배기태는 자신만만하게 스크린을 다음 장으로 넘긴다.

그곳엔 지금까지 닉스 스튜디오에서 출시한 게임들의 매출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드래곤RPG 2,100억.]

[메탈슬러그 런 720억.]

[닉스마블 4,760억.]

[닉스팡 1,600억.]

……

확실히 중국 시장의 영향이 큰 탓인지 2분기까지의 매출을 합한 것보다도 3분기 매출이 컸다.

배기태 녀석이 자신만만했던 이유가 있었구나.

아니, 잠깐만. 마지막에 저건 뭐야? 아이돌 키우기가…… 1조 1,200억이라고?

아이돌 키우기는 일본 애니메이션 풍으로 그려진 카드수집형 배틀 게임이다.

주력 콘텐츠는 아이돌 카드의 수집과 성장, 거기에 미니게임과 인기투표 따위를 섞은 시험적인 게임이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게 1조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단 말인가?

내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배기태는 더 의기양양해져서 발표를 이어나갔다.

“보시다시피 중국 시장에 닉스OS폰이 보급되면서 매출이 가파르게 뛰었습니다. 특히 아이돌 키우기는 중국 일대에 신드롬 현상까지 보이며 매출이 10배 이상 올랐는데요. 카드 뽑기와 어우러진 카드첩 완성 시스템이 대박을 터뜨린 결과입니다.”

“카드첩 시스템이 뭡니까?”

“경쟁사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겁니다. 랜덤으로 획득하는 희귀 카드를 종류별로 모으면 한정판 희귀 카드를 지급하는 식이죠.”

“혹시 그거, 컴플리트 가챠?”

“어라? 대표님이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이걸 모를 리 있나.

일명 컴플리트 가챠라 불리는 ‘컬렉션 완성형 보상’은 과금 유도 방식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시스템이다.

랜덤 박스의 도박성에다가 지금껏 수집한 카드의 보상심리가 버무려지면 절제할 수 없을 정도의 과금 유혹이 밀려온다.

이 때문에 무리한 과금으로 신용불량자가 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까지 속출했다.

일부 국가에선 컴플리트 가챠를 법적으로 금지할 정도로 악랄한 과금 유도 시스템이었지. 그런데, 그런 시스템을 닉스 스튜디오에서 하고 있을 줄이야.

“기태 씨, 닉스 스튜디오 게임 중, 컴플리트 가챠 시스템을 채택한 게임이 몇 종입니까?”

“현재까지는 아이돌 키우기가 전부입니다. 다만, 매출 증진을 위해 4분기부터는 다른 게임에도 차례로 적용할 예정에 있습니다.”

“다른 게임에 채택은 불허합니다.”

“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배기태가 눈을 껌뻑거린다.

“이미 적용된 아이돌 키우기는 어쩔 수 없다만 다른 게임에까지 컴플리트 가챠를 넣는 건 금지합니다. 아니지, 랜덤박스 형태의 모든 과금 방식은 지양하도록 운영을 방식을 바꾸세요.”

“그럴 이유가 있을까요? 현존 과금 방식에 논란이 있긴 하지만 모바일 게임에서는 흔히 쓰는 방식입니다. 굳이 닉스 스튜디오 게임에서만 뺄 필요가…….”

“이 선택으로 인해 손해를 보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니 무조건 빼세요.”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꿍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녀석.

“배기태 팀장. 게임을 이딴 식으로 만들려고 일본에서 그 고생을 해가며 라이센스를 따왔습니까?”

내 일갈에도 배기태는 여전히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난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쏟아붓는다.

“왜요? 여전히 지금 방식이 옳다고 생각합니까?”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으로선 수익이 높은 방식을 따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수익이 높으면 그만큼 게임에 재투자할 수 있는 여력도 생기고요.”

“그럴 거면 일본 게임사들처럼 빠칭코나 슬롯머신 게임을 만드세요. 투자 대비 수익은 그 방면이 최고일 겁니다.”

“아니, 그건 좀…….”

“그런 게임을 만드는 건 모양새가 안 납니까?”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화가 났다. 그래서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전부 비꼬는 모양새가 된다.

“까놓고 지금 아이돌 키우기가 빠칭코와 다를 게 뭡니까? 차이점이라곤 상품이 현금이 아니라는 것뿐이잖습니까. 어쩌면 더 악랄할지도 모르겠네요. 평범한 게임처럼 예쁜 포장지까지 씌워놨으니까요.”

말 많기로 소문난 배기태의 입이 굳게 잠겼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자, 서진서나 다른 팀장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다.

“언제 기태 씨가 그랬었죠. 대중들이 게임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가진 게 안타깝다고요. 그런데 그 말을 했던 당사자가 사행성 게임을 만들어서 인식 악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

“모바일 게임들이 현존 과금 체계를 유지한다면 당장은 매출이 높아질지도 모르죠. 1%의 고액 결제 층이 나머지 모든 유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매출을 내줄 테니까요. 하지만 지쳐 나가떨어진 99%의 유저들은…… 게임 자체를 혐오하게 될 겁니다.”

아직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입을 굳게 다문 그에겐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언짢은 표정으로 자리를 뜨려 하자, 팀장들이 따라서 일어선다.

난 그들을 손짓으로 제지하고 혼자 밖으로 나섰다. 잠시, 조용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긴 복도에 내 구두 소리만이 울려댄다.

“휴우-”

사실, 배기태의 처지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는 닉스 스튜디오를 총괄하는 팀장이고, 팀의 매출 향상을 위해 팀장으로서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경쟁사에서 랜덤 박스와 컴플리트 가챠 시스템을 써서 돈을 쓸어 담는데, 그걸 마다하는 놈이 더 이상한 거겠지.

그래도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의 모바일 게임은 사행성을 강조한 과금 체계로 성장해서 단기간에 매출을 내고 서비스를 접는, 그런 기형적인 시장으로 변질된다.

게이머들은 그런 게임들에 실망해서 하나둘 모바일 게임 시장에 등을 돌린다. ‘차라리 피처폰 시대 게임이 더 좋았지’라는 말을 남기며…….

기기의 퍼포먼스는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이런 꼴이라니, 모바일 게임 시장은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그때였다.

다급한 발소리가 나를 따라붙는다.

뒤를 돌아보자 헐레벌떡 달려오는 배기태가 있었다.

“대, 대표님!”

그는 전력으로 여기까지 달려오더니 한참을 헥헥 거린 뒤에야 말을 이어갔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하단 말입니까?”

“제가 했던 말 전부요. 특히 수익이 높은 방식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고 했던 말. 그건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 입에서 나오면 안 될 말이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합니까?”

갑자기 뺨을 긁으며 눈치를 살피는 녀석. 난 계속해 보라는 손짓으로 그를 재촉했다.

“게임은…… 일단 재미있어야 하니까요.”

기대했던 대답이 나오자, 내 입가엔 절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린다. 동시에 속에서 막혔던 무언가가 뻥 뚫린 느낌도 든다.

나는 그의 목을 휘감아 어깨동무하며 말했다.

“좋습니다. 앞으로도 그 말만은 잊지 마세요.”

“아,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게 붙들려 어정쩡하게 고갤 숙이는 녀석.

어깨동무를 풀어주자,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말을 이어낸다.

“바보같이, 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요. 주어진 제약 안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무언가를 만드는 것, 그게 제 좌우명이었는데요.”

“그 말. NTD사의 게임 기획자인 미야모토 시게루 씨가 했던 말이군요.”

“앗! 알고 계셨군요.”

“마리오와 젤다를 만든 천재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를 모를 리 없죠.”

고갤 끄덕인 배기태는 쑥스러운지 콧잔등을 매만지며 말했다.

“제 롤모델이 NTD의 미야모토 시게루 씨와 밸브의 게이브 뉴웰, 두 분이었습니다. 지금은 거기에 대표님까지 포함해서 세 분이 됐지만요. 헤헷.”

“아부해 봐야 뭐 떨어지는 건 없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닉스 초기 멤버라면 누구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걸요?”

난 대답을 하지 않고 픽 웃어넘겼다.

어? 잠깐만. 이야길 하다 보니 잊고 있었던 아이디어 하나가 불쑥 고갤 쳐든다.

“기태 씨, 미야모토 시게루 씨와는 만나봤습니까?”

“예. NTD 본사에 뻔질나게 드나들다 보니, 지금은 제 얼굴을 기억하실 정도더군요.”

“그럼 밸브의 게이브 뉴웰은요?”

“그쪽은 아직 인연이 없네요.”

“잘됐네요. 말 나온 김에 지금 당장 만나러 가보죠. 전용기 띄워서 워싱턴으로 날아갈 테니까, 여권만 챙겨서 나오세요.”

그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거린다.

“저, 저, 저를 놀리시는 거죠?”

“왜요? 회사에 여권 없습니까?”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갑자기 왜 게이브 뉴웰에게…… 아! 혹시?”

“기태 씨가 생각하는 그 혹시가 맞습니다.”

난 옅은 미소를 띠고 말을 이었다.

“닉스 스튜디오가 한발 더 나아가려면 그가 소유한 게임 유통플랫폼인 스팀을 잡아야 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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