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55화
“설마, 완전 빈손인 거야?”
“빈손일 리가요. 다만 좀 애매하다고 해야 하나?”
매형은 답답하다는 듯 답을 재촉한다.
“세금을 줄여주면 줄여주는 거지. 애매한 건 또 뭐야?”
“감면 혜택을 닉스에 주는 게 아니라 모토로라에 주겠답니다.”
“뭐?”
매형 미간에 구불구불한 내천 자가 새겨진다.
우리가 백악관에 전달한 요청은 닉스에 세금 감면 혜택을 달라는 거였다. 한해 닉스 서비스로 벌어들이는 광고 수입만 해도 30억 달러가 넘어갈 정도였기에 통과만 된다면 엄청난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적자에 허덕이는 모토로라의 세금 감면이었으니, 쥐꼬리보다 못한 보상에 충격을 받았는지 매형은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와, 백악관에서 이딴 식으로 뒤통수를 쳐? 우리가 ‘네, 네’ 하고 있으니까 호구로 보였나 보지?”
“매형, 흥분 좀 가라앉히세요. 아직 이야기 안 끝났습니다.”
“내가 진정하게 됐어? 본점 대신 구멍가게 세금을 깎아 준다는데.”
“모토로라에만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건 맞지만 조건이 하나 더 붙었습니다.”
“뭔 조건?”
“세금 혜택을 모토로라 공장에서 생산하는 품목에도 일괄 적용해 주겠답니다.”
매형은 방금 날뛰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침착하게 상황을 되짚는다.
“이거…… 내 생각엔 그거 같은데.”
“생각하시는 그게 맞아요. 닉스폰을 모토로라에서 생산해 달라는 백악관의 요청인 거죠.”
현재 모토로라의 해외생산 공장은 중국과 멕시코 두 군데에 있다. 두 공장의 피처폰 생산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으나, 문제는 스마트폰 생산이었다.
모토로라 경영진은 수요를 월간 500만 대로 잡고 생산에 들어갔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판매량은 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80만 대 수준이었다.
“재고가 쌓일 대로 쌓인 모토로라는 자사 스마트폰을 덤핑해서 팔고 있어요. 공장을 멈출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궁여지책이죠.”
“모토로라에서 닉스폰을 찍으면 모두가 윈-윈이라는 거구나. 백악관에서 머리 좀 썼는걸?”
“거기다가 미국 내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엔 세금을 더 내려준답니다. 15.5%에서 추가로 6%를 더요.”
“그럼 9.5%?”
“예.”
매형은 대뜸 계산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한참이나 두들겨 댄 뒤에야 말을 잇는다.
“이 정도면 미국 공장의 경쟁력도 충분해. 아니, 오히려 이득일지도 모르겠는걸? 자세한 건 페이지와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 말이다.”
“장기적으론 이득이 맞을 겁니다. made in USA의 마케팅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겠고, 멕시코와 중국의 인건비 상승도 무시 못 할 수준이니까요.”
“그래서 텍사스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구나.”
“아뇨. 지을 필욘 없습니다. 이미 준비돼 있으니까요.”
난 태블릿을 꺼내 들어 웹 페이지 한 장을 보여준다. 그곳엔 [노키아, 48만 제곱피트 규모의 텍사스 공장 철수]라는 기사가 떠올라 있었다.
“이게 언제 기사야? 최근 건 아닌 거 같고.”
“2007년도 기사입니다. 노키아가 철수하고 지금은 대만의 플랜트로닉스가 공장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공장 인근은 임금도 낮은 편이고 멕시코와 가까워 부품 수급도 용이하죠.”
실제로 모토로라는 2013년 중순부터 텍사스 공장을 임대해서 주력 스마트폰인 모토X를 생산한다.
모토X는 미국 생산이라는 강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취향에 따라 주문제작 서비스까지 시행했으나, 매월 70만 대라는 처참한 판매량을 기록하곤 1년이 채 안 돼서 미국 공장에서 철수하고 만다.
“호오. 어쩐지. 네가 너무 쉽게 미국 공장을 가동하겠다고 발표했더라니. 노키아가 철수한 뒤론 공장에서 뭘 생산하고 있어?”
“헤드셋이나 마우스 같은 주변기기를 생산한다고 하네요. 방치된 공장이 아닌 만큼 설비와 인원만 배치하면 바로 쓸 수 있습니다.”
“좋아, 텍사스 공장에서 닉스폰을 찍어낼 수 있으면 수급 문제는 좀 풀리겠구나. 드디어 말썽 많던 KG전자와는 안녕이다.”
“KG전자가 무슨 말썽입니까?”
내 물음에 오히려 매형이 역으로 물어온다.
“현우 너, 이야기 못 들었어?”
“무슨 이야기요?”
“어젯밤, KG전자에서 닉스폰을 또 감산한다고 통보해 왔다.”
“또요?”
KG전자는 일전에도 닉스폰 생산을 감산했었다.
자사의 신제품 생산을 위해 기존 120만 대 남짓한 닉스폰 생산량을 30만대 수준으로 반의반 토막을 내버린 일이었다.
물론 KG전자의 신제품인 옵티무스4X는 거하게 망해 버렸고, 지금은 옵티무스4X 생산라인에서 다시 닉스폰이 생산 중이었다.
한데, 그걸 또 한 번 감산하겠단 말인가?
닉스폰은 위탁생산이지만 제작기술까지 KG전자에서 도맡는 ODM 방식을 하고 있다.
당연히 생산만 담당하는 OEM 방식보다 이윤이 높을뿐더러, 특수 소재가 많이 들어간 만큼 부품에서 남겨 먹는 항목도 상당하다.
그런데 그걸 다 걷어차 버리고 자사 제품 비중을 늘린다니. 이걸 용감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멍청하다고 해야 하나?
“아쉬운 소리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이런 식으로 나와 버리니, 정말 갑갑하니까. 이참에 KG전자에서 닉스폰 빼버리고 모토로라로 다 돌려 버리는 게 어떠냐?”
“제가 그럴 수 있으면 진즉에 했겠죠.”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닉스폰은 특수 재질이라 제대로 뽑아줄 만한 제조사가 드뭅니다. 기껏해야 오성전자 정도?”
이 방면으론 경험이 없는 매형인지라, 처음 알았다는 표정으로 물어온다.
“닉스폰 만드는 게 그 정도로 힘들어?”
“힘들다기보다 타사는 특수 소재 기기를 제조한 경험이 없으니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죠. 모토로라에서 억지로 생산하려면 준비 기간만 대여섯 달은 걸릴걸요? 그마저 부품은 KG전자에서 조달해야 할 거고요.”
이제야 상황을 이해했는지 매형은 입을 삐죽거린다.
“칫, 좋다가 말았잖아. 기기는 없어서 못 팔 정돈데 생산 측에서 매번 태클을 걸어대니. 이게 뭔 상황인가 싶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뭔데?”
“그런데 이게 좀 극단적인 방법인지라…….”
* * *
KG전자 본사 16층에 자리 잡은 중역회의실.
이곳에선 한 주가 시작될 때마다 KG전자의 임원들이 참석한 실무회의를 진행한다.
원탁에 둘러앉은 임원들의 얼굴이 굳어 있다.
평소에도 KG전자의 회의 분위기는 무거운 것으로 유명했지만, 오늘은 그보다 곱절은 더 심각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 이유는 원탁 중앙에 앉은 KG그룹의 진양현 회장 때문이었다.
평소엔 현황 보고만 받던 진양현 회장이,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직접 실무회의에 참석해 왔다.
“왜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있나. 회의하는 사람들 어디 갔어?”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는지, 진양현 회장은 불편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린다.
“상구야.”
호명 받은 진상구 부사장이 조건반사 수준으로 고갤 숙이며 답한다.
“예, 회장님.”
“평소에도 회의를 이런 식으로 하누?”
“아, 아닙니다. 오늘은 회장님이 참석한 탓에 조금 긴장한 모양입니다.”
“뭐, 긴장?”
진양현 회장은 눈을 가늘 게 뜨고 임원들을 하나하나 훑어본다. 다들 어깨가 잔뜩 움츠려 있고,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다.
진 회장 입에선 절로 혀 차는 소리가 새 나온다.
“이런 정신머리로 어느 천년에 오성을 이기겠어. 응?”
“이참에 직원들 소집해서, 정신 무장을 다시 한번 시키겠습니다.”
“정신 무장을 어떻게 할 건데?”
“그게 그러니까,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경쟁사를 이기겠다는 구호와 함께…….”
진 회장은 한심하다는 듯 우물거리는 진상구를 쳐다본다.
“또 오성산에 가서 사과 베어 먹고 오려고?”
“회, 회장님, 그건 퍼포먼스적인 요소로…….”
“뭔 말 같잖은 소리야!”
진양현 회장의 목소리 크기에 비례해서 임원들의 표정이 굳어간다.
“오성이나 애플을 넘어서려면 머리를 짜내서 제품으로 대결할 생각을 해야지. 그딴 헛짓거리만 하고 다니니까 내가 얼굴을 들고…… 아, 아이고 혈압이야.”
진양현 회장이 뒷목을 부여잡자, 근처에 앉아 있던 임원들이 황급히 부축에 나선다.
“회장님!”
“나 안 죽으니까 호들갑 떨 거 없어.”
진양현 회장은 자세를 바로잡고서, 다시 임원들을 쭉 들러본다.
“다들 잘 들어. 지금처럼 현재에 안주하고 비리비리하게 일하다간 일본의 전자기업들처럼 뒤로 나자빠지는 거야. 그리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합창과 같은 대답 소리가 회의실을 울린다.
진양현 회장의 얼굴이 아까보단 조금 펴졌지만, 여전히 좋다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말석에 자리 잡은 진승모를 향했다.
“승모.”
“예, 회장님.”
“요즘 닉스와 관계는 좀 어떠냐? 네가 거기 대표와 친분이 두텁다고 들었는데.”
“좋은 선후배 사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앞으로도 그 관계를 잘 유지하거라. 혼자선 똥오줌도 못 가리는 재벌가 놈들보단, 훨씬 도움이 될 테니까.”
“예.”
진양현 회장은 아까보다 확연히 밝아진 표정으로 껄껄거린다. 그때 눈치를 살피던 진승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회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보아라.”
“이번에 출시될 신형 스마트폰인 옵티무스G 말입니다.”
“그게 왜?”
“옵티무스G 생산 일정을 맞추고자 닉스폰 생산량을 줄인다고 들었습니다. 그 결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닉스폰 생산을 줄이다니?”
진 회장의 시선이 모바일 사업을 총괄하는 진상구 부사장에게로 향한다.
그는 자신에게로 화살이 날아올 걸 예상 못 했는지, 한참 동안 입만 벙긋거리다 말을 꺼낸다.
“경쟁사 제품이 나오기 전에 옵티무스G를 출시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경쟁사에서 뭐가 나오는데?”
“9월에 애플폰5S가 예정돼 있습니다.”
진 회장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연신 뒷목을 주물러댔다. 분위기가 안 좋게 흐르자 진상구는 급히 말을 이어 붙인다.
“회장님, 저희가 하청업체도 아니고 언제까지 닉스폰만 생산할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이젠 저희도 스마트폰의 중심을 잡을 때가 왔습니다.”
“그래 네 말대로 KG전자의 스마트폰을 만드는 건 중요한 일이다. 하나.”
진상구는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마른침을 꼴딱 삼킨다.
“닉스폰의 생산량을 줄이고 신제품 물량을 쏟아 낸다 한들 출시일을 얼마나 당길 수 있단 말이냐?”
“솔직히 지금도 빠듯합니다. 적어도 8월까진 물량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마음 같아선 닉스폰을 더 감산하고 싶을 정돕니다.”
“시끄럽다! 이 못난 놈, 경쟁사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 생각을 해야지 꼼수부터 생각하는 게냐? 그렇게 만든 제품을 받고 소비자들이 만족하겠냔 말이다!”
호통 소리에 진상구 부사장은 입술을 질끈 깨문다.
‘진승모, 이 망할 놈. 왜 쓸데없는 이야길 꺼내선.’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벙어리라도 된 듯 입을 꾹 다문다. 덕분에 불편한 침묵은 한참이나 더 이어졌다.
다들 진양현 회장의 눈치만 보고 있는 가운데, 천천히 그의 입이 열린다.
“상구야.”
“예.”
“내가 널 왜 혼냈는지 알겠느냐?”
“회장님의 기대에 만족하는 제품을 만들지 못해서입니다.”
진 회장은 깊게 한숨을 내뱉고선 말을 이어 한다.
“그게 아니다. 네가 하청업체니 뭐니 했지만, 닉스는 우리의 중요한 고객이다. 휴대폰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전장 부문에서도 우리와 긴밀하게 엮여 있어. 그런 곳과 사이가 틀어지면 어찌할 생각이더냐?”
“완전히 생산을 끊은 건 아니잖습니까? 30만 대 수준은 꾸준히 생산하고 있으니 닉스도 어쩌진 못할 겁니다.”
“그러다 다른 곳으로 물량을 돌리면?”
“닉스폰을 만들 수 있는 건 저희 KG전자밖에 없습니다. 부품도 부품이지만 외판에 접목된 특수 소재의 특허는 저희만 가지고 있으니까요.”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지, 진 회장의 표정이 떨떠름하다. 진상구는 안 되겠다 싶어 얼른 설명을 이어 붙인다.
“저번 옵티무스4X 때도 닉스폰 생산량을 줄인 바 있습니다. 이번 신제품도 그와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될 겁니다.”
“비슷한 양상이라면 이번 신제품도 폭삭 망하고, 다시 닉스폰을 찍게 된다는 소리구나.”
“아닙니다. 이번은 옵티무스G는 정말 다릅니다. 확실히 성공할 자신 있습니다.”
“저번 옵티무스4X 때도 그렇게 말했던 거 같은데, 내가 벌써 치매가 온 건가?”
싸늘했던 회의실 분위기가 더 얼어붙는다. 온도계가 있었다면 5칸 정도는 내려갔으리라.
“회장님…….”
“말해.”
“이번은 진짜 자신 있습니다. 제가 기필코 성공해서 KG전자 스마트폰의 자존심을 세우겠습니다.”
“휴우- 그래, 믿어 봐야지. 어쩌겠나. 성공했을 때를 가정하고 계획을 진행 시켜봐. 닉스 측에도 잘 말해두고.”
“감사합니다, 회장님.”
바로 그때.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회의실 문이 열린다.
들어온 사람은 진상구 부사장의 직속 비서였다.
제 딴엔 조심스럽게 들어온다고 했겠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몰린다.
그녀는 의미 없는 까치발을 들고 원탁으로 다가가, 박상구 부사장 옆까지 도달했다.
“김 비서, 지금 중요한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 나중에 다시 오게.”
“저기 부사장님, 그게…….”
“뭐 하는 거야? 빨리 나가봐.”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그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짓다가, 결국 체념했는지 떠듬떠듬 말을 꺼낸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누가 왔기에 이러는 거야? 대통령이라도 왔어?”
그녀는 주변의 눈치를 한번 보고 말을 이었다.
“닉스의 강현우 대표가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