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54화 (154/206)

기적의 IT 재벌 154화

로열비치 호텔은 시카고 외곽에 지어진 신축호텔이다.

평소엔 손님이 없어, 썰렁하던 호텔이 오늘은 아침부터 붐비고 있었다. 이유는 파티룸에서 준비 중인 기자회견 때문이었다.

이번 기자회견은 닉스가 모토로라를 인수하고 가지는 첫 발표인 데다, 회견의 주제가 모토로라의 미래였으니. 미 전역에서 이번 회견을 주목하고 나섰다.

회견을 1시간 앞두고 장내의 의자가 모두 철거된다.

본디 200석을 준비했으나 벌써 그 두 배가 넘는 기자가 몰린 탓에 자리 확보를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로열비치 호텔의 라운지에는 시장통 같은 회견장에서 잠시 몸을 피한 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 대니얼 강이 직접 나올까요?”

“꼭 와야죠. 까놓고 말해서, 대니얼이 안 온다고 했으면 누가 시카고 구석에 있는 호텔까지 오겠어요?”

“그가 직접 온다 한들, 별달리 뉴스거리가 있겠습니까? 기껏해야 모토로라 구조조정 발표나 하고 돌아가겠죠. 지금의 모토로라를 유지해 봐야 답이 없을 테니까요.”

모토로라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주력 사업인 피처폰 시장은 해를 넘길 때마다 쪼그라들었으며, 뒤늦게 따라간 스마트폰 사업은 연이어 실패를 거듭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품 판매량까지 줄어들자 모토로라가 자랑하던 판매망과 해외 지사는 돈만 축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7분기 연속 적자도 모자라서 유일한 흑자 부문이 피처폰인 상태니, 제가 닉스 CEO라고 해도 구조조정을 택할 겁니다.”

“오늘 회견 포인트는 구조조정의 규모가 되겠군요.”

“워싱턴에서 나온 소스로는…… 모토로라가 적자를 면하려면 직원의 절반 이상을 내보내야 한다더군요.”

절반이라는 말에 몰려 있던 기자들이 깜짝 놀란다.

“허, 그렇게 많이 감축한단 말입니까?”

“최소치가 절반입니다. 실제론 그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그 때문에 모토로라 본사는 초상집 분위기랍니다.”

“심각하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구조조정 뉴스가 퍼지면 정계도 들썩거릴 겁니다. 특히 실업률이 대두되는 지금, 공화당은 이번 일의 책임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물으려 들겠지요.”

“하필이면 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런 일이 생기다니. 오바마 대통령도 골치께나 썩겠습니다.”

“쯧쯧, 한때 미국을 대표하던 휴대폰 제조사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요.”

* * *

뭉개져서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들이 대기실 벽을 뚫고 넘어온다. 아마도 기자회견 장소에 모인 기자들이 내는 소리일 거다.

인파가 내뿜는 웅성거림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집중하자, 실수하면 안 돼.”

이럴수록 흔들리지 않고 발표 내용을 되짚어 보는 게 중요하다. 준비가 완벽할수록 긴장감 대신 그 자리에 자신감이 자리 잡을 테니까.

시간에 딱 맞춰서 회견장에 들어섰다.

입장과 동시에 플래시 세례가 쏘아져 온다.

이젠 이것도 익숙해졌는지 실눈을 뜨고서 준비된 자리를 찾아간다.

내가 자리에 앉자, 웅성거리던 소리가 뚝 멎는다. 이어서 적당한 긴장감과 기분 좋은 침묵이 내 몸을 찌르르 울린다.

난 준비했던 미소와 함께 마이크를 잡았다.

-반갑습니다. 닉스의 CEO인 대니얼 강입니다. 제가 이 자리를 준비한 이유는 올해 초, 닉스가 인수한 모토로라에 대해 알려드릴 부분이 있어서입니다.

말을 끊고 장내를 둘러본다.

수백 개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다.

일견 평범한 기자회견장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펜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전쟁터였다.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의 친 민주당 언론들은 내 입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발언만 받아쓸 것이고, 그의 상대측인 친 공화당 언론들은 모토로라의 부정적인 발언만 집어서 기사화할 것이다.

만약 이 자리에서 중도를 지킨답시고 이도 저도 아닌 발언을 했다간, 다음 날 헤드라인은 양측의 모두가 날 공격할 게 뻔했다.

물론, 최악이 그렇다는 거고. 실제로 일이 그렇게 굴러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왜냐? 난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정해진 답을 따라갈 뿐이다.

-먼저, 닉스가 모토로라를 인수한 이유로 이야길 시작해야겠군요. 모토로라는 미국의 대표적인 휴대폰 제조사입니다. 제가 학창 시절 사랑하던 스타텍을 만든 회사이기도 하죠. 그런 명성의 모토로라를 닉스가 인수한 것에 대해, 저는 기쁨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인수는…….

입에 발린 인사말은 그 후 오 분 넘게 이어졌다. 기자들은 내 입에서 본론이 나오기만을 목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었다.

-일각에선 닉스가 모토로라의 특허를 노리고 인수했다는 루머를 쏟아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슬슬 중요한 키워드가 등장한다. 그러자 기자들의 눈빛이 진지하게 바뀐다.

자리가 부족해서 테이블을 몽땅 치운 탓에 노트북을 쓸 순 없었지만, 기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기사를 전송하기 위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기사를 입력하고 있었다.

-인수 목적은 모토로라를 다시 미국 최고의 휴대폰 회사로 만드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저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역사적인 회사가 사라진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요. 그렇기에 저는 모토로라를 회생시킬 특단의 조치를 준비했습니다.

특단의 조치.

구조조정 문제가 나올 거라는 생각에 기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현재 닉스의 부사장이자 CLO(Chief Legal Officer·최고법률책임자)인 박준오 부사장을 모토로라의 사장 겸 CLO 자리에 임명하겠습니다. 또한, 리버티빌에 있는 모토로라 본사를 샌프란시스코로 이전하여 닉스와 긴밀한 연계가 가능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이상입니다.

마이크가 뚝 꺼진다.

동시에 기자들의 머리 위엔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들이 원했던 발언은 모토로라 구조조정에 대한 일정과 규모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사장 임명과 본사 이전만 발표하고 마이크를 꺼버렸으니 저런 표정이 나올 수밖에.

그 와중에 가장 앞줄에 앉은 기자가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대표님, 기자회견은 이것으로 끝입니까?”

“예, 더는 발표할 내용이 없습니다.”

“저, 그럼 질문 좀 드리겠습니다!”

진행요원들에게 마이크를 가져다주라는 제스처를 취하곤, 나도 단상 앞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마주한 기자의 눈빛에서 긴장감이 느껴진다.

과연 무슨 질문을 하려고 이러는 걸까?

“월스트리트저널의 제이 윌슨입니다. 이번 회견에서 모두가 궁금해하는 내용인…… 모토로라의 구조조정 규모에 대해서 발표하지 않으셨더군요. 일각에선 다가올 대통령 선거 때문에 구조조정을 미룬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답변 부탁드립니다.”

처음부터 묵직한 강속구가 날아온다.

물론, 내가 기다렸던 공이었기에 배트를 휘두르는 데 망설임은 없었다.

“모토로라의 구조조정은 없습니다.”

짧은 답변이었지만 임팩트는 충분했다.

기자석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눈치 빠른 기자 한 명이 잽싸게 마이크를 낚아챈다.

“USA 투데이의 팀 모튼입니다. 혹시, 정치적인 문제로 구조조정 일자를 비밀로 하시는 건 아닌지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모토로라의 구조조정은 계획조차 없습니다.”

“그렇다면 본사를 매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앞서 말씀드렸듯, 본사 이전은 닉스와 모토로라의 긴밀한 협력을 위해섭니다. 여기서 정보를 살짝 공개하자면, 앞으로 모토로라의 모든 기기에는 닉스OS가 탑재됩니다. 피처폰에서도 닉스챗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거죠.”

놀라운 소식에 기자들 손이 빨라진다.

휴대폰으로 기사를 전송하는 거로 모자라, 몇몇은 동료 기자 등판에 대고 노트북을 두드려댄다.

“자, 다음 질문?”

거의 모든 기자가 손을 든다.

난 그들 중 가장 순한 인상의 여기자를 지목했다.

“거기 여성분.”

“워싱턴 타임즈의 케이트 로엔입니다. 질문드려도 되겠습니다.”

하필이면 뽑은 게 지뢰였어?

워싱턴 타임즈는 오바마 대통령과 대척점에 있는 공화당 계열의 언론이다. 그녀는 분명 모토로라의 부정적인 부분을 후벼 팔 만한 질문을 준비했을 거다.

칫, 내 손으로 지목했으니 물릴 수도 없고.

난 그녀에게 질문하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모토로라는 해외 공장과 지사에서 엄청난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대표님?”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모토로라의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신다면 해외 부문까지 다 끌어안고 가신다는 말씀이신지요?”

예상했던 대로 아픈 곳을 콕 찔러온다.

여기서 적자 부문을 끌고 간다고 답하면 무능한 경영자로 낙인찍히는 거고, 해외 지사를 정리한다고 하면 그걸 포인트 삼아서 헤드라인을 써댈 것이다.

진퇴양난이나 다름없었지만, 나 역시 코너에 몰리면 꺼내 들 조커쯤은 준비해 왔다.

“해외 부문에서 적자가 심한 곳은 조정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부분적으로 구조조정을 인정한다는…….”

난 그녀가 이야길 이어가지 못하도록 중간에 말을 잘라먹는다.

“그와 동시에 모토로라의 휴대폰을 국내에서 생산할 계획입니다.”

“예?”

내 폭탄 발언으로 회견장은 패닉에 빠졌다. 그건 질문을 던졌던 워싱턴 타임즈 여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있던 공장도 해외로 빼는 마당에 미국에서 휴대폰을 생산하겠다고 했으니 깜짝 놀랄 만도 하지.

난 얼른 자리로 돌아가서 테이블 마이크를 켰다.

-예정엔 없었지만, 이야기가 나왔으니 짤막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모토로라는 텍사스의 48만 제곱피트 규모의 공장을 가동할 것이며, 그에 따라 3천 명의 인력을 추가로 채용할 예정입니다. 닉스와 모토로라는 이번 일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made in USA 제품을 늘리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 * *

[닉스 CEO 대니얼 강 “모토로라 구조조정은 없다.” 예상외의 행보에 업계는 당혹.]

[깜짝 발표! 텍사스에 모토로라 생산 기지를 만들겠다? 닉스에선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나와.]

[오바마 대통령 “닉스의 위대한 결정에 찬사를.”]

[“닉스의 이번 결정은 장기적인 관점이 아니라 전략적 홍보를 위한 무리수.” “미국 공장 가동은 의미 없는 행동.” “닉스 CEO의 무리한 쇼맨십 자제해야.” 전문가들 혹평 일색.]

“현우야, 오늘 신문 봤어? 신문사 헤드라인이 전부 닉스와 모토로라야.”

매형은 책상 위의 오늘 자 조간신문들을 늘어놓았다.

예상했던 대로 대부분의 신문사는 나와 모토로라에 관한 이야기를 뽑아냈다.

기사 대부분은 닉스의 결정을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텍사스에서 모토로라 제품을 생산한다는 내용은 아예 지면 한쪽을 할애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반대로 공화당 계열의 언론은 부정적인 기사를 최대한 쏟아냈다.

물론 그렇다고 직접 깎아내리진 못했다. 그랬다간 국민들에게 돌 맞을 각오를 해야 했으니 당연하다고 할까?

“신문 기사쯤은 놀랄 일도 아닙니다.”

“그럼?”

“오늘 아침엔 대통령이 직접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예. 그것도 개인 번호로요.”

매형은 흥분되는지 자리서 벌떡 일어서서 주먹을 움켜쥔다.

“뭐라고 하디? 세금 쪽 손봐준대? 아니면 전기차 보조금 추가? 다른 규제는?”

“하나씩 물어보세요. 한 번에 어찌 다 답합니까?”

“아, 그래. 그렇지. 먼저 뭐부터 해야 하려나…… 아, 그래. 전기차부터 말해봐. 어떻게 됐어? 보조금 문제를 요청대로 해주겠대?”

현재 미국은 전기차 구매 시 연방정부에서 보조금을 지원해 준다. 다만, 이 지급 대상이 미국서 생산되는 전기차로 한정됐기에 테슬라에는 지급되고 볼보에는 지급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좀 애매한데요. 보조금 지급 대상을 미국 생산에서, 미국 기업이 생산하는 것으로 바꿔 주겠다네요.”

“칫, 볼보는 스웨덴 기업으로 돼 있으니, 의미 없는 거잖아?”

“대신 닉스 마크를 달면 주겠다는 거죠.”

“해주려면 확실히 해주던가.”

보수적인 자동차 시장에선 혁신의 닉스보다 안전의 볼보가 더 잘 팔린다. 그 때문에 닉스 마크를 달고 전기차를 출고하는 건 모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세금은 어찌해준대? 미국에 공장을 돌릴 정도로 공을 들였는데, 그쪽도 뭔가를 내줬을 거 아냐.”

“그게 말이죠…….”

내가 애매하게 말을 흐리자, 매형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설마, 완전 빈손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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