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53화
중국 텐진은 제조업의 메카라 불리는 곳이다.
텐진은 수도인 베이징과 가까운 것과 더불어, 국가에서 제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했기에 해외 기업들의 공장이 매일같이 이전해 오고 있었다.
팬틱과 텐센트가 공동으로 설립한 휴대폰 제조공장 역시 텐진에 둥지를 텄다.
양사는 부지 매입 과정에서 약간의 잡음이 있었으나, 그 후로는 일사천리로 공장을 완성 시켰다. 그 덕분에 공장이 가동된 지도 벌써 두 달째가 지나고 있었는데.
쿵! 하는 금형 찍는 소리가 귀를 때려댄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공장 내부.
규모 자체는 한국의 전기차 공장과 비슷했다. 다만, 이곳엔 무빙워크 따위가 없었기에 오직 걸어서 공장 내부를 둘러봐야 했다.
신축 공장인 탓에 실내는 깨끗했다.
방진복을 입은 공인들이 줄지어 앉아, 묵묵히 일하는 모습은 그들이 사람이 아닌 부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텐진 공장을 절반쯤 구경했을 때쯤.
뒤따라오던 신용화가 옆으로 다가온다.
“어때? 공장 스케일이 장난 아니지?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스마트폰이 매년 4천만 대야.”
어휴, 신용화 녀석. 아까부터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을 텐데, 어떻게 참았으려나.
난 성의 없이 말을 툭 내뱉는다.
“와, 정말 대단합니다.”
“뭐야. 그 영혼 없는 대답은.”
“이런 대답을 바라시는 거 같기에, 그대로 해드렸을 뿐입니다.”
입을 삐죽거리는 거 보니, 내 반응이 못마땅했나 보다. 난 피식 웃으며 그를 돌아본다.
“공장이 잘 굴러가는 거 보니, 마화텅 대표와는 이야기가 잘됐나 보죠?”
마화텅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신용화는 조건반사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어휴. 미리 투자해 둔 게 많아서 끌고 온 거지. 성질대로 했으면 백 번도 넘게 때려치웠을 거다.”
“당장은 손해일지도 모르지만, 장기적으론 팬틱의 이득입니다. 중국에서 QQ 플랫폼의 위력은 절대적이잖습니까.”
“나도 알긴 아는데.”
갑자기 신용화가 날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 눈빛은 뭡니까?”
“텐센트 최대 주주께서 그러니까 아니꼬워서 그런다. 알고 보면 네가 마화텅한테 바람 넣고 있는 거 아니냐? 나 벗겨 먹으라고 말이다.”
“에이, 설마요. 제가 그런 짓까지 할 놈으로 보입니까?”
“응, 너라면 그러고도 남아.”
분하지만 내가 관여한 부분이 없다곤 할 수 없었기에 반론을 포기하고 화제를 돌렸다.
“판매 동향은 좀 어때요?”
“뭐? 레이서N?”
신용화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그냥 그래. 나쁘지 않은 정도?”
말은 나쁘지 않다고 했지만, 그의 입꼬리는 슬금슬금 올라가 귀에 걸려 있었다.
아무튼,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에이, 제가 전해 듣기론 공장에서 찍어낸 초도 물량이 판매 개시 1분 만에 매진됐다던데요?”
“매진은 매진인데, 물량이 부족해서 몇 대 팔지도 못했다.”
“그 부족한 물량이 몇 댄데요?”
“800만 대쯤 되려나.”
뭐? 1분 만에 매진된 게 800만 대였어?
아무리 메신저와 게임계를 꽉 잡은 텐센트가 밀어줬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수치였다. 이것이 대륙의 스케일이란 말인가.
“엄청나지? 나도 처음엔 1분 만에 매진이라는 소릴 듣고 깜짝 놀랐다니까. 뭔가 잘못된 줄 알았다.”
“그래서 제가 말했잖습니까. 중국 물량 소화하려면 월간 1,000만 대는 찍어야 한다고요.”
“잘 팔릴 줄은 알았다만 이 정도일 줄 몰랐지.”
팬틱의 보급형 스마트폰인 레이서N은 설계부터 중국 시장을 겨냥하고 만들어졌다.
가격대를 기존 갤럭시스나 애플폰보다 저렴한 499달러로 책정함과 동시에, 기본 앱도 중국 현지에 쓰이는 웨이-씬과 텐센트 스토어를 탑재했다.
외산폰치고는 저렴하면서 편하고, 자국 폰보다는 빠른 폰. 그런 틈새를 노린 게 주요한 셈이다.
“레이서N의 반응이 좋으니 다행이긴 한데…… 혹시 중국에서만 장사하실 건 아니죠?”
“갑자기 그건 왜?”
“걱정돼서 그럽니다. 지금은 중국에서 잘나가지만, 이 동네가 카피 하나는 기막히게 따라붙잖습니까. 곧이어 비슷한 짝퉁이 쏟아질 텐데, 그때를 대비하려면 팬틱도 밖으로 나와야지요.”
그도 동의한다는 듯 고갤 끄덕인다.
“나도 생각은 하고 있다만, 지금은 중국 내에서 소화될 물량도 달리잖냐. 나중에 판매량 떨어지면 그때나 시도할까 싶다.”
“당장 추가 물량을 뽑아낼 곳이 있다면요?”
“뭐?”
신용화는 고개만 돌려서 날 쳐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너, 혹시. 모토로라 해외 공장을 나한테 넘기려고?”
음? 신용화가 이걸 어떻게 알았지?
내 표정을 관찰하던 신용화가 피식 웃는다.
“텐진 공장 설립 과정에서 텐센트가 내 속을 어찌나 썩이던지. 차라리 다른 공장을 인수하는 게 어떨까 싶었거든? 그때 닉스가 모토로라를 가지고 있다는 게 떠오르더라.”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제가 넘기려는 건 모토로라의 생산 공장과 판매망입니다. 지금은 적자투성이지만 팬틱과 결합한다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겁니다.”
“나쁘지 않네. 해외에 팬틱폰을 팔아먹으려면 판매망도 있긴 있어야 하니까.”
“그죠?”
“물론 가격이 합당하다는 가정하에서지만.”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리더라니.
눈치로 보아하니, 완전히 후려칠 기세다.
헐값에 신용화에게 넘길 바엔, 닉스가 흡수해서 독자적으로 모토로라를 운영할까? 아니지, 그렇게 되면 모토로라가 닉스와 한 곳으로 묶이게 된다.
그 말인즉, 닉스폰 브랜드가 손상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생각해 보라, 애플에서 샤오미 폰을 제조해서 팔아먹으면 이미지가 어떻게 될지 말이다.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주머니 속에 휴대폰이 찌르륵 울려댄다.
“예, 대니얼입니다.”
-보스, 지금 어디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브릭의 목소리가 넘어온다.
“모토로라 매각 건 때문에 중국 왔습니다.”
-으아, 중국!
“왜요? 급한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아, 그게…… 중요한 손님이 오셨네요. 빨리 본사로 돌아오셔야 할 거 같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손님이기에 중국에서 미국까지 날아가서 맞이해야 합니까?”
-손님이 백악관에서 나왔답니다.
* * *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기 위해 전용기에 올라탄다.
기내에 마련된 편안한 시트에 몸을 뉘자, 수많은 걱정이 내 머릿속을 휘젓는다.
백악관에서 왜 나를 보자는 거지? 이번 애플과 트러블이 있던 것과 관련 있을까?
현직 미 대통령인 오바마는 친애플 성향으로 유명하다.
오성과 애플의 소송에서 애플이 패하고 판매 금지 조치가 내려지자, 그에 대한에 거부권을 행사했던 일도 있었으니까.
만약 이번 만남이 애플과 관련된 문제라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듯하다.
닉스 본사에 마련된 응접실.
실내로 들어서자, 거구의 사내가 호들갑스럽게 날 맞이한다.
“오우, 실리콘밸리의 메시아를 직접 뵙는군요.”
첫인상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상대는 정치인, 그들에겐 표정 관리가 숨 쉬는 것보다 쉬운 일일 거다.
나 역시 싱긋 웃으며 그에게 다가간다.
“안녕하십니까, 닉스의 CEO 대니얼 강입니다.”
“저는 백악관 수석 보좌관인 제이미 루더라고 합니다.”
우린 인사말을 두어 번 정도 더 돌린 후, 자리에 앉았다. 거구의 루더가 자리에 앉자 의자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는 개인적으로 닉스라는 기업에 흥미가 있습니다. 애플에 디자인 계약을 따낸 것부터 시작해서, 닉스챗의 성공, 전기차, 전자상거래, 최근에는 스마트폰 제조까지. 닉스의 행보는 놀라울 정도더군요.”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치부하기엔 대니얼이 이룬 게 너무나도 많습니다. 진즉에 닉스 같은 기업을 알았다면 포드 따위에 투자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어휴…….”
난 대답하는 대신 옅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제쳐 두도록 하고, 이젠 제가 닉스에 찾아온 진짜 이유로 넘어가야 할 것 같군요.”
난 이야기를 경청하기 위해 허리를 곧게 편다. 그 역시 자세를 바로잡는데, 의자에서 삐걱거리는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제가 백악관을 대신해서 닉스에 찾아온 이유는, 부탁을 하나 드리고자 함입니다. 아시다시피 얼마 후면 선거가 다가오지 않습니까?”
선거라는 말이 나오자, 머릿속에서 엉망으로 널브러져 있던 퍼즐들이 단번에 완성된다.
“혹시 모토로라 때문에 오신 겁니까?”
“맞습니다. 정확히는 모토로라에서 진행될 구조조정 때문이죠. 그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께선 걱정이 많으십니다.”
재선을 앞둔 대통령에게 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손톱 밑에 박힌 가시와도 같았다.
특히 그 기업이 미국의 대표적인 휴대폰 제조사인 모토로라라면 가시가 아니라 비수로 여겨질 것이고.
“루더 보좌관님, 혹시 해서 묻습니다만. 구조조정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시겠죠?”
“에이, 설마요. 정부에서 그런 간섭까지 하겠습니까. 다만, 일정을 조금 뒤로 미뤄줄 순 없냐는 거죠. 선거가 끝난 그 이후로.”
이미 구조조정은 계획에 없었다. 모토로라를 제조판매 부문과 연구개발 부문을 나뉘어 분사할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백악관에선 내 계획을 모르지.
이거, 잘만 이용하면 제법 이득을 볼 수 있을지도?
내 두뇌는 순식간에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이어간다.
“루더 보좌관님도 아시다시피. 모토로라의 상태는 심각합니다. 7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으며, 영업이익 대부분은 사양산업인 피처폰에 집중돼 있죠.”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난 그가 반론을 펼칠 기회를 막아섰다.
“딱, 까놓고 이야기해 봅시다. 루더 보좌관님은 방금 주식 투자를 한다고 하셨는데. 개인 자금을 지금의 모토로라에 투자하라면 하시겠습니까?”
“…….”
“모토로라는 심각한 병에 걸렸습니다. 즉시 수술에 들어간다고 해도 회복될 거란 보장조차 없을 정도의 중병에 말이죠. 그런 중환자의 수술을 정치적인 이유로 미루라니, 이건 좀…….”
내가 말꼬리를 흐리자, 루더는 소매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댄다.
“혹시 구조조정 규모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있을까요?”
“구조조정 전문가들의 의견으론 절반을 덜어내야 한다더군요.”
“저, 절반이면 만 명이나 내보낸단 말입니까?”
“안타까운 일이지요.”
루더의 표정이 확 썩어들어간다.
이번 선거의 테마는 경제다.
금융위기 이후, 전 국민의 시선이 경제지표와 실업률로 쏠린 이때. 상징성 강한 모토로라의 인원을 절반이나 감축한다니. 선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루더로선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을 거다.
난 속내를 숨기고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모토로라의 임직원이 2만 명이라곤 하지만, 국내 근무자는 4천 명 남짓입니다. 그 절반을 내보낸다 해도 고작 2천 명 아닙니까? 그것만으론 고용 지표상의 영향은 미미할 텐데요.”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만약, 이번 구조조정이 외부로 알려지면 공화당에선 매번 확성기를 틀어두고 이용할 게 뻔하잖습니까. 오바마 정부가 모토로라를 망쳤다고 말입니다.”
“흠, 정치란 복잡하군요.”
내가 턱을 쓱쓱 쓰다듬으며 고갤 끄덕이고 있자, 루더가 재빨리 말을 잇는다.
“염치없는 소린 건 알지만, 어떻게 좀 안 되겠습니까?”
난 괜히 주변을 살피곤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는 쪽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루더의 표정이 살짝 펴진다. 물론 첫인상에 비하면 아직은 우중충한 편이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힘을 좀 쓰면 구조조정 없이도 이번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대신, 닉스가 그만큼의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지라 섣불리 결정하기에는…….”
상대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루더는 잽싸게 내 의중을 물어온다.
“재선에 도움만 주신다면 백악관에서 닉스를 도울 방법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세금 혜택을 드린다거나, 규제를 느슨하게 풀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자,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