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52화
[닉스챗을 밴 시킨 애플의 뒷이야기.]
이 영상은 실시간으로 2천만 명이 시청했으며, 이후 공유된 동영상은 이틀 만에 조회 수 1억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워 버렸다.
영상이 더 퍼지기 전에 애플은 대응에 나섰다.
먼저, 애플은 기자들을 불러모아 자사의 CFO인 제프 베이커가 닉스에 포섭됐으며, 영상의 내용은 완전 허구라는 발표를 내놓았다.
그와 동시에 기자들에겐 뒷돈을, 언론사에는 광고를 밀어 넣어 이번 일이 오프라인까지 퍼지는 걸 막으려 들었다.
그러나 그런 구시대적 방식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중소 언론들은 메이저 언론사의 침묵을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그들은 애플과 닉스가 관여된 기사라면 사실 여부는 둘째치고 자극적인 부분만 확대, 재생산해서 기사를 뿌려댔다.
[플랫폼 경쟁이 불러온 치열한 암투. 닉스챗이 애플 앱스토어에서 금지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
[특집기획! 애플과 닉스, 균열의 전조는 잡스의 사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익명의 애플 메신저 개발자 “모바일메신저 시장은 선점 효과를 뒤집는 게 불가능하다. 개발 초기부터 이에 대한 의문이 있긴 했었지만, 경영진이 이런 방법까지 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충격! 애플 CFO 제프 베이커. 그가 과거에 닉스챗을 카피하려던 정황들이 속속들이 드러나.]
[문제의 영상에서 등장한 키워드 ‘애플 이사회’ 그들은 누구인가?]
인터넷 언론들이 이번 사태를 다루자 문제의 영상은 더 빠른 속도로 퍼져갔다.
애플이 동영상 게시 금지 요청을 해도 소용없었다.
동영상 플랫폼 1위인 유튜브는 애플의 경쟁사인 구글의 관리하에 있었고, 이번 영상을 생중계하고 가장 적극적으로 푸시한 클립TV는 닉스와 밀접한 SG컴즈였기 때문이다.
상황이 나아지긴커녕 점점 악화 일로를 걷자, 애플은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백기를 들고 만다.
“이번 사건은 실적이 필요했던 CFO, 제프 베이커의 무리한 경영이 빚은 해프닝으로 판명됐다. 이에 애플은 제프 베이커를 즉시 해임했으며, 자사 기밀 유출 외 총 5건으로 그를 고소에 나섰…… 엥?”
태블릿을 쳐다보던 매형이 눈을 껌뻑거린다.
“갑자기 웬 기밀 유출? 게다가 자사 이미지 실추에 대한 손해배상이라니 이런 건 무리수잖아.”
“대형 로펌을 낀 애플이 그걸 몰라서 했겠습니까? 일단 걸고넘어지는 거죠.”
애플은 언론을 틀어막았음에도 여론이 나아질 기미가 없자, 모든 죄를 실행자였던 제프에게 몰아버리기로 했다.
애플이 방침을 정하자, 그간 침묵을 지키던 메이저 언론들도 그를 때려대기 시작했다. 일전에 있었던 닉스챗 카피 사건은 물론이고 그의 사생활까지 파헤쳐서 사회적으로 매장될 만한 보도를 쏟아냈다.
“효과는 확실하네. 언제부턴지 이사회는 쏙 들어가고 제프 베이커라는 이름만 언론에 노출되고 있을 정도니까.”
“분노를 받아낼 희생양을 효수하는 건 인류의 유구한 전통 아니겠습니까.”
어찌, 사건이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게 흘러가자 쓴웃음이 나온다.
“애플이 우리를 공격하진 않을까?”
“당분간은 조용히 숨을 고를 겁니다. 이번 사건이 다시 주목받으면 이사회 측에서도 좋을 게 없으니까요.”
그때, 우리 사이에서 불쑥 끼어든 여인.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계세요?”
그녀는 닉스의 재무담당인 엘런 페이지였다.
“오, 왔군요. 엘런.”
“페이지 양. 반가워요.”
우리의 환대에 엘런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보고 사항이 들어와서 좀 늦었어요.”
“괜찮습니다. 이번 상영회의 관람객은 저희 셋이 전부니까요. 우리가 들어가는 시간이 상영 시작 시각이죠.”
“와우! 정말 기대돼요.”
“그래요?”
“예. 닉스에 입사한 이후로 영화관엔 처음 와보거든요. 헤헤.”
그녀가 해맑게 웃고 있었지만 어째선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작년 4월 말. 엘런은 일본 증시에서 막대한 투자를 성공한 공로로, 천문학적인 스톡옵션과 더불어 닉스의 CFO 자리를 거머쥐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직책에 부담을 느낀 그녀는 저러다 쓰러지는 게 아닐까? 싶은 걱정이 들 정도로 일에만 매달렸다.
주말은 물론이고 휴가까지 회사에서 보낼 정도로 말이다.
강제로 열흘 정도 휴가라도 보내야 하려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엘런이 콧노래를 부르며 내게 다가온다.
“아 참, 대표님. 팝콘 사서 들어가도 되나요?”
“당연하죠.”
“저는 캐러멜을 좋아하는데, 두 분은 어떤 거로 드실래요?”
“저도 같은 거로 부탁합니다.”
매형은 대답 대신 고갤 끄덕인다.
그러자 잔뜩 들뜬 엘런은 자리서 퐁당퐁당 뛰며 스낵코너로 달려간다. 그 모습은 유원지에 놀러 온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런은 항상 에너지가 넘치네요.”
“글쎄. 나랑 있을 땐 전혀 그렇지 않던데. 매사 조용하고 일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의 아가씨지.”
“아직도 두 사람 데면데면 한 겁니까? 좀 친하게 지내세요. M&A와 재무면 협업할 부분도 많을 텐데요.”
“과연 그거 때문에 그럴까?”
매형은 묘한 웃음을 흘리곤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영화관에 온 거야?”
“잔뜩 공을 들였으니, 결과물은 확인해야 할 거 아닙니까.”
“공을 들였다고?”
고갤 갸웃하던 매형은 뭔가 떠오른 듯, 갑자기 손뼉을 마주친다.
“아하, 일전에 네가 투자했다던 그 영화 말이구나.”
“기억하고 계셨네요.”
“당연히 기억하지. 세트장으로 한국 전기차 공장 전체를 내줬잖냐. 그거 때문에 공사 딜레이 된다고 손만호 사장이 얼마나 찡찡대던지. 그런데 좀 의외다. 네가 영화에 관심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이미지 메이킹엔 영화만 한 게 없으니까요.”
“무슨 영화기에 이미지 메이킹이 된다는 거야?”
“일단 한 번 보세요. 그럼 알게 될 테니까요.”
영화의 줄거리는 방패를 든 캡틴과 로봇 슈트를 탄 천재가 힘을 합쳐 악에 맞서 싸운다는, 지극히 히어로물 다운 이야기였다.
영화가 중반에 접어들자, 팝콘을 죽이는 데 여념 없던 엘런은 물론이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매형마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반면, 나는 과거에 3번이나 이 영화를 돌려본지라,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이미 다 아는 소설을 읽으면 흥미가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소소하게 다른 점을 찾는 재미는 있었다.
작중 배우들이 닉스폰으로 통화를 한다든가, 전기차 충전소에 들러 배터리를 교체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와우, 영상효과가 장난 아니네?”
매형 입에서 드디어 감탄이 터져 나온다.
“투자하길 잘했죠?”
“그래. 중간중간 닉스 제품도 나오니까 광고 효과만으로도 본전은 뽑겠다. 아 참, 여기에 얼마나 투자했다고?”
“1억 5천 달러쯤? 제작비의 70%죠.”
매형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다.
흠. 이 영화가 15억 달러를 벌어들인다는 걸 알면 기절하시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 * *
이튿날.
나와 매형은 일리노이 북부에 있는 리버티빌로 향했다.
그곳엔 과거, 스타텍과 레이저 시리즈로 시대를 풍미했던 모토로라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역사대로 흘러갔다면 모토로라는 2011년 구글에 인수되고, 개발진과 특허만 흡수된 채 2014년 중국의 레노보에게 재차 매각되며 껍데기만 남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본디 모토로라를 인수했어야 할 구글은 닉스OS를 견제한답시고 모토로라 인수를 포기해 버렸다. 아무래도 모바일OS 개발사가 제조사를 같이 쥐고 있는 것은 모양새가 안 좋았기 때문이리라.
그 덕분에 어부지리로 닉스가 모토로라를 94억 달러라는 헐값에 인수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모토로라의 작년 매출은 22%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9% 감소했고. 순손실은 주당 0.57달러 수준이야.”
매형은 보고서를 읽다가 짜증이 났는지 서류철을 덮어버리고 말을 잇는다.
“문제는 영업이익 대부분이 피처폰에서 나왔다는 거지.”
“지표상으론 선방한 거 같은데, 역시나 문제가 있었네요.”
모토로라가 작년에 출시한 스마트폰, 아트릭스는 여러 의미로 역대급 기록을 세웠다.
역대급 배터리 빨리 닳는 폰.
역대급 발열이 심한 폰.
역대급 떨이로 파는 폰.
그 외에도 부분적으로 터치가 안 된다든가, 진동이나 벨소리가 먹통이 되는 등, 잔 고장이 끊이질 않았다. 그 덕분에 모토로라는 2011년 기준, 스마트폰 부문에서만 2억 3천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본사 분위기는 어때요?”
“말도 마라.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으면, 난 열두 번도 죽었을 거다.”
“그렇게 분위기가 안 좋아요?”
“작년에 구글이 손 뗀다니까 초상집 분위기였다가, 닉스가 끼어드니까 또 쌍수를 들고 환영했잖냐.”
내가 고갤 끄덕이자 매형이 이야길 이었다.
“그런데 막상 인수가 끝나니, 본사를 축소 이전하고 해외 공장까지 철수한다고 발표해 버렸으니. 휴, 까딱 잘못하면 총 맞을 분위기다.”
“모토로라 직원들이 닉스에 거는 기대가 너무 컸다는 거네요.”
“그런 셈이지.”
현시점의 모토로라는 연이은 스마트폰의 실패로 브랜드 이미지가 많이 훼손된 상태다.
그 때문에 닉스가 모토로라에 필요한 건 구글과 마찬가지로 특허권과 개발인력이 전부였다.
“구조조정은 언제 들어갑니까?”
“두어 달만 있으면 시작될 거다. 이쪽 방면의 전문가들을 모셨으니까. 그때가 되면 모토로라엔 피바람이 불겠지.”
머리를 벅벅 긁은 매형이 날 노려본다.
“나쁜 짓은 네가 다 계획하곤, 욕은 내가 다 먹는다니까.”
“장수하실 거예요.”
“인마, 욕먹어서 오래 사는 건 사절이야.”
난 픽 웃고선 매형이 덮어버린 서류철을 다시 펴든다.
그곳엔 모토로라의 재무제표는 물론이고, 세세한 인력 변동까지도 상세히 정리돼 있었다.
“모토로라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반발이 장난 아니겠죠?”
“당연한 걸 묻냐. 일자리를 잃는 거니 누군들 좋다고 하겠어? 그리고 이번엔 구조조정 규모도 클 테니, 자칫 잘못하면 집단 파업에 들어갈지도 몰라.”
냉정한 말이지만, 지금의 모토로라는 수술이 필요하다. 만약 이 상태로 유지에 그친다면, 모토로라는 향후 5년 안에 중국의 B급 업체보다 못한 취급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입술을 질끈 깨물고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정리할 생각이세요?”
“글쎄, 정확한 데이터는 없다만, 순차적으로 현재 인원의 절반은 내보내야 할걸? 경영진도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싹 갈아야 할 거고…… 아무튼, 쉽지는 않을 거다.”
서류상으로 모토로라 임직원 숫자는 2만 7백 명.
지금은 내 손에 들린 서류의 숫자에 불과했지만, 내 결정 한 번으로 이들이 실직하는 건 숫자가 아니라 현실이다.
이들은 아무 죄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경영진의 잘못이겠지.
구조조정을 거치지 않고 모토로라를 회생시킬 방법은 없을까? 아니면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도…… 앗!
뭔가 떠오르자 반사적으로 매형을 쳐다본다.
“또 무슨 꿍꿍이야?”
매형도 이젠 내 표정만으로 대번에 낌새를 알아챈다.
“제가 생각해 봤는데요. 구조조정 하는 게 불편하면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는 건 어떨까요?”
“구조조정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야. 적자 폭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타사에 재매각하든가 하지.”
“그러지 말고, 모두를 끌어안는 거죠. 해피해피하게.”
“해피해피는 무슨. 현실은 해외 공장과 전 세계에 퍼질러 놓은 지사에서 쓰는 돈이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야. 그것만 줄여도 매년 2억 달러는 세이브될걸?”
내가 말없이 실실 웃고만 있자, 매형은 불안한지 한쪽 눈썹을 찡그린다.
“너, 설마. 모토로라를 닉스와 합치려는 건 아니지? 차라리 계획대로 재매각하고, 그 돈으로 공장을 새로 짓는 게 나아.”
“아뇨, 그 반대로 저는 모토로라를 반으로 쪼갤 생각입니다.”
“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어 오는 매형.
“연구개발 파트와 본사의 휴대폰 사업부는 유지하고, 만성 적자인 해외 판매망과 공장은 제3의 업체로 분리해서 매각하는 거죠.”
“지금의 모토로라 공장과 해외 지사는 폭탄이야, 적자 폭탄. 누가 그걸 떠맡으려 들겠어?”
“제 생각엔 그게 폭탄이라도 사줄 사람이 한 명 있는 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