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50화
2011년은 스마트폰의 격동기였다.
애플, 오성, 노키아, 소니, KG, HTC.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전자회사들은 자사의 역량을 집중해 최신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그로 인해 세계 스마트폰 보급률은 20%를 돌파했으며, 북미와 서유럽, 한국, 일본 등지에선 40%가 넘는 보급률을 기록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짐에 따라 모바일메신저인 닉스챗의 위상도 나날이 높아졌다.
스마트폰 설치율 1위.
스마트폰 구매 요인 1위.
스마트폰 사용 시간 1위.
이것이 3년 차를 맞이한 닉스챗의 성적표였다.
닉스챗의 독보적인 성적에 힘입어 닉스페이, 닉스서클, 닉스제로 같은 보조 서비스까지 양대 마켓의 상위권을 독식하게 된다.
대중의 생활 속 깊숙이 들어온 닉스 서비스.
그랬기에 서비스가 잠시라도 중단되는 날엔 파급력이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닉스 망했냐? 왜 닉스챗이 안 되는 거야? 먹통 된 지도 벌써 이틀짼데, 진짜 미치겠다.
-엥? 나는 잘되는데. 네 폰이 썩은 거 아니냐?
-무슨 소리야! 내 거 완전 최신기종이거든? 3월에 산 애플폰5란 말이다.
-아직도 소식을 못 들은 불쌍맨이 있다니.
-무슨 소식?
-그제부터 애플에서 닉스챗을 밴 했어. 보안 문제라던가? 아무튼, 무슨 문제가 있어서 닉스챗을 강제로 막았대. 그거 해결하기 전까지는 애플 메신저 쓰라던데.
-안드로이드는 멀쩡한데 애플만 막을 이유가 있을까?
-안드로이드는 원래 관리가 개판이잖아.
-그건 인정. 잡쓰레기 같은 앱 천지지.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데? 닉스챗이면 스마트폰 필수 앱이잖아. 이런 걸 갑자기 막아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옜다, 여기 뉴스. “닉스챗에 치명적인 보안 취약점이 발견됐습니다. 이번 취약점은 일반 메시지는 물론이고 민감한 개인정보까지 유출될 우려가 있었기에, 이와 같은 긴급 결정을 내리게 됐습니다”라고 애플 CFO가 직접 발언했네.
-무슨 소린지 요약 좀 해줘. 나 이해가 안 돼.
-네가 보낸 메시지를 제삼자가 볼 수 있다는 소리야.
-메시지와 개인정보라고 했으니까 신용카드 정보도 포함 아닐까?
-신용카드? 미쳤네. 이건 진짜 심각한 일이잖아. 애플의 이번 결정이 이해가 돼.
-난 무서워서 닉스챗 못 쓸 거 같아.
-닉스가 개인정보 관리를 이리 허술하게 운영했을 줄이야. 나 조금 충격일지도?
-요즘 들어 느낀 거지만, 닉스라는 기업 자체가 맘에 안 들어. 닉스폰 사전예약 건도 그렇고, 이번 닉스챗 보안 문제까지.
-닉스도 회사가 커지니까 문제점이 드러나는 거지. 세상에 완벽한 회사가 어디 있겠어.
-와우. 닉스 주가 급락 중인데? 장중 27%나 빠졌다. 닉스 상장 이후 사상 최대급 낙폭이야. 담을 사람들 지금 담아라.
-담긴 뭘 담아. 애플이 이대로 닉스챗 묶으면 끝장이다.
-끝장은 아냐. 안드로이드OS 쓰던 애들은 계속 닉스챗 쓰지 않을까?
-그건 누구도 모르는 일이야. 구글에서도 닉스OS 때문에 주시하고 있을 테니까. 게다가 구글 자체 메신저 서비스도 내놨잖아. 이름이 구글챗이었던가? 아무튼, 안드로이드에서도 막히는 건 시간문제일 듯?
-앱 서비스가 아무리 잘나 봐야 플랫폼 앞에선 무력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건이네.
-아! 난 몰라. 짜증 난단 말이야! 취약점이고 뭐고 간에 빨리 닉스챗 되게 해달라고! 이거 때문에 친구들과 연락을 못 하잖아.
-급하면 애플 메신저 써. 내 친구들도 일단 다 갈아탔으니까.
-애플 메신저, 그거 완전 폐급 아니냐? 디자인도 무리하게 간소화해서 불편하고 딜레이도 닉스챗에 비하면 심각한 수준이더라. 처음에 한 번 써보고 바로 버렸는데.
-급하니까 어쩔 수 없지. 닉스챗이 언제 다시 열릴지도 모르는 거고, 그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순 없잖아? 그리고 애플 메신저도 계속 쓰다 보니 나쁘지 않아.
-이번 사태가 좀 이상한 게. 닉스는 암호화에서 최상급인 결제 서비스까지 운영 중이잖아. 그런데 이리 쉽게 뚫린다고? 만약 닉스 자체가 뚫렸으면 닉스페이는 왜 계속되는 거야? 막으려면 이걸 제일 먼저 막아야 하는 거 아냐?
-닉스챗과 애플 메신저. 왠지 냄새나는 거 같지 않냐?
* * *
닉스챗이 먹통 된 지 사흘째가 되던 날.
애플은 한시적인 허용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채 닉스챗 밴을 풀어줬다.
겨우 사흘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실생활에 필수로 쓰이는 모바일메신저에 사흘은 무게감 자체가 달랐다.
이번 사태로 인해 28%의 애플폰 사용자가 애플 메신저로 넘어갔으며, 애플폰 신규개통자들이 닉스챗을 다운받지 않는 빈도도 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애플의 여론몰이였다.
친애플 언론들은 이번 사태가 닉스의 큰 잘못이라도 있는 마냥 보도를 쏟아 냈으며, 거기에 인터넷 언론들까지 가세해서 대중들에게 닉스챗에 대한 공포를 주입하고 있었다.
오사카의 SG컴즈 일본지사.
신용화는 고갤 끄덕거리며 내 이야길 경청했다.
“……그래서 애플도 의미 없이 계속 막아두는 건 부담됐는지 밴은 풀어주더군요.”
“흐흐, 그 잘난 강현우가 한 방 먹은 거네?”
“한 방 먹은 게 아니라 뒤통수를 세게 맞았습니다. 제가 놈의 약점을 쥐고 있는 이상, 앱스토어 밴이라는 카드를 쓸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신용화는 한껏 멋을 부린 수염을 매만진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놈이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니까 터뜨렸겠지.”
“애플은 직원의 개인적인 범행으로 몰고 가는 수준에서 수습할 수 있겠지만, 당사자인 제프는 100% 매장입니다. 사진증거는 물론이고 음성 파일도 제게 있으니까 빼도 박도 못하는 거죠.”
“놈도 증거가 있다는 걸 알고?”
“바보가 아닌 이상 알고 있겠죠. 만나서 협박까지 해둔걸요.”
그는 다시 한번 수염을 쓸어내린다.
제 딴엔 멋있다고 길렀겠지만, 저걸 볼 때마다 간신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짐작이지만, 녀석은 네가 폭로를 못 하리라 생각한 거 같다.”
“왜죠?”
“아무래도 서로가 베팅한 칩의 무게가 다르니까.”
내가 눈빛으로 이어질 말을 재촉해대자, 신용화는 목을 축이고 말을 이어간다.
“잘 봐. 여기서 네가 폭로에 들어간다 해도, 단번에 짜잔! 하고 해결될 거 같아? 증거를 들이민다 해도 증거를 가짜라고 우기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건 시간문제야. 안 그래?”
“그건 그렇겠죠.”
“싸움이 길어지면 언론에서는 자극적인 기사를 뽑아 댈 거야. 닉스와 애플의 싸움은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일인데 이걸 그냥 지나치겠어? 내가 장담하는데, 기자 놈들은 없던 기사도 만들어서 써댈 거다.”
하나같이 맞는 말이라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난 묵묵히 이어질 말을 기다린다.
“강 서방, 내 말 잘 들어. 일단 진창에 발을 디딘 후에는 닉스가 이기더라도 얻는 건 없어. 얻는 게 있다면 제프인가 뭔가 하는 놈의 모가지가 고작인데. 그딴 건 전리품이라고 할 수도 없지. 그동안 네가 입은 피해가 훨씬 더 클 테니까.”
폭로전이 시작되면 애플은 닉스챗을 다시 밴 시킬 거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망하는 건 제프 베이커니까 애플로선 메신저 점유율을 빼 올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겠지.
녀석도 그걸 알기에 이런 도박수를 둔 걸까?
내가 머리를 싸매고 있자, 신용화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고민은 나중에 하고, 일단 할 수 있는 대응부터 하자.”
“후- 그게 최선인 거 같네요.”
“내가 도와줄 거 있어?”
“신용화 씨는 아시아 쪽만 잘 마크해 주세요.”
SG컴즈의 트와일라잇은 일본에서 세를 넓혀 러시아, 동남아권의 메인 포털로 자리 잡았다.
검색 포털인 구글과는 달리, 트와일라잇은 종합 포털이었기에, 메인에 노출되는 기사를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리라.
“북미 쪽은 어쩌려고? 거기가 메인 전쟁터가 아니냐.”
“닉스가 자체적으로 막아 봐야죠. 다른 방법이 없잖습니까.”
북미 쪽은 이미 언론 컨트롤에 능한 엘런을 내세워 방어하고 있다.
미국이 애플의 본진인 탓에 완벽하게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지만 일전보다 비방기사가 눈에 띄게 줄어든 정도의 효과는 있었다.
“휴. 이럴 줄 알았으면 언론사라도 하나 사둘 걸 그랬습니다.”
“언론? 놈들은 이빨 빠진 호랑이야. 내가 포털의 기사 노출권을 쥔 다음부터는 SG그룹에 불리한 기사가 싹 사라진 거, 너도 알잖아.”
그의 말대로 트와일라잇의 국내 점유율이 높아진 이후, 경쟁사인 NEVER는 물론이고 종이신문에서도 SG그룹에 안 좋은 기사가 사라져 버렸다.
까딱 잘못했다간 포털 메인의 기사란이 사라져 버리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을 거다.
“아, 그래!”
신용화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손가락을 딱하고 튕긴다.
“차라리 기자회견을 해보는 건 어때?”
“그게 큰 파급력이 있을까요? 언론사에서 잘 다뤄주리란 보장도 없는데요.”
“그냥 기자회견이 아니다.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기자회견이지.”
내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신용화는 실실거리며 말을 잇는다.
“우리에겐 세계적인 방송 플랫폼이 있잖냐.”
“혹시, 그거 생각하는 거 아니죠?”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다. 클립TV. 거기서 개인 방송을 하는 거야.”
* * *
클립TV는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다.
신생 동영상 플랫폼이 유튜브의 뒤를 바짝 쫓을 정도로 성장한 원동력은 쌍방향 1인 방송 서비스 때문이었다.
기존 방송의 개념이 방송국에서 시청자로, 일방적인 정보만 송출했다면, 클립TV는 PC와 모바일 환경을 활용하여 시청자와 쌍방향 소통을 가능케 했다.
“내가 이런 짓까지 하게 될 줄이야.”
모니터링용 모니터를 향해 손을 흔들어본다.
모든 장비가 최고급으로 준비된 탓인지 모공이 보일 정도로 쨍한 화면이 송출된다.
“휴,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
최종적으로 카메라 위치를 확인하고 마이크를 체크한다. 그리고 방송 시작 버튼을 툭, 누르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닉스 CEO 대니얼 강의 비하인드스토리.]
쌈마이한 방제였음에도 시청자 유입속도가 엄청나다.
클립TV는 물론이고 포털, SNS, 닉스챗 배너에도 이 방송이 메인으로 떠 있는 탓이리라.
-아저씨가 진짜 닉스 CEO예요?
-뭐지? 진짜야? 사칭 아님?
-대니얼, 너무 멋져요. 저 완전 팬이에요.
순식간에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든다.
채팅창엔 내가 진짜 닉스 CEO가 맞냐부터 시작해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에 대한 기대와 평소 닉스에 궁금했던 질문들이 쏟아진다.
“어…… 여러분 반가워요. 닉스의 CEO 대니얼 강입니다. 휴우- 첫 방송이라 그런가. 어째, 단상에서 발표할 때보다 훨씬 떨리네요. 이거 보세요. 제 손에 땀 흐르는 거. 어라? 그런데 이거 누르면 목소리 나가는 거 맞죠?”
긴장한 탓에 아무 말이나 지껄였지만, 다행히 채팅창 반응은 우호적이었다.
-푸하핫, 귀여워. 영락없는 신입 스트리머네.
-이런 거 되게 신선한데? 뉴스에서만 보던 CEO가 직접 인터넷 방송을 해주다니 말이야.
-썰 좀 풀어봐요. 닉스 설립했을 때나. 잡스 이야기 같은 거.
물론 모두가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욕설이나 악성 채팅도 간간이 올라왔는데, 그런 시청자는 채팅방에 상주한 관리자들이 칼같이 강퇴 시키고 있었다.
“일단 제가 방송을 켠 이유부터 말씀드릴게요. 이번 방송은 일시적인 방송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여러분과 소통하고 닉스 운영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예정이죠. 먼저 무슨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닉스폰 언제 와요? 그게 젤로 궁금해요.
-사전예약하고 벌써 한 달이 넘어감. 기다리다 늙어 죽을 듯.
-닉스에서 만들고 있긴 합니까? 주변에 들고 다니는 사람을 못 봤어요.
-나는 기다리다 못해 중고로 샀어. 150달러나 웃돈을 주고 말이야. 기기 자체는 만족스럽지만 닉스의 운영은 실망이라고.
“어, 음…… 일단 닉스폰 이야기를 먼저 해보죠. 여기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자면, 사실 닉스는 스마트폰을 만들 예정이 없었습니다. 이번 닉스폰 디자인도 원래 계획대로라면 신형 애플폰에 쓰일 예정이었죠.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잡스가 죽고,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습니다.”
-난 그가 죽었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안 나.
-RIP 잡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닉스와 애플이 갈라선 게 그때 이후였군.
“갈라서고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애플에서 제가 원하는 디자인을 선택하기엔 단가가 너무 높았을 뿐이죠. 어찌 됐든 간에 닉스는 독자적으로 스마트폰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나온 녀석이 지금의 닉스폰이고요.”
-닉스폰은 디자인적으로 완성체야. 성능과 배터리도 끝내주지. 닉스폰 때문에 내 동생이 쓰는 애플폰이 똥자루처럼 보일 정도라니까.
-그럼 뭐해? 살 수가 없는데.
-동감. 왜 팍팍 찍어내지 않는 거야? 나도 기다리다 못해 애플폰5를 사버렸어.
-대니얼, 빨리 해명해 보시지.
어느새 방송 시청자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그 때문인지 채팅방의 채팅 올라오는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빨라져 있었다.
“변명부터 해보자면 닉스폰 소재가 특수한 탓에 양산이 쉽지 않습니다. 제조사의 기술력도 높아야 하고, 생산 속도도 더디죠. 그나마 다행인 건 5월부터 제조처인 KG전자에서 생산량을 늘린다고 하더군요.”
채팅창의 분위기는 여전히 항의하는 사람과, 더 기다리겠다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닉스폰 이야기를 적당히 마무리 짓고, 전기차 관련으로 주제가 넘어간다.
다른 방송에서 접하기 힘든 소재인 만큼, 시청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야기가 무르익을수록 시청자 역시 늘어간다.
300만 명에서 500만 명으로, 500만에서 단번에 1천만까지 치솟았다.
그러던 도중. 탁자 위에 놓인 닉스폰이 부르르 하고 떨어댄다.
[확인했습니다.]
비집고 나오려는 미소를 억지로 밀어 넣는다.
후후, 녀석. 네가 뛰어봐야 내 손바닥 안이지.
난 허리를 쭉 펴고 카메라를 응시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급한 업무가 생겨서 방송을 이만 종료해야겠군요. 전기차 관련 뒷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해드리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