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49화
애플 본사 최상층에 있는 임시 회의실.
명칭은 임시 회의실이지만, 실제로는 애플 이사회가 열릴 때만 개방되는 특수한 곳이었다.
“신제품인 애플폰5의 성장세는 견고합니다. 전작인 애플폰4S에 비해 55%가량 출고가 늘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 나갈 것으로…….”
서류를 읽어 가던 애플의 CFO, 제프 베이커는 앞을 슬쩍 훔쳐본다.
그곳엔 자신을 노려보는 10개의 눈이 있다.
일명, 5인의 이사회라 불리는 대주주들이었다.
그들은 애플의 초창기부터 이사 자리를 꿰차고 경영을 좌지우지했다. 1985년, 창업자인 잡스를 애플에서 쫓아낸 것도 그들의 결정이었다.
‘망할 이사회 놈들, 잡스가 없으니 아주 제 맘대로 날뛰는구만.’
제프의 속은 썩어 가고 있었지만, 표정만은 웃으며 보고를 이어간다.
“……현재 애플의 시가총액은 4,900억 달러 선까지 내려왔으나 일시적인 조정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4분기 신제품 발표부터 다시 주가가 회복세를 보이리라 예상합니다.”
반원형 테이블 너머에서 10개의 눈이 번쩍인다.
반대편에 홀로 선 제프는 자신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5인의 이사회 중 가장 날카로운 눈빛을 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제프. 당신이 말하길, 애플폰5는 잡스의 유작이므로 사상 최대의 판매량을 보일 거라 했소. 실제로 그러고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주가가 왜 내려간단 말입니까?”
“이사님, 그간 애플의 주가는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이번 하락은 주주들의 수익실현으로 인한 조정으로…….”
쾅! 하는 책상 내려치는 소리가 돌아온다.
“조정? 말도 안 되는 소리. 실적이 최대임에도 주가가 내려가는데, 조금만 삐끗하면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그럴 일은 없습니다. 애플폰은 매년 성장하고 있으며, 앞으로 신흥국까지 세를 넓힐 것입니다.”
그때, 중앙에 앉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입을 연다.
“아니, 내 생각은 다르네.”
애플의 최대주주인 아더 래빈이었다.
그가 입을 열자, 회의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다.
“하드웨어적인 진보는 한계에 달했네. 계속해서 발전은 하겠지만 타사와 차이를 벌일 정도는 무리야.”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소프트웨어적인 차이라 생각하네. 예를 들자면 자네가 성공할 거라 호언장담했던, 애플 메신저 같은 서비스가 되겠지.”
애플 메신저라는 말이 나오자, 제프의 관리하던 표정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더 래빈은 묵묵히 말을 이어간다.
“제프, 자네는 모바일메신저에 투자한 비용이 얼만지 알고 있나?”
“개발비와 홍보비를 합쳐서 30억 달러가 조금 넘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쯧쯧. 그걸 아는 사람이 일을 이런 식으로 진행했어?”
“래빈 이사님, 애플 메신저의 지표는 나쁘지 않습니다. 우선, 사용 빈도가 높은 것이 고무적이며…….”
“사용 빈도? 지금 날 바보로 아는 건가?”
그의 호통 소리에 제프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딱 삼킨다.
“애플 메신저는 애플폰에 선탑재 앱인 데다가 일반 문자 메시지를 묶어서 처리하잖나. 그러니 사용 빈도가 높아 보이는 착시효과가 나온 거겠지. 내 말이 틀렸나?”
“그, 그것이…….”
래빈은 제프의 변명을 들을 생각이 없는 듯, 목소릴 더 키워 나갔다.
“우리도 닉스챗을 단박에 따라잡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네. 하지만 실사용률이 고작 5%라니! 이게 말이 되는 수치라 생각해?”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출시한 지 고작 반년 된 서비스입니다. 조금은 상황을 더 지켜보시죠.”
“출시와 동시에 닉스챗이 가진 파이를 20% 빼 올 수 있다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지?”
“…….”
제프는 지금도 20%쯤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닉스챗을 애플스토어에서 내리고 그 공백을 애플 메신저로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닉스의 애송이가 역으로 협박해 올 줄이야.’
닉스챗을 공격하자니 과거의 범죄가 까발려질까 두려웠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있자니 이사들이 자신의 목을 날릴 기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제프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게 느껴졌다.
패닉에 빠진 그에게 사형 날짜가 전달된다.
“앞으로 한 달의 말미를 주지.”
“하, 한 달? 이사님 시일이 너무 촉박합니다.”
“촉박하다? 제프,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보군.”
래빈 이사는 그에게 조소를 보내며 말을 잇는다.
“본래라면 당장 해고당했어야 할 자네에게 한 달이라는 시간을 유예해 준 거야. 무슨 뜻인지 알겠나?”
래빈 이사가 싸늘한 눈길을 보내온다. 다른 이사진들의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젠 정말 뭐라도 하지 않으면 끝장이야.’
* * *
-고객의 전화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
뚝.
“아직도 꺼져 있어? 이 자식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대현의 구현민과 전화 연결이 안 된 지도 벌써 나흘째.
번호를 바꾸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인맥 관리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기업가에게 직통 번호를 바꾼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도움이 안 되는 놈이라니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사이에 차창 밖 풍경이 바뀌어 있다. 논밭과 시골길에서 근사한 돔형 건축물로 말이다.
이곳은 볼보 전기차 공장이다.
작년에 완공된 공장은 65만 평 규모로 전기차 생산공장으론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통과해 주차장에 들어선다. 그곳에선 반가운 얼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볼보 코리아와 닉스 에너지를 총괄하는 손만호 이사이다. 아 참, 이젠 이사가 아니라 사장이라고 불러야겠지.
“손 사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하, 대표님 입에서 사장이라는 말을 듣다니, 어쩐지 어색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부장이라고 부르셨는데 말이죠.”
손만호 이사는 볼보 공장 완공과 동시에 사장으로 진급했다.
1년 만에 부장에서 이사로, 다시 1년 만에 이사에서 사장으로 진급했으니. 닉스에서도 이례적인 초고속 진급인 셈이다.
물론, 그의 진급은 필수불가결한 것이기도 했다.
닉스 에너지의 배터리공장이 32만 평.
볼보 코리아의 전기차 공장이 65만 평.
합이 100만 평에 달하는 거대 사업체를 총괄하는 자리에 이사가 앉아 있을 순 없잖는가.
“손 사장님은 닉스 에너지의 전신인 Sol에너지부터 시작해서, 사실상 한국 공장의 기둥부터 세워주신 분 아닙니까? 당연히 사장 자리까지 오르셔야죠.”
“그래도 볼보 코리아의 사장 자리까지 제게 주신 건 너무 과분한 게 아닌지…….”
볼보 코리아는 단순한 지사가 아니다.
닉스가 볼보를 인수한 이후, 스웨덴 예테보리 본사의 주요 인력을 대부분 한국으로 돌렸다. 그렇기에 사실상 한국 공장이 본사나 다름없는 셈이다.
손만호 사장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이런 말을 꺼낸 것이리라.
“전기차 공장 업무를 병행하는 게 버겁습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사장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맡은 업무는 직원들 관리와 대표님 지시사항을 그대로 따르는 정도니까요.”
“그럼 뭐가 과분하단 말입니까?”
“저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 자리에 독일 3사나 대현 쪽 출신이 올 거로 생각했거든요. 닉스가 인재 영입에는 돈을 아끼지 않잖습니까.”
손만호 사장의 말처럼 업계에서 닉스의 인재 영입은 공격적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타사의 인재를 스카우트할 때, 기본이 현 급여의 3배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난 손만호 사장을 보고 싱긋 웃어주며 말했다.
“손 사장님이 볼보 코리아를 맡은 건, 능력도 능력이지만 상징적인 의미도 큽니다.”
“제가 어떤 부분에서 상징이 된단 말씀이신지요.”
“손 사장님은 닉스의 개국공신 아닙니까. 그런 분을 중한 자리에 모셔야지, 머리 좀 컸다고 외부 인사를 손 사장님 위에 앉혀두면 직원들이 뭐라 생각하겠습니까?”
이건 성공한 스타트업들이 흔히 하는 실수기도 하다.
기업이 성공했으니 외부에서 인재를 데려와 높은 자리를 주곤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내부승진에 밀린 기존 직원들의 박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는 그 때문이라도 손 사장님께 최대한 많은 권한을 몰아드릴 생각입니다.”
“허허, 이것 참…….”
많은 권한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손만호 사장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난처한 눈치다.
“볼보 코리아 사장 자리가 부담스럽습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닉스 에너지는 눈 감고도 운영할 자신이 있지만, 전기차 분야는 제가 문외한 아닙니까.”
“사업 방향은 제가 제시합니다. 손 사장님이 신경 쓸 분야는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고 관리하는 것. 그건 손 사장님 전문 분야 아닙니까.”
그제야 손만호 사장의 얼굴이 조금 펴진다.
“분명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믿어 주시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쭉 뻗은 주차장 통로를 지나 지상으로 올라선다.
출구에선 공장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돔형으로 지어진 공장 지붕엔 태양광 시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외벽은 일반 콘크리트 마감이 아닌, 유리와 태양광 패널이 격자형식으로 배치된 것이 인상적이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자동차 공장이 아니라 대형 미술관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내가 공장을 쳐다보고 있자, 손만호 사장은 자신의 집을 소개하는 마냥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대표님, 어떻습니까. 정말 멋진 풍경이죠?”
“그렇네요.”
“저는 매일 같이 전기차 공장을 보지만 매번 감탄사가 나온답니다.”
볼보 전기차 공장은 애플 신사옥과 테슬라의 기가 팩토리를 참고해서 디자인했다.
그 때문에 건설 비용이 초안의 5배를 초과해 버렸지만 태양광 발전으로 탄소배출권 수입이 짭짤하게 들어왔기에, 아주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입구로 들어서자, 공장 특유의 소음이 들려온다.
공장 내부는 구역별로 나눠서 작업이 이뤄졌는데, 구역을 구분하는 라인이 무빙 워커로 만들어져 있었다.
멈춰있던 무빙 워커에 올라타자, 센서가 있는지 자동으로 발판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빙 워커가 있으니 훨씬 낫군요.”
“한 곳에서 일하는 현장작업자들에겐 있으면 좋은 정도겠지만, 구역을 전부 둘러봐야 하는 관리자로선 없어선 안 될 시설이죠.”
실제로 작년 말, 완공식에 참석했을 땐 무빙 워커가 없었다. 그 당시 65만 평의 공장을 다 둘러보지도 못하고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무빙 워커는 다른 방면에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방면요?”
“예, 저쪽을 한 번 보시죠.”
그가 가리킨 곳엔 대학생으로 보이는 무리가 무빙 워커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인턴? 아니면 예비 입사자입니까?”
“공장 견학입니다. 예약제로 운영되며 매일 4회 정도 실시되죠.”
“혹시 공장 전체를 공개하는 건 아니겠죠?”
손만호 사장은 급히 손사래를 친다.
“그건 절대 아닙니다. 공개되는 곳은 외부 조립시설과 완성차 시험소 정도가 고작입니다.”
“흠. 하루에 백 명 정도를 견학시킨다고 얻는 게 있을까요? 별 의미 없는 일 같은데요.”
그 말이 나올 줄 알았던지, 손만호 사장은 청산유수로 설명을 이어간다.
“견학을 신청하는 층은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혹은 자동차 동호회의 젊은 층입니다. 그들은 넷커뮤니티나 SNS 활동이 활발하기에 소수가 큰 파급력을 지니죠.”
“듣고 보니 그럴싸한데요?”
무빙 워커를 타고 10여 분을 이동하자, 빼곡히 주차된 자동차들이 보인다.
얼마 전 미국에 출시된 볼보E60 모델이었다.
손만호 사장은 뭔가가 보일 때마다 소개를 이어 간다. 쿵쿵대는 공장 소리를 이기고자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말이다.
“이곳이 완성차 주행시험장입니다. 여기선 볼보 특유의 깐깐한 안전 테스트를 시행하며, 합격한 차량만 정식으로 출고가 이뤄집니다.”
“생산 효율은 좀 나오나요?”
“시간당 생산 대수(UPH)는 92대이며 타사와 비교했을 때, 40% 이상 높은 수치입니다.”
“호오, 뭔가 특별한 게 있나 보죠?”
“우선 공장의 설계 때부터 동선 효율을 극대화했으며, 생산 품목이 단일 기종인 점. 거기에 내연기관 차량보다 부품이 적은 것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손만호 사장의 열정적인 강연 도중, 반대편 무빙 워커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야야, 저 사람 강현우 아냐?”
“어? 맞는 거 같은데. 닉스 CEO가 볼보 공장엔 왜 온 거지?”
“이 멍청아. 닉스가 볼보를 인수했잖아. 그러니까 공장도 한국에 세웠지.”
“대박! 대박! 실물을 직접 볼 줄이야. 가서 사인이라도 해달라고 할까? 아니지 같이 사진 찍고 싶어.”
학생 무리가 이쪽을 힐끗힐끗 쳐다본다.
그들 중, 제일 별나게 생긴 여학생 한 명이 무빙워크를 역주행해서 이곳까지 달려온다.
“헉. 헉. 헉…… 저기. 죄송한데요. 강현우 대표님 맞으세요?”
“예, 제가 강현우입니다.”
“와, 대박! 저 정말 팬이에요.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었어요. 제 꿈이 산업 디자이너거든요.”
산업 디자이너라. 나 역시 저 때만 해도 꿈이 산업 디자이너였는데.
어째선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공장 견학은 즐거우세요?”
“예, 정말 멋져요. 거기다 대표님까지 만났으니 평생 못 잊을 거예요.”
“남은 시간도 재미있게 구경하다 가세요.”
내가 돌아서 가려 하자.
“아, 저기…… 그러니까…… 니, 닉스챗 지금 안 되던데 무슨 일 있나요?”
무슨 말이라도 해서 날 잡아 보려는 수작이 빤히 보인다. 난 귀여운 수작질에 피식 웃으며 답해줬다.
“거짓말하면 혼납니다.”
“아니에요. 여기 한 번 보세요.”
그녀가 스마트폰을 내민다.
애플의 최신기종인 애플폰5였다.
내가 그걸 보고 음? 하는 소리를 내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닉스폰 사전예약 해뒀어요. 2주 뒤면 도착한대요.”
“잘하셨어요.”
“가, 감사합니다.”
그녀는 귀까지 새빨개지며 고개를 숙였다.
이런 걸 보고 파릇파릇하다고 하던가? 난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보자, 닉스챗이…… 어라? 진짜 안 켜지네요.”
“제 말이 맞죠? 친구들도 전부 안 된대요.”
“전부요?”
“전부는 아니고요. 어, 음. 그러니까, 애플폰 쓰는 애들만 안 된다고 하던데요.”
다른 기종은 되는 데 애플폰만 불통?
“언제부터 이러던가요?”
“10분 정도 됐어요. 갑자기 서버와 연결할 수 없다면서 접속이 안 되더라고요. 아! 그리고 앱스토어에서 다시 받으려 했더니 닉스챗 다운로드가 없어졌던데요.”
닉스챗. 애플폰. 불통. 앱스토어.
단어들이 조합되자 불길한 예감이 몰려온다.
“설마?”
급히 주머니서 폰을 꺼내 든다.
화면을 확인하자, 그곳엔 부재중 전화와 읽지 않은 메시지가 수차례 반복해서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