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IT재벌-147화 (147/206)

기적의 IT 재벌 147화

CES2012에서 깜짝 공개된 닉스폰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닉스폰은 미래적인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소재, 세계 최초 쿼드코어 AP와 역대 최고의 성능, 믿을 수 없는 용량의 배터리까지.

현대의 모든 기술을 집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012년은 일반 소비자도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던 만큼, 닉스폰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한주의 핫이슈를 모아본다. 이슈TV의 야마구치 타츠야입니다. 오늘은 기업분석가이신 혼마 게이지 씨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혼마 씨.”

“반갑습니다, 혼마 게이지입니다.”

앵커인 야마구치는 짧게 고갤 숙이고 뉴스를 이어간다.

“우선 시청자 여러분께 닉스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닉스는 닉스챗이라는 모바일 소프트웨어로 성장한 기업입니다. 닉스서클, 닉스페이 등의 소프트웨어는 물론이고 배터리, 전기차…… 아무튼, 여러 방면에서 활약 중인데요. 사실 동일본대지진 때의 활약으로 엔젤기업이라는 이미지로 더 유명한 기업입니다.”

“일본에서 닉스의 위상은 딱히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죠. 자국 기업보다 더 사랑받는 기업이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런 닉스가 이번에 스마트폰을 출시했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반응, 자료화면 한번 보시겠습니다.”

[닉스의 플래티넘 마케팅 적중? 닉스폰 예약자 3,000만 명 돌파! 사전예약자 숫자만으로 기네스북 올라.]

[닉스폰 플래티넘, 기존 배터리보다 3배 이상 많은 6450mAh의 백금 배터리 탑재. 사전예약자 1,000명 추첨해서 증정.]

[닉스 “닉스폰 플래티넘 판매 계획 없다.” 발표와 동시에 프리미엄 1만 달러 상회.]

“3,000만 명이라…… 엄청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군요. 혼마 씨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올해 초 CES2012에서 발표된 대로만 출시된다면 성공은 떼놓은 당상이라 생각합니다. 일본 내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현존 최고라 불리는 애플폰5보다 진보했다는 평이 대다수니까요.”

“이야, 그렇습니까?”

앵커는 예능 프로에서나 볼법한 과장된 리액션을 보였다.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가격 책정이겠죠. 출시일이 사흘밖에 안 남았음에도 가격이 공개되지 않았거든요.”

“그렇다는 건 가격도 모르는데 사전 예약을 3,000만 명이나 걸었다는 말씀이시네요.”

“사전 예약도 선금을 거는 형태가 아니라서 허수가 많을 거로 예상합니다. 거기다 사전예약자 중, 추첨으로 플래티넘 모델을 증정한다고 하니, 더더욱 사람이 몰린 셈이죠.”

“혹시 업계엔 가격을 늦게 공개하는 일이 흔한가요?”

“아뇨. 출시가 임박했음에도 가격을 비공개로 했던 기기는 전무후무합니다. 이건 닉스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다는 걸 반증하는 거겠죠.”

“고민이 많다? 어느 부분이 그럴까요.”

“닉스폰은 원가가 너무 비쌉니다. 쿼드코어 AP, 2GB 램 등의 성능 쪽은 물론이고, 외부는 티타늄 세라믹 재질에다가 배터리도 2개나 들어있더군요.”

“오호, 배터리가 2개면 뭔가 다른가요?”

“기존의 리튬이온배터리를 메인으로 쓰다가 방전되면 보조로 들어간 리튬에어배터리가 가동되는 형식이죠. 그 덕분에 타사보다 많게는 4배까지 오래 버틴다더군요.”

“4배라, 그것참 놀라운 수치입니다.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혼마 씨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비쌀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실제로 샘플을 분해해 본 결과, 애플폰5보다 원가가 2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

“원가가 2배라면 애플폰5가 799달러니까…… 히익, 예상가가 1598달러가 되나요?”

“이론상은 그렇습니다만, 전문가들은 가격 저항의 마지노선인 1,000달러 선에서 책정될 거라는 예측입니다. 예를 들자면 999달러쯤?”

“그래도 엔화로 따져보면 10만 엔이 넘는군요.”

“어디까지나 예측치가 그렇다는 말이지 확정된 건 없습니다.”

고갤 끄덕거린 앵커가 정면을 바라본다.

“10만 엔이 넘는 스마트폰의 등장. 과연 닉스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우선 스타트는 순조롭습니다. 여길 한번 보시죠.”

혼마 게이지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앵커에게 넘겨 준다. 그곳엔 [예상 수령 가능 날짜 : 3개월 이후]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에엣? 3개월? 지금 예약하면 6월에나 받을 수 있는 겁니까?”

“닉스폰의 예약자는 일본 내에서만 3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예약에 허수가 있다곤 하나,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수령까지 적어도 한 달은 넘게 걸릴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입니다.”

“가격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 스마트폰의 대기가 한 달이라니, 닉스폰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 아, 지금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미국에서 닉스폰 출고가가 공개됐다고 하는군요.”

앵커는 방금 전달된 서류를 능숙하게 읽어 내려간다.

“여러분, 놀라운 소식입니다. 닉스폰의 출고가는 799달러. 애플폰5와 같은 가격으로 발표됐습니다.”

“닉스가 강하게 나오는군요. 799달러면 마진이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역시 닉스다운 행보라고 할까요.”

“마진이 없는데 닉스답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지금까지 닉스의 서비스들은 수익보다 사용자의 확보를 우선시해서 운영됩니다. 이렇게 해도 기업이 유지되나? 싶을 정도로요. 예를 들자면 작년부터 서비스 중인 닉스페이.”

“아하, 닉스페이. 저도 자주 신세 지고 있습니다. 정말 편해요. 지갑이 필요 없을 정도로요.”

일본 전역의 닉스페이 사용률은 신용카드를 뛰어넘었다. 동일본대지진 여파도 있었지만 모리 내각이 닉스페이를 적극적으로 밀어줬기 때문이다.

“그런 닉스페이의 수수료는 0원입니다. 판매자도, 소비자도, 부담금이 아예 없죠.”

“에엣? 믿을 수 없군요. 카드사처럼 1%. 아니지, 0.5%만 징수해도 어마어마할 텐데 말이죠.”

“닉스페이는 물론이고 닉스제로나 N마켓 역시 닉스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유지비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이번 닉스폰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보이고요.”

“동일본대지진 때도 느꼈지만, 닉스는 기업이 아니라 자선단체 같다는 느낌입니다.”

“자선단체는 너무 나갔고, 일단 사용자를 확보하는 데 치중한다고 봐야겠죠. 수익은 후에 저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하는 듯하고요.”

“그렇군요. 혼마 씨,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아, 예.”

시간을 체크하던 앵커는 잽싸게 마무리 발언에 들어간다.

“닉스폰의 출고가가 예상보다 낮게 책정된 만큼, 당분간 스마트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듯합니다. 이상, 이슈TV의 야마구치 타츠야였습니다.”

* * *

KG전자의 스마트폰 조립설비가 있는 평택 공장.

이미 밖은 어둑어둑한 밤이었지만 생산라인 쪽에선 설비가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평택 공장에서 매달 생산할 수 있는 수량은 220만 대 남짓으로, 오성전자를 제외하면 국내 최대 수준의 스마트폰 생산공장인 셈이다.

공장을 천천히 가로질러, 사무동까지 들어선다.

내가 유람하듯 복도를 걷고 있자, 저 멀리서 진승모와 왕정현 부장이 부리 캐나 달려와 고개를 숙인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강현우 대표님.”

난 그들의 손을 한 번씩 잡아주며 인사를 건넸다.

“두 분 모두,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어휴, 안녕하긴요. 대표님이 내주신 숙제가 얼마나 어렵던지. 계속 사고가 뻥뻥 터져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왕정현 부장이 엄살을 피자, 진승모도 한 다리 걸치고 나선다.

“초기에는 왕 부장님이 정말 고생이 많으셨죠. 닉스폰 재질이 특이한지라 불량이 어마어마했거든요. 그거 때문에 설계도 고치고, 어후. 어주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어이쿠, 아닙니다. 상무님이 더 고생하셨죠. 협력업체들 돌아다니며 부품 수급한다고, 집에 열흘에 한 번씩 들어가셨다면서요?”

두 사람, 아주 죽이 잘 맞는다.

이대로 놔두면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이라도 터뜨릴 기세다.

난 일부러 크게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저도 애로사항을 고려해서 KG전자에 의뢰를 넣은 겁니다. 피처폰 시절부터 특수 소재를 가장 많이 다뤘던 제조사 아닙니까?”

“그걸 알아주시다니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근황 토크는 여기까지다. 이제부터 공장에 온 본론으로 넘어간다.

“감개무량은 나중에 하시고. 그보다 닉스폰 추가 생산 물량은 언제쯤 나옵니까?”

방금까지 앞에서 실실 웃던 왕정현 부장이 뒤로 슬쩍 빠진다. 그의 빈자리엔 진승모가 대신 나섰다.

그의 표정은 뒤처리하러 나온 패전투수를 보는 느낌이었다.

“선배님, 그게 그러니까…… 생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요?”

“그 문제는 닉스폰이 너무 잘 팔린다는 겁니다. 그것도 예상치를 몇 배나 웃돌 정도로요.”

닉스폰의 사전예약자는 총 3,400만 명 남짓.

대다수가 사은품을 노리고 신청한 허수였지만, 그래도 9%가량인 310만 명은 구매까지 이어지는 초대박을 쳤다.

문제는 KG전자에서 생산한 닉스폰 초도 물량은 200만 대가 고작이었기에, 출시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120만 명가량은 닉스폰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저희 쪽에선 초도 물량 200만 대가 최소 2달은 버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물량을 예약 판매로 다 떨어 버리다니, 이걸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그 말은 준비된 재고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까?”

“일단은 그렇습니다.”

이거 난감하게 됐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사전 예약 수요를 못 쳐냈다는 건, 오프라인 물량은 하나도 못 나갔다는 뜻이다.

“선배님, 죄송하게 됐습니다.”

“일이 이렇게 됐는데 어쩌겠습니까. 급한 대로 생산된 물량이라도 넘겨주시죠. 사전 예약 건이라도 털어야 하니까요.”

“저, 그게…….”

진승모는 한참이나 쭈뼛쭈뼛하다 진실을 토해냈다.

“현재 생산된 물량이 없습니다.”

“없다고요? 하나도?”

“예…… 경영진에서 계약된 닉스폰 물량인 200만 대만 만들고 설비를 다른 기종으로 돌려 버렸습니다.”

이게 뭔 소린가 싶어서 그를 빤히 쳐다본다.

시선을 받은 진승모는 진땀을 흘리며 부연 설명을 해댄다.

“그게, 그러니까. 저희가 상반기에 출시될 옵티무스4X의 제조를 뒤로 미뤘잖습니까?”

“그랬었죠.”

“그걸 회장님이 아시곤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위탁생산 때문에 자사 제품을 뒤로 미뤘다는 건, 그만큼 KG전자 스마트폰이 안 팔린다는 소리다.

현실이 그럴지언정 마음만은 오성전자를 라이벌로 생각하는 KG전자였으니, 진양현 회장이 길길이 날뛸 만도 하다.

“그 때문에 닉스폰 초도 물량만 뽑아내고 부랴부랴 옵티무스 후속 기종으로 생산을 돌린 겁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닉스와 KG전자가 계약한 초도 물량은 200만 대. 이후 매월 50만 대씩 추가 생산하기로 돼 있지만, 그건 정확한 납기일이 정해진 계약사항이 아니다.

“하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

냉정하게 사태를 바라보면 KG전자를 욕할 게 아니다.

그들은 할 만큼 했다. 빠듯한 납기일을 맞춰준다고 자사 제품 생산을 지연시키면서까지 닉스폰을 밀어줬잖는가.

“선배님, 급한 대로 설비 절반 정도는 다시 닉스폰 생산으로 돌려놨습니다. 다음 주쯤이면 다시 완제품이 출고될 겁니다.”

“절반이면 매월 몇 대나 나옵니까? 60만 대?”

“닉스폰은 특수 소재를 썼기에 생산 속도가 더딥니다. 최대한 노력한다 해도, 매월 생산량은 35만대 정도로 예상됩니다.”

매월 35만 대면 사전 예약 물량을 털어내는 데만 3개월이 넘게 걸린다.

내 표정이 안 좋았는지, 진승모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저기, 선배님. 제게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뭡니까?”

대답은 하지 않고 계속 뜸을 들이는 녀석.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눈치를 보는 걸까?

진승모는 한참이나 고민 끝에 말을 털어놓는다.

“그제쯤 제게 연락이 왔었는데…… 오성전자에서 닉스폰 위탁생산을 맡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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