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IT 재벌 146화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닉스의 야심작, 닉스폰을 소개합니다!]
내 멘트만으로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아직 디자인이 공개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닉스 로고가 살짝 스쳐 지나가고 카운트다운이 이어진다.
5…… 4…… 3…….
숫자가 바뀌면서 닉스가 서비스 중인 닉스 페이, 닉스 제로, 닉스 서클, 닉스 챗이 하나씩 떠올랐다 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숫자 0이 떠오르고.
모두가 기다렸던 닉스폰의 모습이 공개됐다.
“오오, 저것이 닉스 폰! 역시 닉스의 디자인은 역대 최고지.”
“그 잘난 애플이, 왜 닉스서 디자인을 가져다 썼는지 이해를 못 했었는데……. 이젠 그 이유를 알 거 같아. 외계인을 납치했다는 농이 진짜일지도.”
“렌더링을 잘 뽑긴 했네. 문제는 실물이 저 정도로 나올 수 있을까? 자동차 업체의 콘셉트카를 보는 느낌인데.”
“아, 됐고. 언제 살 수 있는지만 알려줘, 돈은 이미 준비됐으니까.”
“루머로 돌던 디자인과는 완전 다르다? 인터넷에 돌던 렌더링은 애플폰4와 비슷하지 않았어?”
작년부터 닉스폰에 대한 디자인 루머는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애플폰4와 닮은 녀석도 있었고 갤럭시스S 시리즈와 흡사하거나, 그 둘을 반반씩 섞은 혼종 디자인도 닉스폰이랍시고 뉴스에 등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내가 연습 삼아 만든 가짜 렌더링이었다. 이른바 연막작전이라고나 할까?
훗, 이번 닉스폰을 폭스콘이나 HTC에 위탁했다면 디자인이 진작에 유출돼서 인터넷에 퍼졌겠지. 보안 측면은 확실히 국내 대기업이 최고라니까.
객석이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려 했으나, 시간이 흘러도 분위기는 진정될 줄을 몰랐다.
난 마이크를 톡톡 두드리며 시선을 모은다.
[닉스폰은 유니크함을 추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치열하게 고민했죠. 어떻게 하면 닉스폰 사용자에게 특별함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닉스만의 디자인? 최상의 성능? 모두 필요하지만 아직은 뭔가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대형 스크린에서 닉스폰 이미지가 확대된다.
전면부터 시작해서 옆 라인, 센터 버튼과 수화부, 액정까지 찬찬히 훑어 나가기 시작한다.
[고급스러움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닉스폰의 외부 소재는 플라스틱 대신 글래스와 티타늄 세라믹 재질을 택했습니다. 유니크한 소재는 사용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티타늄 세라믹이라는 발표에 상반된 반응이 나온다.
하나는 ‘닉스가 드디어 일을 냈구나!’ 와 같은 긍정적인 반응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체 닉스폰의 출고가를 얼마나 비싸게 책정하려는 거지?’ 라는 걱정스러운 반응이었다.
[물론, 닉스는 이 기기의 본질이 스마트폰이라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초 쿼드코어 AP를 탑재했고, 2GB 램, 넉넉한 64GB의 내부 저장소…… 흠? 잠깐만요. 이런 건 부품만 때려 넣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군요. 닉스폰이 추구하는 유니크와 거리가 먼저 같네요. 안 그렇습니까?]
단상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초롱초롱한 기자들의 눈망울이 보인다. 아무래도 지금쯤 뭔가 터질 타이밍인 걸 감지했나 보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세상에서 오직 닉스폰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시스템. 울트라 부스트 배터리 시스템을 소개합니다!]
단상의 조명이 꺼진다.
그와 동시에 산발적으로 들려오던 기자석의 소음이 뚝 끊어진다.
객석 모두가 무대에 집중한 탓에 과장 좀 보태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곧이어, 스크린에서 영상이 흘러나온다.
그곳에서 등장한 건 5대의 스마트폰이었다.
각기 다른 제품이지만 새까만 배경 탓에 흐릿한 실루엣만이 드러날 뿐이다.
물론 이곳에 모인 IT 전문기자들은 실루엣만으로도 어떤 회사 물건인지 대번에 알아챘지만 말이다.
애플의 애플폰4S.
소니의 엑스페셜A.
오성의 갤럭시스S2.
HTC의 디자이어HD.
마지막으로 닉스폰.
모두가 똑같은 오케스트라 연주 영상을 흘려보낸다.
뜬금없는 연주회에 객석에선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나왔지만, 영상이 300배속으로 빨라지면서 기자들부터 눈치를 챘다.
“닉스폰의 배터리 타임을 보여주는 거 같아. 요즘 폰 배터리가 빨리 닳는 거 같아서 불만이었는데, 몇 시간이나 버틸까? 6시간쯤?”
“동영상은 배터리 먹는 괴물이야. 기껏해야 3시간에서 4시간 사이겠지.”
“이건 닉스의 실책이야. 기술력을 과시하는 건 오성전자 같은 제조사의 몫이고, 닉스는 소프트웨어적인 강점을 보였어야 해.”
“그래도 흥미진진하잖아. 흐흐, 기삿거리로도 충분하고 말이지.”
가장 먼저 나가떨어진 건 HTC의 디자이어HD였다.
기록은 2시간 09분. 재작년에 출시된 기기인 만큼, 가장 적은 1230mAh의 배터리를 탑재했기 때문이다.
디자이어HD를 시작으로 엑스페셜A, 갤럭시스S2까지 줄줄이 화면이 꺼져 나간다.
의외로 배터리 용량이 작다고 알려진 애플폰4S가 분전 중이다.
“4시간 38분. 드디어 애플폰4S가 꺼졌어.”
“의외의 결과야. 배터리 용량은 애플폰이 1420mAh밖에 안 되잖아? 갤럭시스S2는 1600mAh가 넘는 거로 아는데.”
“애플폰은 싱글코어 AP에다 액정 크기도 작잖아. 거기다 안드로이드OS의 한계라는 게 있으니까. 배터리가 탈착식인 거로 위안 삼아야지.”
“어? 그런데 닉스폰은 왜 안 꺼져? 애플폰이 꺼진 뒤로 한참이나 지났잖아.”
4대의 경쟁사 기기가 꺼진 뒤에도 닉스폰은 홀로 300배속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더 흘렀지만, 여전히 연주는 계속된다.
이쯤 되자 기자들은 닉스폰이 1등을 했다는 것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버틸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7시간이 넘었어.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당연히 양념을 쳤겠지만……. 엄청난 건 사실이야. 이건 배터리의 혁명이라고!”
“하드웨어 기술력 과시를 실책이라고 했던 거 취소. 이 정도 격차면 과시를 안 하는 게 이상한 거지.”
“내가 쓰는 디자이어HD보다 4배라니. 하하,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진짜면 무조건 산다. 두 번 산다.”
홀로 남은 닉스폰이 툭 꺼진다.
측정하던 스톱워치가 멈춘 시간은 8시간 08분.
동 세대의 스마트폰들이 고작 3시간 남짓을 버틴 걸 감안하면 믿을 수 없는 성능 격차였다.
[여러분 재미 난 구경하셨습니까?]
엄청난 영상을 본 뒤라, 객석 모두가 내 발언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다.
잡스가 무대에서 뽐냈던, 마법의 비밀.
그것에 한 발짝 다가선 느낌이다.
[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니크한 스마트폰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 버렸죠. 바로, 이 닉스폰을요.]
내가 주머니에서 닉스폰 샘플을 꺼내 든다.
객석과 무대는 거리가 제법 있었지만, 대형 스크린에 확대 영상이 떴기에 코앞에서 구경하는 것처럼 닉스폰을 볼 수 있었다.
객석에서 감탄사와 함께 박수갈채가 흘러나온다.
개중에는 실물을 가까이서 보려고 앞으로 튀어나왔다가 진행요원과 몸싸움을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자, 다음은 향상된 닉스OS의 새로운 기능을 소개할까 합니다.]
무대 쪽으로 달려드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그 모습은 할리우드 좀비 영화에서나 볼법한 광경이었다.
“비켜! 밀지 말라고!”
“내가 미는 게 아니라 내 뒤에서 미는 거야.”
“붙어서 렌더링과 실물이 같은지 확인부터 해. 카메라 챙기고!”
좀비들과 이들의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하나같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는 것 정도일까?
이대로 진행요원 벽이 무너지면 기자들에 둘러싸여 강제로 질문 타임을 가져야 할 기세다.
난 발표를 마치고자 급히 멘트를 던져댄다.
[여러분의 반응을 보니, 더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출시 일정을 전해드립니다. 정식 출시는 2월 28일. 오늘부터 닉스 챗에서 사전 예약을 받으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
“애플폰5 대항마 갤럭시스S3 조기 출시. 오성전자의 강공에 애플의 운명은?”
“다음.”
“애플폰5 게 섰거라. 애플폰 킬러 갤럭시스S3, CES2012에서 화려한 데뷔.”
“다음.”
“오랜 기다림 끝에 공개된 닉스폰, 향상된 배터리와 특수 소재를 썼지만, 혁신은 없었다.”
“스톱.”
신문을 읽어가던 비서의 입이 멈춰섰다.
“이걸 기사라고 쓴 거야? 우리가 먹이는 돈이 얼만데, 이 밥벌레 같은 놈들. 대체 어느 신문사야? 응?”
고함의 주인공은 오성 그룹의 정희건 회장이었다.
“후…….”
병실에 묘한 정적이 흐른다.
처음부터 고갤 숙이고 있던 정용재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였고, 괜히 신문을 읽어주던 여비서만 양쪽 눈치를 본다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국내 신문은 치우고, 해외 반응을 봐야겠다.”
정희건 회장은 직접 영자신문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건 경제지 포브스에서 이번 CES2012 특집으로 발행한 신문이었다.
“저, 저기 회장님.”
“왜? 영어 못 읽어?”
“그런 게 아니라…….”
비서가 신문을 붙잡고 어찌할 바를 모르자, 정희건 회장의 재촉이 이어진다.
“뭐 해. 냉큼 읽어 봐.”
“아, 알겠습니다.”
“거기 헤드라인부터 머리글만 읽으면 될 거다.”
신문을 펼쳐 들어 헤드라인을 본다.
“헙!”
그녀는 비명을 간신히 집어삼킨다. 물론 그랬다고 새파랗게 변한 얼굴색이 감춰지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그, 그럼 읽겠습니다.”
입술을 꽉 깨문 그녀가 신문을 번역해 나간다.
“희비가 엇갈린 CES2012. 닉스는 센세이션을, 오성은 텅 빈 부스를.”
“사진 아래쪽엔 뭐라 쓰여 있어?”
“같은 시각 진행된 닉스의 깜짝 발표를 취재하기 위해 오성전자 부스를 이탈하는 기자들…….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정희건 회장은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정용재 부회장은 아까부터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였다.
병실 분위기는 이보다 더 안 좋을 수 없었다.
“그 아래 내용도 찬찬히 읽어 봐. 또박또박 잘 들리게.”
“회, 회장님.”
“내 말 못 들었어? 빨리 읽어 보라고!”
“알겠습니다.”
비서는 사약을 먹는 사람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며 기사를 읽어 나간다.
“이번 CES2012에서 최대 행사로 여겨졌던 갤럭시스S3 발표는 시작부터 반응이 미지근했다. 발표 내용도 기존에 알려진 그대로였고 특별히 새로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 시간대에 깜짝 발표된 닉스폰은 기존 스마트폰의 상식을…….”
거기까지 읽어갔을 때, 정희건 회장이 손을 든다.
비서는 십 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신문을 내려놨다.
“정용재.”
지금까지 목석처럼 서 있던 정용재 부회장의 대답이 흘러나온다.
“예, 아버지.”
“내게 할 말이 있더냐?”
“없습니다.”
둘의 대화는 도저히 부자지간의 대화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메말라 있다.
“이리 오너라.”
“예.”
고갤 끄덕인 정용재가 정희건 회장에게 다가간다.
그가 침상에 다가섬과 동시에 다짜고짜 따귀가 날아들었다.
짝-!
정용재의 턱이 돌아갈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고개를 바로 한다.
짝- 짝- 짝-
따귀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
때리는 정희건 회장이나, 그걸 앓는 소리 한번 없이 받아내는 정용재 부회장이나. 독한 건 매한가지였다.
“용재야.”
“예, 아버지.”
“내가 널 왜 때렸는지 알겠느냐?”
양 뺨이 벌에 쏘인 듯 부풀어 있었으나, 정용재는 아무렇지 않게 질문에 답을 냈다.
“제가 오성의 이름에 먹칠을 한 탓입니다.”
“아니다.”
“제가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쳐서입니다.”
“그것도 아니다.”
“제가 모자라서입니다.”
아들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정희건 회장. 그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네가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가 강현우를 이길 수 없다고요?”
방에 들어와서부터, 단 한 번도 고갤 들지 않았던 정용재의 시선이 그의 아버지를 향한다.
“녀석은 시기를 잘 타고났을 뿐입니다. 제가 진심으로 대결한다면…….”
“이 못난 놈! 지금껏 몇 번이나 당하고도 그런 말을 지껄이는 게냐? 디자인 로열티 건도 그렇고, 전기차 부품 수주도 개처럼 끌려다녔으면서!”
“아, 아버지가 그걸 어떻게?”
“너는 네 아비가 병상에 있다고 아무것도 모를 줄 아느냐? 응?”
그는 다시 한번 손을 치켜들었지만, 이번은 뺨에 휘둘러지지 않았다.
그저, 진 회장 자신의 가슴만 두드려댈 뿐이었다.
“전부 내 잘못이다. 아들을 이리 어리석게 키운 내 잘못이란 말이다.”
정용재는 재빨리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린다.
“아버지,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럼 녀석을 완전히 재기불능으로 만들겠습니다.”
“참아라.”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필요하다면 녀석에게 가서 무릎이라도 꿇어라. 지금처럼 말이다.”
정용재는 조아린 머리를 쳐든다.
자신의 아버지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 싶어서였다.
“아버지?”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의 닉스는 네가 상대하기 너무 커버렸다. 이긴다 한들 상처뿐인 승리겠지.”
“놈을 이길 계책은 있습니다. 구글과 연합해서 닉스를 압박하고, 그걸 토대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쪽에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벌떡 일어서서 발길질하려는 그를, 지켜보던 비서가 가까스로 막아선다.
씩씩거리는 숨을 토하던 정희건 회장은 간신히 진정하고 병상에 앉았다.
“용재야. 군자복구 십년불만(군자復구 十年不晩)이라는 말을 아느냐?”
“아, 알고 있습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던……. 앗!”
뭔가 깨달은 표정의 정용재가 그의 아버지를 바라본다. 그제야 희미한 미소를 머금는 정희건 회장.
“바짝 숙여라. 그가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해줘라. IT산업의 유행은 빠르다. 그리고 우리 오성은 그 어떤 기업보다 기술을 따라잡는 데 능하지.”
“이를 악물고 견디겠습니다.”
“그래, 굴욕이 클수록 복수의 희열도 클 것이다. 앞으로도 이 말을 명심하거라.”